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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석준 Seok Joon Kwon Jun 01. 2022

통제되지 않는 폭력의 위험성

폭력을 막기 위해 더 큰 폭력이 정당화되는가?

미국에서 비극적인 총기사고 뉴스가 나올 때마다 나는 예전 박사과정 시절 영어 수업을 가르치던 선생님과의 대화가 생각난다.


나: 왜 미국은 총기를 그토록 중시하는 건가요? 총기회사의 로비 때문인가요?

선: 그건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야. 애초에 미국이라는 나라가 개척 시대부터 지금까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생각해야 해.

나: 그건 이해하고 있지만 이렇게 총기사고가 날 때마다 결국 아무것도 못 하는 것은 이해가 안 됩니다.

선: 그렇게 보일 수 있어. 그리고 나도 총기의 무분별한 활용에는 반대야. 그런데 미국인들 중 많은 사람들은 아마도 '총기 = 자유'라는 공식을 철석같이 믿고 있기 때문에 조치를 취하는 것은 매우 어려워.

나: 헌법을 뜯어고치면 되지 않을까요?

선: 이론적으로는 그렇겠지. 그렇지만 헌법을 뜯어고치는 순간 미국에서는 내전이 날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총기 소지 금지를 시민의 자유에 대한 통제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많을 거야.

나: 그러면 계속 이렇게 총기사고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무작위로 사망하는 사건을 손 놓고 보고 있어야 하나요?

선: 그 부분은 나도 유감이야. 정말 나도 시민사회가 책임감 있게 총기를 제어했으면 해. 그렇지만 이미 각 가정에는 총기가 너무 많이 보급되었고, 총알의 가격은 너무도 저렴해. 여기 MA주에서는 비교적 어렵지만 남부 쪽으로 가면 그냥 마트에서도 팔 정도니까. 


여전히 이해하기 어렵지만 미국의 특수성은 이런 셈이다.


미국 외 다른 나라: 총기 사고 -> 시민 안전 위협 요소 -> 통제

미국: 총기 사고 -> 시민 안전 위협 -> 더 많은 총기로 서로 견제


미국이라는 나라의 이러한 특수성을 생각할 때, 이번 총기사고로 인한 많은 어린이들의 희생 같은 비극적인 사고가 반복되어도 아마도 총기 소유 금지 법안이 통과될 가능성은 별로 없을 것 같다. 실제로 찾아보니 올 한 해만 해도 겨우 5개월밖에 안 되는 기간 동안 전미에서 학교 총격 사고는 무려 30건이나 일어났다고 한다. 총기 소유 금지 법안이 통과될 가능성이 낮은 이유는 무엇일까? 위의 영어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총기 소유를 시민의 기본권과 동일시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이 있고, 무엇보다 미국 전체에 4억 정이 넘게 풀린 총기를 일일이 단속한다는 것도 사실상 불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예전에 어떤 미디어에서 본 적이 있는 뉴스인데, 주로 미국에서도 도시권 사람들은 총기 규제에 비교적 찬성하는 반면 suburb이나 시골 지역, 산골 지역 같은 외딴곳에 사는 사람들은 반발하는 비율이 높아진다고 한다. 여전히 자신과 가족의 안위를 공권력에만 의존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믿기 때문이며 (예를 들어 911에 전화해도 5분 내로 도착할 것이라는 확신이 없을 경우), 시골 같은 경우 심지어 곰 같은 야생동물로부터 자신 혹은 가축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총기는 필수적인 자위 도구일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의견과 통계도 있다. 만약 총기 규제 법안이 통과되더라도, 여전히 범죄자들은 다양한 경로로 총기를 확보할 것인데, 막상 피해자가 될 사람들은 총기가 없다면 그나마 최소한의 보호 도구마저 없는 상황이 될 것이라 결국 범죄 피해가 더 늘어날 것이라는 점이다. 미국의 총기 암시장은 이미 매년 수백억 달러에 달한다는 조사가 있으며, 심지어 인터넷에는 3D 프린터로 조잡한 수준이긴 하지만 어쨌든 사람을 죽일 수 있을 정도로 파괴력을 갖는 총기를 집에서 만들 수 있는 설계도도 쉽게 구할 수 있다. 금속이 아니라 플라스틱으로 만들어도 한 두 번 정도는 발사할 수 있을 정도의 총기가 집 차고에서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다. 아마존에서는 총기 조립에 필요한 갖가지 부품을 따로 구매하여 집에서 누구나 조립할 수도 있고, 간단한 손재주가 있는 사람들이라면 총알이 필요 없는 볼트액션 총기를 차고에서 만들 수도 있다. 충분히 사람을 죽일 수 있는 파괴력을 갖게 만들 수 있을 정도다. 총알을 통제한다고 해도 총알을 만드는 것 역시 어렵지 않으며, 라이선스를 통제한다고 해도 암시장에서 identity가 없는 총기의 활용을 막을 방도가 없다.


회의적인 사람들은 설사 헌법이 수정되어 시민들의 총기 소유가 불법이 된다고 해도, 모든 총기를 수거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고, 결국 총기가 없는 사람들은 총기를 가진 범죄자들에게 더더욱 쉬운 타깃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해마나 총기로 인한 자력 구제 케이스가 5-8만 건 정도 나온다고 한다 (chrome-extension://efaidnbmnnnibpcajpcglclefindmkaj/https://scholarlycommons.law.northwestern.edu/cgi/viewcontent.cgi?referer=https://en.wikipedia.org/&httpsredir=1&article=6938&context=jclc). 이는 다른 말로 하면 시민들의 총기 소유가 불법화되었을 경우, 5-8만 명 정도의 사상자가 나올 수도 있었다는 이야기다. 서로가 총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높으니 아무래도 1:1 사고에서는 예방적 효과가 없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사건처럼 한 명의 사이코패스가 정말 마음먹고 자동 소총을 이용하여 무차별 난사하는 경우는 1:1이 아니라 1:N이 되기 때문에 대형 참사가 언제든 발생할 수 있다. 지금 미국의 많은 시민들이 분노하고 있는 지점은 권총이 아닌 자동 소총, 특히 밀스펙에 버금가는 전쟁용 소총을 어떻게 18세 소년이 구입하여 학교 안으로까지 가지고 들어올 수 있었냐는 점이다. 


미국이 '총기 = 자유'라는 사회적 norm을 폐기하고, 헌법을 수정하지 않는 한, 미국의 사회적 불안 요소는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 설사 헌법이 수정되고, 총기 규제 법안이 통과된다고 해도 각 주에서는 격렬한 저항에 부딪힐 것이고, 심지어 자경단 중심의 내란이 발생할 수도 있을 것이다. 200년이 훌쩍 넘어가는 미국의 역사 내내 워낙 해묵은 문제고, 사실 정치적으로도 첨예한 주제라 풀릴 방도가 없어 보이는 상황이다. 그러니 이번 같은 비극적인 사건이 또 발생한다고 해도 그로 인한 많은 사람들의 아픔과는 상관없이 또 미국에서는 총기 자유 목소리는 꺼지지 않을 것이며 전미총기협회와 총기 회사들의 로비는 외려 더욱 거세질 것이다. 미국이 스스로 무너지는 계기가 생길 수 있다면 그중 하나는 아마도 이러한 무분별한 총기 사용에 대한 통제 실패에서 비롯될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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