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2학년만 사 년째하고 있다. 27년 중 23년은 5, 6학년에 거의 머물렀으니 요즘은 호사를 누리고 있는 셈이다. 초등에서 어느 정도 경력이 차면 선호하게 되는 학년이 2학년이다. 1학년은 유치원에서 예쁨만 받고 온 아이들을 학교라는 공간 속에서 규칙과 규율을 준수하게 만들어야 되니까 힘이 들고, 무엇보다도 학교라는 곳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학부모들을 상대하기가 상당히 힘든 학년이다. 1학년 학부모들은 유치원 선생님처럼 아이들을 대해주길 바라지만 유치원과 학교는 속성이 다르다. 커다란 공간 속에서 질서는 더 강조되며 학급 학생 수도 많고 수업과 쉬는 시간의 반복 속에서 수업 시간에 아이들에게 주어지는 제약도 더 많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조금은 학교 생활에 적응되어 올라온 상태의 아이들을 대할 수 있고 수업도 비교적 빨리 끝나는 2학년을 선호할 수밖에 없다.
어쩌다 4년째 2학년을 하다 보니 올해는 특히 교직이 재미가 없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어찌 보면 복에 겨워서 하는 소리다. 아이들은 너무나 착하고 갈등도 크게 유발하지 않으면 무엇보다 학부모들이 나를 엄청 신뢰한다. 이런 복 받은 상황은 몇 년 만에 처음인데 즐겁게 누리지 못하고 재미없다고 하고 있으니 복에 겨워하는 소리일 수밖에. 인간은 평온함을 누리면 도태된다고 생각하는지 모든 게 심드렁하고 재미가 없다.
4년째 같은 교과서를 가지고 수업하는 나는 너무 지겨운데 아이들은 새로 배우는 것이니 매시간 신나 한다. 어제는 내가 살고 싶은 동네 만들기를 시키면서 모둠 책상을 만들었더니 너무 시끄러워서 견디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장난 삼아 아이들 이름을 가지고 이야기를 만들기 시작했다.
"옛날 옛날에 0입준이라는 아이가 살았는데, 그 아이는 말하는 것을 너무 좋아했어요. 그렇게 말만 하다가 입이 다물어지지 않아서 0 서진이 운영하는 한의원에 갔답니다.~~~"
"00 초등학교에 0 하진이라는 아이가 있었어요. 그 아이는 딱지치기를 너무 좋아했지요~~."
"옛날 어느 마을에 김 00, 김지 0, 김 0연이라는 7 공주가 살고 있었지요.~~~"
아이들 이름은 중간이나 끝자만 살짝 바꾸어 이야기를 만들기 시작했더니 아이들 눈이 반짝거린다. 별 거 없는 이야기 전개에도 깔깔 웃는다.
"선생님 제 이름도 넣어주세요."
"저도요. 저로 이야기 만들어주세요."
교실이 한바탕 난리가 났다. 거의 모든 아이들 이름을 넣어서 이야기를 만들어줬는데 3,4명 빠진 아이가 있어서 신경이 많이 쓰였지만 아파 오는 목과 스토리의 부재로 더 이상 계속할 순 없었다. 우리 반 아이들은 자그마치 30명이나 되니까.
어릴 적 외할머니가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시면 넋을 놓고 듣고 있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눈으로 읽는 책 보다 입으로 전해지는 이야기가 훨씬 생동감 있고 정감이 있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주인공의 감정과 생각이 말이나 표정을 통해 오롯이 전달되기 때문이다.
선생님의 엉터리 이야기에도 목을 빼고 초롱초롱 눈을 빛내며 이야기를 들어주는 아이들. 동화책을 쓸 재주가 있었다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가, 이야기를 재미있게 들려주는 연습을 해야 되나 고민도 했다가, 나중에 아들들이 결혼해서 손주들이 생기면 이야기를 들려주는 할머니가 될 수 있을까 생각도 했다가 별의별 생각 끝에 수업을 마무리 지었다. 쉬는 시간에 달려와 아이들은 선생님 이야기 또 들려주세요. 들려주세요, 앙코르 앙코르를 외쳐댔다.
'얘들아. 미안해. 이 선생님은 창의력의 부재로 더 이상의 이야기를 만들기는 불가능하다. 그리고 목이 너무 아파.'
아쉽지만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더 들려줄 순 없었다.
스토리를 좋아하는 아이들. 그래서 게임도 스토리가 있어야 좋고, 수업 시간에 역할극을 하면 잘하지도 못하지만 그렇게 즐거워하는 것이다. 별 거 아닌 거에 즐거워하는 아이들에게 고마울 따름이다.
아이들은 역시 기쁨이다.
이 고운 아이들이 시기나 질투보다는 아름다운 이야기들로
자기 삶을 채워나갈 수 있기를 기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