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홀로코스트만 이야기하는가?

인류사의 다른 잔혹한 대학살사건은?

by 김선지

홀로코스트 영화들에 대하여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자행된 나치의 유태인 대량학살, 즉 홀로코스트(Holocaust)를 다룬 영화들은 끊임없이 쏟아져 나온다. <쉰들러 리스트>, <피아니스트>, <인생은 아름다워>, <줄무늬 잠옷을 입은 소년>, <홀로코스트> 등, 그 수도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80여 년 전의 홀로코스트가 현재에도 여전히 관심의 대상이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극단적인 폭력의 역사 속에서 민낯으로 드러난 악마성, 공포, 증오, 슬픔, 그리고 극한 상황에서도 피어나는 고뇌와 사랑, 동정심 등 인간의 본성에 관계된 것들이 홀로코스트 영화들을 통해 복합적으로 표현되기 때문일 것이다. 그중 명연출과 작품성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준 세 편의 홀로코스트 영화를 살펴본다.



<쉰들러 리스트 The Schindler's List>, 1993년작


1930년대 독일군이 점령한 폴란드의 한 도시에 사는 독일인 오스카 쉰들러는 원래는 이윤 추구에 혈안이 된 냉정한 사업가이지만, 차차 나치에게 참혹하게 학살당하는 유대인들의 상황을 보고 양심의 가책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강제수용소의 유대인을 구출하기로 결심한다. 호주 작가 토마스 케닐리의 <쉰들러의 방주 Schindler's Ark>를 원작으로 미국의 거장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1993년 제작했고, 아카데미 감독상, 작품상 등 7개 부문 수상과 골든 글러브 상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등을 수상했다. 물론 상업적으로도 공전의 히트를 기록해 경제적 수익도 많이 가져다준 영화다.


<피아니스트 Pianist>, 2003년작


<피아니스트>는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인 1939년, 유명한 피아니스트 스필만이 폴란드 바르샤바의 인기 라디오 프로에서 쇼팽의 야상곡을 치는 중 폭격을 당하는 것으로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가족들을 모두 잃고 간신히 살아남은 스필만은 나치를 피해, 폐허가 된 건물의 은신처에서 배고픔과 추위, 공포와 불안 속에서 근근이 목숨을 부지한다. 그러던 중 한 독일군 장교에게 발각되어 위기에 처하나, 그는 스필만이 피아니스트임을 알고 살려줄 뿐 아니라 식량까지 지원해 준다. 전쟁이 끝난 후, 스필만은 다시 제자리를 찾고, 그 장교는 포로수용소에 갇히게 된다. 스필만은 이를 알고 은혜를 갚으러 수용소로 달려가지만, 이미 그는 다른 곳으로 옮겨져 찾지 못 한 채 영화는 끝이 난다. 유대인을 희생자로, 독일군을 가해자, 혹은 악의 세력으로 이분화하는 다른 홀로코스트 영화와는 달리, 여러 가지 인간상을 다양하게 묘사했다고 평가받는다. 2003년 로만 폴린스키 감독의 작품으로, 아카데미 각색상, 황금종려상, 감독상, 남우 주연상 등을 휩쓴 수작이다.


<인생은 아름다워 La vita è bella>, 1997년작


유대인 청년 귀도는 유머와 재치, 유쾌한 성격을 가진 남자다. 마을의 교사 도라에게 첫눈에 반해 결혼하고 아들 조슈에를 얻어 행복한 나날을 보낸다. 그러나 나치가 유대인인 귀도와 조슈에를 수용소로 보내면서 이 가족의 시련은 시작된다. 귀도는 어린 아들에게 수용소 생활을 단체 게임이라고 속이며, 아이가 이 최악의 상황을 견디도록 온갖 아이디어를 짜낸다. 음울하고 희망 없는 수용소 생활에서도 필사적으로 아들을 보호하고 상처 받지 않도록 노력하는 그를 보면서 많은 이들이 감동을 받았다. 조슈에는 살아서 엄마의 품으로 돌아가지만, 귀도는 결국 독일군에게 사살당한다. 영화는 수용소 생활을 재미있는 특별 게임으로 알았지만 장성한 후 모든 것을 알게 된 아들의 내레이션으로 끝이 난다. "이것은 제 이야기입니다. 제 아버지가 희생당한 이야기. 그날 아버지는 제게 최고의 선물을 주었습니다." 뭇사람의 가슴을 울리는 이 영화는 칸 영화제 심사위원 대상, 1999년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음악상, 최우수 외국어 영화상 등을 수상했고, 전 세계적으로 흥행에 성공하여 2억 달러 이상의 수익을 거두었다.






그런데 왜 '유대인 홀로코스트'만 주목을 받는가



얼마나 아름답고 감동적인 홀로코스트 주제의 영화들인가! 홀로코스트는 영화라는 문화 콘텐츠를 통해 사람들의 마음에 인류 역사상 최악의 학살로 깊숙이, 매우 효과적으로 각인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인류의 사악한 본성을 반성하도록 끊임없이 요구한다. 수없이 영화로 촬영되었을 뿐 아니라 많은 소설과 연극의 중요한 주제가 되어 사랑을 받았다.


그러나 인간의 역사에는 유대인 홀로코스트말고도 잔혹한 집단학살(genocide)이 수없이 발견된다. 역사가들에 따르면, 유럽의 백인 기독교인에 의한 아메리카 대륙의 인디언 학살의 수는 적어도 2천만 명에 육박한다(물론 정확한 숫자에 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당시 백인들은 아메리카 토착민 학살을 버펄로 사냥 정도로 생각했다고도 한다. 그들은 인간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관점에서 정화되어야 할 이교도였다. 학살에는 천연두 바이러스와 같은 전염병도 이용되었다. 원주민을 말살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균을 퍼트렸다는 사료들이 발견되었다. 그러나 미국 정부는 대량학살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과한 적이 없다. 또한 대부분의 일반적인 미국인들은 아직도 정부군에 의한 학살이 아니라, 아메리칸 원주민들이 의도치 않게 유럽인이 옮긴 천연두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 의해 대부분 사망했다고 믿는다.


1830년대 미국 정부는 '인디언 이주법'을 만들어, 미시시피 강 동부에 사는 모든 원주민이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도록 강제하는 정책을 수립했다. 이 계획에 따라 원주민들은 백인들의 감시와 감시 아래 수천 마일을 행진해야 했으며, 이 고난의 행군에서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특히, 체로키 인디언들의 '눈물의 행로(Trail of Tears)'는 악명이 높다. 1837년 봄부터 1838년 가을까지 16,000 명의 체로키족이 백인 당국이 지정한 인디언 거주지로 이주하는 과정에서, 쏟아지는 비, 차가운 바람, 기아, 질병 및 정신 분열증으로 인해 4,000 명이 목숨을 잃었다. 40번 이상 발생한 '인디언 전쟁'도 아메리카 원주민의 전멸에 크게 기여했다. 1814년부터 1870년까지 대규모로 발생한 이 전쟁은 사실상 일방적인 학살이었다. 1500년까지 1,500만 명에서 2,000만 명에 이르렀던 아메리카 원주민의 수는 이러한 과정을 통해 1890년에 25만 명 미만으로 감소해 90%가 사망한 것이다.


미국 워싱턴에 '홀로코스트 메모리얼 박물관'이 문을 열었을 때,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바로 그 건물 앞에서 시위를 했다. 그들은 원주민들의 피를 밟고 세워진 미국이 그 기억을 배제하고, 유럽의 유대인 학살을 기념하는 것은 위선이라고 비판했다. 다른 대학살을 무시하고 유대인 학살만 강조하는 것은 미국 언론의 영향도 있다. 미국 언론의 많은 수가 유대계이며, 이스라엘에 유리한 여론을 형성하고 홀로코스트를 중요한 이슈로 만들고 있다.


아시아 지역으로 눈을 돌려보자. 1937년 중일전쟁 중, 당시 중국의 수도 난징을 점령한 일본군에 의해 난징 대학살 사건이 일어났다. 약 6주 만에 약 30만 명의 중국인이 일본군에 의해 학살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강간당한 여성의 수는 2만 명에서 8만 명으로 추정된다. 그 학살 방법도 기관총에 의한 무차별 사격, 생매장, 휘발유를 뿌려 불태워 죽이는 등 잔인하기 이를 데 없었다. 당시 목격자들은 그 일대의 강물이 수많은 시신들의 핏물로 붉게 변했다고 전한다. 1975년에는 캄보디아의 공산주의 무장단체인 크메르 루주 정권이 4년 동안, 노동자와 농민의 유토피아를 건설한다는 구실로 총인구의 4분의 1인 2백만 명의 지식인과 부유한 사람들을 학살했다. 19세기 후반 영국 제국주의자들은 2천만 명의 인도인을 아사시키기도 했다.


1994년에는 중앙아프리카의 작은 나라 르완다에서 최악의 종족 도축이 시작되었고, 르완다 전체 인구 7백만 명 중 10% 이상이 사망했다.


그렇다면, 왜 홀로코스트만이 다른 끔찍한 대량 학살보다 훨씬 더 많이 이야기되고, 영화화되며, 소설로 쓰여지는 것일까? 이 의문은 이상하게도 논의된 적이 없다. 또한, 역사 교과서에서 다른 대량학살 사건들은 홀로코스트만큼 심각하게 다루어지지 않았다. 반면, 유대 민족은 각국 역사 교과서와 미디어를 통해 희생자, 핍박받은 자들로 기록되고 논의되었고, 충분한 위로와 동정을 받아왔다. 유대인들 스스로는 자신들이 인류사상 최악의 학살 피해자이므로, 보상받아야 할 권리가 있으며 팔레스타인에 대한 무자비한 공격도 이해되어야만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물론, 과거의 홀로코스트를 기억하면서 인간의 악한 본성을 반성하고 경계해야 함은 말할 필요도 없다. 요점은 홀로코스트만이 왜 레드 카펫의 영광을 누리는 것인가에 관한 것이다.


기록상, 히틀러와 나치는 총 1천 2백만이 넘는 사람들을 학살했으며, 그중 6백만이 유대인이었다. 나치 희생자들 중에는 유대인 외에 신체적, 또는 정신적 장애자, 집시를 포함한 다른 희생자들이 있었다. 이중에는 기아, 질병, 방치, 빈약한 치료로 사망한 약 2백만에서 3백만의 소련인 전쟁 포로들, 그리고 비유대인 폴란드 지식인, 동성애자도 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유대인 희생자들에게만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이들에 대해서는 충분히 고려하지 않았다. 결론적으로, 유대인 학살에 집중되어 상대적으로 다른 대량학살은 공평하게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대부분의 유럽 지역의 국가에서, 홀로코스트의 희생자 수를 줄이거나(일부에서는 100만 명의 유대인 희생자 수를 주장하기도 한다) 의심하는 것만으로도 6개월에서 3년의 징역형을 받을 수 있다. 유럽인들에게는 현재 공유된 일반적인 홀로코스트에 대한 판단 이외의 어떠한 다른 시각도 용납되지 않는 분위기다. 합리적인 논의 역시 '홀로코스트 부정자(Halocaust denier)'로 오해되거나 신나치주의자로 비판받을 수 있다. 유럽인들은 홀로코스트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으며, 그것을 매우 고통스러운 기억으로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홀로코스트뿐만 아니라, 인류사의 다른 잔혹하고 폭력적인 학살사건들에 대해서도 똑같은 분노와 관심을 기울여야 되지 않을까?


또한, '홀로코스트'라는 단어의 쓰임새 자체도 문제가 있다. 이 낱말은 원래 대량학살을 뜻하는 일반명사였는데, '2차 세계대전 중 일어난 유대인 학살'이라는 좁은 범주의 개념으로 굳어져 버린 것이다. 노르만 핀켈슈타인(Norman Finkelstein)의 <홀로코스트 산업 The Holocaust Industry>에 의하면, 유대인들이 홀로코스트를 나치의 유대인 학살이라는 고유명사로 바꾸었으며, 홀로코스트 자체를 일종의 그들만의 브랜드로 만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스라엘 단체들은 마치 상표권처럼 다른 대량학살에 이 단어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공개적 집단행동과 항의를 계속해왔다고 한다. 놀라운 것은 저자 핀켈만이 유대인이며, 그의 부모는 아우슈비츠에서 살아 나온 생존자라는 것이다. 따라서 그를 신나치주의 극우파로 오해해 그 진정성을 의심할 필요는 전혀 없다.


홀로코스트 영화들은 우리에게 감동을 주고, 인간의 참혹했던 역사를 되돌아보게 한다. 그러나 그것이 센티멘털리즘으로 변질되어 왜곡의 위험성이 있을 때, 그리고 어느 한쪽만을 편들고 미화할 때, 그 감동은 또 다른 인간의 악마성으로 변질되어버릴 것이다. 다시 한번 묻고 싶다. 왜 다른 수많은 홀로코스트를 제치고, 유대인 홀로코스트만 영광의 왕좌에 앉아 고해성사를 요구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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