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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승준 Jul 09. 2023

고마웠어요, 꼭 또 보자고요.

집에서 나와 덩굴이 덮인 담벼락이 있는 길을 지나간다.

이 길에는 등교 시간에도 사람이 적어 아침이 더 조용하다.

관성이 붙었는지 그 이른 시간에도 그렇게 피곤하지 않다.

어젯밤에는 잠도 충분히 잘 잤던 것 같다.

매일 보는 친구들이 보여 시답잖은 이야기를 한다.

토요일에 무한도전이 어쨌고, 옆반에 누가 학원에서 어쨌고, 주말에는 누구네랑 같이 놀았다더라.

맨유는 또 이겼고, 박지성은 꽤 잘했나 보더라.

수행평가가 오늘인 줄 알았는데 내일이었구나, 주말에 그렇게 급하게 하지 않았었도 됐겠지만 뭐.

다른 건 몰라도 체육시간은 다 외웠지, 아싸 오늘 5교시에 체육이다.

점심시간에 옆반이랑 축구경기가 있으니 끝나고 운동장에 계속 있으면 되겠다.

쉬는 시간엔 또 어디를 뛰어다니다가, 사물함에 기대서 무슨 소리를 또 하면서 웃고 있다.

점심시간은 몇 번째로 들어가든 제일 빨리 튀어나왔다.

오늘은 축구를 이겼다, 체육시간에는 자유시간이 적었던 게 맘이 아프다.

나는 엎드려있고 창문에 바람이 시원하게 불어 기분이 좋다.

털털 거리는 선풍기가 더 빨리 한 바퀴 돌기를 기다리며 시간이 간다.

방향이 같은 몇몇 친구들과 얼마 없는 용돈으로 음료수를 사 먹고선 상가가 많은 길을 따라 집으로 간다.


수능도 끝났고, 대학 발표만 남아있다.

체험학습을 신청하고 처음으로 친구들과 내일로 여행을 떠났다.

여수 갈대밭을 맨몸으로 쓸고 내려왔다.

한 친구가 맛집을 다 알아왔다. MBTI가 이때도 유행했다면 분명 J 일거야.

일찍 삭은 친구가 있어 술도 처음으로 사봤다.

다들 피곤했는지 얼마 먹지도 못하고 뻗었다.

부산에서 꽤 오랜 날을 머물렀다.

학교에 가보고 싶어 아무 학교나 들어갔다.

경비 아저씨가 어떻게 왔냐 물으시더니, 졸업여행 중에 생각이 나서 들렀다 하니 천천히 둘러보고 가라 신다.

오늘 무슨 스포츠 대회가 있댔나, 다들 에너지가 넘쳐 보인다.


장래희망에는 항상 선생님을 적었다.

선생님이 되고 싶었다기보다는 그 시절에 머무르고 싶었나 보다.

살랑한 바람이 부는 창문과, 느리게 도는 선풍기와, 좁지만 맘껏 뛸 수 있던 에너지가. 

구태여 모이지 않아도 매일같이 친구들이 있는 날들이 좋았다.

별 일이 없어도 그게 별 일이 되어 요동칠 수 있던 감정이 좋았다.

아마 나는 그런 얼굴들을 더 보고 싶었나 보다.


이제는 이별을 고해야 할 때가 와버렸다.

교복을 입고 처음 만난 아기고양이들도 이제는 흰 수염난 고양이가 되었다.

영원할 것 같던 뜀박질도 이젠 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다.

그립지만 돌아갈 수 없음에 울적함과 동시에, 돌아갈 수 없음에 더 아름답겠지.

그래도 한때 빛났던 때가 있었음이 내 동력이 되어 나를 일으켜 세움에 대한 감사함과 동시에,

어떤 글짓기 시간에 써 내려갔던 10년 뒤의 나의 모습은 이런 것이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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