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추운 날씨를 걸어가지 않을 핑계로 삼았는데 어제오늘은 날씨가 따뜻하다. 시린 손을 어찌할 바를 몰라 장갑을 들고 나오지 않은 걸 후회할 정도도 아니고, 묶은 머리로 쑥 내민 귀가 에이지도 않는다. 걷지 않을 이유가 없다. 걸으면 몸이 가벼워지는데 마음은 무거워진다.
어떤 식의 출근이든 출근길에 드는 생각은 한정적이다. 글과 아들로 향할 때가 많다. 어떨 땐 장시간 나에 대한 생각만으로 하루하루 보내다가 '엄만 어쩜 그렇게 본인 생각뿐이야'라고 경고라도 하는 듯 아들이 툭 건드릴 때면 '나'란 사람은 내 세상의 중심에서 벗어난다. 하지만 또 곰곰이 생각해 보면 아들과 글을 생각한다고 하지만 그 고민도 결국 나를 향해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게 문제인지도.
다음 주 14일이면 브런치 6개월이 된다. 수도 없이 그만 써야지 하면서도 또 기웃거리게 되고 다른 사람 글에서 얻어갈 것을 찾아 헤매고 있다. 하지만 그 헤맴이 지난달부터는 조금 줄어들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쓰지 못하고 읽기만 하다가 읽기마저 못하고 읽어야 될 글들이 쌓인다. 최대한 구독하는 작가님들의 글은 제대로 정독하고 싶은 마음이 앞서다 보니 브런치에서 쓰기는커녕 읽기마저 가로막히고 있다.
다양한 주제로 네온사인 마냥 반짝반짝 현란하게 글자를 풀어놓는 분도 있고, 너무나 감사하게도 귀한 시간 나를 위해 내주시고 따뜻한 댓글로 언제나 힘을 주시는 분도 있고, 일상적이지만 규칙적으로 반복되는 일들 속에 잔잔한 사색을 푸는 분도 있고, 교육이나 육아에 대한 확고한 철학을 푸시는 분도 있고, 같은 글자인데 글자 속에 의미를 가득 꽁꽁 숨겨 놓으셔서 머리 나쁜 나를 원망하며 글을 세 번 네 번 조회하게 하는 분도 있다. 재치 없는 내가 봤을 때 일상적인 사물이나 현상에 대해서 알 수 없는 방향으로 튀어서 탁 하고 무릎을 치게 하는 글을 쓰시는 분도 있고 소설로 상상력을 펼치게 하시는 분도 있다. 읽고 배울 게 많은 브런치다.
하지만 한 발 선뜻 들어서기가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
시, 소설, 수필, 논설문, 기행문, 독후감, 서평 등 등 글의 종류는 다양하다. 모두 다 나름의 목적이 있는 글이다. 글이라는 게 정보를 주는 유익함도 있으면 좋고 같은 현상을 남다르게 보는 눈으로 독자에게 공감과 사유를 줘도 좋고 삶에 지친 사람들에게 희망과 빛을 줘도 좋다. 내가 겪지 못한 일들을 상상하게 하는 것도 좋다.
글에 대한 나름의 정의 속에 내 글을 대입하면 쓰기가 자꾸 힘들어진다.
회색빛 같은 글을 쓰고 싶지 않아서 최대한 자제하는데 글은 자꾸 그쪽으로 흘러가고 있다. 오랜만에 두 편의 내 글을 읽은 남편이 슬프다고 한다. 12시가 넘은 새 날에 읽어서 멜랑꼴리해져서 그럴 수도 있지만 다른 독자들과는 분명 느끼는 정도가 다를 것이다. 현 상황을 오롯이 함께 나누고 같이 늙어가는 사람이니까.
불교대학에서 법륜스님의 정토회가 1993년에 인도에 학교를 처음 열었고 30년 세월이 준 결실을 만든 영상을 보았다. 대학을 입학한 때가 93년이다. 모르고 있었던 사실이지만 인도 학교의 성장과 그 학교에서 배운 아이들의 성장과 함께 나도 다른 공간에서 같은 시간을 보내왔다. 법륜스님이 학교를 세울 때 목표가 있으셨겠지만, 불가촉천민에게도 배움의 기회를 주고 삶의 희망을 준 30년 세월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다. 법륜스님은 세계 곳곳에 희망이라는 씨를 뿌리고 수확을 거두고 계신다. 원대한 목표를 가지고 살지는 않았지만 나의 30년 세월은 어땠을까 잠시 생각해 보았다. 한 해 한 해는 뭔가 목표를 두고 살았지만 꾸준함도 없었고 좋아하는 것 하나에 지금까지 매진하고 있지도 않다. 이 생각 앞에서 글쓰기도 또 그 모양이 되려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만두지 않고 계속 뭐라도 쓰고 싶다는 마음이 강한지 이렇게 쓸 거면 그러지 않아야 된다는 마음이 강한지 찬찬히 내 마음을 들여다보아야겠다. 시간이 지나면 결론이 날 거라 생각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