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속 천문학> 중에서
아담 엘스하이머(Adam Elsheimer, 1578~1610)는 천재적인 재능을 가졌지만, 32세의 나이에 극심한 빈곤 속에서 불우한 생을 마친 미술사에서 사라진 화가이다. 당대에는 이탈리아에서 활동한 독일 바로크 미술의 가장 뛰어난 화가 중 한 사람이었고, 17세기 풍경화의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키아로스쿠로 기법의 대가 카라바조의 영향을 받아 빛과 어둠의 극적인 대비에 중점을 둔 사실적인 풍경화를 그렸는데, 그의 작풍은 친구였던 루벤스와 렘브란트, 프랑스 풍경화가 클로드 로랭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엘스하이머의 작품들은 찰스 1세가 수집할 만큼 영국에서 매우 인기가 있었고, 오늘날에도 루브르, 알테 피나코테크, 에르미타주, 장 폴 게티 미술관 등 세계 유수의 미술관들에 전시될 정도로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그 예술성이 인정받고 있다.
<이집트로의 피신>은 엘스하이머가 죽기 일 년 전에 그린 마지막 작품이자 그에게 명성을 가져다준 대표작으로, 미술사에서 최초의 밤 풍경화로 알려져 있다. 41cm x 31cm의 작은 크기로, 멀리서 보면 그 가치를 알아보기 어렵지만 가까이에서 감상할 때 놀랄 만큼 세밀하고 정교하게 그려졌음을 깨닫게 된다. 어두운 청록색 톤의 밤 풍경은 아름답기 그지없다.
이 작품은 유대의 왕 헤롯을 피해 요셉과 성모, 아기 예수가 이집트로 피신한다는 성서의 이야기를 소재로 한다. 이 그림에서 가장 우리의 시선을 끌어당기는 것은 강렬한 빛과 어둠의 대비이다. 전체적으로 어두운 화면은 네 개의 광원에 의해 몇 개의 장면으로 분할된다. 오른쪽 중앙 밤하늘에 뜬 보름달, 물 위의 달의 반사, 아래쪽 중앙에 요셉이 들고 있는 횃불, 그리고 왼쪽 아래 목동들이 피운 모닥불 등이 그 광원들이다. 밤의 어둠은 성가족의 험난한 여정을 암시하는 동시에 발각의 위험으로부터 안전하게 숨겨주는 보호자 역할을 한다.
어둠을 꿰뚫고 불빛 속으로 시선을 파고들면, 대상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화가의 정밀한 솜씨를 보게 된다. 엘스하이머는 캔버스가 아닌 동판에 유화물감으로 그림을 그렸는데, 주변 사람들이 그를 ‘세밀화광’이라고 부를 정도로 세세한 표현에 강박증적인 집착을 보였다. 캔버스와 달리 어떤 작은 구멍들도 없이 매끄러운 동판은 유화물감의 광도를 보다 강화시켰고 아주 세세한 부분 묘사를 가능하게 했다. 이런 완벽주의자의 꼼꼼함 때문에 몇 년간 한 작품에만 매달릴 정도로 제작 속도는 매우 느렸고, 종종 작품을 완성하지 못했다. 이러한 지나치게 세밀한 그림을 그리려는 욕망으로 인한 피로 때문에 건강을 해치고 요절했다는 설까지 있을 정도이다.
“종려나무는 하중을 받고도 위로 쭉쭉 자란다. 그러나 가끔 그 무게를 견디는 능력이 좌절된다. 성장하는 능력이 휴식에 의해 그 힘이 충전되지 않는다면 그 하중을 이겨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동시대 이탈리아 화가인 지오반니 베글리오네가 그의 죽음을 두고 한 말이다.
엘스하이머의 <이집트로의 피신>은 천문학과 미술의 융합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하나의 지표가 되는 그림이다. 정확한 별자리들과 은하수, 달의 울퉁불퉁한 표면까지 표현한 최초의 밤 풍경화로서, 미술사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는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헤롯왕을 피해 이집트로 피신하는 성가족의 주제는 이전부터 많은 화가들이 그려온 종교적 주제였지만, 엘스하이머의 <이집트로의 피신>은 최초의 밤 풍경화라는 점에서 독특하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무엇보다도 흥미로운 점은 엘스하이머가 망원경으로 직접 천체를 관측하고 은하수와 달을 사실적으로 그렸다는 것이다. 이전의 화가들에게 있어 달은 얼룩덜룩한 반점이 없는 수정같이 맑은 것이었고, 은하수는 뿌연 띠의 흐름으로만 보였던 것이다. 미술사가들은 이 작품이 유럽회화상 은하수가 별의 집합으로 이루어진 모습으로 그려지고, 달이 분화구를 가진 것으로 묘사된 최초의 그림이라고 말한다.
왼쪽 꼭대기에서 그림 중앙까지 내려오는 점점이 작은 별들의 강이 흘러내리다가 성가족 바로 위 나무 뒤로 사라진다. 사실 엘스하이머는 은하수를 통해 성가족을 보호하는 신의 존재를 상징하고 싶어 했는지도 모른다. 아마도 엘스하이머는 자신이 관측한 우주의 천체 현상에 대한 경외심 속에서 창조주의 존재를 발견함으로써, 그림 속에 고요한 평온함을 표현하려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의도가 어떻든 간에, 실제 은하수의 자연적 물리현상을 묘사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에게 있어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자연의 물리현상과 종교는 이질적인 것이 아니었다.
미술사가인 플로리언 하이네의 <거꾸로 그린 그림>에 따르면, 엘스하이머가 망원경을 갖고 있었고, 은하수를 정확하게 관찰해 그의 그림에 묘사했다고 한다. 망원경은 1608년 네덜란드 안경사 한스 리퍼세이(Hans Lippershey)에 의해 발명되어 파리, 프랑크푸르트, 로마 등 유럽 도시의 과학자와 지식계층에 보급되었다. 로마에서는 1601년 페데리코 체시(Federico Cesi) 공작이 과학에 관심이 있는 지식인 모임인 린체이 아카데미(Accademia dei Lincei)를 창설했고, 갈릴레오도 가입하였다.
엘스하이머도 린체이 아카데미 회원이었던 자신의 자산 관리인 파베르 박사의 영향으로 과학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특히 갈릴레오의 연구에 흥미를 느꼈다. 북두칠성과 달의 분화구까지 세밀하게 묘사된 엘스하이머의 1609년 <이집트로의 피신>의 천문현상은, 1610년 갈릴레이가 <별들의 전령사Sidereus Nuncius>라는 소책자에서 은하수가 수많은 별들의 집합으로 이루어졌고 달이 분화구를 갖고 있다고 주장함으로써 사실로 확인되었다.
<이집트로의 피신>에는 갈릴레오가 그의 책에서 삽화로 보여준 것과 똑같은 천문현상, 심지어 큰곰자리와 사자자리까지 볼 수 있다. 그런데 여기 놀라운 사실이 있다. 그림 속의 달, 은하수, 북극성 등의 별자리의 천문학적 조합을 종합해볼 때, 그림이 그려진 시기가 1609년 하지 무렵이었을 것이라고 추정된다. 이는 갈릴레오의 책이 나온 시기보다 9개월 앞선 것이다. 이것은 엘스하이머가 갈릴레오의 연구 발표에 의존하지 않았다는 것을 뜻한다.
여기서 하이네는 이것이 미술가가 과학자를 앞서간 예라는 재미있는 주장을 한다. 사실 엘스하이머가 그의 그림 속에서 과학자 갈릴레오보다 먼저 밤하늘의 별자리와 달, 은하수를 사실적으로 묘사한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심지어 이 조그만 그림에서 1,200개의 별을 찾을 수 있다고 한다. 사실 이 그림의 반 정도는 별과 달의 묘사에 할애되었는데, 종교적 이야기와 더불어 자신이 관찰한 현실적인 밤하늘의 천체를 더 많이 표현하고 싶었을 듯도 하다.
그러나 그림 속의 큰곰자리를 비롯한 다른 별자리들의 배치는 실제의 별자리에 단지 근사할 뿐이며 정확한 것은 아니다. 그는 어느 맑은 날, 하늘을 관찰하여 그저 사실적으로 밤하늘을 그렸을 뿐이고, 정확한 별자리표를 그리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밤 시간의 어둠과 천체들로부터의 빛이 만들어내는 상호작용에 더 관심을 가졌던 것 같다. 그는 천문학자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화가였던 것이다. 엘스하이머는 그저 보이는 대로 그림을 그렸을 뿐이며, 갈릴레오가 했듯이 하늘을 관찰하여 천체 현상을 정확히 기록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하이네의 ‘과학자를 앞선 미술가’는 그저 문학적인 표현일 뿐이라고 할 수 있다.
중앙SUNDAY 2020년 6월 20일자 '책꽂이'
한국일보 2020년 6월 12일자 '새책'
주간조선 2020년 6월 22일자 '출판단신'
주간경향 2020년 6월 16일자 '주간경향'
연합뉴스 2020년 6월 11일자 '신간'
대전일보 2020년 6월 17일자 '화가들이 사랑한 별과 우주'
http://m.hani.co.kr/arti/culture/book/949053.html
https://news.v.daum.net/v/20200616060128963
https://www.artinsight.co.kr/m/page/view.php?no=48518#link_guide_20160413124404_97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