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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입김은 그럼에도 살아있다는 증거

한강, 『흰』

by 책 읽는 오리

‘흰’은 세상의 모든 흰 것들을 모아서 태어나자마자 몇 시간 만에 이 세상을 떠나간 자신의 언니를 기억하고 추모하며 쓴 한강 작가의 모음집이다.


『소년이 온다』를 번역한 폴란드의 번역가 유스트나 나이바르 씨의 초대를 받아 바르샤바에서의 나날을 보내며 탄생한 그녀의 책 『흰』.


모든 처음의, 혹은 마지막을 상징하는 색 ‘흰 ‘

그녀의 문장들을 통해 나는 놀랐다.

이렇게 흰색의 스펙트럼이 컸던가.


그녀의 렌즈를 통해 바라본 흰색의 여러 형태와 존재들은 너무나도 많은 메시지를 담고 있었고 우리에게 끊임없이 말하고 있었다.


그녀의 고요하고도 아름다운 애도의 방식이

나를 한 번 더 흰의 무한한 세계로 이끌어 주었다.


내 친구의 둘째 아들이 어제 하늘나라로 떠나갔다. 태어나자마자 병원에만 머물 수밖에 없었던, 이 세상의 빛을 본 지 고작 백일밖에 되지 않은 그 아기는 그 작은 몸을 벌려 온갖 수술을 다 견뎌내었고 인공호흡기에 연결된 작은 숨을 내쉬며 꿰매고 차오르는 복수와 사투를 벌이며 그렇게 처음 눈 뜬 세상에서 백일을 꽉 채워 알코올 소독약 냄새만 맡다가 의료진과 엄마아빠의 곁을 떠나갔다.


매일을 그렇게 작은 아기를 위해 기도하고 또 기도했는데 결국..


책 속에서 그런 대사가 나온다.


”죽지 마. 죽지 마라 제발. “


그 대사는 한강 작가의 모친의 간절함이었고

그녀의 애도였으며

어제까지는 나의 기도의 일부였다.

그렇게 그녀의 작품 ’흰‘을 통해 나는 내 친구의 아기를 애도했다.


p.33

해독할 수 없는 사랑과 고통의 목소리를 향해, 희끗한 빛과 체온이 있는 쪽을 향해, 어둠 속에서 나도 그렇게 눈을 뜨고 바라봤던 건지도 모른다.


너무 가혹하고 끔찍한 죽음의 슬픔 한가운데서 떨고 있는 이들을 향해 그녀는 아름다운 문장들로 애도하고 위로하고 토닥인다.


p.67

그러려면 상처가 없는 발이어야겠지,

사진을 들여다보다 그녀는 생각했다.

곱게 아문 두 발이라야 거기 얹을 수 있다,

그 소금산에.

아무리 희게 빛나도 그들이 서늘한.


소금을 바라보며 그녀는 썩지 못하게 하는 힘에 대해 묵상한다. 소독하고 낫게 하는 힘을 생각한다. 상처 없는 발만이 아픔 없이 소금 위에 설 수 있다는 그녀의 말이 왜 이렇게 위로가 되는가.


아가야, 상처 없는 발로 아무런 아픔 없는 소금산에 올라 빛처럼 환희 웃으렴. 네가 떠난 엄마 품을, 가볍게 날아오른 하늘 길을 이모가 품고 기도하고 또 기도할게.


p.71

흰 입김, “우리 생명이 희끗하고 분명한 형상으로 허공에 퍼져나가는 기적”


그렇다. 아무리 추운 날씨에도 흰 입김은 우리가 살아있다는 증거다. 우리의 몸이 따뜻하다는 증거이다. 내가 가진 얼마의 따뜻한 온기로 내 친구를 위로하러 가야겠다. 나도 그녀의 힘을 빌어 가능한 오래도록 애도를 연장해 보려 한다.


p.133

“죽지 말아요. 살아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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