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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석준 Seok Joon Kwon May 13. 2022

작은 도토리가 잠을 방해한다

생각지 않았던 오류 하나가 전체 시스템을 망가뜨리는 과정

겉으로 보기에는 굉장히 작은 요소라고 해도, 시스템 전체로 보면 큰 영향을 미치는 것들이 있다. 예전 박사 과정일 때 기숙사 앞의 도로는 서울로 치면 강변북로 같은 도로였고, 대부분 자동차들이 거의 막힘없이 다니는 도로였다. 그런데 간혹 미스테리하게 막히는 경우가 생기곤 했는데, 그 중 한 가지 원인은 바로 건너편 찰스강에 살고 있던 거위들이 갑자기 그 도로에 뛰어드는 경우였다. 거위는 자동차보다 작으니 별 영향이 없을 것 같은데, 그저 그 작은발 하나를 도로에 내딛는 것만으로 도로 전체의 교통 흐름에 영향을 준 것이다. 


결정질 무기물을 다루는 재료공학에서는 stacking fault 라는 개념을 배운다. 가장 흔한 케이스는 면심입방구조 (Face-centered cubic, FCC)와 육방정계 (Hexagonal Close-Packed)의 차이에서 보인다. 예를 들어 두 구조 모두 1층을 이루는 평면에는 구형 입자가 다닥다닥 붙어 평면을 채우고 (이 평면을 A평면이라고 하자), 2층에서는 1층에서 평면을 채운 구형 입자의 움푹한 공간에 다시 구형입자가 충진되는 형식으로 2층을 이루는 평면을 채운다 (이 평면을 B평면이라고 하자). 문제는 3층부터다. HCP는 3층의 평면을 1층과 동일하게 채우는데, 그러면 A-B-A-B 이렇게 계속 아파트의 층수가 올라가는 형태로 3차원 결정 구조가 만들어진다. 그런데 FCC는 3층이 A평면이 아니라, C평면이라는 새로운 배열이 끼어들기 시작한다. 그리고 나서 다시 4층부터 A평면으로 돌아오는 구조. 그래서 A-B-C-A-B-C 이런 형태로 3차원 결정 구조를 형성한다. 겉으로 보면 큰 차이가 없는 것 같은데, 3차원이 된 후 부터는 FCC와 HCP 사이에는 대칭성의 차이가 생긴다. 이 차이 때문에 결정을 이루는 원자가 같은 종류라고 해도 이들의 물성이 달라진다. 예를 들어 광특성이나 전기적 특성, 심지어 화학적 특성도 달라질 수 있다. 


바닥에 놓은 이물질로 인해 벽돌 담장이 불안정해지는 모습


층층이 쌓이는 방식으로 어떤 결정질 소재가 만들어지는 경우를 생각해 보자. 이런 소재는 결정 성장 속도가 잘 통제되고, 결정을 이루는 소재가 단일할 경우 큰 문제 없이 잘 성장하여 고품질의 결정질 소재를 만들어낸다. 문제는 결정 성장 속도가 최적화되지 않는 상황 혹은 성질이 다른 원자가 끼어드는 경우다. 첨부한 벽돌 담장 사진처럼, 가장 아래 층에 아주 작은 이물질이 끼어드는 경우, 전체 구조에는 별 이상이 없을 것 같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 영향은 벽돌이 쌓이는 담장 전체에 대해 퍼져 나간다. 이렇게 결정질 소재에 생긴 defect의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결정을 이루던 원자들은 그 defect 주변에 새로운 층을 만드는데, 이 이물질은 원래의 원자들과는 성질도 다르고 무엇보다 특성 크기가 다르기 때문에 결국 움푹 파인 아스팔트 도로에 억지로 땜빵 아스팔트를 바른 것 같은 양상이 나타난다. 주로 dislocation이나 disclination 등의 defect이 그래서 발생한다.


문제는 이러한 defect이 발생할 경우, 원래의 소재 성질이 다 발현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물리적 성질 중에서 전기적, 광학적, 그리고 기계적 성질이 달라질 수 있다. 특히 결정질 소재를 이용하여 전기적 전달 특성을 강화하고자 하는 경우라면, 이러한 defect은 그것을 방해하는 요소가 되는 경우가 빈번하다. 3차선 도로에 갑자기 1차선을 통제하는 공사장이 생기는 것과 비슷한 뉘앙스라고 생각하면 된다. 3차선이 2차선으로 줄어들면 전반적인 통행 속도가 크게 감소하듯, 결정성 소재에 defect이 생겨나면 전달 특성이 저하되고, 이는 전기적 신호를 전달하거나 제어해야 하는 소자 입장에서는 별로 좋지 않은 특성이 된다.


누군가는 그 작은 이물질이 뭐 그리 중요하냐고 반문하기도 하고 그렇게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납득할 수 없다고도 한다. 그런데 그 작은 이물질로 인해 벽돌 담장의 형태가 어그러지고, 결국 작은 충격에도 그 담장이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은 엄연한 현실이다. 물론 인간이 만드는 시스템은 이러한 작은 이물질 같은 노이즈에 늘 노출되어 있으므로 그것에 대해 충분히 강건하게 설계하기 마련이므로, 그렇게 간단하게 시스템이 바로 붕괴에 이르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그 이물질이 자연스럽게 생기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인위적인 과정에 의해 불필요하게 생기는 경우라면, 굳이 감내하지 않아도 되는 비용이 생겨나고 에너지와 자원도 추가적으로 소모된다. 그것은 별로 바람직한 상황은 아닐 것이다.


작은 이물질이 으레 생기는 것이고 그것에 대해 시스템이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범위에서 대비하고 있다면 그 이물질로 인해 생기는 영향은 시스템의 제어 가능 범위 내에서 통제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예상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 그리고 갑자기 불필요하게 생긴 이물질이라면 시스템이 그것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성능이 저하되는 것을 겪게 될 수 밖에 없다. 이것을 사회적 맥락으로 생각해보면, 자신이 생각컨대 작은 교란 요소 정도라고 생각했던 것도 결국 기존의 시스템에 대해서는 생각 이상의 큰 부담, 부하를 줄 수 있다는 것도 생각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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