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적 좌절 1

엘리베이터 앞에서

by 샤사샥

다들 그러시겠지만 일상에서 사소한 좌절감을 느끼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저는 엘리베이터에서 좌절감을 자주 느낍니다. 같은 동 주민분들이 엘리베이터를 잡아주지 않을 때 말이죠.

중력을 거스르기 때문일까요. 수직 거리가 수평 거리보다 훨씬 긴 것만 같습니다. 걷는 시간보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시간이 훨씬 길게만 느껴집니다. 그래서 저는 항상 엘리베이터에 타면 아파트 출입문에 누가 오는지, 있는지 항상 살펴보게 됩니다. 엘리베이터 층수 표시기가 자신과 점점 멀어지고 다시 올 때까지의 그 지루함과 앞에서 놓쳤을 때의 그 허탈감을 잘 아니까요. 그래서 출입문 앞에 누군가 계시면 문 열기 버튼을 꾹 누르고 그 분께서 탑승할 의지를 갖고 있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그래야 마음이 편합니다. 그러면 그 분께서는 먼저 올라가라는 의사표현을 하시거나 호다닥 뛰어오시는데, 이때 "감사합니다"라고 말씀하시면(목례만 하셔도) 제 기분은 좋아집니다. 이런 기분은 저에게 감정적 수익처럼 느껴집니다.


그러나 이것의 감정적 수익성은 좋지 않습니다.제가 아파트 출입문 앞에서 헐레벌떡 엘리베이터를 타려고 달려가도 문 앞에서 중력 같은 자연법칙마냥 냉정하게 닫히는 경우가 너무나 많습니다. 눈앞에서 닫힌 회색빛 문을 보면 뭔가 문전박대를 당한 것만 같은 기분마저 듭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좀생이 같지만 저는 완전히 손해보는 장사를 하고 있다는 정동이 파도처럼 저에게 밀려옵니다. 나도 빨리 가고 싶지만 항상 기다려주는 건데라고 속으로 생각하면서 말이죠. 이런 지점에서 저는 주민분들에게 일차적인 좌절감을 느낍니다.


그러나 이내 곧 손해를 따지는 거 자체가 너무 계산적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좌절감의 눈덩이가 저에게로 굴러옵니다. 나아가 엘리베이터를 잡아달라는 말조차 분명하게 하지 못했던 저 자신의 소극적인 의사표현과 수줍음까지 질타하게 만들어버리죠. 여기까지 오면 너무 확대해석하여 예민하게 구는 제 자신이 한심하거나 그 분은 몰랐겠지라고 생각하면서 좌절감의 눈덩이를 막습니다만, 돌이켜보면 제 마음에는 생채기가 나 있습니다. 물론 금방 낫는 상처지만, 자주 다치는 부위임에도 굳은 살은 잘 안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이것을 일상적인 좌절감이라고 부르는 이유입니다.


그냥 이런 순간들이 있습니다. 심각한 건 아니라 일상적인데, 의외로 좌절감은 느껴지는 순간들 말입니다. 아, 노파심에 말하지만 제가 도덕적으로 완전한 선에 위치하고 다른 주민분들은 부도덕한 사람이란 뜻은 결코 아닙니다. 어떤 예민한 사람은 이렇게 느끼는 지점들이 있다는 정도로만 받아들이시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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