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지 못하고 살아진다 3

지쳐가는 엄마, 기대하는 엄마

by 나무 향기


동료교사의 추천으로 간 정신과에서는 아이를 한 번 쓱 보고 옆 상담 센터로 보냈다. 풀배터리 검사라는 것을 받았다. 아이는 딱히 정확한 진단이 나오지 않았다. 차라리 ADHD라고 판명이 난다면 이해를 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혹시 ADHD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이 읽고 오해하지 않으시길 진심으로 바란다. 6학년 때 또 풀배터리 검사를 했지만 아이는 모든 면에서 경계였다. 이도 저도 아닌 정확한 이유도 없는 아이의 부적응과 산만함 게임중독 문제는 현실적으로 해결이 힘들고 약을 먹일 정도도 아니었기에 방법을 찾을 길 없었던 엄마의 답답함에서 하는 말이다.

상담을 진행했지만 아이의 모습엔 큰 진전이 없었다. 1년 정도 진행되던 상담은 아이가 변화되기도 전에 관두게 되었다. 그땐 몰랐지만 돌아보면 내가 더 문제였던 것이다. 우울한 엄마는 아들을 상담에 꼬박꼬박 데리고 가는 것조차 힘에 부치기 시작했다. 둘째는 5살이었고 퇴근을 하고 상담소에 가면 둘째를 어린이집에서 하원시킨 후 같이 가야 했다. 둘째는 기다리는 동안 지겨워서 견디기 힘들어했고 둘째를 달래며 기다리는 그 한 시간이 혼자서 감당하기엔 힘들었다. 엄마가 에너지가 좀 있었더라면 충분히 견딜 수 있었던 일인데 에너지가 하나도 없었다.

아들의 모습을 보며 때론 내 탓을 하고 때론 아들을 원망하고 미워했다. 상담소에 가는 상황에서도 애 둘을 챙겨야 되는 내 신세가 속이 상했다. 아들의 마음이 아픈 그 순간에도 엄마는 자기 생각만 하는 존재였다. 그땐 왜 조퇴를 하고 상담을 갈 생각을 못했는지 모르겠다. 학교 일이 뭐 그리 대단한 거라고. 조퇴를 하더라도 단위 수업시간과 업무 시간에 최선을 다하면 되는 것을 말이다. 일주일에 한 번만 관리자에게 사정하고 조퇴하면 되는데 그걸 못한 엄마였다. 상담이 아이의 변화를 위한 것이었건만 그 과정에 엄마는 더 우울하고 지쳐가고 있었다.


그렇게 1학년 말 상담을 관둔 아들은 2학년이 되었다. 2학년 1학기엔 부반장도 되고 친한 친구도 생겨서 괜찮아지는 줄 알았다. 하지만 아들의 산만함은 줄어들지 않았고 이상한 행동도 조금씩 반복되었던 모양이었다. 갓 결혼한 새댁 선생님이었던 담임은 나를 불러 상담을 요청했다. 아이들에게 교우관계 조사를 했는데 싫어하는 아이를 적으라는 문항에 우리 아들 이름이 많이 등장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자기가 이런 조사를 실시한 게 잘못이었다고 약간은 미안해했다. 아이에게 낙인을 찍은 것 같다고.


미안해할 일을 인간은 왜 하는 것일까? 아니 미안할 일은 살면서 할 수밖에 없겠지만, 미안하다고 하면서 미안 끝, 나는 이 일에서 빠질래 하는 태도는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마치 첫사랑이 나한테 더 이상은 안 되겠다 미안하다 그만하자 했던 것처럼. 나는 이제 이 일에서 빠질 테니 너 알아서 하라는 듯한 느낌밖에 안 든다.

미안할 거면 그 결과지를 굳이 보여줄 필요는 뭐가 있었던 것일까? 차라리 미안해하지 말고 아들을 위해 무엇을 해 줄 수 있을지 머리를 맞대고 논의를 하는 자리였다면 선생님에게 감사했을지도 모른다. 그냥 당신 아들이 이렇다고 통보하는 자리. 아무런 도움도 받을 수 없는 자리였다.

아들은 그렇게 2학년을 마치고 3학년이 되었다. 3학년 선생님은 다행히 품이 넓으신 분이었다. 아들의 상태와 상황을 이해하시고 엄마와 잦은 상담을 해주시고 아들을 보듬어주시려고 노력하셨다.


그런데 내가 여러 가지 실수를 하기 시작했다. 아이가 괜찮아지는 줄 알았던 엄마는 아이에게 기대를 걸기 시작했다.


공부를 그럭저럭 잘하는 학생들이 교대를 가니 학습지도야 큰 문제가 될 것은 없습니다. 학습지도에서 큰 실수는 없을 것이고 실수를 하더라도 추후 지도가 가능합니다. 하지만 아이의 생활지도나 인성지도에 있어 실수는 회복이 힘든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나약한 인간일 뿐인 교사들이 다양한 상황에서 수많은 아이들을 다루며 어찌 실수가 없을 수가 있을까요? 우리 아들의 1,2학년 담임선생님의 실수. 선생의 역할에 대해 생각해 보는 기회를 주셔서 감사해야 될 일입니다. 앞으로 저에게 올 아이들에게 어떻게 해야 될지 많이 생각해 보는 기회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저도 실수가 있었을 것이기에 그분들 덕에 지난 교직생활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으니 동료 선생님의 말씀처럼 그 분들은 저에게 보살이 되었던 셈입니다.

인간은 어떤 상황에서도 배움을 얻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할 일입니다.


사진: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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