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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향기 Sep 05. 2023

선생님이 된 제자

좋지 않은 기억을 예쁘게 포장해서 선물로 돌려준 제자

 오랜만에 대구에 계신 동료 박 선생님의 전화를 받았다.

 오랜 시간 동안 정토회(법륜스님이 이끄는 단체) 활동을 하고 계신 선생님은 긴 시간 동안 수양을 하셔서 마음의 단단하기나 사람을 대하는 태도를 여간해서 본받기가 힘들다.

 어렵고 힘든 일이 있어서 선생님과 통화를 하다 보면 눈물을 주르륵 흘리게 마련이다. 엄마한테는 부담을 줄까 봐 할 수 없는 이야기도 맘 놓고 하게 되니 때론 엄마 같기도 한 선생님이다. 힘들 때만 전화를 드려서 죄송한 마음에 즐거운 이야기를 해야지 하고 가끔 전화를 했다가도 또 절로 마음을 털어놓고 눈물을 주르륵 흘리게 만드는 선생님이다.

 어른인 나에게도 그런 선생님이니 아이들에게는 어떤 선생님인지 말해서 무엇하랴.


 10년 전 대구를 떠나오기 전 마지막으로 근무하던 학교에서 6학년을 함께 한 선생님이다. 14개 반이 있었는데 선생님과 나는 뽑기를 제대로 잘못했다. 그 반과 우리 반 아이들은 상상 못 할 수준으로 선생님을 괴롭혀 댔었다. 막무가내로 선생님을 괴롭히는 수준이 아니라 비상한 머리를 상상 못 할 정도로 굴려대며 사람을 괴롭혔다. 물론 다수의 아이들은 착하고 성실하고 예쁜 아이들이다. 하지만 그 다수를 능가할 정도의 빌런 같은 아이들이 3,4 있었으니 다수를 신경 쓸 겨를도, 다수의 고마움을 생각할 겨를도 없는 괴로운 하루하루를 보낼 수밖에 없었다.


 그 선생님과 1년에 한 번 정도 만나거나 연락이 되면 꼭 그 시절 이야기를 아주 잠시 언급하게 된다. 생각도 하기 싫고 걷어내 버리고 싶은 한 해라는 공통점이다.

 그 안 좋은 기억을 포장해서 예쁜 선물로 돌려준 아이가 선생님 앞에 나타났다.



 그 해 가르친 여학생 하나가 교대를 가서 발령 전에 기간제 강사로 선생님 학교에 근무하러 온 것이다. 그 학생은 교대 면접시험에서도 박 선생님에 대해 말했다고 한다. 대구교육청 홈페이지에는 좋은 은사를 칭찬하는 코너가 있는데 거기에도 박 선생님에 대해서 글을 올려서 박 선생님은 지역 신문과도 인터뷰도 하시게 되었다고 했다.

 너무 좋지 않은 경험이어서 다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안 좋은 기억을 포장을 예쁘게 해서 값진 선물로 돌려주었다고 말씀하셨다. 


 선생님의 수고가 헛되지 않아서 너무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사람이 어려운 상황에서 마음을 내어준다는 건 쉽지 않다. 힘든 시절 아이들에게 내어 준 마음이, 견뎌낸 마음이, 보듬고 품어준 마음이 예쁜 선물로 되돌아와서 함께 기뻤다. 더불어 부끄러웠던 내 모습이 떠올라서 선생님께 말씀드렸다.

  "저는 그 시절 생각하기도 싫지만, 어찌 보면 저도 참 철없는 선생님 모습을 보여서 부끄럽고 할 말도 없어요. 견디기가 너무 힘들고 괴로워서 아이들을 엎드리게 하고 울기도 했고요. 아이들도 부모들도 이상한 선생이라 생각했을 거예요."

  "또 시작이다. 또 자책. 그때 너무나 잘했어. 그런 상황을 견디기가 어디 쉽나? 선생님의 문제는 시시 때때 자신을 혼내는 버릇이야. 너무 잘 견디고 너무 잘했고 지금도 너무 잘하고 있어."

  "그런가요? 선생님. 맞네요. 자책, 또 시작이네요. 하긴 요즘 일어나는 사태들을 보면 병가 한 번 안 내고 버틴 것만 해도 제가 잘 해낸 게 맞네요. 자책 안 할게요. 선생님."

 눈물이 그렁거렸다. 전화기 너머로 우는 목소리를 들려주기 싫어서 쏟아지려는 눈물을 꾹꾹 눌러 넣었고 빨리 전화를 끊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선생님, 잘 지내세요. 대구 가면 연락할게요."


  참고 견딘다는 건, 누군가를 마음 넓게 이해하고 품어준다는 건, 언젠가는 기쁨으로 되돌아올 덕을 쌓는 행위라는 걸 선생님을 통해서 다시 한번 느꼈다. 

  부모로서도 선생님으로서도 어른인 내가 좀 더 보듬고 품을 줄 알고, 그런 상황들을 받아들일 때 견딘다는 느낌이 아니라 당연한 기쁨으로 여길 수 있는 순간이 조금씩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그 시절 그 학교 일은 기억하기 싫어서 지워버린 것들이 많습니다. 안 좋았다. 나빴다 정도로 남겨두려고 합니다.

  상품권을 주니 싹 태도를 바꾸던 교장님도, 교장이 무시하니 함께 무시하던 교감, 교무도, 멋들어진 정치 이야기를 꺼내고 국회 비유까지 하며 저를 깔아뭉개던 남학생도, 그 시절 너무 고통스럽고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원망스러운 사람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지나고 보니 또 한 점의 기억일 뿐이네요. 그 교장님도 어디선가 할머니로 늙어가고 있을 것이고 그 남학생들은 아마 좋은 대학 가서  훌륭한 사회 구성원이 되기 위해 정진하고 있을 겁니다.

  나쁜 기억도 10년 넘게 지나고 나니 그냥 기억일 뿐이네요. 세월이 좋지 않은 기억을 그저 기억으로 남겨주는 걸 보면 시간에 감사해야 됩니다. 그렇게 나이들어 가고 있습니다.

  그 시절 이야기가 조금 궁금하시면 아래 클릭해 보시면 됩니다. 여기까지 읽으신 모든 분들 좋은 하루 보내십시오.


06화 3월에 잘못 꿴 단추는 끝까지 풀리지 않는구나. (brun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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