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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석준 Seok Joon Kwon Jun 28. 2022

책과 그 추천사

추천사는 주례사가 아니다.

어떤 책이라고 꼭 집어 이야기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책들의 추천사는 대개 '주례사 추천사'인 경우가 많다. 상찬이 가득하고, 그 책을 안 읽는 사람이 손해를 보는 것이라는 느낌이 들 정도로 그 책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표현들로 점철되어 있다. 심지어 저자나 번역자의 이름보다, 추천인의 이름을 더 크게 박아 넣거나 아예 띠지로 둘러서 공격적인 마케팅 도구로 쓰는 경우도 있다.


내 책도 한 권씩 두 권씩 언젠가 세상에 나올 것이고, 또 (출판사의 부탁에 못 이겨) 알량한 인맥을 동원하여 누군가에게 읍소하면서 추천사를 부탁하면, 그 추천인은 세상 담백하고 드라이하게만 추천사를 써줄 것은 아닐 것이다. 따라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 자체가 좀 우스운 일일 수 있겠다. 만약 내가 누군가에게 추천사를 부탁했는데, 그 추천인이 책의 좋은 부분과 아쉬운 부분, 장점과 단점을 균형 있게만 써 준다면 나는 주례사 추천사를 써 준 분보다 더 고마워할 것이다. 출판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겠지만.


어쨌든 여전히 많은 책들, 특히 과학교양서라 불리는 책들은 제대로 평가된 추천사를 달고 나오는 경우가 별로 없는 것 같다. 사실 생각해 보면 추천사를 쓰는 사람들은 이름깨나 알려진, 적어도 수만 명의 팔로워를 둔 SNS 셀럽 정도는 되는 사람들일 것이고, 출판사는 신간 마케팅의 일환으로 추천인을 섭외하여 비용을 지불하고 추천사를 받는 것일 것이니 자본주의 사회에서 지불받은 비용에 대해 적절한 미사여구가 가미된 적절한 어조의 추천사는 예견된 상품이기도 하다. 주례사 추천사가 붙는다고 해도 그 책이 다 수준 미달이라는 뜻도 아니고, 주례사 추천사를 쓴 사람들이 이른바 지적 게으름을 피웠다고 비난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왜 그렇게 많은 책들의 추천사가 대부분 칭찬 일색으로 흐르는지는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과학교양서의 추천사는 대개 교수들이 쓴다. 이왕 쓰는 것, 그 분야를 오래 연구한 학자들이 쓰는 것이 제일 좋긴 하겠으나, 웬일인지 그 분야와 별로 관련 없는 셀럽 학자들의 추천사가 박히는 경우가 제법 있다. 물론 그런 셀럽 과학자들의 추천사는 대개 겉핥기 추천사다. 바빠서 그럴 수도 있겠고, 잘 모르는 분야라서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나도 예전에 누군가로부터 내가 잘 모르는 분야의 신간에 대한 추천사를 부탁받은 적이 있다. 책을 읽어 보니 과연 내가 잘 모르는 분야가 확실했고, 읽어도 머리에 별로 내용이 남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서평도 쓸까 말까 수준인데 남에게 이 책 한 번 읽어 보시라는 이야기를 할 정도의 추천사를 쓸 자신이 도저히 나지 않았다. 어렵게 추천사 거절의 말씀을 드린 후, 그 지인과는 좀 소원해졌는데 만약 그 지인과의 관계만 생각하여 추천사를 억지로 썼다면 굉장히 찜찜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예전에 각 잡고 비평했던 어떤 과학 교양서가 있다. 그때는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정말 각 잡고 비평했었는데,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 책을 추천한 다른 과학자들은 왜 그 책의 허술한 부분, 특히 비과학적인 부분을 캐치하지 못했는지, 혹은 캐치를 했을 것 같은데 왜 추천사를 상찬 일색으로 쓰면서 강력하게 책을 권했는지 많이 의아했다. 그냥 추천사를 잘 써 주는 것이 추천인의 의무이자 미덕이라고 생각해서 그랬으려니 생각하지만, 사실 교수들이 쓰는 추천사는 그 분야에 문외한인 일반인들에게는 일종의 보증수표 같은 뉘앙스를 주기 때문에 정말 주의 깊게 써야 한다. 만약 그렇게 쓰지 못할 것 같다면 추천사는 그냥 안 쓰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어차피 점점 사람들은 책을 멀리하고 독서를 싫어하는 추세다. 다 같이 공멸해 가는 한국의 도서 시장에서 책 한 권 더 팔아보겠다고 더 읽히게 만들겠다고 서로 돕는 차원에서 그깟 추천사 하나 좀 과장되게 잘 써주면 뭐가 그리 덧나겠냐마는, 누군가는 또 그 책 한 권으로 그 분야의 세계 전체를 안다고 생각할 수 있고, 누군가는 또 그 추천사 한 줄에 힘입어 커리어를 그 분야로 정할 수도 있고, 또 누군가는 그 추천사를 통해 읽은 책을 바탕으로 나라의 정책을 좌지우지할 결정을 할 수도 있는 것이다. 책의 영향력이 예전만 같지 않다고들 하지만, 여전히 책을 읽는 사람은 있고, 책을 통해 세상을 만나는 사람도 있다. 


다른 분야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사실 관계에는 조금 더 주의를 기울여야 하고, 논리의 점검에는 더더욱 엄밀해야 할 과학서, 특히 과학교양서의 추천사는 한 편으로는 감수에 가까울 정도의 추천사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한다. 물론 얼마 되지도 않는 수고비에 그 정도 시간과 노력을 투입할 학자들이 많지는 않겠지만, 그 역시 봉사의 일환이라면 그렇게 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생각한다.


추천사에 대해 여러 의견이 있을 수 있겠으나 내가 생각하는 바람직한 추천사는 대략 이런 것이다. 예를 들어 내가 '패턴의 과학: 자연에서 공학까지'라는 교양과학서를 썼다고 가정해 보자 (정말 쓰고 싶은 책이다. 진도가 나가야 하는데....). 이 분야를 잘 아는 전문가가 이 책을 잘 읽고 추천사를 쓴다면 이렇게 써 줬으면 좋지 않을까 한다.


'패턴의 과학: 자연에서 공학까지'는 다양한 패턴을 다룬다. 우리가 주변에서 흔히 관찰할 수 있는 식물의 패턴부터 다양한 지형에 수놓아진 패턴까지, 그리고 인간이 만들어낸 시스템 속에 숨겨진 패턴을 나노스케일부터 우주선의 스케일까지 다룬다. 책의 제목에 과학이라는 키워드가 있는 것에서도 알 수 있듯, 이 책은 단순히 패턴을 분류하거나 소개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패턴의 형성 메커니즘에 초점을 맞추어 어떤 물리적, 화학적 원리가 숨어 있는지,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수학적 방법으로 표현할 수 있는지를 잘 보여 준다. 풍부한 삽화와 더불어 저자가 직접 만들어 낸 이미지들이 책 곳곳에서 독자의 이해를 돕는다. 부록에는 저자가 사용한 코드가 들어 있어 관심 있는 독자들은 직접 실행해 볼 수 있다. 이와 비슷한 류의 책들 (예를 들어 필립 볼의 자연의 패턴 같은 책)이 이미 출판되었고 많이 읽히기도 했지만 기존의 책과 다른 점은 조금 더 깊숙이 들어가서 패턴의 밑바닥에 놓인 원리를 탐색하고 있다는 점이다. 다만 이 책은 지나치게 패턴의 과학적 원리에 치중한 나머지, 다소 산만한 전개를 하고 있는 부분은 아쉬운 부분이다. 조금 더 짜임새 있게 (예를 들어 스케일 별로, 재료 별로, 응용 별로 등) 구성을 했으면 어땠을까 한다. 또한 어떤 패턴에 대한 소개는 지나치게 자세한 반면, 어떤 패턴에 대한 소개는 주마간산 격으로 지나가는 불균형 역시 아쉬운 부분이다. 수학적 배경이 탄탄하지 않은 독자들에게는 다소 어려운 책일 수 있으며, 곳곳에서 충분히 해설되지 않은 전문 용어들은 독자들의 독서 호흡을 방해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연과 공학에서 보이는 패턴에 대한 탐색과 저자의 연구 결과를 조합한 부분은 눈여겨 볼만한 부분이며, 그간 우리가 별생각 없이 지나쳐 왔던 많은 대상 속에도 여전히 패턴이 자리 잡고 있음을 재발견할 수 있는 부분은 읽는 이들에게는 즐거움을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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