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년에 내가 말이야, 나 때는 말이야, 내가 소싯적에는, 30년 전 고등학교 다닐 때는...
써 놓고도 놀란다. 고등학교 졸업한 게 30년 전이라니...
저런 말을 자연스럽게 하는 나이가 되었다는 걸 거울 앞에 서서 얼굴을 들여다보고 있지 않으면, 흰머리를 헤아리고 있지 않으면, 망각해 버리곤 한다. 염색하고 돌아서면 흰머리는 다시 쑥쑥 자라고, 그 속도만큼 세월은 생각할 틈도 주지 않고 훅훅 지나가며 내 나이를 낚아채고 있는데도 말이다. 100세 시대가 왔고, 찐어른들 앞에선 어른이라 하기도 어중간한 나이지만, 주변에 나보다 나이 든 사람보다 젊은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으니 조만간 찐어른의 대열에 합류할 것이다.
어른이 되고 싶지 않은 걸까?
아직도 입버릇처럼 말하고 글로 쓴다. 어른들이 돈으로 액땜하는 거라고 했으니까, 어른들이 제 밥 먹을 숟가락은 타고난다고 했으니까, 어른들이 자식 어릴 때가 젤 좋을 때라고 했으니까 등 등. 위의 문장들을 글로 쓰고 나서 지울까 고민을 하곤 한다. 난 어른이 아닌가? 난 그렇다고 젊지도 않은데. 잠시 고민에 빠지지만 그대로 둔다.
나보다 연세 드신 어른들이 더 많고, 그 어르신들의 말씀을 뜻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나도 이제 정도껏 어른의 나이에 들어섰음에도 인정이 싫은 건지 '어른들이'를 입에 달고 살고 있다. 철들지 않은 어른은 어른이 아니라는 생각에 '어른이 어른답지 못하다' 소리를 들을까 봐 두려운 마음인가 싶기도 하다. 마음은 20대와 30대에 머물러 있는데 신체 나이가 늙어가니 어른으로 불려야 된다는 것도 영 어색하다.
딴에 어른이 되었다고 왕년에는 어쩌고 저쩌고 하는 말이나, 내가 살아봐서 아는데, 나 때는 말이야라는 말처럼 무의미한 말이 또 있을까? 지나간 과거가 아무리 좋았던들 누가 알 것이며 그 과거가 내 현재에 무슨 보탬이 될 것인가. 어른이란 단어가 지나간 시간을 잘 살아왔다는 의미도 아닐 뿐만 아니라, 지금 현명한 사람이 되었다는 의미도 아닌데 말이다. 단지 어른이라는 단어 속에서 현재의 삶을 바라보며 지나간 시간에 대해 후회하는 마음만 한가득 채우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른이 된다는 건 세상 모든 일을 좀 더 유연하게 바라볼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는 것, 뭔가를 할 때 조급함이 덜하다는 것, 넉넉하고 여유로운 시선으로 현상들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이다. 단지 세월의 무게만으로 내가 어른이 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난 어른이 맞을까?
과밀학교인 우리 학교는 여유 교실이 없어요. 뭘, 화 방과 후 수업이 있습니다. 수업 준비도 책 읽기도 기타 다른 업무 어느 것도 집중이 안되네요. 동기 교실에 잠시 놀러 갔다가, 교실 와서 이 일 저 일 방황하다 브런치를 열었는데 이것도 집중은 안됩니다. ㅠㅠ
무슨 글을 썼는지 집중도 안되고 눈에 들어오지도 않아요. 그냥 웅크리고 책 한 번 봤다 모니터 한 번 봤다, 교과서 한 번 펼쳤다, 차 한 잔 마셨다, 방황하는 눈과 손 앞에서 귀에 들리는 건 방과 후 선생님의 수업 내용뿐이네요.
거대 과밀학교의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진정 없는 것인지... 학교부지는 없는 상태에서 아파트만 쑥쑥 세워나가는 도시 정책은 변화할 수 없는 건지... 아마 위의 글도 횡설수설일 겁니다.
방과 후 선생님의 전자책, 전자칠판, 전자노트, 분필이 어쩌구 저쩌구 소리만 귀에 윙윙 맴도네요~~~^^
에구구. 아까운 내 시간. 돌려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