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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턴은 눈치보는 미어캣?

눈칫밥으로 나는 또 3kg 살이 찐다.

by 초록해

그렇게 나는 별 기대 없이 회사에 다시 입사했다.

사랑하던 사람에게 한번 데고 나면 다시는 큰 기대가 생기지 않는 것과 같이 나는 큰 기대 없이 이 곳에 입사했다.


이 회사가 처음인 대다수의 동기들의 눈에서는 빛이 났다.

인재개발원에서의 의지와 열정은 나의 1년 전을 보는 듯했다.

'나도 그때 엄청 열정적이었는데...'


회사에 입사를 하고 난 후 인재개발원에서 간단한 교육을 3~4일 받고 나서 인턴이 시작되었다.

바로 입사시켜 주면 될 것을 왜 또 인턴이라는 제도를 만들어서 구직자들을 불안하게 하는지...라는 생각은 구직자만의 생각이겠지?라고 생각하면서도 불안한 내 처지가 너무나도 싫었다.


같은 공간에 있는 사람들에게 항상 평가받고 있다는 생각은 몸과 마음을 너무 피곤하게 만들었다.

이번 회사는 유독 인턴기간이 길었다.

뭐 전에 다니던 회사도 인턴이 끝나고 난 뒤 정규직으로 채용되었기에 이 기간도 금방 가겠지?라는 생각을 했지만 크게 달라지는 건 없었다.


다만 직무가 예전과 달라졌다는 것에 위안을 얻을 뿐이다.

그렇게 4개월간의 인턴이 시작되었다.

인턴의 생활은 무에서 유를 창조해내는 과정과도 같다.


그 누구도 나를 귀찮게 하지 않고, 건드리지도 않으며, 관심을 가지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정말 무(無)와 같이 있다가는 정말 나는 4개월 후 없어져 버릴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정말 1도 없다.

그렇다면 나는 출근한 후 8시간 동안, 아니,, 아니지,, 나는 일찍 나오고 퇴근할 때도 눈치 보니까 9시간 동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어떤 것일까?


이런 의문과 함께, 이 숨 막히는 공간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찾기 시작했다.


선배들과 유일하게 아이컨택 할 수 있는 시간은 출근! 과 퇴근! 시간뿐~

그 이외의 시간은 무슨 일이 그렇게 많은지 자기 일하기 바쁘다.

그래서 아침시간에 조금 더 일찍 나가, 쉬하는 걸 참았다. 인사하려고...


선배가 출근하면 아이컨택을 하며 "안녕하십니까!"라고 외치며 하회탈처럼 웃었다.

내가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라는 자괴감은 한 1일 정도 지나니 자연스레 사라지고 인사라도 제대로 해야겠다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그리고 점심 먹기 전까지 세상 의미 없는 것들을 의미 있는 척 무언가라도 하는 척을 한다.

1. 배우지도 않은 엑셀 단축기 외우는 척

2. 나중에 일하면 알게 될 직무 용어

3. 인사팀에서 준 매뉴얼 같지 않은 매뉴얼


자기 전에 더럽게 잠이 안 오면 천장을 바라보며 양을 세듯이 노트북 모니터 앞과 가이드라인이 적혀있는 책을 보며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점심식사를 하기 전 한 마디를 한다.


"선배님! 혹시 바쁘신데 제가 단순 업무라도 도와드릴 부분이 있을까요?"

선배님의 흐뭇한 얼굴을 한번 쯤은 봐야 점심밥이 그제야 입으로 들어감을 느낀다.


점심시간 이후, 나와의 싸움이 시작된다.

폭식 후 이 시간에는 미친 듯이 졸음이 몰려온다.


담배라도 피우면 옥상에 올라가서 담배라도 피우면서 좀 쉴 텐데... 싶다가도, 담배 피운다고 말해서 하루에 의도치 않게 계속 불려 2갑 이상 담배를 피우는 동기를 보며 그냥 담배 안 피고 오래 살아야지!라고 마음을 고쳐 먹는다.


그렇게 점심식사 이후 졸음과의 전쟁을 벌이고 나면 초등학교 때 썼던 그림일기를 떠올리며 오늘 한 일(실제로 아무것도 한 게 없음)에 대해 일기를 쓰기 시작한다.

무에서 유를 창조해내는 기적, 차라리 벼락치기 시험 준비가 더 나을 것 같다.


그렇게 또 한 번 자소서를 쓰는 마음으로 OJT 일지를 쓰고 나면

인턴 전체 4개월 중 하루가 끝이난다.


아 얼마나 남았지? 아 맞다.. 4개월.

입 닫고, 귀 닫고, 눈 닫고 생활하다 보면 금방 가겠지?

라며 또 하루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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