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하다는 말

by 나무 향기

어릴 때부터 착하다는 말을 많이 들으며 자랐다. 정말 착해서 착하다는 말을 들은 것도 있을 테지만, 깊이 생각해 보면 말이 많지 않고 어떤 일이든 그냥 씩 웃고 말았으며, 친구들과 큰 갈등이나 다툼이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자기주장도 없이 그저 친구들 하자는 대로 이끌려 가는 아이였으니 착하다는 말을 듣는 게 당연했다.


성적표의 행동특성에도 착하다는 말이 단골로 등장했다. 착하다는 말의 굴레에 갇혀 자기주장을 못하고 좋은 게 좋은 것이라고 점점 더 순응만 하는 어른으로 성장했다. 그러다 보니 기억 속에 사춘기라는 것이 전혀 없었다. 그저 공부만 하는 말썽을 안 부리는 착한 사춘기를 보냈다.


사춘기는 겪지 않는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다. 겪지 않은 사춘기는 어른을 어른아이로 만들어 버린다.

어느 순간 착하다는 말이 족쇄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순응하는 어른이 되었지만 생각이 자라지 않은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내적 갈등은 무수했고, 불합리한 말 앞에서는 속으로 부들부들 떨 수밖에 없었다. 착한 사람으로 다른 이에게 각인되어 있으니까 주장을 펼치지 못하고 자기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다.


착하다는 말.
언행이나 마음씨가 곱고 바르며 상냥하다. 사람이나 그 마음이 곱고 어질다.


나는 착한 사람이 맞기도 하다. 하지만 착하다는 족쇄 때문에 자기주장을 펼치치 못하는 사람이 되었다. 착하다는 말이 자기 의견을 개진하지 말라는 말이 아니건만 그저 모든 일에 입 다물고 살고 좋다고 웃어주는 것만이 착한 것이라고 잘못 인식한 탓이다.


착하다는 것과 자신의 의견을 말한다는 건 별개의 문제다.

착하다는 말의 사전적 의미처럼 언행이 곱고 바르고 상냥하면 된다. 자기 의견 개진은 곱고 상냥한 말로도 가능하다. 어질다고 해서 의견이 없는 사람이 되어야 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평생 착하다의 의미를 잘못 이해하고 착하다 족쇄에 묶여 살던 내가 고향을 떠나와서는 내 의견을 말하기 시작했다. 학교에서부터 시작되었다. 하지만 평생 의견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고 살아온 삶이어서 의견 개진이 다른 사람과의 싸움판이 되어버리는 경우를 2, 3번 겪었다. 의사 표현은 꼭 투사가 되어야만 가능한 것이 아니다. 절제된 감정으로 자신의 의견을 설득 가능한 말로 충분히 표현할 수 있다. 화나 분노의 감정을 섞지 않고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착하다는 말이 자신의 의견을 말하지 말라는 말로 잘못 인식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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