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곤 실레

by 김선지


에곤 실레(Egon Schiele)의 <트리에스테 항구>는 그가 17세에 제작한 초기작이다. 실레가 빈 예술 아카데미의 보수적이고 엄격한 전통주의(아카데미즘)를 벗어나 현대적인 조형 언어를 실험하던 시기의 결과물로서, 그의 천재적인 감각이 어떻게 싹트기 시작했는지를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다.


에곤 실레, <트리에스테 항구>, 1907년




당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유일한 관문이었던 트리에스테는 제국 지식인들에게 현대성과 이국적인 정취를 상징하는 곳이었다. 쉴레는 부모님의 신혼여행지였던 트리에스테를 자주 방문했으며, 이곳의 풍경에서 받은 영감을 바탕으로 물결에 비친 배의 모습 등을 섬세하게 표현했다.


실레는 이 항구의 번잡함 대신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한 정적을 화면에 담아내어 내면의 고독을 투영했다.이 작품은 실레가 본격적으로 인물의 고통과 에로티시즘을 다루기 직전, 풍경을 통해 조형적 완성도를 실험했던 중요한 이정표가 된다.


화면을 가로지르는 선박들의 배치와 수평선은 극도의 시각적 안정감을 준다. 돛대의 수직선과 선체의 수평선이 교차하며 만들어내는 기하학적 구조는 실레가 단순히 대상을 관찰하는 것을 넘어 화면을 '설계'했음을 보여준다.


당시 유럽 예술계를 매료시켰던 일본 우키요에(목판화)의 영향이 짙게 나타난다. 원근법을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색면을 평평하게 처리한 방식은 전통적인 서양화의 입체감에서 벗어나 현대적인 회화로 나아가는 과도기적 특징을 보여준다.


배의 구조물을 묘사한 가늘고 날카로운 선들은 대상을 설명하는 기능을 넘어 선 자체로 독특한 에너지를 발산한다. 이 예민한 필치는 훗날 실레를 상징하는 불안하고 뒤틀린 인간 군상의 선묘로 이어진다. 실레의 아버지는 철도 역장이었으며, 실레는 어린 시절부터 역과 선로, 항구와 같은 기계적이고 역동적인 풍경 속에서 자랐다. 트리에스테 항구는 그에게 있어 아버지에 대한 기억과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동경이 교차하는 정서적인 장소였다.


겨우 16세에 빈 아카데미에 입학한 천재 소년 실레는 숨막히는 아카데미즘에 환멸을 느꼈다. 이 시기의 실레는 거장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를 만나 큰 영향을 받았다. 클림트가 주도한 '빈 분리파'의 건물이 빈 아카데미에서 불과 도보로 5분 거리에 있었다. 클림트는 실레의 천재성을 즉시 알아보고 후원자 겸 멘토가 되어주었으며 모델을 소개해 주기도 했다. 그중 하나가 실레의 비극적인 뮤즈이자 사랑이었던 '발리'다. 장식적인 패턴과 세밀한 외곽선 처리에서 클림트의 '분리파' 양식이 엿보이지만,이후 실레는 점차 그의 독자적인 표현주의 양식으로 자기만의 색채를 가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