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외부 놀이 강사 선생님이 수업을 오는 날이었는데 착오가 생겨서 오시지 않았다. 첫 수업에서 아무런 도구도 없이 입만으로 이런저런 놀이를 시키는데 너무 재미있어하고 80분 꼬박을 지치지도 않는 아이들을 보며, 이번 수업도 기대하고 있었건만 허탕이었다. 운동할 강당도 운동장도 모자라는 우리 학교라 비록 놀이 선생님은 안 계시지만 모처럼 기회를 얻은 강당 이용 시간을 놓칠 수는 없었다. 달리기를 시키고 얼음 땡을 하고 피구를 하며 보냈다. 아이들은 신났고 지켜보는 선생은 소음에 머리가 지끈 거린다.
평소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의사 전달이 하나도 안 되는 아이도 놀이나 체육활동 시간이면 입에 스피커라도 단 듯이 큰 소리를 질러댄다. 스피커는 아주 고성능이다. 국어 시간에 고성능 스피커를 장착하면 좋으련만. 절대 안 된다. 30명이 신나서 질러대는 소리는 아이들에겐 음악이요 선생에겐 아침잠을 울려대는 알람 소리만큼이나 듣기 싫은 소리이다. 하지만 어찌하겠는가. 아이들이 신나 하니 참고 견디는 수밖에.
10분여를 남겨두고 교실에 와서 가을 풍경 색칠하던 것을 마무리 짓게 했더니 2시간 힘을 뺀 아이들이 웬일로 조용하다. 이 순간 죽어서 갈지 안 갈지도 모르는 천국은 구경도 안 하고 싶고, 교실 공간이 나에겐 천국이다. 아이들로 꽉 찬 교실 공간이 정적과 함께 색칠하는 소리만 사락사락 들리고 있다.
천국의 시간은 10분이 끝이다. 점심 먹을 준비하라는 말과 동시에 화장실 가는 아이들, 친구와 이야기를 하는 아이들, 하지 말라고 매일 이야기해도 잡기 놀이를 하는 아이들, 더럽다고 눕지 말라고 매일 말해도 바닥에 드러눕는 아이들. 복도는 통행 공간이 아니니 놀지 말라고 해도 눈을 피해 복도에서 노는 아이들.
요즘 아이들은 정말 선생님이 절대 겁나는 존재가 아니다. 내 나이가 몇 갠데. 우리 엄마는 내 나이에 손주도 얻었건만, 이 천진하고 겁 없는 아이들 눈엔 그냥 사랑하는 선생님이지 무섭거나 두려운 존재가 아니다. 어찌 보면 다행이지만 무질서 속에서 자랄 아이들을 생각하면 다행이란 말이 맞는 건지도 의문이다.
급식실로 이동한다. 또 소음이 시작되었다. 급식실로 가는 동안도 깡충 걸음에 그 짧은 거리를 100미터 달리기 수준으로 왔다 갔다 하는 아이들. 자기 자리를 이탈해 저 뒤 친구에게 가서 말을 거는 아이들. 비가 오면 비를 맞으려고 더 뛰쳐나가는 아이들. 어찌하랴.
"줄 바로 서자. 안 그러면 여기서 멈춰서 안 갈 거예요."
1분을 기다려 본다. 아이들은 조용해진다. 그리고 출발과 동시에 발과 입이 동시에 움직인다. 아이들의 뇌 회로엔 발과 입이 동시에 움직이라고 자동 수식어가 입력되어 있는 모양이다. 대략 4번 정도를 멈추어 보지만 아이들 뇌에 입력된 회로를 선생은 바꿀 수가 없다.
급식을 끊길 잘했지. 너무나 맛있는 급식이지만 소음 속에서 먹고 있으면 입이 느끼는 맛과 뇌가 느끼는 맛은 별개다. 음식을 음미하며 먹는 것은 불가능. 그냥 생존을 위해 먹는 상황이다. 가끔 따기 힘든 음료수라도 나오면 여기저기 따 달라고 오는 아이들. 밥 한 숟가락 뜨다가 음료수 병 따 주고 한 숟가락 뜨다가 또 뚜껑 따고. 아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두 시간 수업이 남았다. 가을 열매 바구니를 만들고 도토리 팽이를 만들었다. 2학년 아이들의 손재주는 천차만별이다. 설명을 하고 15분이면 뚝딱하는 아이들, 물론 걔 중엔 대충 빨리 하는 아이들도 있다. 40분이 걸려야 완성되는 아이들. 이렇게 큰 격차 속에서 가을 열매 바구니를 먼저 끝낸 아이들은 도토리 팽이를 만들고 놀이를 시작했다. 셋이었던 아이들이 다섯이 되고 열이 되고 드디어 20명까지 되었다. 아... 교실은 이미 소음으로 포화상태다. 소리에 무게나 부피가 있다면 문을 여는 순간 화염이 폭발하듯 소리가 문을 뚫고 나가 폭발하리라. 그리고 소화전의 벨이 울려댈지도 모르겠다.
30명 중 바구니를 완성하지 못한 아이들이 넷이 남았다. 그중 남학생 한 명이 나에게로 온다.
"선생님. 너무 시끄러워요. 민성(가명) 이도 시끄러워서 못하겠대요."
"어쩔 수 없지. 그냥 참아."
말 그대로 어쩔 수 없다. 그리고 속으로 말한다.
'너는 내 수업할 때 맨날 뒤돌아보고 떠들었잖아, 아이고. 이건 소음으로 느껴지니?'
어쩔 수 없다. 신난 아이들 보고 조용히 놀아라는 게 말이 되겠나?
코로나 이후 사라졌지만 직원여행을 회상해 보면 1990년대 말이었던 그 시절 버스 속에서 노래 틀고 춤추고, 노래방 가서 웃고 떠들고, 삼삼 오오 모여 수다 떨기 바쁜 게 어른들 아니었던가. 어른들도 즐거우면 그러는데 입과 몸이 함께 열리도록 회로가 입력된 아이들이 오죽하겠나.
아. 소음..... 20분만 더 견디면 된다.
청소를 시킨다. 또 떠든다. 아무리 잔소리를 해도 눈을 피해 한 구석에서 떠들고 청소는 안 하는 아이들이 있다. 내 눈이 30개는 아니니 어쩌겠는가? 이것도 어쩔 수 없다.
이렇게 소음 속에서 10년을 더 보내야 되는 것인가? 91학번까지가 연금을 퇴직하면 바로 받을 수 있는 세대랬던가. 아무튼 나는 퇴직해도 연금도 바로 안 나오고 65세부터 받으니, 손가락 빨고 살 순 없어서 퇴직도 빨리 못할 거 같고.
10년은 이 소음과 함께 해야 하다니. 이젠 나이를 먹어서 아이들이 더 예쁘니 그냥 즐거운 아이들 보며 이해하고 있긴 하다만, 컨디션이 안 좋을 땐 이 소음을 온몸으로 받아내고 있는 내가 처량하다.
아 이 소음과 최소 10년을 더 견뎌야 된다.
카리스마 이로 불리기도 했던 저는 물론 20대 30대 40대 초반까지는 그럭저럭 분위기를 조성하고 조용한 가운데 지냈습니다. 하지만 이젠 시대도 바뀌었고, 꽉 잡는 방법이란 게 있을 수 없는 세상이 되었어요. 무표정으로 일관하고 정을 주지 않으면 아마 아이들도 1년 내내 낯섦 속에서 질서는 유지하고 살겠지만, 그렇게 숨 막히는 1년을 보내는 것도 아이들에게는 할 바가 아닐 터이니, 어떻게 해야 이 소음을 조금이라도 없앨 수 있을지 늘 고민입니다. 이제 교육부 고시도 이루어졌고 학교마다 학칙을 개정하고 있으니 교사들에게 뭔가 제재할 수단이 주어질지 모르겠습니다만 이미 익은 방식을 버리고 새로운 방식에 맞추어서 갑자기 벌을 주는 것도 이상할 것 같습니다.
오늘은 소음이 휘리릭 글 한 편 쭉 써버리게 하네요.
아이들이 떠나고 교실을 청소하면서, 아이들 소음이 밥 벌어먹고 살게 하는데 무슨 불평이야, 복에 겨운 소리 하지마라고 속으로 말하며 마음 가라앉혔습니다. 활동적인 수업이 있는 날은 아이들은 즐겁지만 선생님은 너무 힘드네요.
오늘 제가 힘들어 보였는지 익명으로 쪽지를 써 놓고 갔네요. 글씨를 보면 누군지 알지요. 아이들의 이쁜 마음 때문에 또 하루를 견뎌나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