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은 인생의 첫번째 진로선택에 중요한 관문이다. 치열한 통과의례를 거치고나면 청년기가 펼쳐진다. 얼마나 준비했느냐는 인생에 커다란 차이를 가져오기도 한다.
중년기 역시 그런 시기다. 노년기가 길어져서
얼마나 '대비'했느냐에따라 커다란 질적차이를 가져올 것이다. 무엇을 준비해야할까?
니가 왜 거기서 나와?!’
"나이가 들면 말하는 사람만 있고, 듣는 사람은 없어..."
언젠가부터 나도 머리 속에 있어야할 것이 이미 입밖으로 나가 있다. ‘미치겠네...내가 왜 이러지...’하며 얼굴이 붉어진다. 때로는 그렇게 나가버린 말들이 좋은 시작이 되기도 하고, 탁월한 아이디어라는 칭찬을 받기도 하지만, 굳이 안해도되는 말까지 생각이 떠오르는 그 순간 말해버린다.
'어서와! 외향적 모습은 처음이지?'
칼 융이 말한 '중년기에 일어나는 에너지의 전환'은 이런 나에게 커다란 위로가 되고 좋은 자기 성찰 도구가 되어준다. 중년기 이전에 나는 극 내향의 사람이었다. ISTJ 성향은 반듯하고 곧이곧대로이다. 주어지는 역할에 충실한 모범생이다. 세상을 향한 관심보다는 내면을 향한 관심이 더 크다. 주부로서 엄마로서 가정 ‘안’에서 현모양처로 살기에 ISTJ 성향과 ISFJ성향은 크게 도움이 된다. 오직 집‘안’, 오직 ‘내’ 가족에 에너지를 몰입하는데 큰 불편함이 없었고, 세상으로 나아가지 못함에 대해 큰 아쉬움이 없었다.
남편이 조금 마음에 안드는 행동을 해도 속으로만 궁시렁거릴 뿐 밖으로 표현하지 않는다. 시어머니에게 상처를 받아도 남편에게 전하지 않고 혼자 삭인다. 누군가 나의 생각을 물어보면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라도 발언권을 줄때까지 말하지 않는다. 그저 내 안에 잘 가둬두는 성격이었다. ‘안’에만 잘 갇혀있는 성격이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집안에만 있으면 답답하고 뭔가 자꾸 일을 벌이려 한다. 예전이라면 마음 속에 담겨져 있기만 했던 말들이 ‘툭’ 입밖으로 뛰쳐 나가버리기도 한다. 어떤 모임에 가서도,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히 듣고만 있다가 짧게 한마디 하던 나였는데, 누가 시키지 않아도 내 의견을 말하고 싶어한다. 이런 내 모습이 싫지 않지만, 조금 낯설다.
가장 낯설어 하는 사람은 남편이다. ‘이 사람이 이런 사람이었나?’하면서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그는 ESTJ로 맨날 지시를 일삼던, 밖으로만 돌던 사람인데, 언젠가부터 퇴근후 집에만 있으려하고 지시하던 입을 닫고 내 말을 듣기 시작한다. 우리는 강아지나 고양이를 키우지 않기 때문에 이사갈 때 남편이 안고 있을 강아지나 고양이가 없다는 불리함을 감지한 모양이다.
그동안 부모교육 강의, MBTI강의는 했었지만, 블로그, 브런치, 라디오 방송까지 한다니 아이들도 놀란다. “엄마, 그런거 싫어했자나? 인스타, 페이스북도 무서워하더니 왠일이야?” 하면서도 엄마의 변화가 신기한가보다. ENFP인 딸이 툭하고 던진 “오~~엄마, 쫌 멋진데...!”라는 말은 “엄마를 보니 나이가 들어도 할 수 있는 일이 많네...나이드는거 겁낼 필요없겠는데...!”라고 번역되어 들린다. 뭔가를 이룬 기분이 든다.
"멋있게 늙는 모습 보여줄께"
부모가 자식에게 해줄 일이 여러 가지 있지만, 그 중 하나가 ‘멋있게 늙는 모습을 보여주는 일‘이라고 생각해왔었다. 노인 상담을 배울 때 교수님은 "칠판에 나와서 ’노인‘하면 떠오르는 느낌, 이미지를 적어보세요”라고 하셨다. ’한복‘ ’여유로움‘ ’따듯함‘ ’너그러운 미소‘ 내가 적은 대답들이다. 대부분의 선생님들은 부정적인 이미지들을 적었다. 교수님께서 “’노인‘에 대한 이미지가 부정적인 사람은 노인상담 말고 다른 분야를 잡으세요”라고 하셨다. 그 순간 나는, 노인상담에 대한 가능성을 열어주신 분들이 떠올랐다. ’나이듦‘에 대한 거부감이나 두려움없게 도와주신 분들, 외할머니와 엄마가 새삼 고맙게 느껴졌다.
외할머니는 아침에 일어나면 화장부터 곱게 하시고 늘 한복을 입고 계셨다. 일주일에 한번은 무조건 미용실에 가서 머리를 하고 오셨었다. 아침마다 내 머리를 빚겨 주시며 ’여자는 고와야한데이~마음씨도, 말씨도, 얼굴도 늘 가꿔야하는기라~‘라고 말씀하셨다. 엄마도 60대까지 미니스커트를 입고 다니셨다. 77세에 돌아가시기 전까지 젊은 나보다 더 패션센스가 좋아서 내가 엄마에게 옷을 골라달라고 할 정도였다.
나에게 ’노인‘은 그런 이미지였다. 나이라는 숫자 앞에서도 ’고움‘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물론 노년의 아름다움은 내면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외할머니의 말씀처럼 말도 곱게, 마음씨도 곱게 해야 함은 물론이다. 삶에 대해 관조할 수 있는 여유로움과 너그러움은 그냥 생기는 것은 아닐 것이다.
나는 다짐한다. 중년기동안에 '고운 노년'을 위해 준비하겠노라고... 외할머니처럼 늘 그렇게 새벽같이 일어나 곱게 단장하진 못하겠지만, 엄마처럼 60대까지 미니스커트를 입진 못하겠지만, 마음씨, 말씨는 곱게 단장하려 한다. 그래서 70의 어느 날, 우리 엄마처럼 ’멋쟁이 할머니‘ 소리를 듣기 위해 준비하려 한다.
그런 '고운 할머니'가 되기 위해서는, ’니가 왜 거기서 나와?!‘라는 당황스러운 순간을 줄이기 위해서 노력해야한다. 그동안 꺼내쓰지 않았던 ’외향‘의 날개에 힘을 길러야할 때이다. 자주 쓰지 않았던 날개라 서툴다. 서툰 날갯짓은 좌절을 통해, 훈련을 통해 자연스러워질것이다. '아이, 그냥 살던대로 살래...'의 유혹앞에서 포기만 하지 않는다면, 내적으로 외적으로 튼실해진 두 날개가 행복한 노년기로 나를 데려가 줄 것이다.
대극의 통합은 중년기의 과제다. 외향과 내향, 감각과 직관, 사고와 감정이 잘 통합되었을때 진정한 아름다움, 참된 성숙미가 풍겨나올 것이다. 그때 나는 진짜 '멋쟁이 할머니'가 될 수 있을것이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에대해 지금이라도 공부해야 한다. 그래야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할지 방향이 잡힌다. 마치 예체능인지 문과인지 이과인지, 내 성향도 모른채 그저 대학입학을 준비할수는 없는것처럼 말이다...곧 닥쳐올 '수능'에 대비하여 공부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