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이 시작되고 설거지를 아들이 합니다

안아주기 서른한 번째 날

by 나무 향기
아들이 원한다면 조건도 들어주고 적절하게 협상하기로 했습니다.

용돈 협상을 열심히 했는데 어느 순간 아들이 포기를 했습니다. 호주에서 배달되어 온 벌금 고지서 7장을 보는 것만큼 생경하고 이해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어떻게 해서든 본인이 원하는 걸 얻어내던 아들이었습니다. 소리를 지르거나 험한 말을 하거나 엄마 약점을 건드리는 말들로 엄마를 포기하게 만들던 아들이었습니다. 그런 아들이 용돈 협상을 포기했습니다. 그리고 집안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발단은 아빠였습니다.

방학을 앞두고 교실 정리가 한참인데 카톡이 왔습니다.

설거지 대화편집2.jpg

현재 최저임금은 시간당 9,620원입니다. 설거지하는데 한 시간 걸렸다고 합니다. 시급만큼 받아야겠네요.효율성과 경제성 합리성을 따지는 엄마의 버릇이 여기서 또 발동합니다. 아들이 설거지를 한다는데 최저 시급 운운하고 있으니까요. 뭐가 중요한지 생각하고 살자고 다시 한번 다짐합니다.

방학식이 있던 날 남편은 휴가를 냈습니다. 다음날 부산 여행도 갈 겸 연차를 이틀 쓴 거지요. 점심을 먹고 설거지가 귀찮았던지 아들에게 제안했다고 합니다. 용돈이 부족한 것을 아니까 돈을 그냥 주는 것보다, 아들의 생떼로 돈을 갈취당하듯 주는 것보다, 노동에 대한 대가로 받게 하고 싶었던 거지요.

퇴근하고 오니 생각보다 그릇 정리도 잘 되어 있었습니다. 남편이 정리는 도와줬다고 합니다. 여러 번 깨끗하게 헹구는 모습도 확인했다고 합니다.


여행을 갔다 온 후 현질이 하고 싶었던 아들은 먼저 제안을 했습니다.

"이번 주 집안일 내가 다할 테니까 현질 시켜줘."

현질만큼 부질없는 돈쓰기도 없기에 망설여졌지만, 그 돈 있으면 좋은데 쓴다는 말이 입에서 나오려는 걸 참았습니다. 말도 없는 아들이 오랜만에 한 제안이니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방학이 시작되고 저는 설거지를 안 하고 있습니다.

반신반의했습니다. 아들은 약속을 안 지키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또 돈만 주고 마는 결과가 벌어질 거라고 그 때 어떻게 대처할지 고민하며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했습니다. 예상이 빗나가서 너무 다행입니다. 아들은 오늘까지도 열심히 설거지도 하고 청소기를 밀고 바닥도 닦고 있습니다. 그릇이 미끄러지면 화도 내기도 하지만 끝까지 하고 있습니다. 집안일을 하는 아들의 뒷모습이 신기합니다. 공부를 해야 될 시기에 설거지나 하고 있는 게 우습다고 느껴지실 분도 있을 수 있습니다. 저도 한구석엔 그런 마음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게임만 하지 않고 뭐라도 하기 시작한 아들이 대견합니다. 돈이 필요해서 하는 일일 지라도요.

아들설거지3.jpg 아들이 한 설거지. 며칠 하더니 그릇도 가지런히 놓을 줄 아네요.



7월 30일 안아주기 후 4일 만에 안아보자고 말했습니다.

"00야, 엄마가 안아보자. 청소랑 설거지 잘했어. 엄마가 덕분에 편하네."

아들은 팔을 감아 저를 안습니다.

오늘은 아빠가 20일간의 출장을 떠나는 날입니다. 아빠는 아들과 주먹인사를 하고 잘 지내기를 당부하고 저랑 현관 밖으로 나왔습니다.

띠리리 문 열리는 소리가 납니다. 뜻밖의 상황이라 옆집 문소리인 줄 알았습니다.

아들이 신발도 신지 않고 아빠를 보러 나왔습니다. 제가 주먹인사할 때부터 부추겼는데 둘 다 끝까지 안지 않았는데 다시 한번 시도해 봅니다.

"두 남자, 서로 좀 안아봐."

아빠와 아들은 서로를 안았습니다. 두 남자는 누구랄 것도 없이 서로 안는 게 어색한가 봅니다. 당연할 겁니다. 가족이지만 서로가 낯선 상대가 되어 버린 지금, 마음의 문을 열고 상대를 온전히 받아들이는 게 쉽지는 않을 겁니다. 문이 조금 열렸나 봅니다. 아빠에게 한동안 등 돌리고 대화도 안 하던 아들의 마음이 조금은 풀렸나 봅니다. 두 남자를 바라보는 저의 눈은 웃고 있습니다.


이전 21화다음에도 여행 같이 가자. 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