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이 가지는 본질적인 불안감
우디 앨런의 2013년 작품 <블루 재스민(Blue Jasmine)>은 다양한 층위의 감정을 한 영화 내에서 표현해낸 케이트 블란쳇의 연기만으로도 충분히 볼만한 가치가 있는 영화입니다. 케이트 블란쳇은 이 영화로 2014년에 열린 골든 글로브와 아카데미에서 여우주연상을 휩쓸었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또한 아카데미 각본상 후보에도 오를 만큼 이야기도 훌륭합니다.
'재스민(케이트 블란쳇)'은 자신의 이복동생 ‘진저’(샐리 호킨스)의 집으로 찾아오는 장면으로 영화는 시작됩니다. 재스민은 ‘할’(알렉 볼드윈)과 행복한 결혼생활을 보내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할은 재스민 몰래 다른 여러 여자들과 만나고 있었고, 심지어 금융사기죄로 경찰에 체포되고 맙니다. 이에 충격을 받은 재스민의 아들, ‘대니’(엘든 이렌리치)는 하버드를 자퇴한 뒤 가출하고, 한 순간에 안식처를 상실한 재스민은 자신의 가난하고 '눈 낮은' 이복동생에게 의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재스민은 여자저차 자신을 바꾸려는 노력을 합니다. 그러다 컴퓨터학원의 친구로부터 초대받은 파티에서 자신의 '높은 눈'에 걸맞은 남자를 만나게 됩니다. 재스민은 자신이 그와 수준이 맞는 여자라는 걸 어필하기 위해서 거짓말을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후, 영화는 정말 ‘거짓말처럼’ 이 순간을 기점으로 파국을 향해 질주하게 됩니다.
내용만 보면 무거운 분위기로 이야기가 진행될 것처럼 보입니다만 영화는 우디 앨런 특유의 경쾌한 리듬을 탑니다. 등장인물들의 깨알 같은 유머러스한 대사라든지, 관객 모두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킬만한 디테일한 상황 및 캐릭터 설정이 영화의 무게를 가볍게 만들어줍니다.
영화의 주인공 ‘재스민’은 허영, 현학, 과장, 거짓말에 스스럼이 없습니다. 그녀는 진저네 가족을 보고 '속물'이라고 하지만, 실상 그녀야말로 '속물'의 결정체입니다. 필요할 때만 타인을 찾고, 자신을 위해 자기를 정말 그럴 듯하게 포장합니다. 그러나 거짓말이라는 건 무엇이겠습니까. 보기 흉하고 심지어는 추악한 현실을 어떻게든 덮으려는 게 거짓말의 본질이 아니겠습니까.
미화, 거짓말은 기본적으로 자신을 과시하고 높이는 방향으로 작용하기 마련입니다. 특히나 '과장'이 넓은 의미에서 거짓말의 범위에 포함될 때에는 더더욱 그렇죠. 거짓말의 문제는 물체의 무게중심이 위에 있을수록 불안정해지듯 그녀의 상태도 거짓말을 반복할수록 불안해진다는 데에 있습니다. 자신의 외면이 과대평가되고 진정한 나는 바닥에 있다는 사실을 본인은 알기에 그 위치의 차이만큼 긴장감이 조성되는 것이죠. 그런데 참 신기할 정도로 그녀는 서슴없이 거짓말을 합니다. 너무나도 능숙하게요. 무의식적인 수준에서 거짓말을 합니다. 이 때문에 스토리가 진행될수록 명백히 주인공에게 긍정적인 방향으로 흘러갑니다만 그 과정이 안정적이라고 느껴지진 않습니다. 오히려 그녀가 잘 될수록 관객의 불안감은 적층 될 뿐입니다. 관객들은 그녀의 말들이 모두 거짓말이라는 걸 알고 있거든요. 더군다나 거짓말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자기 상승효과는 그리 오래가지 못합니다. 진실은 중력처럼 현실이라는 바닥으로 끊임없이 끌어당기며 결국에는 인위적인 힘-거짓말-으로 올라간 물체를 '추락'시키고 맙니다. 여기서의 추락은 원래 상태로 돌아가려는 불가항력적인 힘의 산물입니다. 추락하는 순간 무중력을 느낄 수 있듯이 영화의 라스트 신에 가서는 재스민은 기어코 넋을 잃은 모습을 보여주게 됩니다.
모든 진실이 드러난 종반부에서 재스민은 땀에 흠뻑 젖은 채 진저의 집으로 돌아옵니다. 그 와중에 ‘칠리’와 재결합을 한 진거에게 반쯤 정신이 나간 상태로 여전히 거짓말을 하고 샤워를 합니다. 샤워를 마치고 나선 그토록 자신의 주름을 숨겨주고 아름답게 꾸며주던 화장도 안 한 채 진저의 집에서 나옵니다. 여기서 민낯은 자신의 진실한 모습을, 화장은 거짓말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추락의 끝에 있는 것은 자신이라는 거죠. 그러나 그녀는 이미 이전의 무수한 거짓말로 진짜 자신의 모습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혼잣말을 중얼중얼 댑니다. 저도 거짓말을 언제 처음 해봤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그 시작은 분명히 다른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저 자신을 위해 시작한 것은 분명합니다. 여기서 재스민도 자기 자신을 위한 거짓말을 한다는 점만큼은 크게 다를 바가 없지요. 거짓 하나가 불러오는 불안감을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우리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블루 재스민>은 우디 앨런의 경쾌한 리듬, 케이트 블란쳇의 연기, 그리고 자신의 불안함을 모두 확인할 수 있는 기회를 관객들에게 제공해준다는 점에서 좋은 영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