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 밀러 교수의 인터뷰에 대한 리뷰
케임브리지 대학의 국제정치학 대학원에 재학 중이신 홍태화 선생님께서 작년에 Chip War의 저자인 터프츠대학 크리스 밀러 (Chris Miller) 교수와 진행한 인터뷰 기사를 최근에 확인했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116964#home
크리스 밀러 교수의 책 'Chip War'는 국제정치학과 국제경제학, 그리고 경제사적 관점에서 현재의 미-중 첨단패권경쟁, 특히 반도체 산업을 둘러싸며 격변 중인 산업 지형의 변화를 냉철하게 분석한 책으로 알려져 있고 세계적인 베스트셀러로도 알려져 있다. (조만간 한국에 번역본이 나온다고 하는데, 나는 아직 읽지는 않았다.) 다만 그가 홍태화 선생과 진행한 인터뷰 기사가 흥미롭기도 하고, 그 인터뷰에서 밀러 교수의 답변에 몇 가지 사항을 확실하게 해 두어야 하면서도 또 잘못된 부분을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고 판단되어, 코멘트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각 답변에 대한 나의 response를 따로 기록해 둔다. 인터뷰와 비교하여 내 response를 판단하는 것은 당연히 읽는 이의 몫이다. 그렇지만 내 개인적 시각으로는, 종합적으로 판단컨대, 밀러 교수가 현재의 반도체 산업 지형의 변화를 보는 것에는 다소 한계가 있으며, 특히 반도체 산업의 각 세부 분야의 기술적 특징을 고려한 국제역학관계 변화에 대한 판단은 다소 근시안적이다. 이 점에 대해 밀러 교수와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말씀을 나눌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아래부터는 밀러 교수가 한 인터뷰 내용과 각 포인트에 대한 내 item-by-item reponse다. 홍태화 선생의 질문은 Q, 밀러 교수의 답변은 A, 내 response는 >>R로 각각 표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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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1. 한국에서는 ‘칩 4’에 대한 관심이 크다. 중국을 제외한다는 게 현실적으로 가능할까.
A1. “칩 4는 하나의 ‘균형 잡기’다. 중국은 각국의 역할 분담이 필요한 반도체 산업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반도체 자립을 추진했다. 반도체는 현대 군사력의 핵심인 만큼 미국과 한국, 일본, 대만 등이 이를 불편해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칩 4는 중국의 반도체 자립 움직임에 대한 반작용이자 균형 잡기로 해석할 수 있다. 칩 4 국가들이 세부적인 사안에는 의견이 다를 수 있어도, 이 균형 잡기의 방향에 대해서는 전반적으로 동의한다고 생각한다.”
>>R1. '칩 4 동맹'에 대해서는 여전히 구체적 협력 체제와 방안이 마련된 상황이 아니며, 참여 대상이 되는 각국은 이해관계충돌의 영역이 존재하기 때문에 미국 주도의 칩 4 동맹에 대해서도 바라보는 관점은 각 나라 별로, 각 회사 별로도 상이하다. 예를 들어 메모리반도체의 경우, 한국의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는 미국의 마이크론, 일본의 키옥시아 등과 시장이 겹친다. 제한된 시장을 놓고 경쟁하는 업체들 사이에 동맹의 성격을 부여하기는 어려우며, 정부 간 산업 구도 조정 역시, 각 정부의 산업 정책 충돌은 물론, 특정 산업 섹터에서는 기존의 무역 협정이나 회사 간 계약 관계를 해치는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도 있다. 시스템반도체의 핵심인 파운드리 산업에서는 한국의 삼성전자와 대만의 TSMC가 특히 sub 10 nm 영역의 시장 점유율과 기술 면에서 경쟁을 벌이고 있는데 (물론 TSMC가 여전히 압도적), 선단공정 패터닝과 첨단 패키징이라는 핵심 기술력에 수익률과 시장지배력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 세부 분야에서는 더더욱 발전적 협력이 어렵다. 예를 들어 TSMC가 한국에 3 나노급 파운드리 팹을 신설할 가능성은 매우 낮을 것이다. '칩 4 동맹'에 대해, 밀러 교수가 중국의 반도체 자립을 견제하기 위한 반작용이자 균형 잡기라고 해석한 것은 다소 미국의 시각에 치우친 해석으로 보인다. 중국으로부터 반도체 무역 중, 대다수의 수익을 벌어들이고 있는 한국, 대만, 일본의 기업 입장에서는 오히려 안정적인 수익 창출 밸런스를 무너뜨릴 수도 있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미국이 주도하는 글로벌 반도체 산업 환경의 변화 속에, 칩 4 혹은 그와 유사한 소규모의 다자간 협력체가 생성되는 것은 예견되고 있으며, 각국의 정부는 이 협력체가 각국의 기업들 이익을 보호할 수 있는 방안을 찾는 길에 골몰하게 될 것이다. 이를 위해 정부 차원에서의 협정은 다자간 협정보다는 양자 간 협정이 우선이며, 양자 간 협정 위에 다자간 소통 기구를 설치하는 것이 현실적인 방안일 것이다.
Q2. 한국에선 ‘칩 4’에 어떤 효용과 리스크가 있는지 불분명하다는 우려가 있다.
A2. “칩 4는 구속력 있는 조약의 형태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사무국을 만들지도 않을 것이다. 칩 4는 단지 의사소통을 더욱 원활히 하려는 것일 뿐이다. 이들은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지도를 새로 그릴 것이고, 필요하다면 대(對)중 수출 규제를 논의하거나 공동으로 투자를 심의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칩 4가 특정 구성원에게 강압적으로 의무나 부담을 지우는 일은 없을 것이다. 해당 국가가 거부하면 그만이지 않나. 칩 4는 ‘동맹’과도 다르다. 명확한 의무와 약속이 따르는 한·미 군사동맹 같은 형태가 아니라는 얘기다. 적극적인 정보 공유와 원활한 의사소통, 그리고 협력이 중요한 관계다.”
>>R2. 이미 미국은 한국과 일본에 대해 각각 반도체를 비롯한 주요 산업을 협의하기 위한 정부 간 협의체를 두고 있다. 예를 들어 반도체 생산국 정부 간 연례 회의 (Government Authorities Meeting on Semiconductor, GAMS)가 대표적이다. 한국과 미국 사이에도 반도체 산업 관련 양자 간 협력 채널이 공식적으로 존재한다. 한미 SPD (반도체 파트너십대화), 한미 SCCD (장관급 공급망 및 산업 대화 채널) 등이 있다. 미국-일본, 미국-대만 사이에도 이와 유사한 공식 정부 간 소통 채널이 존재한다. 이를 모두 아우르는 다자간 정부 협의체를 구성하는 것은 미국을 제외한 다른 나라들 사이의 이해관계를 충분히 고려하지 못 한 결과물일 수 있다. 국가의 핵심 이익이나 전략이 노출될 수도 있고, 경쟁국에 기술 기밀이 노출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밀러 교수가 언급한 '대중 수출 규제를 논의하거나 공동으로 투자를 심의하는 것' 역시 미국이 주로 주도하는 수단이라는 판단을 할 수밖에 없다. 물론 미국 입장에서 이러한 수단을 활용한다는 것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데, 적극적 정보 공유나 원활한 의사소통, 협력이 가능하다고 해도 결국 답이 정해진 상황 속에서 ‘공동’으로 투자를 심의하거나 중국 수출을 견제하는 것에 얼마나 미국 외 다른 나라들의 의지가 반영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Q3. 미국이 동맹국과 공급망을 구축한다는 ‘프렌드쇼어링(friend- shoring)’이 쇼라는 비판이 있다. 실제 최근 미국 의회를 통과한 반도체 법안이나 IRA는 동맹국에 엇갈린 신호를 보내고 있다.
A3. “동맹국들의 우려는 이해하지만, 자국 산업을 보호하는 것은 미국만이 아니다. 한국은 물론 일본, 대만, 독일 등지도 마찬가지다. 이들 나라는 반도체 산업에 정부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다. 객관적인 지표만 놓고 보면 미국만 과도하게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지난 수년간 정부 개입 없이 시장에만 맡겨 놓았기 때문에 반도체 글로벌 제조 공정에 있어서 미국의 비중이 감소했다고 볼 수 있다. 미국 정부의 정책은 자국 내 반도체 제조 공정을 확대하려는 세계적인 흐름의 일환일 뿐이다.”
>>R3. 미국이 자국 내에서 반도체 산업의 전반적인 생태계 구축을 하려는 것, 그것을 강력한 '산업 정책 (industry policy)'를 통해 재정적으로나 제도적으로나 뒷받침하려는 것은 미국의 국익 차원에서는 당연한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미국의 산업 정책의 여파가 다른 국가들, 특히 동맹국들의 산업 정책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미국 내부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는 문제에 해당하는 것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한국이나 대만의 반도체 업체들이 첨단 파운드리나 메모리팹을 미국에 신규로 건설하고, 기존의 팹은 업그레이드하는 것에는 자국에서 진행하는 케이스에 비해 최소 1.5배에서 많게는 4배 이상의 비용이 추가로 필요할 수 있다. 이 비용의 일부를 미국의 CHIPS 법안에서 지원받는다고 해도, 그 규모는 충분치 않다. 그 격차를 극복할 수 있는 것은 단순히 보조금 같은 인센티브보다는 밀접한 호혜적 관계의 보장일 것이다. 예를 들어 외국 반도체 기업이 미국의 반도체법 보조금을 받지 않을 경우, 특정 기술표준협의체 (미 상무부 산하의 NSTC 등)에 참여가 제한되는 조치가 병행되는 것은 미국에 수백억 달러가 넘는 자본을 투자해야 하는 외국 업체들 입장에서는 큰 부담과 더불어, 회사의 수익-연구개발-CAPEX 사이클에 불확실성을 더하는 일일 수 있다. 미국이 정말 ‘FRIEND-shoring’이라는 개념으로 미국 내 반도체 산업 생태계를 동맹국의 기업들과 구축하려 한다면 그것이 타국 업체들에게 충분히 인센티브가 부여되고 향후에도 반도체 산업에서의 R&D 추구 및 산업적 관계를 이어가는 것이 Friendly 하다는 것을 보장해야 한다.
Q4. 동맹국이 문제 삼을 것은 아니라는 얘긴가.
A4. “그런 뜻은 아니고, 모든 나라가 지속적으로 반도체에 자원을 쏟아붓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미다. 높은 비용도 문제지만 과잉 생산과 시장 왜곡이 더 큰 문제다. 무엇보다 중국이 매년 보조금으로 수백억 달러를 투입하고 있다는 점이 걱정이다. 글로벌 반도체 산업을 흔들고 있다. 서방 진영의 그 누구도 중국의 보조금 정책을 철회시킬 전략을 구상해내지 못했다. 한 가지 방안은 트럼프 행정부처럼 중국산 반도체 부품에 관세를 부과하는 것이다. 또 다른 방법은 중국이 반도체 공정을 유치하지 못하도록 역(逆) 보조금을 마련하는 것이다. 칩 4의 과제 중 하나는 중국이 보조금을 줄이도록 압박하는 방안을 내놓는 것이 될 것이다. 중국의 대대적인 보조금 정책은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대만의 문제이기도 하며, 메모리반도체에 관한 한 한국의 문제이기도 하다. 세계무역기구(WTO)는 중국 정부를 제대로 규제할 수 없다. 비슷한 상황에 놓인 국가들이 나서야 한다. 이들 국가들이 반도체 보조금 규모는 어느 정도로 할지, 과도한 보조금을 제한할 방법이 있는지 등을 논의해야 한다. 상호 신뢰가 쌓여 있는 국가들이 비교 우위를 살려 공급망을 구축해 가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R4. 중국의 반도체 보조금 정책은 현대 회사자본주의 입장에서 볼 때 반칙에 가깝다는 것은 사실이다. 또한 중국의 많은 반도체 업체들은 중국 정부의 직간접적인 승인 혹은 묵인 하에, 외국계 반도체 업체들의 지적재산권을 침해하고, 전문 인력을 전략적으로 스카우트하는 등의 불법에 가까운 반칙을 저지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중국의 반도체 산업에 대한 견제는 자동차 산업에서처럼 관세 부과로 해결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미국은 동맹국들과 반도체를 비롯한 일부 기술 영역에 대해서는 지난 1996년 이후, WHO의 정보기술협정 (Information Technology Agreement, ITA)를 맺고 있는데, 이 협정의 동기는 정보기술 (IT)의 발전을 공동의 혁신 동력으로 삼아 경제 성장을 같이 도모하기 위함이다. ITA 협정 하에 있는 반도체 산업 대부분 (완제품은 물론, 소재, 장비, 부품 모두 포함)은 ITA 가입국들끼리는 관세를 철폐했다. 이를 할당관세라고도 한다. 현재 ITA에 가입한 국가는 총 74개 국이며, 2021년 기준으로, ITA 보호를 받는 반도체 품목은 총 201개, 액수로는 총 1.3조 달러에 달한다. 미국, 중국, 한국, 일본, 대만 등, 주요 반도체 관련 국가들은 모두 ITA에 가입한 상황이다. 중국식으로 보조금을 지급하는 방식으로는 반도체 산업의 혁신을 지속하기는 어렵다. 후발주자가 선발주자와의 격차를 좁히는 초중기 phase까지는 이러한 전략이 어느 정도 작동하나, 그 이후에는 그 격차를 줄이는 것에는 연구개발비용과 상업화 단계의 노하우가 지수함수적으로 필요하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지난 2011년부터 무려 12년 넘게 매년 수백억 달러의 정부 주도 투자를 반도체 굴기를 외치며 지속적으로 집행한 중국의 메모리반도체가 한국이나 미국, 일본의 주요 메모리반도체 업체들과의 기술 격차를 일정 수준 이상 좁히지 못하고 있고, 시장점유율도 2%를 넘기지 못하고 있는 상황을 살펴보면 답이 나온다. 특히 DRAM 같은 메모리반도체는 중국 업체들의 세계 시장은 고사하고, 내수 시장 점유율조차 5%를 넘지 못한다. 역보조금 정책으로 미국이 자국 내 반도체 제조업을 육성하는 것은 초기에 작동할 수 있으나, 필수팹이 아닌, 대규모 팹의 경우 현재의 미 반도체법의 지원 규모만으로는 커버하기 어렵다. 팹 신규 건설 지원에 반도체 법을 통하면 대략 5년 간 1천5백억 달러 정도, 즉, 연평균 3백억 달러 정도가 투입되는데, 이는 삼성전자와 TSMC가 2023년에 투자 집행이 예정된 CAPEX 투자 금액의 합산액인 900억 달러 (삼성 500억, TSMC 400억 달러)에 한참 미치지 못한다. 특히, 반도체법에 명시된 5년 정도의 지원 기간이 종료된 이후에도 정권에 상관없이 이러한 지원책이 유지될 수 있을 것인지도 불확실하다. 보조금은 제한적인 범위에서 적용할 필요가 있고, 새로 재편될 반도체 공급망에서 예상되는 비용의 상승폭을 미국과 미국의 동맹국 혹은 강력한 협력국들이 어떻게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인지, 중복 투자를 어떻게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인지, 수요 감소 사이클 동안의 수익 감소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 것인지 등에 대한 논의가 더 중요하다.
Q5. 대만은 중국이 군사적 긴장감을 조성하자 중국의 TSMC에 대한 의존을 군사적 억제력으로 활용하려 하고 있다. 소위 ‘실리콘 방패’라고 불리는 전략인데, TSMC에 대한 중국의 접근을 제한하려는 미국의 생각과 충돌하는 것 아닌가.
A5. “TSMC에 대한 미국의 기조는 명확하다. 미국의 허가 없이는 화웨이를 위한 반도체를 생산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중국에 반도체 공급 자체를 전면 규제하고 싶어 하는 것은 아니다. TSMC가 생산하는 반도체를 조립하려면 결국 중국으로 가야 한다. 실리콘 방패는 어쩌면 의도된 결과일 수 있다. 전략적으로 위험한 반도체는 중국에 공급하지 않으면서도 TSMC의 중국 사업 상당 부분을 유지시키는 것은 ‘균형 잡기’로 해석할 수 있다. 물론 실리콘 방패라는 개념에 대해 대만과 미국 관료들 간 입장 차이가 있을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실리콘 방패의 효용성에 대한 의구심도 있다. 중국의 최근 행보를 보면 ‘경제’는 뒷전이다. 청년 실업률이 15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는데도 중국은 개의치 않아 하는 것 같다. 경제가 더 이상 중국 정부의 궁극적인 관심사가 아니라면 실리콘 방패가 제대로 작동할 수 있을까? 미국과 한국, 대만 등이 실리콘 방패에 안주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중국의 ‘반도체 굴기’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지역 정세를 위협할 수 있는지 고려해야 한다. 대만의 안보는 대만뿐만 아니라 아시아 태평양 전체에 막중하다. 미국 정부는 이런 점을 염두에 두고 있다.”
>>R5. 대만의 ‘실리콘 방패’ 정책은 최근 중요한 변화 전기를 맞고 있다. 이미 대만의 TSMC는 미국 애리조나 피닉스에 투자하기로 한 신규 파운드리 팹의 규모를 2배 이상 늘리고, 기술 수준도 3 나노급, 즉, 현재로서는 최선단 수준으로 올리는 것을 결정했으며, 이는 창업주인 모리스창 전 회장이 2022년 하반기에 직접 애리조나 팹 현장을 찾을 정도로 에너지를 집중하고 있는 것으로도 방증된다. 또한 대만의 TSMC는 일본 정부의 보조금과 지원책을 이용하여 일본 반도체 기업들과 다시 팹을 구축하여 차량용 반도체, 이미지센서, 전력반도체 등의 생산으로 생태계 다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유럽과의 협력도 확장 중인데 TSMC는 독일 드레스덴 지역에 신규 파운드리 투자를 계획하고 있으며, 이는 유럽 지역의 반도체 장비, 소재 업체들과의 클러스터 형성 및 산업용 반도체 시장을 노리는 전략으로도 보인다. TSMC 뿐만 아니라, 대만이 석권하고 있는 주요 패키징 업체들, UMC 같은 중견 파운드리 업체들 역시 탈 중국 이후, 일본으로의 진출을 계획하고 있으며, 이는 대만의 반도체 산업이 더 이상 대만의 실리콘 방패가 아닌, 대만 반도체 산업의 '리스크 헷징 정책'으로 변모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중국 입장에서는 TSMC로 대표되는 세계 최고 수준의 파운드리, 특히 선단 공정의 기술력을 노리는 것이 가능하나, 이것은 TMSC가 대만 전역의 팹에서 보유하고 있는 물리적 자산의 획득 아닌,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에 대해 노하우를 가진 전문 인력과 제한적으로만 공급되는 일부 장비의 도입으로 오히려 가능한 일이기 때문에, 오로지 반도체 산업만 고려하여 군사적 충돌과 미국과의 전쟁을 각오하면서까지 대만을 침공할 이유는 없다. 물론 이것은 중국이 대만에 대한 군사적 행동을 할 가능성이 아예 없을 것이라는 뜻은 아니다. 반도체 산업과 별개로, 중국 공산당은 시진핑 주석의 3 연임을 정당화하기 위한 숙원사업으로서 대만에 대한 정치적 통일을 추진할 가능성이 높음은 이미 많은 국제문제 전문가들이 지적한 바 있다. 한국 입장에서는 실리콘 방패라는 개념은 없으며, 이는 실제로 여전히 한국의 반도체 팹이 휴전선과 지리적으로 가까운 경기도권에 주로 분포하고 있다는 사실에서도 알 수 있는 것이다. 한국의 반도체 산업은 지난 한 세대 동안 한국의 주력 수출산업으로서 거의 국가기산산업화되고 있기 때문에 그 자체로서 한국 경제를 지탱하는 산업이 되고 있으나, 그 산업이 인계철선의 개념으로 활용되지 않는다. 오히려 기정학적 불확실성이 증폭되면서 탈 중국 정책, 생산기지 일부의 동남아 이전 정책, 미국으로의 신규 팹 확장 정책 등이 개발되고 있고, 이는 한국이 강세를 보이는 메모리반도체 산업뿐만 아니라, 향후 파운드리와 인공지능 반도체 방향으로도 한국의 리스크 매니지먼트 전략으로 활용될 수 있다.
Q6. 대만은 자국의 반도체 산업이 유사시 미국의 개입을 이끌어내기를 바란다.
A6. “실제로 대만은 그런 계산을 하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나는 그 논리에 동의하지 않는다. 대만해협에서 발생할 수 있는 시나리오들을 살펴보자. 대규모 전면전의 가능성은 낮다고 본다. 가장 가능성 있는 시나리오는 평화와 대규모 공격 그 사이 어디쯤일 것이다. 가령 중국이 해상을 봉쇄하거나 일부 섬을 무력으로 점령할 수 있다. 이 경우 미국의 선택지는 두 가지 정도다. 대만해협의 위기를 고조시켜 세계경제 전체를 휘청이게 하든지, 중국의 ‘기정사실화(fait accompli)’ 전술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하지만 어느 쪽도 쉬운 선택은 아니다. 대만 반도체의 중요도에 따라 미국의 개입 여부가 달라질 것이다. 전면전이라면 모르지만, 저강도 충돌이라면 미국이 개입하기 어려울 수 있다. 미국경제의 대만 의존도가 낮다면 전략적 유연성을 발휘할 수도 있겠지만, 되레 너무 높기 때문에 딜레마가 돼버린 것이다. 대만 사태의 특수성에 따른 아이러니다.”
>>R6. 대만 해협 유사시, 미국이 어떻게 대응할지는 밀러 교수가 지적한 것처럼 그 유사 이벤트의 정도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국제법 상으로, 해상봉쇄는 이미 타국에 대한 적대행위를 넘어, 선전포고 행위로 간주된다. 특히 중국이 대만 해협 주변을 해상봉쇄할 경우, 현재 한국이나 일본으로 향하는 해상물동량의 55%는 직접적인 영향을 받게 되고, 30%도 간접적인 영향을 받게 된다. 이는 한국과 일본 같이 해외 무역에 의존하는 제조업 중심 국가에게 심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또한 대만에서 생산되는 다양한 시스템반도체와 패키징 역시 중국의 해상봉쇄로 인해 생산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 일각의 시뮬레이션에 따르면 중국의 해상봉쇄가 1달 이상 계속될 경우, TSMC의 생산 차질은 6개월-1년까지 이어질 수 있다. 이는 엔비디아의 GPU, AMD의 CPU, 테슬라의 자율주행칩, 퀄컴의 5G, 6G 통신칩 생산에 큰 차질이 생긴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중국이 대만에 대해 해상봉쇄를 시행하는 단계에서부터 미국이 군사적으로 이를 해결하기 위한 수단을 투사할 수 있다. 해상봉쇄로 인해 미-중 양국 간 해군력 충돌이 있을 수 있으며, 이는 대만 해협 주변에서의 국지전으로 발전할 수 있다. 이미 이에 대해서는 미국의 싱크탱크인 CSIS가 지난 1월에 25번의 미-중 대만해협 워게임 시뮬레이션을 시행한 결과를 발표하기도 하였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CSIS의 시뮬레이션에서도 고려되었듯, 한국이나 일본에 주둔한 미군이 동원될 경우, 동아시아 지역 전체의 안보 불안정성이 증폭될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은 단순히 대만의 반도체 생산 차질로 인한 미국 경제 악영향뿐만 아니라, 한국이나 일본의 경제적 불확실성, 그리고 그 이상으로 더 심각해질 군사안보적 불확실성에 직면하게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러한 관점에서 미국이 최소한의 시스템반도체 생산 수단을 반도체법을 통해 미국에 유치하려는 것은 경제안보 관점에서는 당연한 조치이나, 적어도 대만 생산력의 20% 이상을 갖추는 것만 해도 최소 5년 이상의 시간이 소요되고, 미국에 현재 신규 건설 중인 대만과 삼성의 파운드리 팹 작동에도 앞으로 최소 3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될뿐더러, 완공 후에도 캐파면에서는 현재 대만 본토에서의 생산 캐파 1/3 이하가 될 것임을 감안할 때, 중국이 이 약한 고리를 노릴 수 있는 최적의 타이밍은 (적어도 반도체 산업에서의 재기 불능 상황에 빠지는 것을 피할 목적이라면) 향후 3년-5년 사이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이에 대한 대비를 다각도로 준비하고, 유사시의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딜레이에 따른 영향 최소화와 정상 사이클로의 회복 계획을 미국과 미국의 주요 핵심 반도체 동맹국들이 구체적으로 논의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Q7. 신안보센터(CNAS)가 올해 초 발간한 보고서는 중국이 TSMC를 직접 압박·유혹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로 인해 대만 정부와 TSMC 간 충돌이 일어날 수 있을까.
A7.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대만 정부는 그간 적절한 법적 조치를 취했다. 중국이 대만 인재를 고용할 때, 중국 기업이나 정부가 자국 반도체에 투자를 할 때 엄격한 규제를 적용했다. 무엇보다 TSMC는 자체적으로 이미 선명한 입장정리를 했다. 미국이 화웨이에 대한 수출 통제를 처음 발표했을 때 TSMC는 ‘법 자체(letter of the law) 뿐 아니라 법의 정신(spirit of the law)도 준수하겠다’고 선언했다. 법적인 의무를 넘어 자발적으로 추가 조치를 취하겠다는 것이다. TSMC는 중국에 주요 고객이 있지만 가장 중요한 고객은 미국에 있다는 걸 명확히 알고 있다. 경영진 상당수가 미국에서 공부한 적이 있거나 미국 시민권자이기도 하다. TSMC와 미국 사이의 연결점이 TSMC와 중국 사이의 연결점보다 더 크고 더 강력하다고 할 수 있다.”
>>R7. 중국이 TSMC를 직접적으로 압박하거나 유혹하는 방법은 주로 전현직 엔지니어들을 스카우트하는 것이다. 2019년 이전 (즉, 미국의 대중국 본격 제재 전)만 해도 연평균 300-400명 정도의 전현직 TSMC 엔지니어들이 중국의 파운드리 업체 (예를 들어 SMIC 등)에 스카우트되었다. 이러한 스카우트를 대만 정부가 직접 법적으로 통제하기는 어렵다. 특히 퇴직 후 재고용되는 경우는 일일이 컨트롤하기 더 어렵다. 대만 입장에서는 TSMC가 현직 엔지니어들에 대해 지나치게 저임금 구조로 연구개발 인력을 유지하는 구조적 문제를 해결할 필요가 있으며, 중국 현지에 운영 중인 대만의 반도체 회사들에 대한 중국의 적대적 M&A 시도, 공격적 기술자산 인수 등의 시도를 모니터링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중국에서 있었던 ARM China 사태를 레퍼런스 삼아 분석할 필요가 있다.
Q8. 일각에서는 중국의 파운드리 SMIC 등이 TSMC의 7 나노미터 반도체를 모방하고 있다고 의심한다. 미국 정부 또한 특정 대만 기업이 중국과 손을 잡고 있다고 우려하는 것으로 안다.
A8. “TSMC 직원이 중국 회사로 이직하는 사례가 있었고, 지난 20년간 TSMC와 SMIC 간 지적재산권 소송도 잇달았다. (대부분 TSMC가 승소했다). 대만의 반도체 기술이 중국의 산업을 지원하는 경로로 흘러 들어가기도 한다. 하지만 그중 일부는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고 싶다. 미국의 목표는 중국의 기술 발전을 완전히 멈추는 것이 아니다. 가장 발전되고 정교한 기술이 중국의 손에 넘어가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TSMC도 세계에서 가장 발전된 제조업체로 남고 싶어 할 것이라 믿는다.”
>>R8. 2022년 여름에 발표된 SMIC의 7 나노 공정 칩 생산 (risk production)은 삼성전자나 TSMC가 4 나노급 이하 칩 생산에 활용하고 있는 EUV 노광기가 아닌, DUV 노광기를 이용한 공정에 의한 것으로서, DUV 노광 공정을 여러 번 반복하여 칩 내부 FINFET의 산화물 게이트의 물리적 크기를 줄인 이른바 SADP, SAQP 방식이다. 이러한 방식은 기술적으로 이미 잘 알려진 방식이고, 삼성이나 TSMC, 인텔도 현재 DUV를 이용한 공정에서 일부 활용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이러한 반복 패터닝 공정의 문제는 EUV에 비해 최대 4배까지 늘어날 수도 있는 공정 단계와 마스크 소요량, 그로 인한 공정 비용의 증가, 그리고 각 단계에서 누적되는 에러와 감축되는 수율이다. DUV + SAQP 방식으로 7 나노급 칩을 만들 경우, TSMC가 동일한 칩을 만드는 것에 비해 SMIC는 최대 3배의 비용과 1/4 이하의 생산 속도를 겪게 된다. 이는 칩의 양산 관점에서 본다면 생산할수록 그에 비례하여 대규모의 적자를 감수할 수밖에 없는 방식이다. SMIC가 risk production을 한다고 해도, 중국 정부의 보조금이 없다면 이 방식을 오래 유지하기는 어려운 이유다. SMIC의 7 나노 파운드리 공정은 TSMC의 전직 핵심 엔지니어이자 SMIC의 CTO인 량멍쑹의 지휘 하에 주도적으로 이뤄진 것으로서, 칩의 테이프아웃 후, 일부 분석가들의 리버스엔지니어링 결과 아나모픽 SAQP 패터닝 방식, 절연체 및 high K 소재, 에칭 공정 파라미터, CoWoS 패키징 방식 모두 TSMC 것과 유사하다는 것이 밝혀졌다. (심지어 TSMC가 과거 시행착오를 일으킨 소재와 방식까지 그대로 차용). TSMC는 현재 공식적으로는 밀러 교수가 지적했듯, SMIC과 비즈니스 관계가 단절된 상황이다. 다만 앞서 언급했듯, TSMC의 전직 엔지니어들이 현재 수백 명 이상 SMIC에서 근무하고 있는 상황이라는 점, 그리고 이들이 가진 노하우와 SMIC가 이미 확보한 주요 공정 장비 (제재 전 수입된 장비)를 이용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현재로서는 적어도 10 나노 이하급의 경우 일부 양산이, 7 나노급 까지는 칩의 시험 생산이 가능한 수준으로 판단된다. 다만 SMIC를 필두로 하는 중국의 시스템반도체 및 파운드리 산업의 기술 수준이 그 이상으로 발전하기는 어려운 것은 확실하다. 앞서 언급한 ASML의 EUV 노광기 수입 금지 조치가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라는 점, 노광기 외에 플러그 플라스마 에칭 장비, ATP 패키징의 일부 기술이 앞으로도 계속 제재 대상이 될 것이라는 점, 현재 도입된 에칭, 증착, 검사, 확산 등의 공정 장비의 유지보수가 올해 10월 이후 불가능해질 것이라는 점, 3 나노 이하급 파운드리에서 겪게 될 FET의 아키텍처 변화 (예를 들어 FINFET에서 GAAFET, 이후 CFET)를 위한 외국계 기업이 보유한 기술 IP 활용이 불가능하다는 점, floorplanning이 최적화된 EDA 소프트웨어 활용이 어려워지고, 기존의 라이브러리도 업그레이드될 수 없게 되었다는 점 등이 주요한 chokepoints로 작용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크리스 밀러 교수의 인터뷰의 각 포인트에는 분명 우리가 참고할 부분이 있으며, 반도체 산업 전반의 변화를 헤아리는 그의 시각에서도 배울 부분이 있으나, 적어도 반도체 산업을 비롯한 몇몇 핵심 첨단기술 산업은 기술의 변화 방식, 글로벌 분업의 진정한 의미, 기술 발전 속도와 표준의 제정 방식, 공급망 변동에 의한 SCM dynamics, 선단공정에서의 bottleneck, 패키징 공정에서의 핵심 기술 등에 대한 이해가 충분히 뒷받침이 되어야 한다. 앞으로의 국제관계는 지금보다 더 격심해질 기정학의 시대가 될 것인데, 산업 개개의 특수성과 변화 방식의 이해가 깊어지지 않으면 그저 과거의 지정학에 기술이라는 요인을 하나 더 추가하여 리스크 매니지먼트 하는 수준에 그치게 될 것이다.
첨언: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박종희 교수님 코멘트: 밀러의 대만 발표에서 모리스 창이 밀러에게 TSMC를 시작할 때 대만정부가 적극적으로 지원했다는 밀러의 주장을 반박한 것도 그냥 자기 노력이 폄하되는 게 싫은 것도 있겠지만 전형적으로 ”미국과는 달리 정부 지원으로 추격한 아시아“라는, 미국인들에게 좀 편리한 프레임으로 아시아의 반도체 분야에서의 성장을 도식화한 것이 마땅치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뇌피셜입니다. 그보다 훨씬 정교한 분석이 가능하고 그런 내용이 권교수님 저서에 많이 있어서 드리는 말입니다.
답변:
교수님 말씀처럼, 아무래도 저자 전공이 경제사라 그런지, 각국의 산업정책사라는 프레임에서 자유롭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사실 동아시아권의 나라들이 첨단 제조업을 시작하던 시기의 정책 보조금의 효과에 대해서는 이미 수많은 연구들이 있고, 제가 이해하기로는 대부분 그 정책의 효과가 초기 시장진입과 중기 기술 캐치업까지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한국, 일본, 대만 모두 예외 없이 그랬고, 지금 중국도 결국 그러한 경로 상에 놓여있다고 판단합니다.
다만 대만은 다소 특수성이 있습니다. 여전히 정부가 TSMC에 일부 지분을 소유하고 있고, 의사결정에 실력을 행사하며, 국가 전체적인 전자-반도체-부품 산업의 생태계를 관리 육성하는 포인트로 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른 동아시아 국가들과는 조금 다르게 볼 필요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한국이나 일본의 산업 구성도와 대만의 구성도를 비교해 보면 어떤 점이 다른지 알 수 있습니다.
보조금 관련해서는 사실 미국 스스로도 내부적인 모순에서 자유롭지는 못합니다. 교수님도 잘 아시다시피, 미국은 전통적으로 회사자본주의 문화가 강하고, 그래서 특수한 경우가 아니라면 정부 주도의 산업정책이 잘 받아들여지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카터-레이건 정권 전후의 산업정책이 그런 케이스라고 봅니다.
다만 80년대 중반의 미일 반도체 협정이나, 그 이후의 NAFTA 등의 무역 협정 이면에는 일부 산업에 대한 산업 정책이 계속 유효하게 작용해 왔다고 보입니다. 동아시아 국가들의 제조업에 대한 각국의 보조금 정책은 철저히 미국 입장에서 그것이 미국의 국익에 유리하다 판단할 경우에는 간섭을 않다가, 불리하다 판단되면 그것의 불공정성을 문제 삼고, 자국도 보조금으로 맞서겠다는 것은 모순적이죠.
보조금 정책의 효용성을 생각할 때, 미국이 성숙기에 이미 접어든 반도체 제조업에 대한 리쇼어링에 보조금을 집중하는 것은 매우 효율성이 떨어지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그 점은 미국도 잘 알고 있을 것이고요. 그래서 자꾸 외국 기업들을 같이 클러스터로 묶고 싶은 것인데, 지금의 반도체법 가드레일조항과 인센티브는 그 환경 조성용으로는 충분치 않아 보입니다. 그것을 미국 정부는 중국을 본보기 삼아 동맹국들에게 보여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밀러 교수는 미국인이니 당연히 미국의 시각에서 현재의 상황을 재단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시각의 밸런스를 완벽하게 가져갈 수는 없더라도, 판단의 근거가 되는 데이터와 사실관계, 그리고 최근의 상황변화 인지는 학자로서의 기본 자질이라 생각하는데, 그 점은 좀 아쉽게 생각됩니다. 아마 다른 외국인들이 제 책을 읽게 되면 비슷한 비판을 할 것이라 생각되는데, 이는 책을 펴낸 학자라면 의당 감수해야 하고 대응해야 하는 의무라고도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