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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향기 Aug 11. 2024

대회가 끝났고 드디어 브런치로 돌아왔다. 기쁘다.

8월 8일부터 2박 3일 동안의 대회가 끝났다. 대한민국학생창의력챔피언 대회. 20년이 넘는 오래된 대회이고 2011년부터는 대한민국학생창의력올림피아드에서 대한민국학생창의력챔피언대회로 명칭을 변경해서 실시하게 된 대회라고 한다.

과학 분야는 관심도 없고, 대회니 이런 것도 승진에 대한 마음을 접은 이후로는 관심도 없었으니 전혀 모르고 있던 대회였다.

3년 후 도내 타 지역 이동을 앞두고 이동점수가 필요해서 참여했을 뿐이고, 작년에는 입상 순위에 못 들었지만 올해는 지역 예선 금상을 타면서 본선까지 진출하게 되었다.

표현과제, 제작과제, 즉석과제를 학생들이 수행해야 돼서 장장 3일 동안 숙식을 하면서 이루어지는 대회이다.

본선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니라 표현과제(주어진 주제와 조건에 맞게 시나리오를 짜고 아이들을 지도해서 연극을 하게 하는 것이다.) 시나리오를 짤 때 각종 점수 요소에는 그냥 거짓말로 대충 내 맘대로 상상해서 써냈다. 점수 요소들은 그야말로 엄청난 창의력이 필요한 대회이다.

6월 1일 지역예선 참여 후 6월 10일 금상이 발표 나고 아침저녁으로 이 대회 고민만 하면서 지냈다. 눈 뜨면 아이디어 생각, 잠자기 전도 소품 배경 생각, 밥 먹을 때도 제작과제 생각, 그야말로 가정은 등한시되고 이 대회 생각만으로 2달 반을 보냈다. 독서도 영어도 브런치 글쓰기도 다 열외가 될 수밖에 없었다.

본격적인 표현 과제 소품 및 배경 제작과 제작과제(엘리베이터 장치와 발사장치를 만들어서 공을 발사시켜 목표물을 쓰러뜨리는 것이다. 이게 주최 측에서 주어진 재료로만 만들어야 돼서 재료를 쳐다보고 있으면 답이 안 나와 정말 막막하게 만드는 대회이다.) 고민은 7월부터 시작되었고, 7월 한 달 내내 야근을 하고 저녁도 굶는 생활의 반복이었다. 7월 29일부터 시작된 방학도 당연히 반납이었다.

교실은 쓰레기장이었고 우리 반 아이들에게 죄짓는 심정이었지만 소홀할 수밖에 없었고, 대회 참가 아이들을 매일 연습시키고 결과물을 치우고, 또 고민하고 하느라 방학도 정시 출근해 정시 퇴근하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드디어 어제 대회가 끝났다.

역시나 제작과제와 즉석과제가 발목을 잡았다. 어린 2학년 3학년 아이들이라 제작과제에 대해 아이디어를 내지 못하니 나 혼자 고민하고 남편한테 묻고 또 다른 선생님한테 묻고 했지만 완성도 높은 장치는 못 만들었고, 공을 올리고 발사할 수 있는 정도로 장치를 만든 것만으로도 한숨 돌리고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하루 햇살이 무섭고 한 공기 밥이 무섭다. 2, 3학년 아이들은 철사 하나 조으는 것도 힘이 안되고 종이 하나 자르는 것도 정교하지 못하고, 무엇보다도 장치에 대한 아이디어가 나오지 않았다.

배경과 소품 또한 마찬가지다. 혼자 남아 그림 그리고 만들고.... 7월 중 야근을 하다가 한 번은 울어버렸다. 너무 힘들고 지쳐서 그저 눈물이 쏟아졌다. 눈물 흘리며 받은 전화에 남편은 투유 초콜릿을 사들고 학교를 찾아와서 '내 마음이야'라고 나를 위로해 주었다.

그렇게 아이디어를 쥐어짜고 내 시간을 탈탈 털어 대회에 왔더니.

어느 지역이고 노력하지 않은 선생님이 없다는 것을 그 수많은 화려한 소품들에서 느낄 수 있었다.

'장난이 아니구나. 선생님들 참 위대하다. 어떻게 저런 아이디어로 저런 소품과 배경들을 만들어 냈지? 학기말이라 바쁜 건 똑같은 상황이었고. 대단한다 대단해.'

인간의 생각과 창의력에 끝이 없음을 절감한 순간이었다. 그래서 이런 대회를 여는 거구나 하는 생각도 동시에.(다른 사람들 소품을 찍어 올리고 싶었으나 소심한 나는 스텝이 지켜보는 가운데 사진을 찍을 수가 없었다. 아쉽다.)

힘들고 피곤함이 절정에 달했을 때 시청역 앞 사건이 벌어졌다. 수많은 희생자들을 생각하니

'그래. 죽고 사는 문제도 아닌데. 이 대회 하나 못 치러낼 게 뭔가. 무슨 결과가 있든 가야 될 대회니 그냥 하는 데까지 해 보자.'

그렇게 하루하루 보내고 대회날이 왔다. 첫날 제작과제에서 점수를 못 얻고 망했구나 했지만 장려상이라도 건질까 했는데 역시나 입상권에 들지는 못했다.

아이들은 펑펑 울고(우리 아이들은 겁나는 게 없어서, 표현과제 후 다들 알아봐 주시고 잘한다 하니 엄청 들떠서 대상을 탈 줄 알았나 보다.) 우는 모습을 보니 나도 눈물이 났다.

이 부끄러움이란. 특허청장 및 대회 관계자들이 있는데 애들한테 둘러싸여 우는 꼴이 정말 우스우면서도 어쩔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 눈물은 흘리지 말았어야 된다.

후에 우는 사진을 학모님이 보내주셨는데 우는 꼴도 뵈기 싫고, 거기다가 처진 턱살을 보면서 다이어트해야겠네라는 생각이 드니. 참, 이게 뭔가? 이 와중에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나라니. 이제 일상으로 돌아올 때가 된 것이다. 대회 준비도 일상이긴 했지만.

입상권에 못 들 것을 예상하고 있었지만 혹시나 장려상이라도 기대했던 마음이 무너지고 허탈한 마음으로, 죄송할 일도 아닌데(나 혼자 90퍼센트 이상 다했으므로) 죄송하단 말을 학모님께 연신 해댄 후에 대전에서 집으로 향했다.

집에 와서도 복잡한 마음과 상실감, 허탈감, 방학과 나의 시간을 빼앗긴 억울함이 밀려왔지만 일은 순리대로 돌아간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나만 노력한 게 아니고 전국의 선생님들 다 노력했고,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거기까지였고, 아이들도 너무 어렸고, 같이 숙박한 팀은 엘리베이터 장치는 한 학생에게 맡겨서 부모님이랑 고안해 왔고 소품도 거의 아이들이 만들었다는데 나는 혼자 했으니까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수만 가지 생각이 들지만 지나간 일이고 어쨌든 대회는 끝났다.

앞으로 대회 준비했던 만큼이면 어떤 것도 못할 게 없겠다는 인생의 교훈을 하나 얻었고, 지금까지 보내온 교직생활의 반도 안되게 교직생활을 남겨둔 만 나이 50에 이렇게 큰 대회에 참가해 봤으니 후회할 일도 아니다.

다만 교육청에서 처음으로 지원금까지 빵빵하게 줬는데 상을 못 타서 미안한 마음인데, 한편으로는 또 그게 미안할 일인가? 교육청도 나름의 최선을 다하는 것일 뿐이고, 나도 나름의 최선을 다했고, 아이들도 아이디어는 낼 수 없었지만 빠지지 않고 연습에 참여하고 선생님 말을 따라줬으니 나름의 최선을 다한 것이다. 각자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을 뿐 누가 누구한테 미안할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죄송합니다 말을 내뱉고 있는 이런 '나'라니. 에잇, 내 멘털은 왜 이런 것일까?


오늘 아이들 점심 준비로 장을 봐오면서 엘리베이터 안에서 또 대회를 생각한다. 밀려오는 허탈함 뒤에 다른 생각이 또 마음을 다잡아준다.

'어차피 떨어져야 될 팀은 있는데, 그게 네가 아니란 법은 어디 있으며, 네가 하는 모든 일이 성공해야 된다는 법은 어디 있니? 그렇다면 입상 못한 건 아무것도 아닌 거야.'


대회는 끝났고 내 한계 내에서 최선은 다했고(정말 죽도록 최선을 다했다. 그래서 후회는 없지만 아쉬움은 남는다) 나이 들면서 무력해지는 교직생활에 산뜻한 경험이었고(정말 준비 과정이 죽도록 싫고 다 그만두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어쨌든 나는 지역에서는 1등 상을 받은 거니까. 2등을 받았으면 이런 새로운 세상을 몰랐을 것이고 떨어졌으면 작년에 이어 또 자괴감에 빠졌을 테니까.



대회는 끝났다. 이제 2달 만에 브런치에 돌아왔다.

기쁘다. 그럼 된 거다.


인생은 불행해지기는 쉬워도 행복해지기는 어렵다. 행복을 포기하는 것은 위선도 아니고 절망도 아니다. 가장 현명한 선택이다. 그 선택이 지혜의 시작이다. 인생의 지혜란 어떤 일을 만나더라도, 어떤 사람을 만나더라도, 어떤 상태가 되더라도 크게 놀라지 않고, 크게 실망하지도 않고, 크게 기대하지도 않는 중용의 미덕이다. 크게 실패해도 크게 실망하지 않는다. 크게 성공해도 크게 기뻐하지 않는다. 인생이라는 게, 사실 크게 휘둘릴 만한 가치가 없기 때문이다.
(무슨 책에서 읽은 건지 모르겠다. 암튼... 행복을 포기하란 말은 별로 맘에 안 들지만 인생의 성공과 실패에 크게 휘둘릴 필요가 없단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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