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리시마가 동아리 활동 그만둔대

어른 되기의 어려움

by 샤사샥
2014년에 개봉한 <키리시마가 동아리활동 그만둔대>(출처 네이버 영화)

평범한 금요일. 조례가 있는 날이다. 조례에서는 동아리 활동에 대한 보고도 이루어진다. 먼저 '마에다(카미키 류노스케)'를 필두로 한 영화부의 작품이 영화부 역사상 최초로 고등학생 독립영화 콩쿠르에서 1차 예선을 통과했다고 한다. 어색하게 강당 위로 주춤주춤 나온 마에다는 인사를 한다. 하지만 그들의 작품은 안타깝게도 2차 예선은 통과하지 못했다. 그다음은 배구부 차례이다. 배구부의 2학년 에이스, '키리시마'가 현대표로 뽑혔다. 조례에서 키리시마의 친구들은 그를 찾을 수 없었다. 키리시마는 현대표로 뽑힐 만큼 운동능력이 탁월하며 예쁜 여자친구도 사귀는 자타공인 '엄친아'이기도 하다. 키리시마의 귀가부(동아리 활동을 하지 않는 학생들) 친구들은 그와 함께 집에 가기 위해 농구를 하며 기다리는 것이 일상이다.


조례가 끝난 뒤에는 여느 날처럼 정규수업이 있고, 정규 수업이 끝나면 담임 선생님이 종례를 한다. 담임 선생님은 진로 희망 조사서를 학생들에게 나눠주고 부모님과 상담하여 수요일까지 작성해 오라며 종례를 마친다. 종례가 끝나고 배구부 활동을 하는 키리시마를 언제나처럼 기다리며 농구를 하던 친구들은 키리시마가 동아리 활동을 그만둔다는 소식을 알게 된다. 그는 연락두절이다. 키리시마는 여자친구도 모르게, 배구부 동료들도 모르게, 절친들도 모르게 조용히 배구부 활동을 그만둔 것이다.


『키리시마가 동아리활동 그만둔대』라는 독특한 제목의 이 영화는 일본에서 2012년에, 한국에서 2014년 6월에 개봉했다. 제목만큼이나 생소한 작품일 것이다. 배경은 일본의 평범한 한 고등학교다. 영화는 정신적 사춘기를 맞이하는 고등학교 2학년 학생들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사춘기라고는 했지만 흔히 생각하는 소리를 지르고 선생님에게 반항하는 중2병에 걸린 아이들의 이야기가 결코 아니다.


사춘기의 사전적 정의는 다음과 같다.

사춘기(思春期)
인간 발달 단계의 한 시기로, 신체적으로는 이차성징이 나타나며 정신적으로는 자아의식이 높아지면서 심신 양면으로 성숙기에 접어드는 시기.

쉽게 말해 사춘기는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을 의미한다. 위 정의에서 나타나 있듯 어른이 된다는 것은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바라볼 수가 있다. 신체적인 측면과 정신적인 측면. 신체적인 측면에서 2차 성징은 주로 '성장'의 의미가 강하다. 반면에 정신적인 측면에서는 '성숙'의 의미가 주다. 즉 성장은 결국 '사이즈'에 대한 이야기지만 성숙은 '깊이'에 대한 이야기이다. 배경이 고등학교라는 것을 생각해본다면, 이 영화는 결국 성장보다는 성숙에 대한 이야기가 될 것임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이 영화는 기본적으로 등장인물도 많은 데다 인물 관계도 복잡하게 꼬여있다. 각 인물들의 고민과 갈등을 글로 엮어내려고 욕심을 부리면 장황해지기 십상이다. 따라서 글의 편의상 한 명의 인물, 여기서는 '히로키(히가시데 마사히로)'를 중심으로 글을 쓸 것이다.


히로키는 키리시마처럼 엄친아 계열의 학생이며 키리시마와도 절친이다. 키리시마처럼 운동도 잘하고 여자친구도 있는 등 공통점이 많다. 다른 점이 있다면 히로키는 동아리, 야구부를 하다 그만두었다는 것이다. 지금 히로키는 농구를 하며 키리시마를 기다리는 귀가부 중 한 명이다. 이제 키리시마가 동아리활동을 그만둔 뒤 히로키의 삶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쫓아가볼 필요가 있다.


농구를 그만두고 가방을 맨 히로키

첫 번째 장면은 히로키가 키리시마를 기다리는 동안 시간을 때우는 용도로 하던 농구를 그만두는 장면이다.

친구 1 : 저기 말이야, 우리 왜 농구하고 있는 거야? 사실 키리시마 기다리려고 시작한 거잖아? 그럼 지금은?
친구 2 : 그거야, 농구가 하고 싶으니까.
친구 1 : 그럼 농구부에 가입하라고. 가려고?
히로키 : (가방을 챙기며) 응.

야구부 주장을 만난 히로키

두 번째 장면은 히로키가 야구부 선배를 만나는 장면. 히로키는 야구부 주장이 불편하다. 동아리에서 나왔음에도 주장은 자신을 만날 때마다 오는 경기에 나와달라고 무턱대고 부탁하기 때문이다. 그 탓에 히로키는 주장을 만날 때마다 눈을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하고 우물쭈물 애매하게 대답하며 상황을 모면하는 데 급급하다.


키리시마가 동아리활동을 그만둔다는 소식이 들린 지 며칠 후 밤, 히로키는 귀가 중에 주장이 공원에서 혼자 야구 배트를 휘두르며 연습하는 모습을 우연히 목격한다. 주장이 연습하는 모습을 몰래 지켜보다 연습을 끝내고 어디론가 뛰어가는 주장과 마주치려 하자 자신도 모르게 숨는다.


다음 날 히로키는 주장에게 처음으로 먼저 진지하게 물어본다.

히로키 : 주장은 3학년 아니세요...? 왜 은퇴 안 하세요...? 보통 여름이 끝나면 은퇴하잖아요.
주장 : 드래프트가 끝날 때까지는 하려고.
히로키 : 주장한테 스카우트하러 온 사람은...?
주장 : 아무도 안 왔어. 아무도 안 왔지만 그래도 드래프트까지는 하려고.
히로키 : 저기, 저 다음엔...
주장 : 괜찮다면 응원만이라도 해주러 와줘. 다음에는 이길 거야.

8mm 필름 카메라로 찍히는 히로키

모든 갈등이 폭발하는 옥상에서의 클라이맥스 이후의 장면이다. 히로키는 마에다의 8mm 필름카메라 렌즈를 찾아주며 마에다와 대화를 나눈다. 왜 후진 8mm 필름카메라로 찍냐는 히로키의 질문에 마에다는 멋쩍은 웃음을 짓는다. 그리고는 "의미없는 고집일 수도 있겠지만 비디오로는 절대 표현할 수 없는 필름카메라 고유의 맛이 있다"고 답한다. 히로키는 그의 카메라를 들고 마에다를 찍으며 장난스러우면서도 사뭇 진지한 말이 오간다. 그러다가 마에다는 역광으로 찍고 있다며 히로키가 들고 있던 카메라를 빼앗고는 히로키를 찍는다.

마에다 : 역시 멋있네?
히로키 : 응?
마에다 : 멋있어.
히로키 : 됐어... 됐다니깐...

히로키는 눈물을 훔치며 뒤돌아서 간다.


히로키는 마에다가 구식 8mm 카메라로 찍자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눈물은 다양한 감정의 결정체이다. 히로키가 흘린 물은 어떤 감정으로 구성되어 있었을까.


초라함이 있었을 것이다. 초라하다는 단어의 의미는 기능적인 측면에서 이해되는 것이 아니다. 어떤 맥락에서 보면 고집이라고 할 수 있는 열정에 대한 것이다. 히로키는 마에다와 야구부 주장이 생각났을 것이다. 비디오보다 열등한 8mm 필름카메라로 영화를 찍는 것이 초라한 것이 아니다. 스카우트가 오지 않아 은퇴하지 않고 노력하는 것이 초라한 게 아니다. 변변한 꿈 없이 흘러가는 자신이 초라한 것이었다. 히로키와는 달리 마에다와 주장은 자신의 의지로 주체적으로 삶을 결정하는 모습에 위축된 것이다.


혼란스럽기도 했을 것이다. 농구를 그만두는 장면은 자신이 얼마나 키리시마에게 의존한 삶을 살고 있는지 어렴풋하게 느낀 순간이었다. 일상에 대해 처음으로 왜?라는 질문이 던져졌으며 삶의 무게를 처음으로 짊어진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직접 경험하고 나서야 그것을 아는 법이다. 히로키는 그제야 자신이 얼마나 자신의 삶을 안일하게 생각하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이러한 것들이 종합되어 불안함조차 느꼈을 것이다. 타인이 보기에는 엄친아지만 삶을 안이하게 생각한 나머지 실속은 없는 자신을 알기 때문이다.


어른이 어려운 이유는 자신이 주체적으로 자신의 세계를 세워야 한다는 데 있다. 이 사실을 처음으로 깨닫는 순간 '성숙'이 시작된다. 지금까지 자신의 세상이라고 믿었던 것들이 남이 세워준 허술한 집임을 자각하면, 타인의 집은 무너지고 불안함과 막연함만이 남는다. 히로키는 이 순간을 경험한 것이며 사춘기에 들어섰다.


키리시마도 히로키와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어느 순간 나 자신보다 타인의 기대에 맞추어 살고 있었음을 깨닫고는 방황한 것이다. 그는 다 잘하니까 걱정 없어 좋겠다라는 시선을 견뎌내야만 했다. 고민의 결과, 남들의 기대보다는 자신에게 솔직할 용기를 낸 것이다.


히로키로부터 홀로 서는 것의 시작은 자신에게 솔직해지고 인정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자신의 의지로 말이다. 그래야 튼튼하고 자신만의 인생을 지을 수 있는 청사진을 그릴 수 있는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히로키가 누군가에게 전화를 거는 씬이다. 추측컨대 그는 다시 야구부에 들어갈 것이다. 미래에 이 길을 아니더라도 자신의 의지로 뛰어들어보는 것이다.


성숙한다는 것은 고통스러운 과정이며, 어른이 되는 것은 이토록 어려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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