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지의 <시간을 읽는 그림>
그림을 감상하는 법이 아니라 그림을 이해하는 법을 가르쳐주는 책이다. 미학적 성찰을 동반하는 예의 근엄하고 자칫 지루한 태도는 접어도 된다. 당대의 미술 뒤에 숨은 사건과 역사적 의미를 알려준다. 그저 ‘그랬었구나’ 하고 끄덕이거나 ‘저런!’하고 감탄하면 될 일이다. 한 마디로 그림과 함께하는 역사 이야기 책이다.
그림 속 시간을 풀어 역사 이야기를 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그림에 담긴 사람과 배경 서사를 따라가다 보면, 어쩌면 나처럼 엉뚱한 의심과 비판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우리가 흔히 아는 미술에 ‘미술’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 자체가 잘못 아닌가 하는 '딴지 걸기'다. 미술이 어디 아름답기만 하던가. 비루하고 폭력적이고 음모적인 그림도 천지 삐까리다. 미술 속 인간들의 표정과 행위, 말 그리고 사건은 때론 악마적이다. 그러니 미술은 감상의 대상이기도 하지만 성찰의 재료이자 유산이다. 김선지의 새 책 <시간을 읽는 그림>(블랙피쉬)을 읽으면 그런 생각이 더 공고해진다. 책을 덮고 나면 미술관의 작품들이 박제된 유물이 아니라 아직 살아 숨 쉬는 사람들의 아우성으로 다가온다. 미술은 그 시대의 삶과 사회를 반영하기 때문이다. 작가도 사람이고 사회 구성원인 한 원하든 원하지 않든 사회상이 배어있을 수밖에 없지 않겠나. 김선지는 화가들의 작품뿐 아니라 여기에다 책, 신문, 잡지, 팸플릿의 삽화, 포스터, 인쇄업자의 판화, 풍자만화 등 당대의 자료를 등장시킨다. 미술관의 유물만 아니라 도서관 도록 등 관련 아카이브를 두루 뒤졌을 수고가 커 보인다. 글과 그림 앞에 겸손해지는 느낌.
그림과 함께 배우는 역사는 세계사 교과 시간보다 흥미진진하다. 중학교 세계사 시간에 담당 샘을 멸시했던 탓인지 모른다. 산업혁명을 온통 ‘빤스공장’ 이야기로 도배하신 깊은(?) 뜻 아예 모르는 바 아니나, 너무 가볍지 않나 싶었다. 윌리엄 터너의 ‘전함 테메레르’는 산업혁명 시대의 변화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모네의 ‘생 라자르 역’ 속 기차역 풍경은 과학 기술 발전이 가져온 여행 시대를 담고 있다. 르누아르와 귀스타브 카유보트 같은 인상주의 화가들은 19세기 새롭게 탄생한 현대 파리의 도시 생활을 그렸다. 개인적으로 ‘채찍질 고행단 Flagellants’은 그 말도 그림도 처음 접했다. ‘채찍질 고행단’이란 흑사병이 유럽을 휩쓸 무렵, 극단적 마조히즘에 가까운 광신 운동을 행하던 단체 이름. 수천 명씩 무리를 지어 유럽 각지를 순례했다는데, 전염병이 인간의 죄악에 대한 하느님의 징벌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채찍질로 참회하고 신의 노여움을 달랬다니 놀랄 일. 그림 속 그들은 몇 배 더 생경하고 충격적이다.
‘바다의 개들 Sea Dogs' 이야기도 처음 알았으니 과문하기 이를 데 없다. 1558년 엘리자베스 1세 때 영국은 성공회와 가톨릭 간의 종교 갈등으로 분열되어 있었다. 스페인과 프랑스 같은 강대국의 위협에도 직면해 있었는데 게다가 왕실 재정은 궁핍했다. 그런데 섬나라 영국에는 수많은 항구와 뛰어난 항해 기술을 지닌 선원들이 있었다. 엘리자베스에게 충성을 다하는 이들을 ‘바다의 개들 Sea Dogs’이라 불렀다고 한다. 여왕의 비호 아래 스페인 식민지를 습격하고 카리브해와 북아메리카 연안을 휩쓸며 약탈했다. 전리품을 정부에 헌납하며 해적행위 면책권을 산 그들은 여왕의 군사조직이나 마찬가지였다던가. ‘엘 드라케(용)’이라는 별명을 가졌던 프랜시스 드레이크는 단연 두드러져 보인다. 전공이 어마어마하여 여왕이 직접 승선해 훈장을 줬다니 총애도 어마어마했던 셈. 둘이 정분나지 않았을까 상상해봤지만 증명하는 그림은 없다. ‘니콜라스 튈프 박사의 해부학 강의’도 흥미롭다. 그림은 렘브란트가 암스테르담 외과의사협회의 의뢰를 받아 그린 단체 초상화다. 작가 김선지는 이 작품이 미술사에 빛나는 대단한 걸작이라고 소개한다. 동시에 17세기 사람들의 과학적 호기심과 해부학에 대한 열광을 표현한 소중한 대표작이라고 말한다. 해부학 극장에서의 공개 강연, 해부 실습용 시신의 공급 문제 등 여러 가지 역사적 상황을 서술했다. 그림이 사료로서 얼마나 큰 역할을 하는지 증명한 작품으로 나 역시 기억에 오래 남는다.
책을 보면서 아쉬웠던 점이 있긴 했다. 그림 사이즈가 너무 작은 게 딱 하나의 단점. 삽화나 포스터 등 자료는 그렇다 쳐도 화가의 작품은 좀 더 시원하게 크게 보여줬다면 훨씬 좋았겠다.
작가 김선지는 이화여대에서 역사를 공부하고 동 대학원에서 미술사와 현대미술을 전공했다. 남편의 직장인 한국천문연구원 웹진에 ‘명화 속 별자리 이야기’를 게재했다가 입소문 나 출간 제의를 받게 되고, 천문학자 남편과 함께 ‘그림 속 천문학’을 펴내면서 작가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싸우는 여성들의 미술사’를 비롯해 ‘사유하는 미술관’, ‘뜻밖의 미술관’, ‘그림 속 별자리 신화’ 등을 연이어 썼다.
이태 전에 인터뷰이로 모셨는데, 대전에서 서울 서촌까지 먼 길 달려온 수고에 빚을 지고 있다. 빚 청산을 하든 빚잔치를 하든 해야 하는데 집필에 파묻혀 사는 걸 아는지라 말 건네기 어렵다. ‘시간을 읽는 그림’은 마쳤지만 그림 읽는 시간 멈추지 않을 것이니 어차피 기약이 없다.
http://woman.chosun.com/news/articleView.html?idxno=1248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