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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지 May 23. 2020

조지아 오키프, 90세에도 멈추지 않았던 격렬한 사랑

   

이 세상에서 남녀의 사랑 이야기만큼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것이 있을까? 더구나 그것이 유명한 사람들이나 예술가의 사랑이라면 한층 흥미로울 것이다. 


조지아 오키프(Georgia O'Keeffe, 1887~1986)는 거대하게 확대한 꽃 그림과 뉴멕시코의 황량한 풍경으로 유명한 미국 현대미술의 개척자 중 한사람이다. 그녀의 한 작품이 여성 미술가의 작품 중에서는 최고가인 약 515억을 기록하는 등 세속적 성공도 거머쥔 여성 화가이다. 사진을 예술의 한 분야로 격상시키고 291 화랑을 통해 유럽 현대미술을 미국에 소개한 알프레드 스티글리츠(Alfred Stieglitz, 1864~1946)의 아내이기도 하다. 


조지아 오키프(출처 Wikipedia)


오키프와 스티글리츠의 사랑 이야기는 많은 예술가 커플의 연애담이 그렇듯 파란만장하다. 두 사람의 이야기는 2009년 제레미 아이언스가 스티글리츠 역을 맡은 <조지아 오키프>라는 TV 드라마로 제작되어 화제를 모은 바 있다. 1916년, 오키프는 291 화랑에서 무명의 미술교사였던 오키프의 전시회를 열어주고 후원한 스티글리츠와 연인이 된다. 당시 52세의 유부남이었던 스티글리츠와 29세의 오키프의 사랑은 1920년대 보수적인 미국인들의 매서운 비난을 받았다. 그런데 이 열정적인 사랑도 결국 오래가지 못했다. 이혼을 감행하고 오키프와 결혼한 스티글리츠가 사진작가이자 예술 후원자인 도로시 노먼과 또 다른 사랑에 빠졌기 때문이다. 이 일로 오키프는 정신병원 신세를 질 만큼 충격을 받았고, 몇 년간 작업을 하지 못했다.


오키프와 스티글리츠


그녀의 젊은 시절이 스티글리츠와의 스캔들로 떠들썩했다면, 오키프의 말년은 59세나 어린 청년과의 스캔들로 한바탕 사회적 관심의 초점이 되었다. 그녀가 85세 된 해, 마을 근처에 살던 후안 해밀턴이라는 26세의 청년이 오키프의 생활의 세세한 부분을 도와주며 같이 생활하게 되었다. 그 역시 미술대학을 졸업한 도예가였다. 사람들은 13년이 넘는 기간 동안, 해밀턴이 오키프의 생활 비서 역할을 넘어선 그녀의 남자였다고 추측한다.  주변 사람들은 60년의 나이차가 있는 이들의 우정을 의심쩍게 보았지만, 어쨌든 두 사람에게는 특별한 통함이 있었던 것 같다.





오키프와 해밀턴


오키프는 "그는 나의 눈과 귀다."라고 말하며 그를 칭찬했다. 한편 해밀턴은 "그녀는 매우 까다롭고 요구가 많았다. 특히 기분이 나쁠 때면 아주 고약했다. 그러나 그녀는 시간이 갈수록 나를 좋아했다."고 회고했다. 그는 그녀가 왜 그를 좋아했는지에 대해서 "그것은 내가 그녀에게 도움이 되었고, 젊고 크가 크고 마른 체격이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녀는 날씬한 사람들을 좋아했고, 과체중의 사람들을 곁에 두는 것을 싫어했다."고 말한다. 그녀는 그에게 과거 이야기를 하기를 좋아했고 스티글리츠와의  힘들었던 관계에 대해서 허심탄회하게 말하곤 했다. 그는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해주는 말벗이었던 것이다. 사람들은 그들이 서로 격의없이 농담하고 장난치고 하는 모습들을 목격할 수 있었다. 


그가 안나 마리라는 여성과 결혼한다고 말했을 때, 오키프는 "괜찮아, 당신도 내가 죽은 후에는 누군가가 필요하겠지."라며 받아들였다, 그러나 나중에 해밀턴에게 자신이 그 결혼 소식을 듣고 밤새 울었으며, 그 결혼이 부당하다고 느꼈다고 고백했다. 분명 두 사람 사이에는 단순한 우정 이외의 남녀 관계에서 있을 수 있는 감정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오키프는 자신이 해밀턴에게 유일한 여자였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고, 그의 결혼을 절대로  인정하지 않았다고 한다. 오키프는 사랑에 관한 세상의 시선에 이렇게 항변한다. “남성 예술가들은 젊은 여성과 숱하게 염문을 뿌린다. 그러나 내가 젊은 남성과 사랑에 빠졌다고 하면 충격적으로 여긴다.” 


사실 피카소는 92세로 죽을 때까지 수많은 여인들과 염문을 뿌렸고, 그가 72세 때 만난 마지막 연인 자클린 로크는 26세였다. 그리고 8년을 동거하다가 80세의 피카소는 46세 어린 그녀와 결혼까지 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피카소를 능력 있는 남성으로 보며, 그보다 훨씬 어린 여인들이 그의 예술에 영감을 주었다고 생각한다. 오키프를 보는 시각과는 판이한 것이다. 노년의 사랑, 나이 차가 많이 나는 사랑은 남자라서 되고, 여자라서 안 되는 것인가.


그녀가 98세로 사망했을 때 약 900억 원의  재산이 그에게 남겨졌다. 그러자 이 젊은이가 계획적으로 그녀의 재산을 노리고 접근했다고 주장한 그녀의 가족, 공공단체, 미술관 등이 나서서 소송을 제기함으로써 사회적 이슈가 되기도 했다. 그녀의 유언장이 원래 대부분의 유산을 자선 기부한다고 쓰여있었는데, 이후에 작성한 유언 보충서에는 해밀턴에게 전 재산을 남긴다고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과 가까이에서 생활한 한 직원은 오키프가 흰색의 드레스를 입고 꽃으로 둘러 싸인 채 자신이 해밀톤과 결혼한다고 생각하고 서류에 서명했다는 진술을 했다. 1987년의 재판 결과, 오키프의 거의 모든 작품과 부동산은 오키프 재단으로 넘어가고 해밀턴에게는 그녀가 사준 집과 같이 작업한 도자기류, 오키프의 일부 유품만이 배당되었다. 


육신은 늙어도 예술가의 격렬한 감성과 열정은 식지 않는 것일까? 뉴멕시코의 황량하고 고립된 환경 속에서 고독한 구도자와 같은 삶을 추구한 90세의 노화가에게도 인간적 본능과 정열은 식지 않았던 것일까? 예술가뿐이겠는가? 우리 인간 모두는 그 육체가 기껏 100년의 시간에 갇혀 있지만, 마음은 영원히 늙지 않는다.



<참고문헌>

Georgia O'keeffee, Wikipedia

Charlotte Cowles, "Exclusive : Georgia O'Keeffee's Younger Man", Bazaar, Feb 24, 2016 

David Johnston, " Portrait of the Artist & the Young Man," Los Angeles Times, July 23, 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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