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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향기 Oct 31. 2024

10월 마지막이 시작을 위한 준비가 되기를

칼퇴근을 하려고 가방을 메고 교실문을 나섰다가 다시 들어왔다. 도서관을 가려다가 집에 쌓인 설거지와 빨래가 생각난 것이다. 도서관에 가면 집안일이 밀리니 포기했고, 30분이라도 일찍 집에 가면 집안일을 조금 더 할 수 있겠지만 그것도 포기를 한다. 큰아들의 데려다 달라는 말이 두렵다. 운전을 하고 가면서 백미러에 비친 큰아들의 표정을 보는 것이 힘들다. 18 나이가 안타까울 만큼 찡그린 표정과 무표정한 얼굴을 엄마인 나는 감당하기 힘들다. 이럴 땐 내가 아들을 사랑하는지 아닌 건지 헷갈린다. 그 표정이 싫어서인지 안타까워인지도 헷갈린다. 직면하기가 힘들다. 결국 불 꺼진 교실에 앉아 컴퓨터 자판 위에 그저께 빌린 책을 놓고 읽는다. 


아들이 집을 나갔을 무렵에 맞추어 교실을 나섰다. 오늘은 발걸음이 가벼운 편이다. 겨우 이틀 걸었지만 걷기의 효과인지, 방과 후 공개수업 때문에 교실을 비워줘야 돼서 일할 장소도 마땅치 않아서 오랜만에 여기저기 다니며 수다를 떨어서인지 알 수는 없다.(우리 학교는 방과 후 교실이 담임선생님들의 교실에서 이루어진다. 1주일에 두 번씩 방과 후 수업이 진행되면 소음 때문에 수업 후 업무를 하기가 어려운 형편이다.)

가벼워진 발걸음, 편안해진 마음, 집으로 향하는 내 모습이 며칠 전과는 많이 다르다.

앞으로도 계속 이랬으면 좋겠지만 내 마음이 가벼우면 꼭 사건이 터지는 집이라 안심할 수는 없다.


걸으며 생각해 보니 오늘이 10월의 마지막이다. 

오늘은 교실에 텁텁한 기운이 돌아서 에어컨을 켜고 싶다는 마음도 들 정도였고 남향 창으로 비치는 햇살은 여름 같았는데 내일이면 11월이 된다. 이 가을도 끝나면 곧 겨울이 오고 학기도 마무리하게 된다. 올해는 유독 빨리 지나가버렸지만 더 빨리 가버렸으면 좋을 정도로 아쉬울 게 없다. 


등교를 거부하던 아들로 인해 타들어가던 속, 자퇴를 결정하기까지 있었던 수많은 일들, 티 안 내고 버티며 죽을힘을 다해 다녔던 학교, 누군가 얘가 몇 학년이냐고 물으면 고2라고 대답하며 혼자 삼켜야 했던 슬픔, ELS가 상환되지 않아 3년을 속앓이를 했는데 결국 만기가 돌아와 만져보지도 못하고 공중분해시켜 버린 2억, 휴직도 안 하고 돈 번다고 버텼던 세월을 후회해야 되는 현실, 직장과 병행하며 혼자 힘으로 육아를 했지만 내 손으로 온전히 사랑과 정성을 다하며 키우지 못해 문제가 생겨버린 아들, 애도 제대로 못 키우고 사랑도 못 줬건만 돈도 잃고 아이도 잃은 현실, 수도 없이 만났던 00들, 자꾸만 생각나는 누군가, 이상하게도 간섭이 많고 상황을 받아들이지 않던 반 아이들 아빠, 한 해 동안 수많은 일들로 이리 치고 저리 치고 했지만 세월은 지나갔고 결국 두 달만 남았다.


거의 7,8년 동안 안 힘든 해가 없었고 늘 업데이트되던 정신적 고통이 극에 달한 2024년이었지만 병가도 안 내고 참고 견뎠다. 글을 썼다가 책을 읽었다가 외국인과 회화수업을 했다가 다이어트도 했다가 불교대학도 듣고 경전반도 듣고 별의별 짓을 다하며 버티고 견뎠다.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싶다.


과거와 미래에 대한 생각이 떠오를 순 있지만 스토리를 만들지 말라는 말이 오늘도 머리에 맴돈다. 

10월 마지막 날, 헤어진 애인을 맘에서 떠나보내듯이 내 안의 모든 것을 다 보내 버리고 싶다.


입으로 들어가야 될 깻잎이 머리 위로 쏟아지던 일도, 살면서 들어본 적 없던 새로운 어휘를 하나하나 듣게 되던 날들도, 기껏 정리해 놓은 화장대에서 화장품이 와르르 쏟아져 내팽개쳐져 있던 일도, 00 앞에서 미친 듯이 울었던 일도, 다시 갈 일 없게 된 학교에 마지막 방문을 하던 일도, 하고 싶지 않은 같은 이야기를 어쩔 수 없이 반복해서 말해야 했던 일도, 정신과 약을 먹으면 쏟아지는 잠에 업무가 불가능해 돌아버릴 것 같았던 하루하루도, 고등학교의 수학여행안내 문자를 보며 슬펐던 일도, 미안하단 말에 되돌아오던 뜻하지 않은 반응들도, 잠이 오지 않아 유튜브를 껐다 켰다 반복했던 일도, 남편의 긴 출장으로 혼자 버텨야 됐던 하루하루도, 터질 것 같은 상태를 폭식으로 달래던 일도, 급식이 도무지 먹히지 않아 죄지은 듯 버려야 했던 점심시간도, 코 골며 정신없이 자는 남편을 보며 혼자 울던 일도, 침묵이 견디기 힘들고 마음 아프면서도 침묵을 기다리던 날들도, 창의력 없는 내가 창의력 대회에 나가면서 골치만 아프고 방법이 없어서 유일하게 불이 켜진 빈 교실에서 혼자 울었던 일도, 일상을 관두고 싶었던 마음들도, 계속 잠에서 깨어나지 않았으면 바랬던 마음도, 생각의 고리를 끊지 못해 끙끙 혼자 울고 아팠던 마음도, 몸이 아파서 조퇴하고 종일 잠만 자는 일이 잦았던 10월도...

모두 모두 다 보내버리고 싶다. 


사는 방법이란 게 정해진 게 있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이래야 된다 저래야 된다는 관념에도 많이 얽매였었다. 앞으로도 별반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규칙을 가르쳐야 되는 초등선생이고 그렇게 살아온 나니까.

타고난 천성이고 길러온 습성이니까.

하지만 이제 최소한 남편이나 자식의 삶까지 옳고 그름을 따져가며 규정짓지는 않을 것 같다. 내 마음이 가벼워지는 일은 그것밖에 없다는 걸 아니까.


10월 마지막 날에 도저히 먹히지 않던 급식도 끊었고 편지도 썼으니까. 

이제 다 떠나보낼 수 있다.

11월의 첫날은 다시 시작이다. 

그날이 그날인데 의미를 부여하기 좋아하는 것도 무슨 의미가 있나 싶지만 이렇게 하니까 또 살아가는 게 인간일 것이다.


10월의 마지막날, 우리 집은 참으로 고요하다.

수학여행 간 둘째, 출장 간 남편도 없고, 식탁에서는 큰아들의 밥 먹는 소리만 들린다.

이젠 고요와 침묵을 슬픔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https://www.youtube.com/watch?v=wrFsC1ldJEc

<이 세상은 한순간도 멈추지 않는다. 낮이 가면 밤이 항상 따라온다. 그리고 또 하루가 밝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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