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권석준 Seok Joon Kwon Mar 20. 2023

달랑베르의 역설

무엇인가를 배우는 과정에서 겪는 고난은 배우는 사람의 특권이다.

아무리 바쁘고 할 일이 많아도, 학기 중에는 강의에 제일 정성을 쏟겠다며 학생들과 한 약속은 꼭 지킨다. 유체역학 강의 전에 학생들 학습을 위해 달랑베르 역설 (d'Alembert's paradox)을 증명하는 간단한 보조강의자료를 만들어서 올렸다. 유체역학을 처음 배우는 많은 학부생들에게 학기 종강 후, 어떤 내용이 기억에 남느냐 물어보면 거의 열에 아홉은 베르누이 방정식 이야기를 한다. 문제는 그나마 베르누이 방정식을 제대로 표현하는 학생은 별로 없고, 그중에서도 그것을 제대로 이용하여 문제를 푸는 학생은 더더욱 없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유체역학을 배우는 가장 큰 목적 중 하나인 네이비어-스토크스 방정식을 유도는커녕, 제대로 외워서 쓰는 학생도 없고, 그것을 적용하여 문제를 푸는 학생은 정말 소수에 불과하다는 것. 그러니 뒷부분에 경계층 이론이나 복합 유체가 나오면 그냥 완전히 모르는 상태나 마찬가지다.


유체역학을 지금 3년째 가르치고 있는데, 1년 차, 2년 차에 비해 조금 더 신경 쓰는 것 중 하나는 유체역학 강의가 너무 수학 일변도로 흐르지 않게 만드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에서 언급했듯, 베르누이 방정식을 쓰고도 이용하지 못하는 경우나, 베르누이 방정식이 유체역학의 전부라고 받아들이는 학생들이 나오는 것을 최대한 방지하기 위해서는 베르누이 방정식은 그저 유체의 진면목을 최대한 간단하게 이해하기 위한 아주 간략화된 형태임을 잘 설명할 필요가 있다. 사실 베르누이 방정식은 유체역학을 전혀 몰라도, 그냥 열역학의 에너지 보존법칙만으로 얼마든지 유도하고 이해할 수 있다. 문제는 그 에너지 보존법칙에는 유체의 점성소산 (viscous dissipation)에 의한 마찰 (drag)이 전혀 고려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사실 이 때문에 베르누이 방정식이 적용될 수 있는 유체는 극단적으로 제한적이며, 이러한 유체를 보통 nonviscous fluid라고도 하고, 다른 표현으로는 potential flow라고도 한다. 물론 비압축성 (incompressible fluid)이면서 비회전성 (irrotational flow)라는 조건도 추가되긴 한다. 포텐셜 유체 (potential flow )라고 부르는 까닭은 이 두 가지 조건이 결합되면, 유체의 속도장은 스칼라 포텐셜의 라플라시안 (Laplacian)으로 표현될 수 있기 때문이다.


민태기 박사님의 세기의 유체역학 교양과학 명저 '판타레이' 전반부에는 베르누이 방정식을 둘러싼 베르누이 일가와 오일러, 그리고 달랑베르가 만들어내는 흥미진진한 학문적 갈등과 격한 토론의 역사가 생생하게 그려진다. 달랑베르는 베르누이와 사사건건 갈등 (이라고 쓰고 지적질이라고 읽는다)을 일으키는데, 그중 하나로서 베르누이 방정식에 대한 공격이 있다. 그는 베르누이 방정식을 참이라고 가정한다면 사실상 유체의 흐름에서 비롯되는 마찰력을 설명할 방법이 없음을 수학적으로 증명했는데, 사실 사람들은 강이나 호수에서 배을 띄워 노를 젓거나 수영을 하거나 두레박으로 우물물을 퍼다 나르는 과정에서 유체의 마찰 (점성저항력)을 이미 체감하고 있었기 때문에, 달랑베르가 지적한 베르누이방정식의 허점은 이미 실질적으로 증명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달랑베르가 이것을 수학적으로 잘 정리하고 증명함으로써 재확인하였을 뿐이다. 이를 달랑베르의 역설이라고 한다.


문제는 학부생들이 베르누이 방정식을 배울 때는 이러한 배경을 잘 배우지 않는다는 것이다. 달랑베르의 역설에서는 점성소산과 drag라는 중요한 개념이 나오며, 이는 자연스레 '그렇다면 점성소산은 어떤 물리적 원인으로 발생하는 것인가?'에 대한 물음으로 이어지며, 이는 shear stress로의 방향을 가리키게 되고, 다시 유체의 운동량 보존과 속도장의 divergence의 개념으로 확장되면서, 급기야는 viscosity와 Newtonian vs Non-Newtonian fluid의 개념으로까지 확장된다. 학문이 흘러가는 방향, 비어 있는 개념의 충진, 그 개념을 물리적으로 설명하기 위한 수학적 장치와, 다시 그 장치에 의미를 부여하기 위한 관찰들, 그리고 모델의 의미와 한계를 설명하는 데까지 이르는 이 과정이 유체역학을 처음 배우는 학생들에게는 정말이지 중요한 학문적 훈련 과정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수많은 유체역학 학부 과정에서는 베르누이 방정식을 써놓고 낫 놓고 기억자도 못 읽는 학부생들 천지이고, 이는 전적으로 가르치는 방법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애초에 공학 시스템은 실험물리학처럼 정답으로 향하는 것보다는, 안정적이며 효과적이고, 또 효율적으로 오랜 시간 잘 작동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그러다 보니 유체의 점성소산 까이꺼 좀 무시해도 대충 압력이나 출구속도가 비슷하게 나오면 장땡인데, 문제는 정교하고 아주 위험한 시스템을 설계하고 운용할 때는 이러한 그까이꺼 정신이 매우 위험하다는 것. 결국 공대생들, 엔지니어들에 대한 교육 훈련 과정에서도 자신들이 배우는 이론적인 개념과 방정식의 한계와 주요 가정, approximation의 예외 등을 잘 배우는 것이 중요하며, 특히 각 경우에 대한 사례 학습을 반복함으로써 잘못된 방향으로 영영 개념이 굳어져버리는 것을 미리미리 방지할 필요도 있다.


많은 학부생들은 유체역학의 초반 1/3 정도에서 학습을 포기하곤 한다. 베르누이 방정식도 어려워하는데, 하물며 달랑베르 역설을 증명하고 설명하기는 벅찰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높은 산을 오를 때도 가쁜 숨을 고르고 다시 그 숨을 넘겨야 계속 호흡을 할 수 있게 되듯, 유체역학 같은 공부도 그 고비를 넘어야 진짜 이론으로 나아갈 수 있다. NS equation에 오기도 전에 퍼져버리고 개념을 잘못 이해하여 학기 내내 뇌를 혹사시키게 되면 이는 학생들에게나 선생들에게나 고역이다. 처음에 가르치고 배울 때 제대로 익히고 서로서로 확인하고 묻고 답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NS eqn까지 오면 수학적 의미 + 사례 학습에 주안을 두고 다양한 유체의 특성을 분석하고 보이는 것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 적어도 내가 가르치는 유체역학은 그렇게 흘러가게 설계되어 있는데, 다행스럽게도 작년에 여러 번 통독한 판타레이 덕분에, 그 흐름에 이제는 살이 좀 더 붙고 과학사의 뒷켠 이야기를 첨부함으로써 학생들에게 조금 더 입체적인 학습이 가능하게 도와줄 수 있게 되었다. 민태기 박사님의 노고에 다시 한번 감사드릴 뿐이다.


모든 전공이 다 마찬가지이겠지만, 특히 공대 학부 3-4학년의 공부는 정말 피 터지고 이가 갈리고 알이 배기게 반복 또 반복해야 한다. 존경하는 김현철 교수님께서 쓰셨듯, 대부분의 물리학 전공 필수 과목에서는 정말 탄식과 한숨이 거듭되는 연습의 고난의 행군이 기다리고 있는데, 공대 전공 필수과목도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미친 듯이 풀고 또 풀고, 틀린 것 확인하고 다시 고치고를 반복해야 한다. 단순한 계산은 컴퓨터로 풀게 만들되, 개념을 이어나가면서 생각의 흐름선을 직접 그리게 하는 것은 학생들로 하여금 반드시 지나게 만들어야 한다. 만약 그 과정을 놓치면 대부분의 학생들은 그 학습의 경험을 다시는 반복하지 못하게 되고, 뇌의 회로는 그렇게 얼기설기 대충 만들어진 채 가소성을 잃어버리며 그대로 굳게 된다. 유체역학이나 열전달, 열역학, 반응공학 같은 화공의 전공필수나, 전자기학, 고전역학, 수리물리, 통계물리, 고체물리, 양자물리 같은 물리학과의 전공 필수나, 모두 이러한 고통스러운 학습과정을 반드시 필요로 한다.


ChatGPT 이후의 학생들 학습은 예전과 많이 다를 것이라고들 설렘반 두려움반의 반응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곳곳에서 나오고 있지만, 여전히 나는 개인적으로는 학생들이 특정 전공에서의 전문성의 맹아라도 발견하고 싶다면 개념에 대한 학습의 흐름선과 그것을 되짚어가는 리뷰의 시간을 절대적으로 일정량 이상 가져가야만 한다고 믿는다. 인공지능의 도움을 받아 학생들의 학습이 더 다채로워지고, 일부 데이터나 추상적 개념의 시각화가 더 용이해지며, 다양한 사고 실험을 대신해 줄 수 있는 수단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지만, 그것이 아무리 많아지고 더 고급화된다고 해도, 학생들의 학습 그 자체를 대신해 줄 수는 없다. 만약 정말 그것을 대신해 줄 수 있는 무엇인가가 나오면 그때는 선생도, 학생도, 학교도 의미 없어지는 시대이자 사회가 될 것이다. 정말 그렇게 된다면 그냥 그렇게 되나 보다라고 또 적응하며 살 일이다.


어쨌든 아직 내게 12척의 배가... 아 이건 아니고, 학생들에게 뭔가를 가르치고 익히게 도와줄 수 있는 환경과 자원이 주어지는 한, 나는 학생들의 학습을 돕고, 이들이 조금이라도 어려운 개념에 더 한 발짝 다가갈 수 있게 도와주고 싶다. 그것이 내게 주어진 가르치는 사람으로서의 책임이자 사명일 것이라 생각한다. 적어도 학기 중에는 이 미션에 제일 신경을 쏟고 노력하는 것이 내가 학교로부터 받는 월급에 부끄럽지 않은 일일 것이라 생각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