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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호찐빵 Nov 30. 2022

그림에 담기는 마음

‘이제 좀 그만해라~.’ 할 만큼 오래오래 그리고 아직도 좋아하는 게 있다. 쨍한 노란색. 쨍하지도 너무 어둡지도 않은 연두색과 초록색 같은 것들. 몇 달 전에 구입한 2023년도 다이어리도 회사 스케줄러도 우표를 넣어둔 미니앨범도 다 노란색이다.      


‘아이고, 촌스럽다.’ 


내 방 벽지는 연두색인데 아직도 마음에 들어서 바꾸지 않고 있다. 이 외에도 좀 부끄럽지만 드라마 보면서 혼자 키키키 웃는 밤과 환한 낮에 어울리는 친구와 끝없는 수다도 내가 좋아하는 것들 중 하나다.    



몇 주 전, 그런 좋아하는 것들을 이야기했다. 대학원 수업시간이었는데 서로 등을 맞댄 상태로 요즘 내가 좋아하는, 그렇지만 사실은 오래된 것들을 중얼거렸다. 그 말을 들으면서 등을 맞대고 있는 선생님은 도화지에 나를 표현했다. 일정 시간이 지나면 교수님은 시간이 다 됐다고 알리며 내가 확인하지 못하도록 잽싸게 도화지를 걷어가셨다. 2명씩 짝지어 한 활동이 마무리되고 다 같이 원을 그려서 모였다.      


교수님은 도화지를 한 장씩 보여주면서 이게 내 이야기를 그린 그림 같다면 손을 들라고 하셨다. 그리고 왜 그렇게 느꼈는지를 나누기로 했다. 나는 한가하게 누워 넷플릭스를 보는 사람이 그려진 그림이 나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한 그림에 자꾸 시선이 갔다.


 ‘내 그림 같은데?’ 


한참 바라보다 손을 번쩍 들었다. 

(동기 선생님께 그림에 대한 SNS게시 및 사용 허락을 받았습니다.)


노랑과 초록이 묻어있는 배경과 TV를 보니 나 같기도 한데 TV는 누구의 일상에나 있을 가능성이 높고, 손과 알록달록한 색은 언급한 적 없어서 바로 손들지 못했다. 그림을 그린 선생님은 사람과 수다 떠는 걸 좋아하고, 드라마에 헤헤-거리는 내 모습을 귀엽게 그리고 따뜻하게 느꼈다고 했다. 분명 내가 말하는 걸 그렸음에도 본인이 생각하는 귀여움과 따뜻함의 느낌을 표현한다는 사실이 새삼 신기했다.     


호호찐빵의 일상을 그렸지만 그 작품은 이미 선생님(나를 그려준 선생님)것이다. 주제를 정하고 그려도 사람마다 그림에 담기는 마음은 다르고 이 그림에 무의식이 드러난다.      


A : 요즘 물에 빠진 것처럼 우울해요. 라는 말을 듣고 파도가 들이치는 바다를 그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잔잔하고 검은 물을 그리는 사람도 있다. 우울하다고 말하는 A는 공통된 인물이지만 그림을 그리는 사람에게는 자신이 생각하는 우울함에 대한 감정과 느낌이 표현된다.   

   


나무를 한 그루 그려보세요. 라는 제시어에 누군가는 나무에 열매를 그리고, 누군가는 뿌리가 다 드러난 나무를 그리고, 누군가는 잎이 다 떨어지고 가지만 앙상한 나무를 그리는 것처럼. 연필을 세게 쥐는지, 적당한 힘을 주는지, 아주 희미하게 선을 긋는지 필압도 다 다르다.      


이 지점이 나를 미술치료에 빠지게 한다.      


말은 거짓을 뱉거나, 속내를 감출 수 있지만 그림은 완벽하게 마음을 속이기가 어렵다. 그래서 그림에 담긴 나의 모습을 콕, 콕 건드려주는 교수님 말씀에 가끔은 속마음을 들킨 것 같아 부끄럽다. 하지만 나를 점점 알아가고 있다는 점이 오히려 내 불안을 감소시킨다. 


그려서 드러내고 나면, 그건 더 이상 미지의 불안이 아니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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