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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석준 Seok Joon Kwon Jun 01. 2022

호기심은 소중하다

호기심의 순수성을 해치는 모든 것에 반대한다.

큰애가 최근 아두이노에 빠져서 열심히 이것저것 만지는 것 같은데, 그 좋아하는 유튜브 지식스토리도 스킵하며 아두이노 강좌를 보면서 독학하고 있다. 내가 국딩 (아... 아닙니다 그럴 리가요 초딩이죠) 시절에도 아두이노 까지는 아니더라도, 납땜 키트가 있긴 했다. 그것으로 라디오부터 시작해서 간단한 스위치, 그리고 회로도 만들 수 있는 확장판 키트, 과학상자와 연결할 수 있는 키트도 있었던 기억이 난다. 그때와 지금의 차이점이라면 그때는 선배들 하는 거 어깨너머로 흘깃거리든지, 조잡한 설명서 보면서 이것저것 해 보는 수준이었고, 지금은 아무 때나 유튜브 클릭해서 보고 또 보면서 이것저것 실습해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아 그리고 그때는 그런 키트가 꽤 비싼 축에 속한 것이어서 부모님께 함부로 사달라고 이야기할 수는 없었다. 나는 감사하게도 이웃집 형이 쓰던 것을 물려받은 것도 있고, 학교 선생님이 주신 것도 있어서 즐겁게 놀았던 기억이 난다.


큰애가 서보 모터 제어를 실습하면서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이길래, 변수를 제대로 익히며 하는지 슬쩍 들여다봤는데, 변수 선언, loop, 뭐 이런 거 원리를 잘 몰라도 그냥 그저 흡수하면서 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 모습을 보며 요즘 세대, 혹은 그다음 세대들의 학습은 결국 이론으로 시작하는 구시대적인 공부보다는, 당장 즉석에서 당길 때 필이 올 때 그저 즐기면서 무작정 시작하는 것이 더 중요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두이노를 공부하는 것은 회로 기판에 새겨진 전자회로의 동작을 제어해서 이런저런 기능을 하는 장치를 만들고 싶어서이지, 무슨 소프트웨어 공학을 공부하거나 자료구조론을 공부하거나 제어이론을 공부하려고 배우는 것은 아닐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아두이노로 시작해서 나중에 중고등학교, 혹은 대학에 진학하면 보다 전문적인 내용으로 진입할 수 있겠지만, 지금으로서는 그저 흥미를 유지하고 재미만 느낄 수 있으면 된다고 생각한다.


매년 STEAM R&E 심사를 가는데, 심사하는 팀의 적어도 1/3 이상은 반드시 아두이노와 라즈베리 파이 등의 간단한 키트를 이용하여 이런저런 기능을 하는 장치를 만드는 프로젝트를 한다. 간단한 센서, 지문 인식기, DB 연동되는 간단한 서버 등을 만들며 각자 할 수 있는 만큼 프로젝트를 수행한다. 이들 중 진짜 즐기면서 하는 팀과 그렇지 않은 팀을 구별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즐기면서 하는 팀은 시행착오를 거친 과정을 보고서에 쓴다. 이래서 안 되던 것을 이렇게 해서 되게 했는데, 그것을 기반으로 더 기능을 확장했다 이런 식의 내용이 보고서 연구 활동에 포함된다. 그렇지 않은 팀은 누가 봐도 구글링 하면 나올 것 같은 프로젝트를 거의 그대로 베껴서 변수 이름만 바꿔서 동작하게 만든 것을 보인다. 당연히 잘 돌아가고 코드도 그럴싸하지만 이 친구들이 무엇을 배우고 익혔는지는 보이지 않는다. 심사 점수도 당연히 전자의 학생들이 더 잘 받을 수밖에 없다.


원래 흥미로 시작해서 호기심을 만족시키는 방향으로 연구하는 것이 가장 오래 지속될 수 있고 가장 생산성 높은 방향일 것이라 생각한다. 자발적으로 주제를 발굴하고, 연구에 필요한 도구를 찾아내고, 주변의 고수를 수소문해서 가르침을 얻기 위해 먼 길 마다하지 않고 이동하고, 밤낮없이 필이 생기면 바로 연구를 재개하고, 자신의 아이디어를 나누면서 피드백받는 것을 즐기는 사람들이 좋은 연구자가 될 수 있다. 이러한 연구자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 분야를 전공하는 대학생, 대학원생일 필요는 없고, 중고등학생, 심지어 초등학생도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어린 학생들일수록 필수적으로 알아야 할 내용이 부족하여 일정 수준까지 가는 데에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고 더 많은 시행착오를 겪게 되겠지만, 어쨌든 나이와 경력은 크게 중요한 요소는 아니다.


이러한 호기심과 흥미라는, 어찌 보면 가장 순수한 인간의 지성을 스펙 쌓기라는 이유로 훼손하는 것은 그래서 더더욱 안타깝고 화가 나는 부분이다. 지금도 많은 학생들이 여름에 평가받을 steam r&e 프로젝트를 위해 주말을 쪼개가며 열심히 삽질을 거듭하고 있을 것인데, 그들이 열심을 다해 가져온 결과물을, 누군가는 돈으로 쉽게 사서 자신의 것인 양 포장할 수 있다면 열심을 다한 학생들의 시간과 호기심, 그리고 연구자가 되고픈 마음에는 커다란 상처가 될 것이다. 그것도 세상의 일부고, 진짜 연구자라면 그런 비교에 굴하지 말고 계속 자신의 연구를 하면 된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겠으나, 다른 사람도 아니고 아직 미성년인 학생들이라면 이러한 현실은 상처를 넘어 이제 막 싹이 돋아나고 있던 연구자로서의 희망을 꺾는 일이 될 수도 있다.


많은 학생들이 여전히 여름방학을 다양한 steam r&e 활동으로 불태울 것이라 생각하는데, 모쪼록 주변 신경 쓰지 말고 원래 가지고 있던 그 호기심을 충족시키고 배움의 욕심을 채울 수 있는 시간을 보냈으면 한다. 호기심은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만드는 요소 중 하나라고 생각하며, 이 호기심을 소중히 가꾸는 학생들은 그것을 더 크게 자라게 만들 수 있는 기회를 부여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올해도 어떤 학생들이 어떤 작품을 또 가져올지 기대된다. 올해는 더더욱 비판과 부정적인 코멘트보다는, 격려와 발전적인 코멘트를 줌으로써 학생들의 기운을 북돋아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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