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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향기 Oct 25. 2023

세상에서 제일 잘한 일은 내 자녀를 낳은 것이다.

교사는 수업이 잘되면 행복하다.

학부모 수업 공개일이다.

얼추 27년 차에 들어서다 보니 큰 긴장감이나 부담감은 별로 없다. 하지만 세세하게 신경 써야 될 일들은 많다. 우선 교실이 깨끗해야 된다. 창틀, 문틀, 신발장, 우산꽂이 등 평소에 살필 겨를 없는 곳에 쌓인 먼지들을 하나하나 제거해야 된다. 그리고 학습연구실이 없어서 받으면 교실 여기저기 쌓아놓기 바빴던 학습 준비물들도 손님 맞는 자세로 보기 좋게 정리해야 된다. 


이제 본격적인 수업 준비. 수업 지도안을 짜고 수업 발문을 하나하나 체크해야 된다. 요즘 부모님들은 고학력자가 많다 보니 발문이 잘못되고 수업 흐름이 안 맞을까 봐 신경이 쓰이기도 한다. 그리고 교사의 자존심은 수업에 있으니 스스로에게도 부끄럽지 않으려면 발문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다.

자 수업안도 끝났고 발문도 다 생각했으면 자료를 만들어야 된다. 발령 초처럼 일일이 손으로 교구를 만들던 시절에 비하면 대부분 컴퓨터 자료를 사용하니 훨씬 수월하고 편하다. 수업에 필요한 학습지 정도를 만들어서 복사하면 된다.


그다음은 아이들 단속하기. 평소 의자에 양반 자세로 앉는 아이들, 신발 벗고 맨발로 앉아 있는 아이, 시시 때때 끼어드는 아이, 말하는 사람을 보지 않는 아이 등등이 부모님이 오시는 날은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도록 지도해야 된다. 예전엔 교사들 사이에서 약 쳐야 된다라는 표현을 쓰곤 했다. 문득 그 표현을 떠올리고 보니 무섭다. 이선균 마약 이야기로 한참 떠드는 요즘, 약을 친다는 표현에 대해서 새삼 되돌아보게 된다. 누구로부터 시작된 표현인지 모르겠지만 결코 좋은 표현은 아니니 쓰지 않기로. 요즘 저 표현을 쓰는 선생들의 없기도 하다. 아무튼 아이들이 평소와는 다른 모습일지언정 부모님에게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이지 않도록 공개 1주일 전부터 계속 주입시킨다. 

"부모님 오시는데 그럴 건 아니지?"

"엄마 실망시키고 싶지 않지?"

이렇게 해서 공개수업 당일,  짜잔. 일부 습관이 안 잡힌 내 아이가 바른 모습의 자녀가 된다는 것을 부모님들은 아마 모르실 것이다.


교사들은 너무 속 섞이는 아이들이 부모가 오는 날 180도 달라지는 모습을 보이면 조금은 허탈하기도 하다. 교육적 관점에서는 아이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고 개선 방향을 찾아가는 것도 필요한데, 평소 부모님께 전달했던 메시지와 다르게 행동하는 아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평소에 문제 행동을 심각하게 일으켜 상담 등을 통해서 이야기를 해 주지만 받아들이지 않고, 교사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을 품는 부모들의 자녀가 공개 수업일은 그야말로 천사나 세상없는 범생이가 되는 경우는 정말 교육자로서 역할에 대한 상실감마저 느껴진다. 아쉽지만 그 부모는 아이가 범생인 줄 알고 받아들이며 살 것이다. 그리고 그 아이가 반에 주는 피해는 고스란히 다음 학년으로 옮겨간다.



수업은 큰 긴장감 없이 잘 마무리되었다. 만족스러웠다. 아이들이 평소에 지금처럼 집중하고 조용해 준다면 우리 반 아이들 모두 수재가 될 것이다. 안타깝지만 오늘의 고요함은 아마 이번 시간으로 끝날 것이다. 교사는 수업이 잘 되면 행복하다. 남은 시간도 훨씬 수월하게 아이들을 따뜻한 마음으로 대할 수 있었다. 평소에도 이렇게 수업 준비할 시간이 넉넉해야 되는데 그렇지 않은 현실이 아쉽기도 하다.


오늘 수업은 비밀 친구를 일주일 간 관찰한 결과를 바탕으로 칭찬쪽지를 쓰고 부모님 앞에서 발표하는 것이 활동 2이고, 부모님이 즉석에서 쓴 칭찬쪽지를 뽑아서 발표하고 그 자녀는 부모님을 칭찬하는 릴레이를 이어가는 것이 활동 3이었다. 칭찬은 부풀려하지 않고 진심을 담아 말하며 단점을 함께 말하지 않는다고 이전 차시에서 학습했었다.

칭찬의 방법에 맞게 따뜻한 말들이 오고 가는 한 시간 수업이었다.

아빠의 칭찬 쪽지를 듣고 아빠를 칭찬하려는데 아빠에 대한 고마움이 물밀듯 몰려오는지 눈물을 터트리는 단이. 언제나 고운 마음으로 친구들을 보살피더니 마음이 따뜻한 아이임이 다시 한번 증명되었다. 

수업이 끝나고 부모님들께 가라고 했더니 다들 자녀들을 한껏 꼬옥 안아주는 모습이 따뜻해 보였다.

한편으로 나는 선생이다 보니 자녀 수업에 저렇게 참여를 못하는 경우가 많았고 자녀를 꼬옥 따뜻한 마음으로 안아주고 사랑하는 마음을 표현해주지 못했다는 생각에 슬픈 마음도 함께 밀려왔다.

나는 부모로서 우리 반 부모님들보다 나은 게 하나도 없었구나 하는 자괴감.

그리고 아들의 얼굴이 떠오르며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또 일 년 뒤에 오늘의 내 모습을 후회하고 있을 것인가? 언제쯤이면, 어떻게 하면 후회하는 이 모습을 끝낼 것인가 하는 마음에 속이 쓰렸다. 

그래도 부모들과 아이들을 보며 따뜻한 하루였다.

오늘 부모들 모습 속에서, 
세상에서 제일 잘한 일은 내 자녀를 낳은 것이다라는 말을
 메아리처럼 듣는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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