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지 못하고 살아진다 2

학교 부적응아 아들

by 나무 향기

아들은 아빠를 좋아했었다. 일주일에 한두 번 보는 아빠이니 당연한 일이지만 아빠가 오면 맨발로 뛰쳐나가던 아이였다. 이사를 이야기하자 두 가지 반응이었다. 친구들과 헤어지는 것이 속상한 모양이었다. 초등학교 1학년 입학을 앞두고 집 앞 초등학교에 당연히 유치원 친구들과 갈 거라고 생각했는데 인생의 큰 전환점에 부딪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아빠랑 사는 것에 대한 기대도 있었다. 아빠랑 사는 것보다 이사에 대한 두려움이 더 커서 문제였다. 그런 아이를 설득했다. 아빠랑 같이 살게 되면 아빠를 매일 보게 되고 엄마도 덜 힘들고 새로운 학교에서 친구를 사귀면 된다고.

멋도 모르는 아이는 불안함과 함께 부모 말이 옳다고 여겼을 것이다. 이사를 왔다. 새로운 학교에 입학하던 날 눈을 어디에 둬야 될지 모르며 불안해하는 아들 모습을 보기가 너무 안쓰러웠다. 할머니 선생님이 담임이 되었다. 안심이 되었다. 아들을 따뜻하게 품어줄 것을 기대했다.

할머니 담임선생님. 중간에 학교를 관두셨다 복직한 케이스라 경력은 나와 같은 19년 차였다. 그때까지 할머니 선생님을 싫어하는 풍토를 이해하지 못하던 나였다. 경험과 연륜에서 아이들을 더 잘 케어할 수 있는 사람이 나이 든 선생님인데 왜 무시를 하는 것인지 의문스러워했다.

교직생활을 돌아보면 젊은 시절 열정에 불타 인성지도든 학습지도든 이것저것 시도하는 나였지만 아이들 마음을 좀 더 넓은 품으로 이해하지 못했고, 아들을 키우면서 엄마의 마음으로 아이들을 좀 더 여유롭게 바로 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당연히 퇴직을 앞둔 할머니 선생님이 아들을 잘 케어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아이들을 보듬고 폭넓게 이해하는 것은 할머니선생님과 젊은 선생의 문제가 아니었다. 모든 건 한 사람의 인격과 소양의 문제였을 뿐이다. 나처럼 나이 들면서 변하는 케이스도 있겠지만 사람이 변한다는 게 쉽지는 않은 일이다. 사실 나도 아들과의 그 수많은 갈등이 없었더라면 폭 좁은 열정만 불타는 선생이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들의 담임 선생님은 이사를 와서 적응이 힘들어 사소한 행동으로 당신을 힘들게 하는 아들을 참지 못하셨다. 쉬는 시간에 장난으로 화장실 불을 끄기도 하고, 의자 밑에 숨기도 하고, 공부가 지루해서 뒤를 돌아보고 친구에게 말을 걸고, 때론 창문밖을 바라보며 한 눈을 파는 아들을 하나도 이해할 마음이 없으신 분이었다.

아들이 뒤를 돌아보는 모습을 찍어 같은 학교 동료교사였던 나에게 들고 오기까지 했다.

아들이 단원평가 시험을 치는데 한 눈을 팔자 시험지를 들어서 찢으며 너는 빵점이야 하고 쓰레기통에 넣어버린 선생님이었다. 1학년 짜리 꼬맹이에게 그 시험이 무슨 큰 의미라고 애 보는 앞에서 찢어버릴 수가 있단 말이가? 80년대나 들어볼 이야기지, 정말 너무하다 싶은 선생님의 말과 행동. 선생이란 이유로 참을 수밖에 없었다. 같은 선생이 더 무섭다는 소리도 듣기 싫었고 선생이 애를 저것밖에 못 키웠나 싶은 자격지심에서였는지도 모른다.

품이 넓지 못한 선생의 전형이었다. 아마 내가 학부모이기 전에 교사였기에 더 당당하게 그랬을지도 모른다. 이럴 땐 교사인 현실이 너무나도 싫다. 교사라서 어느 누구에게도 함부로 대할 수 없다는 것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세상엔 의외로 많다. 주위 가까운 가족부터 아무런 관계없는 사람까지. 살면서 교사가 어찌 그럴 수 있어? 이런 말로 한 인간인 나에게 어떤 일탈도 허용하지 않고 어떤 변명도 불허하지 않으며 꼼짝도 못 할 수갑을 채우는 사람들이 꽤 많다.

아들을 이해할 마음이 하나도 없는 선생님은 나마저도 외면했다. 우리 아들이 힘들게 하니 나도 보기 싫었던 것이다.


거기다 아들의 짝꿍도 만만찮은 아이였다. 지금 고 1이 된 아들의 짝꿍 이야기를 여러 경로를 통해서 듣는다. 아무래도 학구 내 아이들을 가르치다 보니 소문을 들을 경로는 많다. 학교 복도에 침을 뱉고 아이들을 괴롭히고 문제를 일으키는 정도가 장난이 아니라고 들었다. 아들이 이사 와서 처음으로 만난 집단에서 가장 가까워야 할 짝꿍이 아들과는 다른 방향으로 용감한 아이였다. 점심시간에 아이들에게 돌을 던지고 여학생들에게 ㅅㅂ욕을 하는 아이였다. 사회성이 부족한 아이가 유일하게 기대던 짝꿍이 그런 아이였으니 아이는 멋도 모르고 같이 쫓아다니며 함께 혼나곤 했다.


첫 사회생활을 그렇게 힘겹게 시작한 아들은 완전 부적응아였고 정신과에 처음으로 방문하게 된다.


아들의 담임이 다른 선생님이었다면 하는 생각을 종종 합니다. 결국 되돌릴 수 없는 일인데요. 그래서 저라도 아이들한테 좋은 선생님이 되고자 부단히 노력 중입니다. 우리 아들처럼 미성숙한 아이들이 미성숙해서 하는 행동이 꼬투리 잡히며 상처받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제가 조금이라도 쌓은 덕이 아들에게 다 갔으면 하고 희망해 봅니다.


사진: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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