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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촉과 돌봄과 사랑 없이는 살 수 없는 우리

김혜령, 『죽을 때까지 유쾌하게』

by 책 읽는 오리



“노인들에게는 꺾이지 않는 그 무엇이 있다”

_조앤 에릭슨, 『인생의 아홉 단계』



이 책을 읽기 시작하고 남편과 아이들에게 각각 물은 적이 있다.


“여보, 내가 만약 치매 걸리면 어떻게 할거야? 만약 여보가 치매에 걸리면 어쩌지?”

"아들, 엄마가 알츠하이머에 걸려서 아무도 못 알아보면 어떻게 하지?"


내 가족들의 대답이 어땠을 것 같은가? 예상대로 하나같이 아직 닥치지 않은 미래의 불행 앞에 철저한 사랑의 돌봄을 약속했다. 신랑은 기저귀도 갈아 주고 모든 뒤치닥꺼리를 다 해주겠다고 담대하게 선언했고, 아들은 금방이라도 눈물이 쏟아질 것 같은 촉촉한 눈을 장착하고 엄마 옆에 꼭 붙어 있겠다고 손을 잡고 눈을 맞춘다. 나라도 다른 답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나의 상상으로 끝났으면 좋을 ’만약에’라는 가정이 이미 일상을 송두리째 바꿔 놓은 가정이 있다.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은 가정이 ’치매’라는 병을 앓으며 사회 어딘가에서 소리 없이 침몰하고 있다. 그녀의 가정 또한 예상치 못한 가족의 치매 진단으로 침몰당할 위기 앞에 처했지만 오히려 생존의 해석학이라는, 돌보고 사유하며 사랑하는 일상을 통해 인간의 존재를 깊이 들여다 보고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바로 세워가며 마치 구명보트처럼 침몰당한 이들에게 인문학적인 체계와 사유를 선물해 준다. 어쩐지 앞으로도 재독, 삼독을 계속 하기 위해 찾게 될 책이 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인생의 중요한 질문과 신앙의 깊은 성찰을 가능하게 해 주는 이 책에 더욱 애정이 가고 마음이 간다.



책 전체를 관통하는 단어, '유쾌함'에 대해 생각해 본다. 유쾌하다는 말에는 ‘즐겁고 상쾌하다’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쾌함이 있는 상태를 '유쾌', 쾌함이 없는 상태를 '불쾌'라고 일컫는다. 노인들에게 꺾이지 않는 그 무엇에는 유쾌함이 포함되어 있으리라. 건강도, 기억도 다 잃어버리고, 평생에 걸쳐 쌓아온 자리와 인간관계가 무너지는 경험을 하고, 슬프고 암담한 현실을 맞이하면서도 그 가운데 생기는 감정 조차도 모두 잃어버리고 마는 노년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딸 앞에서 '죽을 때까지 유쾌하게!'를 외치는 작가님의 정신이 오늘의 나를 지탱하고 지지해 주는 것이었다.



한편으로 나는 내 아이들에게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 싶었다. 삶의 자리에서 마주했을 그녀의 치열한 고민과 아픔들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내가 감히 다 알 수는 없겠지만, 나는 내게 주어진 삶의 자리에서 그녀가 보여주고 지나간 방향으로 따라 가보려 한다.



접촉의 능동성에서 접촉의 수동성으로 전이되는 과정에서 완성된다는 삶의 이해를 나는 아직까지 소화하기가 벅찬 수준이지만, 그런 질문들이 내 삶을 한꺼풀 더 선명하게 밝혀 준 것에 감사하고 있다.



이제는 “어떻게 살 것인가?”를 넘어서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고민하고 질문하는 시대이다. 삶의 처세술 보다는 '죽음학'을 더 들여다 보는 시대에 죽음에 가까워진 노년기 삶을 놓고 모든 촉각과 시각과 깨어있음을 끌어 올려 이 책은 질문한다. “우리는 우리의 노년에 어떻게 접촉당하며 살고 싶은가?”를 말이다.



결국 우리 모두는 접촉에 의해 이 땅에 태어나 아침과 낮을 보내고 누군가로부터 접촉을 당하며 저녁을 보낼 수밖에 없는 존재들임을. 예수가 남긴 ’접촉’의 대리자를 통해 우리 삶이 영위되어 왔음을 부인할 수 없다. '접촉'은 '돌봄'이 될 수도 있고 '사랑'과도 치환된다. 내가 속한 이 곳이 접촉의 공동체가 되어 서로를 돌보고 헌신함으로 그리스도의 제자됨이 더욱 더 확장되기를 바랄 뿐이다.



죽기까지 인간의 고통에 참여한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그가 보여 준 방식으로 타인의 고통에 동참하고, 더불어 사랑하며 살기로 다짐하고 노력하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죽을 때까지 유쾌하게! 오늘, 지금, 이 순간 또한 유쾌하게 보내며 최선을 다해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기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넘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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