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마음의 문을 조금 열었습니다. 불과 두 달 전만 해도 고성이 오고 가는 집이었습니다. 아들은 두려움이 많고 겁쟁이입니다. 그걸 알기에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해서 엄마보다 더 큰 소리를 지르고 더 크게 반항합니다. 엄마의 말이 너무나 논리적이고 틀린 말이 없을 땐 귀를 틀어막고 소리를 질러버립니다. 엄마 말이 맞는데 자기도 뭔가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지요.
그런 아들이 밉기만 했습니다. 감히 부모 말을 듣지 않고 거역한다고 원망과 분노만 키웠습니다. 엄마의 원망과 분노를 아들은 압니다. 너무나도 잘 알기에 사랑받고 싶은데 사랑받지 못하기에 더 큰 원망과 분노 화를 저에게 쏟아부었다는 걸 이제야 알았습니다.
세상 모든 만물은 사랑으로 성장합니다. 베란다에 내어둔 식물도 햇빛의 사랑이 없다면 물을 주는 주인의 사랑이 없다면 생명을 다해버립니다. 산에 사는 동물들도 먹을 것을 내어주는 자연의 희생이 없다면 굶어 죽고 살아남지 못합니다.
아이에게 사랑을 준다는 것이 무엇인지 잘 알지 못했습니다. 아이가 그저 커서 좋은 직업을 가지고 제 앞가림을 잘해 가고 독립된 인간으로 살게 된다면 다인줄 알았습니다. 독립된 인간이 육아의 최종 목표는 맞습니다. 그런데 그런 독립을 위한 기반 마련을 위해 아이가 자존감을 높이고 스스로 본인의 삶을 헤쳐나가게 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부모의 끊임없는 지지와 사랑입니다. 믿어주는 것과 격려해 주는 것입니다.
교사인 저는 집에서도 교사 노릇을 하려고 했습니다. 27년간 봐온 모범생 아이들이 얼마나 부모의 지지와 사랑 받고 그런 모습을 갖추게 되었는지 이면의 노력은 알지 못한 채 그저 그냥 그렇게 모범생이 된 줄 알았습니다.
어릴 때는 맘껏 놀고 세상의 즐거움을 알게 해 주고 10살까지 세상 사는 규칙과 도덕을 알려주고 그 과정에서 따뜻한 말과 시선을 아이에게 줘야 된다는 것을 잘 몰랐습니다.
어리석게도 저 같은 부모가 대한민국 어딘가에 또 있을 거라고 생각됩니다.
저와 같은 잘못을 범하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아이는 물질로 풍요로워지는 존재는 아닙니다. 엄마의 믿음과 사랑의 시선이 필요합니다.
뒤늦게 아들을 안아주면서 아들의 심장과 엄마의 심장이 연결되며 서로의 감정이 통하는 걸 느꼈습니다. 아들은 표현하지 않지만 엄마가 자기를 사랑한다는 것을 안아주기 하나를 통해서 조금씩 느낄 것입니다.
잦은 스킨십과 따뜻하고 부드러운 말, 어떤 말도 수용해 주고 적절하게 협상하기, 아이의 행동에 깔린 원인을 잘 파악하기는 엄마의 몫입니다.
세상 모든 엄마들이 욕심에 눈이 멀어 상위 1퍼센트의 자식으로 내 아이를 만들겠다는 생각에 사랑이라는 큰 끈을 놓치지 않았으면 하고 바라봅니다.
반성할 것이 많은 엄마의 안아주기는 계속될 것입니다. 아이의 변화가 언제쯤 크게 나타날지 몰라도 계속 안아주며 또 다른 방법을 찾아나가며 그렇게 아들을 사랑하는 엄마가 되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