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속 천문학> 중에서
서양 문명에서는 금성을 신화에 등장하는 사랑의 여신인 비너스(Venus)라고 부른다. 금성은 태양계의 두 번째 행성으로, 밤하늘에서 달에 이어 두 번째로 밝은 천체다. 가장 밝을 때의 금성은 그 밝기 등급이 -4.9등급으로 항성 중에서 가장 밝은 시리우스보다 25배 이상 밝고, 색깔도 밝은 노란 색으로 매우 화려해서 미의 여신의 이름을 갖게 되었다.
금성은 크기와 질 량, 밀도가 지구와 비슷한 지구형 행성으로 한때는 지구의 자매 행성으로 불리기도 했다 천문학자들은 금성에도 대륙과 물은 물론 생명체도 존재할 것이라 기대했고, 그로 인해 달 다음으로 많은 탐사가 진행되었다. 그러나 탐사선이 측정해온 결과는 매우 실망스러웠다. 금성의 대기물질 96.5퍼센트가 이산화탄소였고, 이 때문에 온실효과가 발생함에 따라 표면 온도는 약 460도까지 올라가 태양계 행성 중 가장 높았다. 또한 표면 대기압도 약 92 기압 정도로, 생명체가 살기에는 너무도 혹독한 환경이었다. 밤하늘의 천체 중 유독 밝고 아름답게 빛나 비너스라는 이름까지 붙여주었건만, 금성의 진실은 지옥이었다. 이제 과학자들은 금성에 생명체가 살지도 모른다는 환상을 버리고 다른 지구형 행성을 찾고 있다.
비록 금성이 과학자들에게 실망을 안겨주기는 했어도 비너스는 고대신화 속의 사랑과 관능적 쾌락에 탐닉한 여신의 이름을 넘어선, 인류가 꿈꾸어온 여성성의 동의어다. 그리고 아주 오랫동안 예술가들이 그들의 작품에서 즐겨 그려온 대상이기도 하다. 대표적으로는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이나 조각 작품으로 그 유명한 <밀로의 비너스>가 있으며, 티치아노의 <우르비노의 비너스>와 조르지네의 <잠자는 비너스>는 꼭 닮은 모습으로, 여신 비너스로 위장한 채 관객을 유혹한다. 그렇다면 이 수많은 비너스 중 가장 인상적인 이야기를 지닌 비너스는 누구일까? 아마도 벨라스케스의 <로커비 비너스>가 아닐까?
<비너스의 화장>은 벨라스케스(Diego Velázquez, 1599~1660)의 하나뿐인 누드화이며, 스페인 화가가 그린 최초의 누드화이기도 하다. 르네상스가 꽃핀 이탈리아와 달리 당시 스페인은 엄격한 가톨릭 국가였기에 이러한 여성 누드는 그려지기 어려운 사회적 환경이었고, 이 그림도 단지 개인 소장을 목적으로 그려졌다.
벨라스케스는 국왕 필리페 4세의 총애를 받았지만 제약이 많았던 궁정화가의 생활에 염증을 느꼈다. 그래서 왕에게 부탁해 1650년에 이탈리아로 두 번째 안식년을 떠난다. 이 그림은 그 시기에 그려진 것으로, 〈로커비 비너스〉로 더 잘 알려져 있는데, 런던 내셔널 갤러리에 인도되어 전시되기 전까지 한 영국 귀족의 개인 저택인 로커비 홀에 소장되어 있던 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 그림에서 비너스는 막 목욕을 마치고, 벌거벗은 채 침대에 기대 누워 큐피드가 들고 있는 거울을 보고 있다.
<로커비 비너스〉는 벨라스케스가 1650년에서 1652년까지 이탈리아에 머물면서 예술혼을 다지던 시기에 그린 것으로, 50세 무렵의 그가 그녀와의 사이에 아들까지 낳은 20세 남짓 어린 연인 플라미니아 트리바가 모델이다(물론 벨라스케스는 스페인에 이미 아내와 자식이 있었고, 결국 정부와의 달콤한 생활은 2년 만에 끝이 난다). 앳된 아가씨의 가냘프고 쁘띠한 몸매는 이제까지의 육감적이고 관능적인 성숙한 육체의 비너스와는 판연히 구분된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그러나 〈로커비 비너스〉 역시 미의 여신 비너스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녀는 관람자에게 등을 돌려 목선에서 등과 허리, 엉덩이, 날씬한 다리 선까지 아름다운 여체의 곡선미를 한껏 과시하며 거울을 통해 관람자의 시선을 살핀다. 마치 자신의 아름다움에 감탄해 넋을 잃을 관람자들을 은밀하게 훔쳐보며 나르시시스트의 자아도취에 잠겨 있는 듯하다.
이러한 자기만족적 나르시시즘은 결국 도끼만행 사건의 화를 부른다. 1914년 메리 리처드슨이라는 여성이 도끼를 숨겨 런던 내셔널 갤러리에 들어가 〈로커비 비너스〉의 등을 일곱 군데나 난도질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그녀는 1900년대 초 여성참정권을 주장하는 영국의 서프러제트 운동 지지자였는데, 이 운동의 지도자 에멀린 팽크허스트의 사형이 구형된 날, 이 같은 대담한 행동을 한 것이다. 그녀는 기자회견에서 다음과 같이 열변을 토했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벨라스케스의 비너스를 찢었다. 이 정부가 우리의 참된 여성 참정권 운동의 지도자 팽크허스트를 망가뜨렸으니, 나도 이 비너스를 공격했다. 팽크허스트는 신화에 존재하는 비너스 따위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운, 살아있는 현대역사의 지도자다!”
결국 체포되어 징역 6개월을 선고받았던 리처드슨은 여성참정권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키는 데 일조했지만, 미술관 복원팀은 상처 난 비너스의 등을 되살려야 하는 어려운 작업에 골머리를 앓았다. 결국 원형에 가깝게 감쪽같이 회복된 작품은 이후 미술 복원작업 기술의 교본이 되었다고 한다.
이렇듯 문화유산이나 미술품을 파손하는 행위를 반달리즘(Vandalism)이라고 하는데, 미켈란젤로의 〈피에타〉가 15차례나 망치 테러를 당해 마돈나의 코와 왼팔 부분이 처참히 부서진 사건이나 마르셸 뒤샹의 〈샘〉에 두 중국인 관람객이 오줌을 갈긴 일, 모나리자의 경우 유리 보호막 때문에 손상되지는 않았지만, 일본 순회전시 때 빨간 페인트가 뿌려지는 등 아찔한 역사를 갖고 있다. 오랜 세월이 지난 후 1952년 인터뷰에서 왜 하필 로커비 비너스를 공격했느냐는 질문에 리처드슨은 “남자들이 미술관으로 그녀를 보러 날마다 줄을 서서 하나같이 입을 헤벌리고 침을 흘리며 모여드는 것이 싫었다”라고 답변했다.
벨라스케스는 확실히 뒤로 기대 누운 여인의 요염한 몸매를 통해 남성의 입장에서 여인의 몸을 즐기는 시각, 즉 남성의 관음증을 보여주고 있다. 결과적으로는 노이즈 마케팅을 통해 이 페미니스트는 자신의 목적을 충분히 달성한 셈인데, 그녀의 주적은 남성 중심 사회에 편승해 은밀하게 자신의 아름다움을 과시하고 거울을 통해 남성의 시선을 즐기고 유혹하는 여성일까, 아니면 여성의 몸을 단지 성적인 유희의 차원으로 보는 남성 중심 사회의 이데올로기일까?
중앙SUNDAY 2020년 6월 20일자 '책꽂이'
한국일보 2020년 6월 12일자 '새책'
주간조선 2020년 6월 22일자 '출판단신'
주간경향 2020년 6월 16일자 '주간경향'
연합뉴스 2020년 6월 11일자 '신간'
대전일보 2020년 6월 17일자 '화가들이 사랑한 별과 우주'
http://m.hani.co.kr/arti/culture/book/949053.html
https://news.v.daum.net/v/20200616060128963
https://www.artinsight.co.kr/m/page/view.php?no=48518#link_guide_20160413124404_97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