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번잡하게 하는 상황이 발생해서, 일을 할 수 있는 마음 자세가 되지 못해, 청소라도 하려고 마음먹었다. 교실을 정리하다 게시된 작품들을 다시 한번 살펴봤다. 추석 때 달님에게 소원을 비는 내용을 쓰는 활동을 했다.
우리 반 준이의 소원이 그때처럼 눈에 들어온다. 수능 100점 맞게 해 주세요.
은이의 소원도 수능 100점이다.
성이는 중간고사 100점 받게 해달라고 한다.
진이는 모든 시험 100점 받게 해달라고 한다.
초등에서는 시험도 치지 않건만...
초등 2학년 짜리의 소원에 수능이 등장해야 되는 대한민국 교육의 현실이 마음이 아프기도 하면서도 성이와 진이, 은이, 모두 공부를 참 착실하게 잘하고 학습에 재미를 붙이고 참여하는 아이들이라 저런 소원이 본인들의 삶의 방향과 맞아떨어져서 다행이란 생각도 든다. 공부가 좋은데 100점 받고 싶다는 소원이 마냥 마음 아픈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저 아이들이 앞으로 공부를 해나가면서 100점을 받지 못하더라도 좌절하지 않기를 살짝 바라본다.
그리고 빈이의 소원을 보았다. 다자녀 가정의 맏딸인 빈이는 늘 밝고 행복하다. 미소 띤 얼굴로 세상에서 보석 같은 선생님을 만나서 감사하다며 자기에게 소중한 존재가 나라고 해주는 아이이다. 세 가지 소원 모두 가족과 관련된 내용이다. 물건을 갖고 싶다는 것도 아니고 공부를 잘하게 해 달라는 것도 아니다.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가정이 보이고 가정의 부모 모습이 연상이 된다. 상담을 해 봐도 빈이 같은 아이의 부모님들은 말에도 선함과 따뜻함, 무엇보다도 안정감이 묻어난다.
자식을 키울 때 부모가 안정감을 가지는 것은 무척 중요하다. 그리고 세상 어떤 중요한 일 앞에서도 내 가족의 소중함을 알고 따뜻하게 사랑하고 보듬어 가는 것도 중요하다.
아이들의 소원 쪽지 앞에서 내 자식을 거쳐온 수많은 선생님들은, 과제를 읽고 나를 어떤 부모로 연상했을까 생각하면 앞이 아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