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권석준 Seok Joon Kwon Jun 28. 2022

위그든 씨의 반도체

혹은 반도체 깎던 노인


(구) LG 반도체에서 임원 하시다가 우리 과에 새로 부임하신 K교수님이 내가 학부 3학년 때 이동현상 관련 과목들 (유체역학, 열/물질 전달)을 가르치셨다. 아마도 초임교수 셔서 그런지 굉장히 열심히 강의하셨던 기억이 나는데, 이론과 더불어 당신께서 반도체 화학공정 현장에서 얻은 노하우를 덧입혀 설명해 주셨던 기억이 인상 깊게 남아 있다. 예를 들어 물질 전달에 대한 이론을 설명하시면서 확산 (diffusion)의 메커니즘, 그리고 kinetics의 특징을 설명해주셨던 대목에서는 이런 케이스 이야기를 하셨던 기억이 난다. 


"제가 회사에 있을 때 했던 일 중에 반도체 웨이퍼 패터닝이 있었어요. 패터닝 공정에서는 에칭 공정도 매우 중요합니다. 그런데 에칭 할 때는 에칭 용액을 써야 하는데, 이 에칭 성분이 웨이퍼 위의 특정 박막 겉에서, 그리고 속으로 어떻게 들어가는지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isotropic diffusion이라면 에칭 된 단면은 대략 반구 (hemisphere)처럼 될 것이지만, 실제 공정에서 나와야 하는 패턴은 소자 작동을 위해 직각에 가까운 형상이 나와야 하거든요.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isotropic etching을 anisotropic etching처럼 만들 수 있을까요? 여러분이 지금 수업 시간에 배웠던 확산 kinetics를 오히려 역으로 이용하면 됩니다. 그냥 평평한 박막에서는 박막 위에 올라온 에칭 이온들의 확산이 두께 방향으로 균일할 것이라 가정한다면, 에칭 된 이후의 단면을 직각에 가깝게 만들려면 애초부터 그 박막의 형상을 미리 디자인하면 되겠죠? 그렇지만 최종 형상의 특정한 디테일에 따라 이 사전 디자인은 굉장히 어려운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특히 확산과 화학반응이 동시에 일어나는 에칭 공정에서는 더 그렇습니다. 반도체 회사에서 필요로 하는 기술은 굉장히 많습니다만, 이러한 에칭 같은 단위 공정에서도 제가 말씀드린 것처럼 지극히 기초적이고도 중요한 학문적 원리와 이론이 매우 중요합니다. 제가 이끌었던 팀은 바로 이 에칭 문제를 해결하여 차세대 DRAM 공정의 주요 문제 중 하나를 해결하기도 했습니다."


이 에피소드가 아직도 기억에 남는 것은 교수님께서 직접 판서로 그림을 그려 주시면서 에칭의 방향 제어를 위해 확산 process를 어떻게 제어할 수 있을지를 trial-and-error 방식으로 설명해주시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 수업에서 나는 단순히 이론만 이해하는 것을 넘어, 그것을 실제 공정에 활용할 줄 아는 것이 엔지니어에게 얼마나 중요한가를 배울 수 있었다. 내가 지금 학부생들에게 자꾸 실무 case study 문제를 내주고 수업시간에도 언급하는 것 역시 이 교수님께 일부 영향을 받은 것이기도 하다. 


Gunn Kim 교수님께서도 언급하셨지만, 반도체 산업 같은 첨단 산업의 이면에는 여전히 기초학문의 펀더멘털이 굳건히 자리 잡고 있어야 한다. 반도체 화학공정을 하나씩 자세하게 뜯어보면 결국 유체역학 제어, 화학반응의 제어, 광화학 반응의 제어, 열과 물질의 전달의 게임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PR coating은 inorganic substrate위에 Non-Newtonian fluid를 입히는 유체역학 process이며, 유체의 점도와 PR의 농도가 코팅 중에 실시간으로 변하므로 이들의 물성을 제어하고 재현할 수 있어야 PR film의 두께 uniformity를 제어할 수 있다. PR film thickness가 제대로 제어되지 않으면 이후 공정에서 패턴의 품질은 저하될 수밖에 없다. coating 된 PR film이 UV를 맞아 물성이 바뀌는 과정에서는 빛과 유기물의 광화학 반응 평형 상수와 kinetics constant에 대한 이해가 매우 중요하다. 특히 빛을 받은 부분에서 polymer chain이 어떻게 rigidity가 바뀌고, configuration이 바뀌고, radius of gyration 등이 바뀌는지를 이해할 수 있어야 패턴의 정밀도 한계를 미리 예측할 수 있다. 패터닝된 웨이퍼 위에 본격적으로 금속 박막이나 금속산화물 박막을 반복적으로 적층 시킨 후, 실제 회로 작동 과정에서 발생하는 열을 어떻게 빼낼 것인가 역시 굉장히 중요한 문제다. 예전에 트랜지스터 밀도가 그리 높지 않았던 시절에는 이 문제는 아주 중요한 문제는 아니었지만, 10 나노 이하급 공정에서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제 금속산화물 절연체 두께는 수 나노미터까지 얇아지고, 고성능 로직 칩 동작을 위해 투입된 대량의 전기 에너지 중 일부가 저항 성분 및 불균일한 표면/계면에서의 phonon scattering에 의해 열로 바뀌는 경우 예기치 못한 문제가 대량으로 발생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물질의 열팽창 계수 차이로 인해 계면에 instability (계면에서의 crack, buckling, fold, delamination 같은 deformation)가 누적되거나 온도에 의존하는 물성의 변화 (예를 들어 전기 저항이나 계면에너지, charge carrier mobility 등)로 인해 칩의 성능이 저하되거나 수명이 짧아질 수 있다. 그래서 혹시나 발생할 수 있는 열을 빨리 빼내는 것이 중요한데, 이는 열전달계수 (thermal diffusivity)를 얼마나 높일 수 있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물질이 그냥 3차원 덩어리일 때와 아주 얇은 박막일 때의 열전달계수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나노 스케일로 패터닝된 박막에서의 열전달은 두께 방향인지, plane 방향인지에 따라 확연히 달라지는 양상을 갖는데, 이는 phonon, polaron 같은 준입자 (quasi-particles)의 물성이 나노 스케일에서 특이한 성질을 갖기 때문이기도 하다. 열전달계수는 격자 phonon의 dispersion과 자유 전자의 밀도 및 electronic structure의 함수로 결정되는데, 온도에 따라 격자 상수가 변하는 경우 (열팽창에 의해), 이 dispersion과 electronic  structure가 모두 바뀐다. 그래서 고체물리학에서도 상당히 어려운 문제에 속하며, 실험과 계산이 잘 맞지 않는 문제이기도 하다. 


기술적으로 아무리 회사가 첨단과 표준을 주도하고 있다고 해도 결국 기술의 혁신을 위해서는 공정이든 소재든, 안 가 본 영역을 탐색해야 하고, 인류가 지금까지 쌓아 온 과학적 방법론과 지식에 기대어 그 영역을 탐험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바로 이러한 펀더멘털 한 이론과 모델, 그리고 다양한 실험과 시뮬레이션이다. 반도체 소재와 공정은 예전에도 그랬지만, 지금 같은 10 나노 이하 공정 시대에서는 더더욱 기초과학에 대한 보다 깊고 넓은 이해가 필수적이다. 전달 현상과 소재의 계면 현상, 소재의 결정구조와 dopant의 분포도, 확산 계수, 광화학반응 상수, 각종 물성의 온도 의존성,  stochastic process에서 생길 수 있는 bifurcation 등, 정말 오만가지 현상에 대한 보다 깊은 이해를 필요로 한다.  


그런데 유념할 부분이 있다. 주지하다시피, unmanned land는 말 그대로 아무도 탐색해 보지 않은 영역이다. 그나마 이론적으로 미리 방향 표시는 해둔 경우가 있으나 그 이론 계산치 혹은 예상치가 맞는다는 보장이 없다. 돌다리도 두들기듯 하나씩 다 실험해보고 재현해 봐야 한다. 논문으로 나가는 과학적인 연구 결과도 재현해 봐야 하는데, 하물며 수십억, 수백억 달러짜리 시장에 내놓아야 할 신제품의 성능을 좌지우지할 물성에 대한 이해가 재현이 안 되는 연구에 의존한다면 그 회사는 시장에서 퇴출될 수도 있다. unmanned land에서의 실험과 분석은 지난한 작업이며 당장의 성과로 연결되지 않더라도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기도 하다. 문제는 이러한 연구를 '반도체학과'를 졸업한 학부생들이 감당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학부 과정에서 배운 지식이 쓸모없지는 않겠으나, 적어도 과학적 사고 방법론으로 어느 정도 훈련받고 본인이 만든 데이터를 가공하여 커뮤니티에서 이해할 수 있고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으로 만드는 것을 경험한 전공자가 겨우 감당할 수 있을까 말까 한 수준일 것이다. 이런 부분은 굳이 특정 계약학과가 다 감당할 필요도 없으며, 실질적으로 감당도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오히려 산업의 거대한 테크트리와 난제의 카테고리와 접근 방식을 정리하여 그 난제에 가장 가까운 연구를 하고 있는 전문가들이 산업계와 더욱 긴밀하게 협업할 수 있도록 할 수 있어야 한다. 정부가 만약 이 부분에 대해 조금 더 진지한 접근을 하고 싶다면 바로 이러한 테크트리를 그리고 난제를 수집하고 중복 투자를 방지하되, 대학원 이상의 집중적인, 그리고 중장기적인 선제 펀더멘털 연구를 할 수 있는 과제를 출범시키는 것이다. 과제를 통해 대학원생의 양성 같은 1차적인 성과는 말할 것도 없이, 연구 과제에 파트너로 참여할 수 있는 관련 업체들과의 협업을 통해 이론과 실무가 결합된 노하우가 집적될 수 있다. 사실 이 부분이 제일 중요한 부분이다. 학교에서는 회사에서 쓸 수 있는 소재나 장비를 쉽게 활용하기 어려운데, 협업을 통하면 충분히 가능하다.


난제의 테크트리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정부는 반드시 관련 전문 협회와 학회와의 긴밀한 협의를 거쳐야 한다. 그 협의의 리더십을 협회나 학회에 맡기고 정부는 지원에 집중을 하는 것이 제일 효과적이다. 대신 협회와 학회는 단순히 연구과제의 양산에만 몰두할 것이 아니라, 테크트리의 일관성과 상호 연계성, 그리고 실무로의 연계까지 고려하여 그 체계를 다듬어야 한다. 당연히 그 과정에서 수많은 피드백이 이루어질 것이고 그러면서 조금씩 어떤 문제부터 학계와 산업계가 같이 다뤄볼 것인지가 드러나게 될 것이다. 


기초과학뿐만 아니라 엔지니어링에도 펀더멘털은 존재한다. 펀더멘털이 펀더멘털인 이유는 그것이 기초에 박혀 있으면서 굳건하게 그 자리를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소재가 바뀌고 공정이 바뀌어도 물리법칙은 거의 바뀌지 않으며, 원소주기율표의 원소 개수는 거의 정해져 있다. 물질의 물성을 예측하는 방법을 따라가면 결국 양자역학이고 조금 더 내려가면 양자장론인데, 적어도 양자장론이 틀리지 않는 한, 그로부터 예측되는 물성은 거의 틀림이 없다. (예를 들어 유전율, elastic modulus, absorption coefficient, charge career mobility 같은 중요한 물성들이 모두 다 예측될 수 있다.) 화학반응 상수 역시 반응 kinetic model, 더 나아가 볼츠만 수송 방정식 같은 모형이나 몬테카를로 방법, 분자동역학 시뮬레이션 같은 방법을 통해 모델링 될 수 있고, stochastic effect마저도 이해할 수 있다. 한 산업을 떠받치고 있는 이 깊고 넓은 펀더멘털을 하나의 프로그램에서 학부 4년 만에 다 커버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학부생이 4년간 3개 전공을 동시에 복수 전공한다고 해도 버거울 것이다. 따라서 특정 프로그램을 맞춤형으로 만드는 것보다는, 기존의 긴밀한 연관성을 갖는 전공들을 연계하여 마이크로 크레디트를 테크트리로 만들어 4+1, 4+2 년짜리 프로그램이라도 만드는 것이 그나마 현실적인 방안일 것이라 생각한다.


학부 과정에서 특정 산업을 타깃으로 열심히 테크 버즈 워드를 배우고 ppt를 수백 장 보는 수업을 반복한다고 해도 그 학생들이 졸업할 때쯤 되면 그간 배운 것은 아주 구식이 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특히 기술 주기가 짧은 첨단산업은 더더욱 그렇다. 딥러닝이 유행한다고 해서 딥러닝 학과를 만들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다. 4년간 딥러닝 관련 역사와 인공지능 방법론을 아무리 배우고 나온다 한들, 업계에서는 tf 2.0 쓰고 있는데 tf 1.0만 써먹겠다고 들어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급할수록 돌아가야 하고, 중요한 것일수록 뜸을 들여야 한다. 방망이는 잘 깎아야 써먹을 수 있고, 장은 충분히 묵혀야 맛을 낼 수 있다. 산업의 변화 속도가 빠르고 경쟁이 극심할수록 온고지신할 수 있는, 그리고 변화의 버스에서 잠시 내렸다가도 언제든 다시 탈 수 있는 자신감을 갖춘 인재를 기르는 것이 더 중요하다.

작가의 이전글 막스 리히터의 음악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