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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석준 Seok Joon Kwon Feb 21. 2023

학문의 흥망성쇠 사이클

교양과학서의 인기 순위로 살펴보는 흥망성쇠 그 이면

유명한 유튜버이자 아주 똑똑한 외국인 물리학자 페친이 자신이 펴낸 교양과학서 (주로 물리 관련)이 뇌과학 교양과학서에 밀려 인기 랭킹이 하락하고 있다는 불평을 늘어놓은 포스팅을 봤다. 어떤 미디어가 선정한 교양과학서 인기 랭킹에서 자신의 책에 앞서 상위 랭킹에 있는 책 네 권이 모두 뇌과학 관련된 책이고, 그나마 물리학 중에서는 자신의 책이 그다음 랭킹에 올랐다고도 한탄한다. 이것의 의미는 무엇일까? 이는 그만큼 일반 대중들의 과학에 대한 관심이 이제는 물리나 화학 같은 정통(?) 과학의 분야에서 뇌과학 같은 떠오르는(?) 분야로 옮겨가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다른 한 편으로는 이제 웬만한 스토리를 가지고서는 물리학에서의 교양서를 펴내는 것이 어려워지고 있다는 뜻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적어도 영미권 도서 시장에서는). 반면 여전히 뇌과학은 할 이야기가 아직도 많고 또 매일 같이 새로운 연구 소식, 그리고 흥미를 자극하는 스토리가 쏟아져 나오니 그만큼 교양서 종류도 다양하고 층위도 다양해진다고 생각한다. 결국 이러한 경향이 교양과학서 인기 순위에서의 차이로 나타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교양과학서 수준에서 할 이야기가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는 뜻은 그만큼 그 분야가 아직 성숙 단계에 진입하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물론 지난 수십 년 간 수많은 뇌과학자들의 노력으로 우리는 우리의 뇌에 대한 이해를 훨씬 넓히고 깊게 만들어 왔으며, 다양한 이미징 툴이나 분석 방법, 그리고 이제는 AI라는 새로운 툴을 통해 이해의 차원을 더해 나가고 있기도 하다. 뇌질환 치료 효과가 더 개선되었고 약물이나 외과 치료 수준 역시 많이 올라가기도 했다. 그렇지만 여전히 거의 대부분의 이론적 정립이 끝난 (물론 여전히 다소간의 난제는 있지만) 물리학에 비하면 뇌과학에는 아직 미지의 대륙이 많이 남아 있는 것도 사실이다. 물리학의 스토리가 다 끝났다, 막을 내릴 때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물리학에도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가 많이 있으며 (예를 들어 암흑물질이나 에너지의 정체, 양자 중력, 광자의 모멘텀, 유리 전이 메커니즘, 그리고 대통일 이론 등), 그래서 많은 물리학자들이 오늘도 끝없이 이에 도전하고 있다. 그렇지만 뇌과학과 비교한다면 이제 이러한 미스터리들은 마치 거의 다 알려진 대륙의 일부 미탐험지 혹은 지도가 덜 작성된 지역 정도의 느낌이다. 이에 비교하자면, 뇌과학은 아예 아메리카나 오세아니아 대륙의 존재를 모르던 1-2세기 경의 구대륙 사람들의 인식 수준 정도가 아닐까 한다.


이렇게 여전히 많은 부분이 미스터리 한 상태로 남아 있다 보니 다양한 가설이 나올 수 있고 또 재미있는 실험들이 계속 나올 수 있다. 어제의 이론이 오늘 무너지는 일이 생길 수 있다. 마치 뉴턴 이후 300년간 물리학이 엎치락뒤치락하며 발전해 온 것처럼 말이다. 그럴 때마다 이를 잘 해설할 수 있는 과학커뮤니케이터들이 달려들어 뇌과학을 해제하는 교양서를 펴내거나, 아예 현업 과학자들이 열정을 불살라 세기의 역작을 내놓기도 한다. 그에 반해 물리학에서는 무엇인가 새로운 진보가 생겨서 그것을 업데이트하는 교양 물리학 책이 나오는 주기는 점점 길어지고 있다. 새 책이 나오는가 해서 보면 사실 대부분 예전에 나왔던 책 개정판을 내면서 최근에 추가된 실험 결과 등이 업데이트된 정도에 불과하다. 표준모형의 완성 이후, 힉스 입자가 마침내 확인되고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에 거의 최종적인 못을 박다시피 한 중력파 관측 정도가 최근에 있었던 물리학의 중요한 사건이지만, 이러한 사건들은 사실 이미 이론적으로 예견된 것을 실험적으로 확증한 것이라는 것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그에 반해 뇌과학에서는 표준모형이나 상대성이론에 준하는, 즉, 거의 도그마에 가까운 핵심 이론이 없는 것 같고, 그래서 여전히 그것을 찾기 위한 여정과 함께 다양한 층위에서의 문제들이 동시에 도전을 받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그렇기 때문에 연구도 활발하고 다툼도 있고 또 협력도 존재하는 것일 것이다. 


많은 물리학자들은 근본적 질문, 특히 이론물리학에서의 근본적 질문에 답하기 위해 더 거대하고 강한 에너지의 가속기, 더 민감하고 정밀한 검출기, 더 비싸고 강력한 해상도를 갖는 우주망원경을 원한다. 그렇지만 어느 순간부터 일부 학자들 사이에서는 이러한 실험적 투자를 거대과학 수준에서 한다고 해도 정말 미스터리를 해결할 수 있는지에 회의를 품고 있는 학자들이 생기고 있다. 지금의 가장 강력한 가속기보다 10배, 100배의 에너지를 갖는 가속기를 건설하면 정말 미스터리 한 입자를 찾을 수 있을까? 지금보다 10배, 100배의 민감도를 갖는 검출기를 건설하면 양자 중력의 딜레마를 풀 수 있는 신호를 잡아낼 수 있을까? 지금보다 10배, 100배 더 넓은 구경의 우주망원경을 확보하면 암흑물질의 비밀을 풀 수 있을까? 블랙홀의 역설을 해결할 수 있을까? 물론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아무도 모른다. 문제는 만약 답이 아니라면 (즉, 실험적 시도가 꽝이 난다면), 재도전하기 위해 실험 스케일을 도대체 어디까지, 언제까지 더 늘려야 하느냐는 것이다. 마치 등장 캐릭터들의 스펙 조절을 잘 못해, 이야기를 이어가기 위해서는 스펙 인플레 지옥에 빠져 버릴 수밖에 없게 된 판타지 소설 작가의 고민을 연상케 하는 대목이다. 10배의 에너지로 부족하니, 20배로, 50배로, 100배로 늘려나가는 시도는, 이상적으로는 '해야만 한다'라는 울림을 주겠지만 현실적으로는 '이제 그만하자. 더 투입할 돈이나 시간이 이제는 없어'라는 차가움을 마주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거대한 과학 프로젝트를 장기간 지속하고 매달려 마침내 또 하나의 진보를 이루는 과학자들의 집념이 있었기에 인간 문명이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생각하지만, 점점 지수함수 스케일로 비용과 시간이 요구되는 '그다음으로의 진보'가 과연 어디까지 가능할 것인지 많은 학자들은 이제 조금씩 회의를 표하기 시작한다. 심한 경우 물리학이 노년기에 접어들었다고 자조하는 학자들도 있다. 즉, 이제 무엇인가 정말 혁신적인, 혁명적인 발견 (즉, 인식의 차원을 바꾸거나 패러다임이 바뀌는)을 이루기에는 너무나 어려워진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뇌과학에 대해 전문적인 지식이 있는 것은 아니므로 뇌과학의 진보 경향에 대해 깊은 이야기를 할 수는 없다. 그래도 노년기에 접어들었다는 평이 나올 정도의 물리학에 비해 뇌과학은 아직 발전 초기 단계고 그다음 수준의 진보로 나아가는데 아직까지는 거대 물리학 프로젝트에서 요구되는 수준의 비용이나 시간을 요하지는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 즉 뇌과학은 청소년기 정도의 단계에 있는 것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만약 정말 학문의 청소년기 정도로 본다면 뇌과학은 패러다임 시프트가 일어날 가능성이 물리학보다 훨씬 높고 인식의 지평선이 넓어질 확률도 더 크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특징이 바로 왜 뇌과학이 사람들을 매혹시키고 또 수많은 명민한 학자들 (전공에 상관없이)이 인생의 커리어를 걸고 뛰어드는지를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물론 뇌과학도 어느 단계를 넘어 saturation 단계에 진입하면 물리학이 겪었던 전철을 밟게 될 것이다. 흥미로운 소재가 조금씩 고갈되고 연구 주제도 거대화되며 교양서의 출간 주기는 길어지고 자조하는 학자들이 늘어나는 운명을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도 그 시점이 당장 이번 세기에 올 것 같지는 않다. 무게로는 1.5 kg 정도밖에 안 되는 인체의 일부 기관에 불과한 뇌이지만, 그 뇌에 대한 이해는 우주에 대한 이해에 비견될 정도로 여전히 테라 인코그니타다. 아마도 이번 세기 동안에 물리학의 패러다임 변화보다 뇌과학의 패러다임 변화를 더 많이 보게 될 것이고, 그래서 당분간 더 똑똑한 학자들이 뇌과학에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는 광자 같은 신세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내가 전공한 화학공학 분야에도 성숙한 단계를 넘어 아예 노쇠한 단계로 접어든 석유화학공학 같은 세부 전공이 있는가 하면, 이제 막 시작했고 청소년기에 접어든 CCUS 같은 분야도 있다. 한 때 화학공학이나 재료공학에서 떠오르는 총아였던 나노과학은 이제 단독 전공으로 성립하기 점점 어려워지고 있고, 그에서 파생된 나노의학, 나노약학, 나노유체 등의 더 세밀한 분야들이 새롭게 떠오른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떠오르는 분야라 생각했던 전공들도 흥망성쇠를 거듭하며 다른 분야에게 자리를 내어준다. 불과 6년 전만 해도 CES에서 주요 키워드로 언급되던 3D 프린팅은 이제 CES에서는 아예 전시하는 업체를 찾아보기도 어려워졌다. 이렇듯 어떤 주제든, 학문 분야든, 기술이든 시류라는 것이 있고 유행이라는 것이 있어서 어떻게 바뀔지 예측하기 어렵다. 그래도 물리학에서 새로운 스토리가 점점 나오지 않아 새로운 bright mind 들의 영입이 점점 어려워지고, 점점 많은 학교는 전공을 폐쇄하고, 점점 연구비는 메말라가는 노쇠화 현상은 볼 때마다 가슴이 아프다. 물리학을 잘 못 하지만, 부전공을 할 정도로 사랑했고 지금도 좋아하는 이 학문이 점점 늙어가는 것은 가슴이 아프다. 교양과학서가 더 이상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못하고 했던 이야기가 반복되는 이 경향은 가슴이 아프다. 그렇지만 가슴이 아프다는 감정과는 별개로, 이 거대한 흐름은 그저 흐름일 뿐이다.


어느 날 갑자기 툭하고 새로운 이론물리학의 발견이 나올 수도 있고, 어찌 보면 당연한 듯 무시해 왔던 어떤 데이터에 경천동지 할 정도의 이론적 오류가 발견되어 새로운 패러다임이 나오기 시작할 수도 있고 운 좋게도 우주망원경이 특별한 신호를 잡아내어 오랜 양자 중력 문제가 해결될 실마리를 얻을 수 있다. 앞서 언급했듯, 이러한 발견이 이번 세기 동안에 있을지 불확실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도전하는 물리학자들이 남아 있는 한 이 문제들은 언젠가는 반드시 풀릴 것이라, 그래서 결국 꺼져가던 물리학의 생명에 다시 불이 붙을 것이라 생각한다. 


먼 훗날, 그때도 만약 책이 존재한다면, 패러다임의 변환을 무사히 치러낸 물리학의 성취를 바탕으로 또 새로운 교양물리학서들이 서가에 쌓이는 모습을 그려 본다. 누군가는 수백 년 전의 교양물리학서들의 먼지를 털어내며, 웹 아카이브를 들여다보며, '물리학이 영원히 박제될뻔했구나' 하며 가슴을 쓸어내리지 않을까 하는 상상도 해 본다. 어떤 정상급 뇌과학자가 '이제는 인기 교양과학서 랭킹 10위에 뇌과학 관련 서적이 포함되기 어려워졌다' 라며 한탄하는 순간이 생길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특정한 분야의 과학이 늙고 새로운 도전을 찾아내지 못해 먼지에 뒤덮인다면 슬픈 일이겠지만, 그 먼지 속에서 다시 새로운 과학이 탄생하고, 또 인류의 우주를 향한, 그리고 스스로의 존재를 향한 인식이 더 깊어진다면 인류는 계속 과학을 놓지 않을 것이다. 특정 과학이 아닌, 과학 전체를 내려놓을 때 인류는 딱 거기까지가 마지막 페이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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