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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석준 Seok Joon Kwon Jun 28. 2022

막스 리히터의 음악

편곡과 재작곡 사이 그 어딘가

독일 태생의 영국 작곡가 막스 리히터 (Max Richter)는 현대음악 작곡자로 알려져 있으나, 최근에는 각종 미디어의 배경음악 혹은 OST를 작곡하면서 활동 범위를 넓혀가고 있다. 애초에 음악적 훈련을 클래식으로 (영국 왕립음악원 졸업) 받았기 때문에 그가 작곡한 작품들 속에는 전반적으로 고전 음악의 분위기가 살아 있다. 그렇지만 단순히 고전음악의 분위만 살리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그것을 오히려 분해한 다음 재조합하여 곡을 만드는 것에도 능하다. 


그가 2012년에 발표한 앨범은 비발디의 사계를 재해석하는 것을 넘어 재작곡 (recompose)한 작품이라고 스스로 이야기하고 있는 앨범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oXXm0ppMvT0


링크한 유튜브는 그 앨범 중 Spring 1이라는 제목을 가진 곡이다. 곡을 들어 보면 알겠지만 비발디의 사계 중 봄의 모티프가 곡의 전반에 깔려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발디의 명곡의 흔적은 모티프를 제외하고는 발견하기 어렵다. 막스 리히터 자신의 표현을 빌리자면, 비발디 작품의 25%만 남겨두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1/4만 남기고 나머지 3/4에서 리히터의 재해석이 들어간 셈이다. 그 재해석을 재작곡이라고 불러도 될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제는 햇빛 생생한 들판을 연상케 하던 생동감으로만 해석되던 오리지널 곡은, 봄비, 봄바람, 새싹, 시냇물, 차가운 꽃샘추위, 비를 맞고 있는 새순 등 다양한 심상을 연상할 수 있는 곡으로 다가오는 듯하다.


사실 대중에게 너무도 유명한 곡을 재해석하는 연주자들, 작곡자들은 많이 있다. 다만 고전 그 자체를 파괴하지 않는 선에서 대부분의 재해석 시도가 멈춘다. 물고 뜯고 맛보고 하는 것에 있어 선을 지키는 셈이다. 이에 반해 리히터의 재작곡은 철저하게 해체하며 전혀 다른 맛을 내는 듯하다. 예전의 시도들이 스파게티 소스는 놔둔 채 면의 타입만 바꾼 듯했다면, 리히터의 시도는 면의 타입은 신경 쓰지 않은 채 소스를 바꾼 것 같은 느낌이다. 혹은 면을 소스로 만들고 소스를 면으로 만든 듯한 느낌이다. 이런 해석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별로라고 느끼는 사람들도 있을 텐데, 어쨌든 참신한 시도를 계속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러한 재해석은 늘 환영한다.


리히터를 잘 아는 팬들이라면 그가 작곡에 참여한 영화음악 컨택트 (원제: Arrival 2016년작, 감독 드뇌 빌뇌브)의 OST 중 'On the Nature of Daylight'를 좋아할 것이라 생각한다. 영화의 플롯 상, 이 영화는 흔한 SF영화처럼 단순히 외계인과의 contact에만 초점을 맞추지는 않는다. 주인공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계속 스위치백 하며 교차로 보여 주는데, 시간의 돌이킬 수 없는 화살 속에서 이미 결말을 알고 있는 자신의 인생 소설을 스스로 만들어가고 읽고 있는 주인공의 심리를 묘사하는 것에도 공을 들인다. 그러한 장면 곳곳에 이 음악이 깔리는데 차분한 서정과 더불어 미지의 대상과의 컨택을 담담하게 묘사하는데 일조하고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4J8hV_8a8y0


습하고 더워지는 초여름, 막스 리히터의 음악으로 저녁이 지나가도록 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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