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속 천문학> 중에서
태양은 태양계의 중심이며, 태양계 내에서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유일한 별이다. 별(항성)의 정의는 내부 핵융합을 통해 스스로 빛을 내는 천체인데, 우리 태양계에서 태양 이외의 모든 천체는 모두 태양의 빛을 반사해서 빛을 내기 때문이다. 태양은 우주에 존재하는 별들 중에는 상당히 밝은 축에 속하지만, 밤하늘에 보이는 태양계 밖에 존재하는 대부분 별들의 실제 밝기는 태양보다 밝다. 태양이 그 별들보다 지구와 가깝기 때문에 더 밝게 보일 뿐이다. 어쨌든 지구에서 보는 태양의 겉보기등급은 무려 –26.74등급으로, 보름달보다도 자그마치 45만 배나 더 밝아 망원경으로 직접 볼 경우 실명할 수 있다.
태양의 질량은 지구의 약 33만 배이고 태양계 행성 중 가장 무겁고 큰 목성의 1,048배로, 태양계 전체 질량의 99.9퍼센트에 해당한다. 태양 이외의 모든 천체의 질량을 합해봐야 태양계 전체의 0.1퍼센트 정도밖에 되지 않아, 태양은 가히 태양계의 주인이라고 할 수 있다. 태양의 나이는 현재 46억 살 정도로 추정되며, 앞으로 약 78억 년 정도를 더 살 수 있다. 지구까지의 거리는 약 1억 5천만 킬로미터로, 태양에서 출발한 빛은 약 8분 20초 후에 지구에 도달한다. 즉 지금 우리 눈에 보이는 태양은 8분 20초 전의 모습이다.
태양이라는 별이 인류에게 중요한 만큼, 태양신인 아폴로(Apollo) 역시 올림포스의 12주신 중에서도 제우스를 제외하고는 가장 강력한 신이었다. 그리스 신화에서 아폴로는 제우스와 여신 레토 사이에서 태어나 헤라의 미움을 샀지만, 태어난 지 나흘 만에 왕뱀 피톤을 화살로 쏘아 죽이는 등 출중한 능력과 빛나는 외모를 겸비한 덕에 그녀조차도 어쩌지 못했다. 제우스의 다른 서자들이 헤라의 질투 때문에 많은 고초를 겪은 것과는 달리, 아폴로는 신들뿐 아니라 인간들로부터도 사랑과 존경을 받았다.
그는 태양의 신이자 예술의 신이었고 예언과 궁술의 신으로서, ‘빛나는, 찬란한’이라는 뜻의 ‘포에버스(Phoebus)’의 수식어가 붙은 ‘포에버스 아폴로’로 불렸다. 고대 그리스인들에게 아폴로는 신체적·지적 완벽성을 갖춘 이상적 남성상이었고, 그리스 시대의 조각상 〈벨베데레 아폴로〉에 그 이상이 완벽하게 구현되어 있다. 〈벨베데레 아폴로〉는 늘씬하고 아름다우며 그리스 고전미의 전형으로 평가되고 있다.
아폴로의 모습을 표현한 작품 중 가장 인상적인 것은 조각가 잔 로렌초 베르니니(Gian Lorenzo Bernini, 1598~1680)의 <아폴로와 다프네>가 아닐까? 당대에 회화는 카라바조, 조각은 베르니니, 이 양대 산맥이 17세기 이탈리아 예술을 장악했다. 두 예술가는 외모와 성격이 매우 대조적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카라바조가 못생긴 외모와 살인까지 저지른 거칠고 괴팍한 성격을 가졌다면, 베르니니는 미남인 데다가 예의 바른 신사였다고 전해진다. 베르니니는 건축·그림·조각 등에 재능을 보인 팔방미인형의 천재였으므로, 20세 무렵의 젊은 나이에 이미 유명인사가 되어 부와 명예를 누렸다.
베르니니는 81세에 죽을 때까지 건축과 조각 등 작품 활동을 통해 로마를 아름답게 만들었으며, 마침내 로마, 그리고 유럽에서 가장 위대한 예술가 중 하나로 인정받았다. 베드로 성당의 광장에 양팔로 껴안는 형상으로 서 있는 콜로네이드와 성당 내부의 천개, 나보나 광장의 〈네 강의 분수〉 등이 그의 작품이다. 또한 〈아폴로와 다프네〉, 〈다비드〉, 〈성 테레사의 법열〉, 〈페르세포네의 납치〉 같은 작품들은 베르니니가 미켈란젤로의 예술적 적장자이며, 대리석 조각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탁월한 능력을 갖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베르니니의 〈아폴로와 다프네〉는 아름다운 요정이 월계수로 변성하는 극적인 순간을 포착하고 있다. 나뭇잎과 인간의 육체, 옷자락 등의 정교하고 세밀한 묘사에 의해 신과 님프 간의 사랑의 드라마를 표현한 한 편의 대리석 판타지다. 이 작품의 아폴로는 〈벨베데레 아폴로〉를 기반으로 했는데, 여기서는 정면 자세가 측면으로 바뀌어 모사되었다. 아폴로는 한쪽 다리는 땅을 딛고 있고 다른 다리는 공중에 떠있는 모습으로 도망가려는 다프네를 바싹 쫓아가고 있다. 그의 왼쪽 어깨와 허리춤에 걸쳐진 옷자락과 요정의 휘날리는 머리카락이 대기와 바람의 존재를 형상화하고 있다. 너무나 섬세해서 살짝 건드리면 금세 부서질 것 같은 월계수 잎이 손끝과 발끝, 머리칼로부터 자라 나오기 시작한다. 정녕 이것이 무겁고 단단한 돌이란 말인가! 베르니니는 살과 피가 흐르는 현실의 여인이 된 조각상을 만든 피그말리온의 현현인 것인가!
아폴로의 구애를 피해 도망을 치다 결국에는 윌계수로 변하고마는 님프 다프네의 이야기는 주로 회화에서 많이 다루어졌다. 단단한 대리석을 깨고 갈아대는 조각보다는 회화가 이 추적의 주제를 역동적으로 표현하기에 좀 더 수월했을 것이다. 또 조각에서는 다프네의 월계수 잎도 그림에서처럼 초록색으로 표현할 수 없다. 그렇지만 우리는 이 조각 작품에서 우리 자신이 서 있는 3차원의 공간 속에서 같이 존재하며, 자연의 돌이 세세한 실핏줄을 가진 육체로 바뀌고 나뭇잎과 나무껍질로 변하는 연금술적 현상을 직접적으로 목격하게 된다. 캔버스에서는 불가능한 사실적이고 촉각적인 관능을 느낄 수 있다.
아폴로는 다프네 말고도 많은 여인과의 관계에서 좌절을 겪었다. 트로이의 카산드라 공주를 사랑하여 그녀에게 예언의 능력을 주었지만, 그를 외면하자 설득의 힘을 빼앗아 아무도 그녀의 예언을 믿지 않게 만들었고, 또 다른 연인 코로니스가 다른 남자와 사랑에 빠지자 활로 쏘아 죽여버렸다.
도메니코 짐피에리, <코로니스를 살해하는 아폴론>, 1616~1618년
그녀들은 아폴로같이 잘생기고 다재다능한 완벽남을 왜 사랑하지 않은 것일까? 얼핏 이해하기 어렵지만, 좀 더 깊이 들여다보면 답이 나온다. 사랑은 이성이 아니라 감성과 열정으로 하는 것이며, 완벽함이 사랑의 보증수표는 아니다. 여인들을 대하는 제우스와 아폴로의 태도는 딴판이다. 제우스는 관대하고 포용력이 있고, 여인들이 좋아하는 방식으로 상황에 맞게 접근하며, 이후에도 계속 따뜻하게 보살핀다. 그러나 아폴로는 자신의 감정에만 빠져 거칠게 접근하며, 마음을 받아주지 않으면 잔인하게 복수해버린다. 제 아무리 홀로 완벽하다 해도 성숙하지 못하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우리 지구가 속한 태양계는 태양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루이 14세와 알렉산더 대왕이 추종할 만큼 아폴로는 태양의 신답게 그 스스로가 태양처럼 찬란하게 빛나는 존재였다. 그는 음악, 예술, 의학, 궁술, 이성, 예언의 신으로서, 최고의 미녀 여신 비너스와 짝을 이루는 최고의 미남 신이기도 하다. 그야말로 아폴로는 세상 모든 남자들에게 완벽한 엄친아 같은 존재였다. 하지만 정작 여성들에게는 인기가 별로 없었고 연애운과 사랑복은 최악이었다. 빛이 있으면 그림자도 있는 것이 세상의 이치가 아닐까? 태양 빛은 모든 생명체의 원천이지만 가까이 가면 순식간에 타죽듯이 지나치게 빛나는 아폴로는 가까이 하기에 너무 먼 존재였는지도 모른다.
중앙SUNDAY 2020년 6월 20일자 '책꽂이'
한국일보 2020년 6월 12일자 '새책'
주간조선 2020년 6월 12일자 '출판단신'
주간경향 2020년 6월 16일자 '주간경향'
연합뉴스 2020년 6월 11일자 '신간'
대전일보 2020년 6월 17일자 '화가들이 사랑한 별과 우주'
수도권일보 2020년 6월16일자
제주신문 2020년 7월7일자
독서신문 2020년 6월24일자
http://m.hani.co.kr/arti/culture/book/949053.html
https://news.v.daum.net/v/20200616060128963
https://www.artinsight.co.kr/m/page/view.php?no=48518#link_guide_20160413124404_9759
* 2020년 국립중앙도서관 사서들이 추천하는
10월의 책
* INTERIORS 9월호ㅡ <그림 속 천문학> 소개기사
*<학교도서관저널> 9월호 ㅡ도서추천위원회가
'이 달의 새책'에 <그림 속 천문학> 선정, 소개기사
* KTX매거진 9월호에 소개기사
* KTV 국민방송에 <그림 속 천문학> 소개
*부산시교육청 소속 11개 공공도서관이
공동선정한 11월의 책
* 부산광역시립시민도서관이 선정한 11월의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