여행지의 건축물은 추억을 부른다.
유럽이 그리워서 여행 일정, 유럽 날씨 등을 검색하다 동기의 블로그를 보게 됐다. 친하지는 않았지만 학교에서 봤던 얼굴이 인터넷에 있는 게 신기했다. 쾰른 대성당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에 한참 시선이 머물렀다. 어떤 장소나 물건은 꼭 여행지의 추억을 불러일으킨다.
유럽여행에서 도시별로 유달리 강한 기억을 남긴 건축물이 있다. 파리 근교의 베르사유 궁전. 독일 본의 베토벤 하우스 그리고 쾰른 대성당. 사실 같이 여행을 간 친구 J의 관심사는 독일에 있었고, 내 관심사는 프랑스에 있었다. 펜팔 친구가 있는 네덜란드도 아니고, 관심사가 집약된 프랑스도 아니니 독일은 쉬어가는 여행지라고 생각했다. 크게 기대하지 않았기에 대성당을 보는 순간 깜짝 놀랐다.
쾰른 중앙 역을 나오면 바로 보이는 대성당의 위엄에 압도당했다. J도 같은 느낌을 받았는지 우리는 쾰른 대성당을 한번 보고, 두 번 보고, 쾰른에 머무는 동안 몇 번을 오며 가며 질릴 때까지 보고 또 봤다. 화려한 색감도 없고 오래된 데다 놀랄 만큼 넓은 곳도 아닌데 시선을 뗄 수 없었다.
쾰른 대성당. 하늘에 닿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인가, 신의 권위에 대한 도전인가(시간이 오래돼서 문장이 정확한지 모르겠다.)라는 여행 책자의 문장에 공감했다. 새로운 나라에서 만나는 새로운 음식, 건물, 사람들에 대한 놀라움과 신기함이 일반적이라면 쾰른 대성당은 압도와 경탄의 느낌이 강했다.
여행을 다녀와서 지인들이 '어디가 제일 좋았어?'라고 물었을 때 쾰른 대성당이라고 답했다. 에펠탑이 싹 지워질 정도라는 내 말에 ‘에이, 그건 오버지~’라며 지인들은 폰으로 열심히 대성당을 검색했었다. 단언컨대, 사진이 담아낼 압도감이 아니다.
독일에서 내가 가장 사랑하는 건축물이 된 대성당은 쾰른에 있는 동안 길치인 나에게 큰 안도감을 줬다. 높고 뾰족뾰족해서 길을 걷다가 ‘여기가 어디더라?’ 싶을 때 고개만 들면 보였다. 낯선 길을 걸어도 대성당이 보인다는 사실 하나로 얼마나 마음이 놓이던지. (이젠 놀랍지도 않게, 또 길을 잃었지만.)
우연히 쾰른이라는 단어나 성당이라는 말을 들으면 늘 그때로 돌아간다. 이전의 나를 지우고 싶다며 짧은 머리를 더 짧게 자르고, 날씨가 추워서 예쁜 옷은 포기하고 오래 입었던 패딩 아니면 조끼를 입고 열심히 걸었던 어린 날의 나. 겁이 없었고, 현실을 낮게 봤고, 그럼에도 불안하고 흔들리던 내 앞에 감히 올려다볼 수도 없을 만큼 거대한 대성당이 있다는 게 좋았다. 대성당이 들이쉬고 내뱉는 숨을 코앞에서 느낄 수 있는 거리에 내가 와 있다는 실감(實感).
쾰른 대성당에는 J에게 대성당 홀로그램 엽서를 선물 받고 좋아하던 어리고 용기 넘치던 내가 살고 있다.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무언가 되고 싶은 열망이 가득했던 스물셋의 내가. 나는 쾰른 대성당이 이 땅에 오래오래 머물러 주기를 바란다. 그곳에는 용기 넘치던 나뿐만 아니라 J가 있고, 내 동기가 있고 아주 많은 사람들의 어린 ‘내’가 숨 쉬고 있을 테니까. 그때의 나를 떠올리게 하는 건축물이 많아질수록 나는 어린 나와 더 기쁘게 만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