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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향기 Sep 15. 2023

브런치 석 달을 꽉 채우며

오늘은 우울하다. 2주 전부터 몸이 안 좋았는데 꾸역꾸역 열심히 출근했다. 모든 직장인의 삶이 그렇듯이 밥 먹게 해 주는 직장에 누가 되지 않게 웬만하면 참고 출근하고 참고 퇴근하는 삶. 

하지만 오늘은 작정하고 조퇴를 했다. 이렇게 몸과 마음을 혹사하며 견디는 건 결국 우리 반 아이들한테도 안 좋은 결과만 가져온다는 것을 이젠 알기에. 처녀 적엔 아니 얼마 전까지만 해도 책임감과 의무감에 아파도 조퇴 없이 교실에서 버티고 살았다. 그랬다고 알아주는 사람도 없었건만.


우울할 땐 노트북을 켜고 글을 써댄다. 오늘 벌써 3번째 글이다.

우울이 목구멍까지 차올라 친구들에게 전화를 할까 하다가 이내 접어버렸다. 그리고 약을 먹었다. 예전엔 친구들에게 고민을 속속들이 털어놓았다. 이해받고 공감받고 싶어서였을 것이다. 어느 순간부터 내 고민을 털어놓는 것이 아무런 해결책도 안되고, 너무 솔직해서 하나부터 열까지 다 터는 모습에 스스로 겁이 나기 시작했다. 브런치에서도 그러고 있는 것 같은데 버릇을 못 고치고 있다. 가감 없이 모든 걸 드러낸다고 내 속 깊이까지 다 공감할 사람은 없건만, 표면적으로 던져주는 공감의 표현을 마치 나를 다 이해한다는 착각 속에 살았던 모습이 어느 순간 부끄러워지기 시작해서 친구들과의 연락도 망설여진다. 그리고 우울 상태에서 친구에게 전화를 하면 좋은 이야기도 못 들려주니 못하는 것도 있다. 문득 세상을 잘못 살았나 싶다. 내 어려움을 나눌 친구는 없나 싶어서이다.

 


둘째 이야기를 쓰고 미안한 마음에 김밥을 쌀 준비를 했다. 너무 뜨거운 밥에 김이 쪼그라들어서 식기를 기다리다 잠시 짬을 내어 노트북 앞에 앉았다. 김밥 싼 김에 김밥 글을 올려야 되나 하는 쓸데없는 생각도 하고 있다. 브런치 석 달째 언니의 반찬 이야기가 5일째 조회수 상승을 맞이하고 있다. 식을 줄 모르는 조회수의 원인을 보니 다음 메인 홈 앤 쿠킹에 best 4위에 머물러 있다. 브런치 시작하고 처음 맞아보는 조회수 폭등을 브런치 글쓰기 석 달과 맞물려 겪으니 나름 좋기도 하다. 글은 뭐 대단할 것도 없지만, 언니의 정성이 담긴 반찬에 대한 글이라, 언니 노력과 정성에 조금은 보답을 한 것 같아 기쁘다. 



남편이 없으니 이야기 상대가 없다. 막상 같이 있어도 대화도 별로 없지만 존재가 옆에 있는 것과 없는 것은 큰 차이임은 분명하다. 1시간에 한 번씩 툭 던지는 말이라도, 대화를 안 하고 있더라도 누군가 옆에 있다는 건 외로움을 견디게 하는 큰 힘이다. 아마 그래서 183cm의 17살 우리 아들도 침대 옆에 온갖 인형을 두고 사는지도 모르겠다. 친구가 없고 외로운 마음들을 인형과 함께 하고 있는지도. 엄마가 아이에게 우울을 전염시켰나 싶어 속도 상한다. 



브런치 글쓰기 석 달이 되었다. 매일 쓰진 않았지만 하루에 2,3편 쓸 적도 많았으니 매일 쓴 거나 마찬가지다. 그리고 거의 이틀에 한 번씩은 썼다. 이젠 고민이 된다. 어떤 주제로 어떤 이야기를 엮어나가는 게 맞는지. 고민해도 큰 틀은 떠오르지 않는다. 이래서 1학기 때 창의력 대회에서도 떨어졌나 싶어서 또 우울이 더 오른다.

그래도 우울이 오를 때 글로 이것저것 쏟아내고 나면 마음은 좀 가라앉는다. 그냥 그렇게 써야 될 모양이다. 큰 주제나 큰 희망은 없어도 내 마음의 안정을 위해서라도 석 달을 넘기고 넉 달, 다섯 달, 그렇게 1년을 채워나가야 될 거 같다.

내일은 좀 희망차게 기분 좋게 하루를 시작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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