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 MBS의 네옴 시티 프로젝트를 바라보며
최근 석유 부국인 사우디아라비아는 포스트 석유 시대에 대한 대비책의 일환으로 이른바 '네옴시티'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지난 2022년 10월에는 MBS가 한국을 다녀가면서 국내 주요 대기업 총수들과 만났는데, 아마도 네옴시티 개발에 대한 이야기가 주종을 이뤘을 것으로 생각된다. MBS의 방한을 전후로, 이미 국내의 몇몇 미디어에는 네옴시티의 상징적인 구조물인 '라인'의 기초 공사사진이 공개되기도 했는데, 이 라인이라는 구조물은 단순히 구조물이 아니라, 도시로서의 기능을 담당하게 될 주상복합건물이다. 문제는 이 건축물의 규모다. 알려진 바로는 길이는 170 km, 높이는 500 m, 폭은 100 m 정도다.
한국에서 제일 높은 건물인 롯데월드타워의 높이는 550 m 정도고, 가장 아래 기단의 모양은 한 변의 길이가 71 m 정도 되는 정사각형이다. 즉, 만약 롯데월드타워를 연필처럼 나란히 세워서 170 km 길이의 라인을 채운다고 가정해 보자. 건물 간 간격을 30 m 정도로 설정한다고 해도 라인 한 개에 롯데월드타워를 1,700개 세워야 한다. 문제는 또 있다. 이 라인이 두 개라는 것. 즉, 길이 170 km 짜리 두 개의 평행선을 나란히 달리게 하는 형태로 구조물을 만들어야 하므로 어림 잡아도 3,400개에 달하는 롯데월드타워가 세워져야 한다.
롯데월드타워의 총 건설 비용은 3.8조 정도, 건설 기간은 10년 정도 걸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를 고려하여 거칠게 산술적으로 따져도 네옴시티의 라인 두 개를 만들기 위해서는 13,000조 = 1.3 경원이 필요하다. 즉, 대략 10조 달러 정도가 필요한 것. 물론 규모의 경제가 있고, 모든 건물이 거의 같은 구조를 가질 것이므로 설계 비용은 많이 절약될 것이며, 그러면 어림 잡아 3-5조 달러 정도까지 건설 비용은 낮아질 수도 있을 것이다. 2020-2030 사이 10년의 건설 기간을 감안해도 연간 3천억-5천억 달러가 필요할 것이라 추정할 수 있다.
사우디아라비아 (더 정확히는 MBS가 대표하는 사우디의 왕가)는 이 정도 건설 비용을 감당할 경제력이 되는가? 언뜻 생각하기에 사우디는 최대 산유국이고, 왕가의 재산이 어마어마하게 많으니 충분히 감당가능할 수 있을 것처럼 생각되지만 사우디의 국가 GDP는 2020년 기준으로 8천억 달러 밖에 안 된다. 물론 이 돈을 다 건설 비용에는 쓸 수 없다. 실제로 사우디의 정부 지출은 2020년 기준으로 2,500-2,700억 달러 정도밖에 안 된다.*
* 박인식 선생님의 분석을 빌려와 보자:
"사우디는 2021년 국가예산을 수입 2,264억 달러에 지출 2,640억 달러로 376억 달러 적자재정으로 편성했다. 2022년은 고유가로 인해 수입 2,787억 달러에 지출 2,547억 달러로 240억 달러 흑자재정으로 편성했다. 사우디 국가수입 중 원유수입(Oil Revenue)의 비중은 사우디 정부의 사업다각화 정책의 결과로 매년 줄어들고는 있지만 2021년까지는 70% 정도였다. 사우디는 OPEC 쿼터에 따라 하루 1천만 배럴 정도를 생산하며 이 중 30%를 내수로 사용하고 70%만 수출한다. 그러니 ‘원유수입=700만 배럴*유가*365일’로 쉽게 구할 수 있다. 국가예산은 고정비ㆍ경상비 성격이기 때문에 지출을 억제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 새로운 사업에 투자하기 위해 지출 예산을 조정하려 해도 그렇게 해서 확보할 수 있는 금액이 얼마 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올해 지출예산이 2,547억 달러이니 이 중 10%를 신규사업비로 전용하고 고유가로 인한 흑자재정을 더한다고 했을 때 한 해에 확보할 수 있는 금액은 500억 달러를 넘기 어렵다."
현실적으로 사우디 정부가 현재의 석유 수출에 의지한 수입 중, 추가적으로 지출할 여력이 되는 정도는 박인식 선생님께서 추정하신 바에 따르면 연간 270억 달러 정도밖에 안 된다. 설사 정부 수입의 절반을 투입한다고 해도 연간 1,300억 달러 정도밖에 안 된다. 이는 위에서 추정한 라인 건설 비용 연간 추정치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규모다. 연간 1,300억 달러를 투자한다고 해도 10년이 아닌 20-30년이 필요하며, 굳이 10년을 생각한다면 정부 수입 전체를 다 쏟아부어도 모자라다.
물론 대형토목 프로젝트에 국가 GDP의 절반 이상은커녕 10%를 매년 쏟아부을 수 있는 나라는 거의 없다. 그것은 세계최대 산유국이라도 예외는 아니다. 물론 포스트 석유시대를 대비한다는 차원에서 새로운 산업의 시작을 위해 이 정도의 예산을 집중 투자할 가능성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네옴시티는 신도시 조성 사업일 뿐, 제조업도 아니고, 테크산업도 아니기 때문에 무엇으로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조하는 사업이 될 수 있다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일설에 따라 관광사업이 주수입이라면 그건 턱없이 부족한 산업일 뿐이다. 2021년 기준, 사우디의 관광수입은 40억 달러에 불과했으며, 네옴시티로 인해 그 수입이 연간 400억 달러로 확장된다고 해도, 30년 공사 기준, 이는 연간 투자 비용의 1/3도 안 되는 수치다. 참고로 2021년 기준, 전 세계에서 가장 관광수입이 높았던 나라는 미국으로서 760억 달러 정도였다.
그렇다면 정부가 아닌 사우디 왕가의 재산을 여기에 다 쏟아붓는 것으로 가능한가? 일각의 추정에 따르면 사우디 왕가 재산의 대부분은 MBS가 가지고 있다고 하는데, 대략 그 규모는 1-2조 달러 정도라고 한다. 위에서 추정한 3-5조 달러에 못 미치는 규모다. 물론 왕가의 재산을 다 처분하는 것도 불가능하고 (애초에 유정의 가치, 사우디아람코의 자산과 주식, 부동산 등으로 이루어진 재산이라는 것을 감안해야 한다), 그 재산을 건설 비용에 다 쏟아붓는 것도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네옴시티도 아니고, 그저 '라인' 건설에만 해도 감당하기 어려운 이 막대한 공사 비용을 어떻게 조달한다는 것인가? 3조 달러 중에서 1.5조 달러는 사우디 왕가와 정부가 어떻게 해서든 재원을 마련한다고 해도 나머지는 외부에서 투자를 받아야 한다. 1.5조 달러를 직접 금융 투자 방식으로 투자받기는 어려울 것이고, 결국 부동산개발을 통해야만 될 것인데, 3,400개의 롯데월드타워에 상주하게 될 모든 주거 공간은 과연 분양될 것인가? 편하게 롯데월드타워 한 개에 대략 200채의 주거 공간이 나온다고 가정해도, 대략 60만 채 정도의 주거공간 분양으로 얻어지게 될 부동산 수익은 한 채다 1백만 달러를 잡아도 6천억 달러 정도 밖에는 안 될 것이다. 물론 부동산 가격을 5백만 달러로 한다든지, 아니면 한 동에 들어가는 공간을 500채 이상으로 한다든지 하면 재원 조달은 불가능한 일은 아니겠지만, 과연 사우디 국민 외에 과연 몇 명의 외국인들이 이 허허벌판에 솟아난 고층 빌딩 숲에 입주하려 할 것인지는 좀 생각해 봐야 한다.
MBS는 이 거대한 토목공사를 자신의 치적으로 장식하여 왕권을 무사히 넘겨받고 아랍권의 실질적 맹주로 자리매김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이를 위해 재원이 조달될 가능성이 희박해 보이는 이 거대한 사업에 건설에서 잔뼈가 굵은 국내의 많은 대기업들을 참여시키고자 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일 것이다. 물론 해외 대형 건설사업 수주 및 진행에 경험이 많이 축적된 한국의 엔지니어링회사, 물산회사들은 주판알을 충분히 튕겨보고 있겠지만 이런 회사들이라고 해서 겁 없이 초대형 토목사업에 바로 뛰어들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최근에 중국의 시진핑 주석이 사우디를 국빈 방문했는데, 분명히 네옴시티에 대한 논의가 있었을 것이고, 한국에서 충분한 파트너를 확보하지 못했을 경우, MBS 입장에서는 중국과 손잡는 것이 더 낫다고 판단할 수도 있을 것이다.
박인식 선생님께서 쓰신 글대로, 한국의 건설회사, 중공업회사들은 MBS의 사업계획을 곧이곧대로 믿지 말아야 할 것이라 보인다. 사우디 왕가가 재정 보증에 나선다고 해도, 많은 사업에서 물릴 가능성이 높아 보이며, 무엇보다 10년이라는 건설 사업 기간이 너무 짧다. 분명 이 기간은 늘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고, 애초에 생각했던 규모보다 훨씬 작은 규모로 축소되어 흐지부지 마무리될 가능성이 높은데, 원안대로 프로젝트를 준비하여 각종 설비를 확충하고 대규모 인력을 고용하게 되는 경우, 그 손해는 한국 기업들이 고스란히 안게 될 가능성도 있다.
내가 MBS라면 절대 1자 형태 두 개의 평행선 구조물을 신도시랍시고 지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굳이 새로운 산업도시를 지을 생각이라면 방사형으로 해안 근처에서 배후 산업과 에너지 자급자족이 가능한 형태의 도시를 지을 것이며, 새로운 산업으로는 기존의 문법에 따르는 산업이 아닌 테크산업 위주, 특히 대규모 자본이 투입되어야 하는 테크 클러스터 (반도체+통신+AI+양자 등)를 조성할 것이다. 네옴시티 정도라면 클러스터 3-4개는 형성할 수 있을 것이고, 어차피 돈 많이 쓰는 것, KAUST급으로 연구중심대학 3-4개를 만들어, 각 대학에서 클러스터의 핵심이 되게 만든 후, 네덜란드의 TU 모델을 따라 클러스터들의 생태계가 이루어지게 할 것이다. 그렇게 한다고 해도 총 건설비용은 현재 추정되는 규모의 1/5도 안 될 것이다.
사우디 내부의 사정은 잘 모르니 그저 대략적인 추정 밖에 할 수 없다. 그렇지만 지금 보이는 수치만 봐서는 결코 안정적인 사업으로 보이지 않으며, 숫자들은 너무도 비현실적이다. 이 사업에 뛰어들 때 뛰어들더라도, 환상에 불과한 숫자들의 놀음에 휘둘리지 않고 실질적인 수익을 계상하여 안전장치를 충분히 여기저기에 만들어 두면서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한다. 물론 그 과정에서 더 공격적인 제안을 하는 중국의 업체들에게 상당 부분 사업권을 내주게 되는 경우도 생기겠지만 오히려 그것은 불안정한 폭탄을 내가 품지 않아도 되는 결말로 이어질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