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 같이 가자, 그러든지.

안아주기 서른두 번째 날

by 나무 향기
두려움이 많은 아들에게 새로운 시도를 해 주고 경험의 폭을 넓혀 주는 것은 엄마 몫입니다.

며칠간 집 밖으로 나가지를 않았습니다. 집순이 본능 발동입니다. 엄마가 좀 더 적극적이었으면 놀고 싶어 하던 아이를 적극적으로 키웠을 텐데, 주말 부부에 혼자 모든 걸 감당하던 엄마는 에너지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남자아이의 남아도는 에너지를 발산시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지 못했죠. 저는 딸 셋에 아들 하나인 집에서 성장했거든요. 남자아이들 특성을 잘 몰랐습니다. 하나 있는 남동생도 정적이고 공부 잘하는 모범생이었고 문제 일으키지 않는 아이였으니 남자 특성을 알리가 없습니다. 에너지 없던 엄마가 아들을 위해 기껏 하던 일이 책을 읽어주던 일이었습니다. 아들은 어릴 때 책을 좋아했습니다. 엄마와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이 그것뿐이었겠지요.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에너지를 발산시킬 기회를 주지 못한 덩치만 큰 에너지 없는 엄마. 사람들은 제가 아프다고 하면 말합니다. 튼튼하게 생겨서 왜 그렇냐고요. 키 크고 골격 좋은 사람 아프지 말란 법 없는대요. 세상 곳곳에 편견이 한가득입니다. 어쨌든 겉보기와 다르게 정적인 엄마는 아이를 방구석에서 키웠습니다. 아들 키우시는 분들은 저와 같은 누를 범하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오늘은 집순이를 탈출하고 햇볕을 좀 봐야겠단 생각에 치킨 시켜달란 아들의 말이 생각났습니다.

"00야. 치킨 나가서 사 먹고 오자. 에어컨 시원한 데서 피서도 좀 하고. 배달시키면 배달비도 드는데 나가서 먹고 엄마 맥주도 한 잔 마시고 하면 좋겠어. 동생 휴대폰도 좀 보러 가고."

처음에 투덜거리던 아들은 제안을 받아들입니다.

치킨 메뉴 결정하는데 힘이 듭니다. 큰아들은 늘 먹던 걸 먹으려고 하고 작은 아들은 새로운 걸 시도하고 싶어 합니다.

매장 첫 손님이라 주문이 지체되는 것이 사장님한테 괜히 죄송한 엄마는 아들을 채근합니다.

"000 먹어보자."

새로운 시도를 싫어하는 엄마인 건 큰아들과 같지만 큰아들은 그러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담아 불안하지만 동생의 말에 힘을 실어줍니다.

큰아들은 매번 먹던 메뉴를 포기하고 일단은 동생에게 동의하고 새 메뉴를 선택합니다.

사이드 메뉴로 감자 치즈볼 등을 먼저 먹었더니 배도 부르고 닭 맛이 느끼하게 여겨집니다.

큰아들은 또 후회의 말을 합니다.

"아 생각해 보니 00 이가 선택한 걸 정한 거잖아. 내가 왜 그래야 돼."

"언제나 네가 좋아하는 것만 먹을 수는 없잖아. 살면서 똑같은 것보다 새로운 걸 시도하는 것도 해 볼 필요가 있지."

또 한 고비 넘겨야 됩니다. 아들이 엄마 말을 얼마만큼 받아들일지 모르겠지만 일단 그 뒤로 큰 불만은 없으니 받아들였기를 바라봅니다.


집에 와서 설거지를 하는 아들입니다.

"와, 일부러 행주 다 남겨둔 거지?"

혼자 까칠한 말 끝에 욕도 하며 엄마 들으란 듯이 소리를 지릅니다.

"00야, 욕은 하지 말자."

뒷정리며 뭐가 제대로 안 되는 걸 알지만, 급한 성격의 엄마는 꾹 참고 있습니다. 아들이 한 약속을 지킬 수 있도록 해주는 데는 엄마의 인내도 필요합니다. 청소도 제대로 되지 않고 있지만 그것도 꾹 참고 견딥니다. 제가 나서서 하는 순간 아들은 또 스르륵 약속의 끈을 놓아버릴 테니까요.

제가 그냥 듣고 흘렸더니 아들은 어느 순간 진정합니다. 다 끝냈다고 저한테 말하러도 오네요. 아마 욕한 순간이 미안했을 겁니다.



"아우, 잘했네. 고생했다. 엄마가 덕분에 편하네."

아들을 안아줬습니다. 엄마의 칭찬에 반응은 없지만 속으로 좋을 겁니다.

"00야, 내일은 엄마랑 도서관에 가 볼까? 아침 먹고 도서관 가서 네가 좋아하는 역사책도 좀 빌리면 좋은데."

"아. 도서관은 무슨."

"엄마가 너랑 가고 싶어서 그러지. 같이 가자."

"그러든지."

잔뜩 찌푸린 표정, 힘 잔뜩 들어간 말. 하지만 아들은 긍정의 표현을 합니다. 그러든지는 아들이 하는 긍정표현입니다.

아들을 한 번 더 안았습니다.

"와, 엄마 기분 좋다. 도서관 같이 간다고 해서 고마워."

아들이 츤데레였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앞으로 아들을 츤데레라고 생각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야호 신납니다. 도서관에 간다는 약속을 얻어냈습니다. 어릴 때 이런 소소한 기쁨을 누리지 못한 게 아쉽습니다. 인생이 후회로 범벅되지 않도록 앞으로는 아이를 내 인생으로 끌어들이는 방법을 더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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