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승해군캠프 북콘서트에서 못다 한 이야기
최근 들어 우리나라를 지키는 국군, 그중에서도 해군을 만나는 소중한 시간을 가져왔다. 강연 이후에는 질의응답을 하는 시간이 있는데 다들 용기 내어 질문을 많이 해준다. 많은 사람들이 있는 공간에서 손을 들고일어나 질문을 한다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알기에 부족한 소견임에도 최선을 다해 답변하려 노력한다. 그들과 소통하면서 수많은 영감을 받았고, 오고 가는 말들에서 내가 더 많이 배운다. 생각지도 못한 질문들이나 충분히 답하지 못한 듯한 주제는 머릿속에 남아 혼자만의 숙제가 되기도 한다.
그중에서도 ‘해군의 경험을 어떻게 사용할 수 있을까요?’,‘해군을 위한 책을 추천해주실 수 있을까요?’라는 질문을 받았던 적이 있다. 너무나 쉬운 질문 같아 보이지만 내겐 꽤 묵직하고도 큰 질문이었다. 전문분야가 아닌 해군이라는 주제와 책 추천이라는 간단해 보이지만 쉽지 않은 문제를 어떻게 연결시킬 수 있을까? 순간 몇 천자 정도의 분량의 글은 할애해야 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당시에는 시간 관계상 짧은 답변으로 적당히 넘어갔던 것 같다.
하지만 그 정도의 답으로 의미나 깊이를 다 전달할 수 없었고 나 자신이 답답했다. 또 말은 평범해 보여도 누군가에게는 비수가 될 수도, 천냥 빚을 갚을 수도 있다. 나의 부족한 말로 혹여나 책을 싫어하게 되지는 않을까, 소중한 시간과 노력을 쏟고 있는 군 경험에 의미를 부여하지 못하게 되면 어쩌지 하는 괜한 마음에 끄적이게 된다.
몇 년 전 국군장병 60만 명을 대상으로 한 강의로 인연이 되어 그동안 꾸준히 군인들을 만나와서인지 이제는 가족처럼 절로 아끼는 마음이 들고 책임감마저 든다. 솔직히 예전에는 해군하면 이순신 장군과 세일러복 정도밖에 떠오르지 않았지만, 국군이라는 큰 덩어리로 저 멀리 여겨지던 무언가가 세세히 쪼개져서 나의 일부로 흡수된 느낌이다.
최근에 개봉한 영화 <한산>을 보면서도 다른데 한 눈을 팔았다. 예전 같았으면 이순신 장군만 보였을 거다. 물론 이순신 장군을 통해 리더의 판단력과 현명함도 생각해 볼 수 있었지만 이번엔 이름 모를 수많은 병사들에 시선이 갔다. 밖도 보지 못하고 말 한마디 없이 지휘자의 명령에 따라 있는 힘껏 노를 젓는 그 모습에 숙연해졌다. 자신의 인생을 바친 이름 없는 수많은 이들이 덕분에 내가 이 땅에 살고 있구나.
아마도 많은 이들이 선인들에 대한 존경심과 동경으로 군인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그 마음 그대로 행복한 군생활을 하고 있다면 너무나 다행이다. 누군가는 나라를 지키려는 큰 뜻으로 입대하였으나 내가 정작 하는 일이 너무나 단순 업무라 김이 샜을 수도 있다. 혹은 능력에 비해 과도한 업무나 예상치 못한 인간관계로 힘든 시간을 보낼 수도 있다. 그 힘든 시간 때문에 헛된 시간이 아니라는 걸 꼭 기억했으면 좋겠다. 사회에 속했을 때 누구나 겪는 슬럼프니까.
사람마다 각기 다른 방식으로 슬럼프를 이겨낼 수 있겠지만 독서를 조심스레 추천해본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쉽게 멈출 수 있기에 곱씹으며 자신의 생각을 단단히 만들어갈 수 있으니까. 그 힘으로 내 인생을 주도적으로 만들어 나갈 수 있을 거라 믿는다. 다만 책 추천은 각 개인의 성향과 경험이나 지식수준에 따라 판이하게 달라지기에 조심스럽다. 누구에게는 인생 책이 될 수도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한 문장도 쳐다보기 싫은 책이 될 테니 말이다. 하지만 꼭 추천한다면 인문 고전류의 책들을 꼽을 수밖에 없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생각할 수밖에 없는 주제를 다뤘기에 오랜 시간 동안 사랑받은 검증된 책들이기 때문이다.
휴가 등의 외출이 자유롭지 않은 점이 답답하여 감옥과 같은 느낌이 든다면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라는 책을 추천해본다. 또 너무 쉽고 반복적인 일로 나의 개성과 자존감이 무너지고 있는 중이라면 일상 에세이나 기본에 충실하기를 바라는 책들도 좋겠다. 나의 강점을 알고 싶거나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모르겠다면 성경을 비롯한 논어, 채근담 등의 책을 읽고 수백 년 전의 현인들과 대화해보기를 추천한다. 처음부터 읽히지 않더라도 쉽고 관심이 가는 책들로 시작하다 보면 책이 좋은 친구가 될 거라 믿는다.
같은 군인일 지라도 해군이라서, 혹은 공군, 육군, 해병대라서 특별한 점이 분명 있을 것이다. 같은 해군일지라도 근무하는 부대의 특성마다 다른 점이 있고, 같은 함정 내에서도 다른 업무를 하기에 같은 군생활을 했어도 자신이 가진 경험은 특별하고 소중하다. 원래 같은 그룹에서 같은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이것이 특별한 일인지 모른다. 하지만 사용한 용어나 단어, 표현만으로도 너무나 색다른 이야기가 된다.
승무원을 할 때에는 내 주변에 온통 승무원밖에 없었기에 단어와 소재가 신선한지 몰랐다. 교대에 가서도 초등교사가 되어서도 주변은 다 선생님이고 내가 아는 건 누구나 다 알고 있었다. 하지만 각 직업의 세상에서 나오니 별거 아닌 직업상의 일상적 이야기임에도 다들 흥미로워했다. 비행기 내의 물로 손을 씻지 않고, 선생님의 방학생활 등 별거 아닌 이야기도 궁금해했다. 나 역시 다른 세상 이야기가 재밌어서 소개팅을 직업 탐험이라 생각했을 정도니까.
그런데 ‘군대 이야기는 절대 하지 말라던데요? ‘라는 소리를 들을 때면 의아하다. 난 참 재밌던데 왜 그런 걸까. 누군가에게는 기회가 없어 전혀 접해보지 못한 신선한 소재인데 말이다. 이야기하는 방식의 차이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나와는 관련이 없는 이야기와 신선한 이야기는 한 끗 차이다. 자신이 지금 처한 현재 경험과 단상을 한데 모아 나만의 방식으로 꼭 정리하는 경험을 했으면 좋겠다. 군생활을 하다 읽은 책 감상도 좋고, 훈련기간에 한 일들도 좋다. 꼭 기억하고 싶은 나만의 영웅담도 좋고 태어나 처음 보고 겪은 경험들도 훌륭한 소재다. 강의하러 갔다 본 진해 해군기지에서 본 배들과 바다와 하늘이 한 폭의 그림처럼 어우러지는 아름다운 풍경도 나중에는 다시는 못 볼 기억의 한 자락이 되지 않을까.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재료들을 하나의 요리로 만들어낼 때 수많은 레시피가 있는 것처럼 다양한 주제를 나의 생각과 함께 버무려 완성된 작품으로 만들어 내는 것에도 정답은 없다. 이것이 창조라 한다면 누구나 자신만의 방식이 있을 거라 믿는다.
술자리에서 친구와 대화를 나눠도 좋고 SNS에 짧은 생각을 남겨도 좋고, 멜로디로 표현할 수도 있고, 그림이나 스케치로 남길 수도, 요리에 나만의 색깔 한 스푼으로 바꿔낼 수도 있을지도 모르겠다. 자신만의 더 수월한 방식이 없을 때에는 세 문장 정도의 일기와 같은 글쓰기를 추천한다. 말을 할 수는 있으니, 연필 잡는 게 싫다면, 녹음도 좋다. 그렇게 모아진 생각의 단상을 모아 나만의 논리로 모아나 가다 보면 새로운 무언가가 탄생한다. 그 과정이 나의 경험과 배움이 보물로 바뀌는 나의 자산이 될 것을 확신한다. 배움의 끝은 내 생각의 말들로 글쓰기니까.
군인들을 볼 때면 우리나라를 지키고 있어 성별과 나이를 떠나 무척이나 늠름해 보이고 강해 보이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들도 한 생명이었고 누군가의 소중한 아이였을 터, 우리 집 꼬맹이도 십 년 후면 나라를 지킬 테니 그걸 생각할 때마다 가족의 마음으로 심신 건강을 잘 지키기를 기원한다. 그리고 혹여나 마음의 여유가 조금 생겼다면 조심스레 책 읽기와 더불어 생산자가 되어보기를 추천해본다. 아직도 군 계급 문양이 헷갈리고 경례도 어색한 아줌마지만 나라를 지키는 이들에 존경과 감사는 진심이랍니다. 오늘도 감사합니다! 필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