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지 못하고 살아진다 4

게임에 빠지기 시작한 아들

by 나무 향기

1, 2학년 때 아들과 같은 학교에 근무했다. 아들이 교실에 오면 내치기 바빴다.

아들이 학원을 가기 싫다고 하면 안 된다고 엄포를 놓았다. 그깟 학원 한 번 빠진다고 아들 인생이 달라질 것도 아니고 할 일 좀 못한다고 월급 안 나오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놈의 책임감, 의무가 아들보다 앞선 어리석은 엄마였다. 아들은 엄마랑 같이 있고 싶었던 것뿐인데 학교는 공적 기관이니 가정사를 끌고 오면 안 된다는 책임감에 아들을 윽박지르고 있었다. 10분, 20분만 짬을 내서 다정하게 달래면 될 것을 그것도 못한 엄마였다.

"엄마 일해야 돼. 빨리 가."

짜증과 화가 범벅이 되어서 아들을 달래지 못하고 혼만 내고 있었다. 우선순위를 모르는 엄마. 슬픈 일이다.


그렇게 2년을 보냈다. 고향에서 이곳으로 파견을 와 있었던 상황이었는데 2년의 파견이 끝나고 상대 선생님이 파견 연장을 안 하셔서 고향으로 돌아갈 상황이 되었다. 교사들의 파견이나 전출은 1대 1 맞교환으로 이루어진다. 그래서 나랑 맞상대였던 선생님이 파견 연장을 하지 않으면 내가 연장 신청을 해도 무용지물이다. 원래는 파견 3년을 끝내고 고향으로 다시 돌아갈 예정이었지만 3년마저 채울 수가 없었다. 그리고 막상 남편과 함께 4 가족이 같이 살아보니 돌아가는 것도 할 일이 아니란 결론이 내려졌다. 별 수 없이 예정에 없던 육아휴직을 하게 되었다. 육아 휴직 후 전출을 해야겠다는 잠정적인 결론을 내렸다.

3학년이 돼서 선생님의 따뜻한 보살핌으로 아이가 좋아지는 줄 알았다. 엄마의 욕심과 기대가 일기 시작했다. 아들은 책도 많이 읽었고 언어 능력도 좋은 편이었다. 피아노를 가르쳐도 선생님이 습득력이 좋다고 했다. 중국어를 가르쳐도 똑똑하다고 하셨다. 아들이 조금 괜찮아지는 것 같자 엄마는 욕심을 부리기 시작했다. 3학년 2학기에 태권도 학원을 관두고 억지로 영어학원을 보냈다. 태권도 학원을 못 다니게 된 아들은 너무 슬퍼했지만 휴대폰을 사 준다는 조건을 내걸며 아들을 설득했다. 어리석고 어리석은 엄마다. 아들을 잘 키우는 것이 공부를 잘 시키는 것이라는 생각에 눈이 먼 엄마. 학교에 다니며 상위권 아이들을 보며 우리 아들이 그렇게 되기를 바라고 있었던 것이다. 그 아이들의 인성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책임감이나 근면성이 어떤 과정을 거쳐 형성되었는지 모르고 말이다.

아들은 영어학원을 그럭저럭 다녔다. 하지만 사교성이 부족한 아들에게 소규모 학생이 모인 어학원에서 스피킹이 이루어지는 영어학원이 그다지 편한 곳은 아니었고 말 없는 아들을 괴롭히는 아이들이 있었다. 아들은 힘들어했지만 문제를 잘 해결했다는 원장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학원 차를 타고 오고 가는 과정에서 아들은 게임에만 몰두했다. 그렇게 아들은 게임의 세계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아들이 게임에 빠지는데 걱정하지 않는 엄마가 어디 있으랴? 제어프로그램을 깔았다. 아들은 반항하기 시작했다. 엄마가 자기를 통제한다고 반항하기 시작했다. 친구가 없었던 아들은 유튜브를 보며 믿을 수 없는 정보들에 의존하고 믿기 시작했다. 심지어 대한민국이란 나라는 공부만 강요하는 헬지옥이라고 3학년에 어울리지 않는 이야기들을 하기 시작했다. 아들에게 부모의 말은 믿을 게 못 되는 상태가 되어가기 시작했고 가상의 세계에서 본인이 큰 존재가 되고 싶어 하는 모습을 보였다.

아들이 가상의 세계에서 빠져나오도록 하기 위해 나름의 애는 썼다. 얼마 안 되는 친구들을 데리고 에버랜드를 공짜로 데리고 가기도 하고 아들 친구들을 불러 집에서 재우는 것도 여러 번 했다. 하지만 그 친구들은 아들을 좋아하는 친구 태훈(가명)이의 친한 친구일 뿐 아들의 친구가 될 순 없었다.


친구를 못 사귀는 아들, 표현을 못하는 아들, 감정 절제가 안 되는 아들, 승부욕은 넘쳐서 최고가 되고 싶은 아들은 가상 세계에만 빠져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아들은 게임중독자가 되어가고 있었다.


자식을 키울 때 조건을 걸면 안 됩니다. 그런데 조건이 항상 쉬운 방법이라 조건을 걸지요. 저는 저학년 담임이라 아이들이 자기 집 이야기를 진짜 많이 들려줍니다. 아이들이 하는 말을 들어보면 저만큼이나 걱정되는 부모들이 한 두 분이 아닙니다.

받아쓰기 백점 받아오면 만원 준다고 하셨어요.

엄마가 이번 시험 백점 받으면 레고 사준대요.

수학 백점 받으면 에버랜드 데리고 가주신대요.

실제 상황입니다. 80년대생이 대부분일 학부모들인데 저와 다른 세대인데 이런 우를 범하고 계십니다. 조건으로 아이를 키우는 것이 얼마나 나쁜지 모르고 계십니다. 지금은 오은영 박사님 같은 훌륭한 분들이 티브이에 나와서 양육 방법도 가르쳐 주시고 넘쳐나는 게 양육 관련 책인데 저런 실수를 범하고 계십니다.

수행평가가 실시되고 초등학교에서 일제식 고사가 폐지된 상황이어서, 담임들은 아이들의 학력 수준을 진단하고 피드백을 하기 위해 단원평가를 합니다. 그걸 참고 자료로만 이용하지 않네요.

교육도 달라지지 않았지만 부모들의 의식도 별로 달라지진 않은 것 같습니다.

저와 같은 실수를 범하고 있는 엄마들이 안타깝지만 어떻게 할 방법은 없네요.

현명하지 못한 사람은 직접 경험을 하기 전에는 못 깨달으니까요.


사진: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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