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밝은 목소리를 낼게

안아주기 스물아홉 번째 날

by 나무 향기
아들이 무감정으로 말해도 엄마는 밝은 목소리로 말하기로 했습니다.

어제는 많이 피곤했습니다. 다시 다이어트를 해보겠다고 전날 걷기도 시작했고, 1개의 공문 처리를 하느라 2시간 반을 소요했더니 진이 빠질 대로 빠진 하루였습니다. 안 걸어서인지 살도 다시 찌고 족저근막염이 도져서 발바닥도 쓰리고 아픕니다. 몸의 균형도 삶의 균형도 제자리를 못 찾고 깨져가고 있습니다.

퇴근을 했더니 식탁 위는 엉망입니다. 아들이 먹은 자리를 잘 치울 수 있도록 가르치지 못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바쁘다는 게 내 가정의 아이 교육을 시키지 않고 방임하는 것에 대한 핑계가 될 순 없습니다.


큰아들이 점심으로 짬뽕과 탕수육을 요구해서 주문해줬습니다. 큰아들은 작은 아들이 집에 없다고 했는데 음식이 배달되고 난 뒤 안방서 동생이 나오자 좀 당황했었나 봅니다. 전화가 와서 말합니다.

"엄마, 00이 집에 있었어."

"그럼, 짬뽕 좀 나눠먹고 탕수육 같이 먹어."

"아. 아~."

무슨 의미인지 모를 소리와 한숨만 전화기 너머로 들립니다. 제 편할 대로 해석합니다. 자기 것만 시켰는데 동생이 방에서 나오니 미안해서 내는 한숨일 거라고요. 아마 반대일 수도 있겠지요. 동생과 같이 먹기 싫은데 어떡해야 되나 고민에서 나오는 한숨일 수도요. 그냥 전자로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큰아들의 마음 한구석에 분명 따뜻함이 있을 것이고 자기만 먹게 될 식사가 미안할 것이라고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동생 바꿔봐."

"00아, 형아가 너 없는 줄 알았나 봐. 그냥 같이 나눠 먹어. 싫으면 탕수육만이라도 먹어."

"싫어."

작은 아들은 화가 잔뜩 난 목소리로 퉁명하고 단호하게 말합니다. 한 사람만 있는 줄 오해한 건 엄마가 아닌데 퉁명스럽게 말하는 13살 꼬맹이한테 섭섭함이 이네요. 고개를 흔들며 마음을 바꿔먹습니다. 엄마가 네가 놀러 갔는지 확인 안 한 게 불찰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반 아이들 4,5교시 수업을 끝내고 작은 아들에게 다시 전화를 했습니다. 아들은 국밥이 먹고 싶다고 해서 주문을 해줬습니다.

그렇게 주문을 두 번 하고 집에 왔더니 식탁은 온통 플라스틱 그릇들 투성이입니다. 집이 엉망인 것도 답답하지만 오늘도 이렇게 플라스틱을 소비하는구나, 환경오염에 일조하는구나 싶어 배달 2번에 쌓인 플라스틱들에 죄스러운 마음이 듭니다.

늦은 저녁 작은 아들이 폰 시간 30분을 요구합니다. 아빠는 작은 아들에게 식탁 위를 치우라고 요구합니다. 좋은 생각입니다. 한 번도 시도하지 못했던 일이네요. 식탁 위를 치우는 건 당연히 제 몫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아들은 군소리 없이 식탁을 치웁니다. 저는 플라스틱 처리 방법 등 이런저런 정리법을 일러줍니다. 아들은 그렇게 폰 시간 30분을 얻었습니다. 폰 시간을 더 요구할 때마다 속이 상했는데, 앞으로 같은 방법을 쓰면 일석이조가 되겠네요. 물론 큰 아들에게는 이 방법이 통할 리가 없습니다. 아이들 특성에 맞는 방법을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들은 계란, 간장, 깨소금을 넣어 버무린 밥을 맛있게 먹습니다. 고기, 김치, 김이 전부인 식단에도 뚝딱 맛있게 식사를 했습니다.

"맛있었니?"

"그-으-래."

목소리에 필터를 하나 씌우고 답하는 아들입니다. 저 목소리가 언제 달라질까요.

"그래, 맛있게 잘 먹어줘서 고마워."

밝게 말했습니다. 아들은 무감정으로 대응하지만요. 걱정이 묻은 말투로 말하면 아들이 엄마 걱정과 염려를 알아서 달라질 거라 착각하고 있었습니다. 20살도 안된 아들이 무엇을 알까요. 엄마 감정까지 헤아리기엔 자기 삶도 힘들 나이입니다. 아들이 어떻게 하든 밝은 목소리로 말하겠다고 다짐합니다.


출근을 앞두고 방에 들어갔습니다.

힐끗 쳐다봅니다.

"00야, 안아보자."

아들은 일어납니다.

"오늘 하루도 잘 보내. 오늘은 라면 좀 끓여 먹고."

미안하지만 어쩔 수가 없네요. 먹는 건 부실하지만 오늘 하루 아들이 편안하게 보내길 빌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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