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치니의 <투란도트>의 여주인공?
* <시간을 읽는 그림>에서 일부 발췌
차가운 바람이 휘몰아치는 몽골 초원의 한가운데, 한 젊은 여성이 말에서 내려 곧고 당당한 자세로 상대와 마주 선다. 장대한 체격과 단단히 다져진 근육, 한 치의 흔들림도 없는 얼음 같은 눈빛은 싸움이 시작되기도 전에 벌써 도전자를 압도한다. 씨름이 시작되자 그녀는 순식간에 상대를 들어 올려 땅에 내던진다. 패배한 구혼자는 말 백 필을 남기고 물러나고, 그녀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말에 오른다. 이 얼음공주는 전설이 아니라, 13세기 몽골 제국을 살았던 실존의 여전사 쿠툴룬이다.
몽골 제국의 수많은 혁신 가운데 가장 놀라운 점 중 하나는 여성에 대한 태도였다. 몽골 사회에서 여성은 단순히 가정에 머무는 존재가 아니었다. 유목 사회의 특성상 여성은 남성과 함께 말을 타고 활을 쏘았으며, 전쟁과 정치, 경제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이는 중세 유럽이나 동아시아의 정착 농경 사회에서 여성의 역할이 엄격히 제한되었던 현실과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몽골 여성들은 얼굴울 베일로 가리거나 전족을 하는 아시아 문화권 국가들의 관습을 경멸했다.
칭기즈 칸 시대 몽골 여성은 재산을 소유할 수 있었고, 이혼 또한 비교적 자유로웠다. 전투에 참여하는 것 역시 예외적인 일이 아니었다. 칭기즈 칸 자신도 전장에 아내와 딸들을 동행했으며, 그의 어머니 호엘룬과 아내 보르테는 제국 건설 과정에서 정치적·전략적 조언자로 중요한 역할을 했다. 특히 보르테는 단순한 왕비가 아니라, 칭기즈 칸이 국정 전반에 대해 의견을 구하던 핵심 인물이었다.
칭기즈 칸은 네 아들과 다섯 딸을 두었다. 딸들은 다른 부족과의 정략결혼을 통한 정치적 동맹의 수단인 동시에, 남편과 함께 그 국가의 실질적인 통치자로 군림했다. 이들은 실크로드를 따라 형성된 광대한 변경 지역을 다스리며 몽골 제국의 외곽 방어선을 담당했다. 평시에는 가정을 돌보다가도, 전쟁이 발발하면 직접 활을 들고 병력을 이끌었다. 이러한 전통 속에서 등장한 인물이 바로 칭기즈 칸의 고손녀 쿠툴룬이다.
쿠툴룬은 우구데이 칸(칭기즈 칸의 3남)의 손자 카이두 칸의 딸로, 13세기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강력한 여성 전사 중 한 명으로 기록된다.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에 따르면, 그녀는 씨름과 격투, 기마와 궁술에 뛰어났고, 어떤 남성도 힘으로 그녀를 이길 수 없었다. 그녀는 결혼을 거부하며 “나를 이길 수 있는 남자만이 내 남편이 될 수 있다”라는 조건을 내걸었고, 씨름에서 패한 구혼자들로부터 말 100필씩을 받아 결국 1만 필이 넘는 말을 모았다고 전해진다.
쿠툴룬은 라시드 알딘의 페르시아 역사서에도 등장한다. 남성 복장을 하고 전쟁에 참여했으며, 아버지 카이두의 깊은 신임을 받아 군사·행정 업무를 수행했다. 일부 기록에 따르면 카이두는 그녀를 후계자로 삼으려 했다는 설도 있다.
흥미로운 점은 쿠툴룬의 이야기가 유럽에 전해지면서, 점차 ‘강한 동방의 공주’라는 이미지로 변형, 확산되었다는 사실이다. 이 이미지가 직접적으로 특정 작품의 모델이 되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유럽 문학과 예술 속에서 동방의 냉혹하고 접근 불가능한 여성 통치자라는 유형을 형성하는 데 분명한 영향을 미쳤다. 이러한 상상력의 축적 위에서 탄생한 대표적 작품이 바로 자코모 푸치니의 오페라 <투란도트>다.
<투란도트>는 12세기 페르시아 기원의 전설을 바탕으로 하며, 실존 인물인 쿠툴룬과는 거리가 있다. 그러나 구혼자들에게 가혹한 시험을 요구하고, 쉽게 굴복하지 않는 강인한 공주라는 설정은 쿠툴룬의 서사와 자연스럽게 겹친다. 즉, 투란도트는 페르시아 전설의 서사 구조 위에, 몽골과 중앙아시아를 통해 전해진 ‘여전사 공주’의 이미지가 유럽인의 상상 속에서 중첩된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푸치니 오페라의 아리아 ‘Nessun dorma(공주는 잠 못 이루고)’는 참으로 많은 테너가 불렀다. 이 곡에 있어서만은 개인적으로 바리톤을 연상시키는 장중한 음색을 지닌 드라마틱 테너 마리오 델 모나코가 최고라고 생각한다. 프랑코 코렐리의 눈빛 연기는 마음을 설레게 하고, 호소력 있는 감성을 전달하는 호세 카레라스, 화려하고 서정적인 미성을 가진 루치아노 파바로티도 좋다. Vincerò! Vincerò!
*‘Nessun dorma’를 부른 테너들의 노래를 감상해 보세요. 누구의 연주가 가장 마음에 와 닿나요?
https://youtu.be/_8E2M4HpWbU?si=_IQ8dIzGRDAL7E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