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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석준 Seok Joon Kwon Mar 27. 2023

브로큰 애로우

관리되지 않는 핵무기의 위험성

과거 냉전 시절, 미국과 소련이라는 두 거대 핵 강국이 서로를 향해 어마어마한 양의 핵무기를 서로 수십 년 동안이나 겨누는 백척간두의 상황이 거의 반 세기 가까이 이어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다행히 핵전쟁은 일어나지 않았다. 덕분이 인류의 문명은 아슬아슬한 절벽에서 떨어지지 않고 겨우겨우 한 발씩 내딛고 있다. 그렇지만 핵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다고 해서, 핵무기 관련 사고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따지고 보면 반 세기 가까운 기간 동안 어떤 공학 시스템이든 큰 에러를 일으키고 사건사고가 생기는 당연한 일이라, 핵무기도 예외는 될 수가 없다. 다만 핵무기 관련 사건사고가 생각보다 아주 큰 문제로 연결되지 않은 것은 어찌 보면 인류에게 있어서는 극히 희박한 확률의 행운일 뿐이라는 것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다른 각도로 이야기하자면 앞으로 어느 시점에 이러한 핵무기 관련 사고가 대규모로 발생할지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고, 그 시점이 생각보다 빨리 올 수도 있다는 뜻이다. 즉, 지난 몇 십 년 동안의 행운이 앞으로도 지속되리라 믿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핵무기는 냉전 중에 이미 시작된 핵강국들의 감축 노력에 힘입어 이제 규모와 숫자 면에서는 많이 줄긴 했으나, 여전히 핵전쟁이 발발했을 시 지구상의 인구를 몇 번이나 절멸시키기 충분할 정도의 양은 남아 있다. 냉전이 종식된 지 한 세대가 지났지만, 러-우 전쟁, 이란을 둘러싼 중동의 갈등, 히말라야 산맥을 사이에 둔 인도와 중국의 군사적 갈등, 대만해협에서의 위기 고조 등, 핵무기를 보유한 나라들이 관여된 군사적 갈등이나 국지전 상황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이고, 이러한 위기 상황은 언제든 일촉즉발의 핵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 지금까지 있었던 핵무기 관련 사건사고를 되짚어 보고 이러한 사건사고가 핵위기로 이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 어떤 접근과 시스템 보완이 필요한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참고로 1945년부터 2015년까지 있었던 모든 핵폭발에 대한 기록은 아래의 영상에서 찾아볼 수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dGFkw0hzW1c


2차 대전 종전 후 얼마 안 된 시점인 1950년 2월 14일, 알래스카 기지에서 이륙한 미국 전략 폭격기인 Convair B-36 한 기가 텍사스로 비행하던 중, 엔진 고장으로 인해 통제 불능 상태에 빠졌다. 문제는 그 폭격기에 Mark 4 핵폭탄이 탑재되어 있었다는 것. Mark 4는 미국이 2차 대전에 일본에 투하한 Mark 1 (리틀보이), Mark 3 (팻맨)이 업그레이드된 버전으로서, 최초로 대량 생산된 핵폭탄이기도 했는데, 그 무게만 해도 무려 1만 파운드가 넘었다. 50년대 초반 당시의 핵 투발 수단은 주로 전략 폭격기에 탑재하여 투하하는 방식이어서 장거리 폭격기의 핵폭탄 탑재 및 순항 훈련이 필수적이었는데, 하필 실제 핵폭탄이 탑재된 상황에서 폭격기가 고장 난 것이다. 파일럿들은 항공기를 최대한 태평양 쪽으로 몰아서 제어해 보려 했으나, 실패했고, 최후의 수단으로 동체의 무게를 줄이기 위해 Mark 4를 태평양에 그냥 투하했다. 살아남은 승무원의 보고에 따르면 그렇게 투하한 핵폭탄이 폭발했다고 하는데, 다행히도 그 지역은 사람이 거의 살지 않는 지역 (Princess Royal Island, 밴쿠버로부터 서북쪽으로 600 km 지점)이라, 피해는 거의 없었던 것 같은데, 폭격기는 여전히 통제 불능이었고 결국 Skeena 산에 추락하여 5명의 승무원이 사망하였다. 만약 이 폭격기가 폭탄을 실은 채 밴쿠버에 그대로 추락이라도 했다면 밴쿠버는 지도상에서 사라졌을 것이다. 


같은 해 8월 5일, 또 다른 미국의 전략 폭격기인 B-29 Superfortress 역시 Mark 4 핵폭탄을 싣고 20명의 승무원이 탑승한 채 캘리포니아 주의 공군 기지를 이륙하여 남하하고 있었는데, 이륙 직후 얼마 안 되어 샌프란시스코 북동쪽 들판에 추락했다. 원인은 앞선 사고와 마찬가지로 항공기 엔진 고장이었는데, 공교롭게도 두 사건 모두 4기의 엔진 중 3기가 한꺼번에 고장 난 케이스였다. 이 사고로 승무원 19명이 사망하였다. 사고 당시, 미군은 훈련 중 사고였다고 발표했지만, 1994년에 해제된 기밀문서에서는 이 전략 폭격기에 Mark 4 핵폭탄이 탑재되어 있었음이 밝혀지기도 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이 핵폭탄은 내폭형 핵폭탄의 핵심인 fissile pit (플로토늄 중심부)가 제거된 상황이었는데, 만약 이 pit이 제거된 상태가 아니었다면 샌프란시스코 주변은 폐허가 되었을 수도 있다. 특히 이 사건은 1950년 6월에 발발한 한국전쟁 직후, 미군이 중국이나 소련의 동아시아 침공을 대비하기 위한 핵전략 전개를 위한 훈련의 일환이었기도 했는데, 이 추락사고로 인해 미 서부지역에 전개된 B-29 폭격기 전반에 대한 엔진 점검이 이뤄졌으며, 이로 인해 1950년 10월까지 괌에 전개되려던 B-29 핵폭탄 전략 폭격기의 전개가 늦어졌다. 만약 이 사고가 없었더라면 예정대로 미군은 괌에 B-29를 전개했을 수 있고, 필요에 따라 북한 전역 혹은 북-중 접경 지역에 Mark 4를 투하했을 가능성도 있었다. 아마도 이는 중국의 참전을 막았을 것이며, 따라서 한국전쟁의 판도를 완전히 바꿔 놓았을 것이다. 


1956년에 있었던 사고는 북미가 아닌 유럽과 아프리카 사이의 지중해에서 있었다. 1950년대의 미국 핵 전략은 주로 대형 전략기에 핵무기를 탑재하여 투발하는 방식이었고, 소련의 핵위협에 맞서 미군은 미국 본토에서 유럽으로 논스톱 순항하여 핵을 소련 상공에서 투발하는 훈련을 지속했다. 특히 레이더에 잡히지 않고 전투기가 도달할 수 없는 최고 고도까지 올려서 투발하는 방식도 추진했다. 이 과정에서 개발된 폭격기가 바로 보잉의 B-47 Stratojet이다.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이 항공기는 성층권까지 고도를 높여 폭격과 정찰에 적합한 임무를 수행할 수 있게 설계되었다. 1956년 3월 9일, 미국 플로리다주 맥딜 공군기지에서 이륙한 B-47E Stratojet 폭격기는 3명의 승무원이 탑승하고 있었는데, 대서양 상공에서 첫 번째 공중급유를 마친 후 아프리카 서안에 접근하면서 두 번째 급유를 시도하던 중, 급유기와의 도킹에 실패한 후 지상 관제소와의 교신이 끊겼고, 지중해 상에서 사라져 버렸다. 당시 폭격기에는 4기의 핵폭탄이 탑재되어 있었는데, 끝나 회수되지 않았다.  


같은 해 7월 27일, 역시 B-47E 폭격기가 이번에는 유럽에서 사고를 쳤다. 영국 서포크 레이켄히스 공군기지에서 이착륙 훈련을 하던 B-47E는 조종사의 실수로 하필 핵탄두 3기가 보관되어 있던 근처 핵무기 저장고에 추락하였다. 거대한 화재가 발생했지만 다행히 핵무기의 폭발로 이어지지는 않았고, 훈련을 대비하여 핵무기에는 fissile pit이 제거된 상황이어서 영국은 미증유의 핵폭발 사고로부터 안전할 수 있었다.


1958년, 역시 B-47 폭격기는 공중전 상황을 가정하여 F-86과 합동 훈련을 하던 중 조지아 주 사바나 인근 상공에서 충돌했다. 이 사고로 통제 불능 상황에 빠진 B-47의 파일럿은 항공기의 자세를 제어하기 위해, 탑재하고 있던 7,600 파운드짜리 Mark 15 핵폭탄을 Tybee 섬  인근 강에 투하했다. 핵폭탄은 다행히 폭발하지 않았고, B-47은 불행 중 다행으로 헌터 공군기지에 착륙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투하한 Mark 15 핵폭탄은 강바닥으로 실종되어 버렸고, 결국 회수되지 못했다.


1958년, 역시 B-47 폭격기가 미국 헌터 공군기지에서 이륙하여 영국으로 가던 도중, 북아프리카 상공에서 파일럿의 실수로 탑재하고 있던 Mark 6 핵폭탄이 지상으로 투하되었다. 다행히 fissile pit이 제거된 상황이라 핵폭발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1961년 1월 24일, 노스캐롤라이나 북부 골즈버러 상공에서 훈련 중이던 B-52는 세이모어 존슨 공군기지를 이륙 직 후, 공중급유 과정에서 연료 누출 문제가 생겨 연료탱크의 화재가 발생하였고, 그로 인한 날개 파손으로 인해 고도 1만 피트 상공에서 추락 위기에 빠졌는데, 파일럿은 화재로 인해 탑재하고 있던 24메가톤급 수소폭탄 2기의 폭발을 막기 위해 수소폭탄 2기 (Mark 39)를 투하하였다. 두 폭탄 모두 낙하산을 매달았는데, 한 기는 낙하산이 펴지지 않은 채 늪지대로, 남은 한 기는 낙하산이 펴진 채 인근 숲 속으로 떨어졌다. 불행 중 다행으로 두 기 모두 폭발하지는 않았다. 깊이 50 m 밖에 안 되는 늪속에 떨어진 핵폭탄은 끝내 찾지 못했고, 나무에 걸린 폭탄은 6중 안전장치 덕분에 폭발하지는 않았는데, 땅에 떨어진 폭탄에서 찾아낸 결과는 그중 5개의 안전장치가 고장 나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한 개만 더 고장 났더라면 이 폭탄은 폭발했을 것이다. 특히 이 사건은 단순한 핵폭탄이 아닌 수소폭탄의 폭발로, 그것도 미 본토에서의 폭발로 이어질 수도 있었던 대형 사건이었다.


1961년, 캘리포니아 마터 (Mather) 공군기지를 이륙한 B-52 폭격기는 여압장치 고장으로 인해 연료가 새어 나가는 바람에 예상보다 연료가 일찍 고갈되었고, 파일럿이 탈출한 이후 B-52는 스스로 24 km를 더 날아가 캘리포니아 유바 (Yuba) 시 인근에 추락하였다. 탑재 중이던 핵폭탄이 이 사고로 기체 밖으로 튕겨져 나갔으나 다행히 폭발하지는 않았다. 


1964년, 미국 웨스트오버 공군기지에서 이륙한 B-52 폭격기는 꼬리 날개 파손 사고로 인해 펜실베이니아주 남서부 Savage 산에 추락했는데, 이 사고로 승무원 3명이 사망하였고, 다행히 탑재 중이던 2기의 핵폭탄은 폭발하지 않았다. 


1965년 미국 태평양함대 소속 항공모함 USS Ticonderoga호가 일본 오키나와 근해에서 훈련 중에도 사고가 있었다. 함재기 A-4E Skyhawk가 격납고에서 승강기를 이용하여 갑판 위를 향해 올라오던 중, 결속 장치가 풀리면서 해상으로 추락하는 사고가 있었다. 문제는 Skyhawk에 하필 B43 핵폭탄 (Mark 43)이 탑재되어 있었다는 것인데, 함재기와 함께 그 핵폭탄은 일본 해구로 실종되어 버렸고, 핵폭탄은 끝내 회수되지 못했다. 당시 미군은 이 사실을 인정하지 않다가, 1981년이 되어서야 이 사고가 공개되었는데, 1989년에는 오키나와 남동쪽 128 km 지점의 해저 5000m에 그 핵폭탄이 가라앉아 있다는 사실이 비로소 인정되기도 했다. 


1963년 4월 10일, 매사추세츠 주 케이프 캇으로부터 350 km 동쪽 해상 인근 대서양에서 임무 중이던 미국 핵잠수함 USS 스래셔 호 (Thresher, SSN-593)은 선체 결함으로 인한 침수로 인해 원자로 쪽 해수 파이프가 파손되어 기관실이 침수되었다. 이로 인해 원자로가 작동 불능 사태에 빠졌고, 결국 침몰하였다. 이 사고로 인해 승조원 129명 전원이 사망하였다. 스래셔 호에도 2기의 핵어뢰가 탑재되어 있었는데, 대서양 심해 해저 2,600m에 침몰한 잠수함에서 어뢰를 회수할 수는 없었다.  


1966년 1월 17일, 스페인 남동부 지역 상공 9,000m에서 공중 급유를 시도하던 B-52 폭격기는 급유 중 KC-135 Stratotanker 급유기와의 충돌 사고로 인해 급유구 쪽에 화재가 발생했고, 화재는 기체로 옮겨 붙었다. 파일럿들은 항공기에 탑재되어 있던 B28 수소폭탄 4기를 지중해로 투하하려 했다. 각 폭탄은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폭의 1천 배 이상의 위력을 가진 대형 폭탄이었기 때문이었다. 이 폭탄이 스페인  국토로 떨어진다면 당시 독재 정권 하에 있던 스페인과 미국의 관계는 파탄으로 이어졌을 것이다. 불행히도 폭격기에서 투하된 수소폭탄 중, 1기만 지중해로 투하되었고, 3기는 스페인 Palomares 인근 지상으로 떨어졌는데, 그나마 불행 중 다행으로 3기의 폭탄은 모두 폭발하지는 않았다. 비상안전장치 덕분이었다. 다만 사고가 없던 것은 아니었다. 그나마 한 기는 낙하산 덕분에 지상에 안전하게 떨어졌지만, 나머지 두 기에서 보조 신관 (비핵 신관)이 폭발하였고, 이로 인해 내부에 있던 플루토늄 중 20 kg이 누출되는 사고가 발생하였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그 지역의 토양은 광범위하게 방사능에 오염되었다. 미군은 이중 5% 정도를 회수했지만, 나머지 토양은 여전히 오염된 채로 남아있다. 지중해로 떨어진 수소폭탄 중 1기는 이후 해저 800 m 지점에서 3개월 후 회수되었다.  


1968년, 미국 Plattburgh 공군기지에서 이륙한 B-52 폭격기는 그린란드 인근 Thule 공군기지 근처에 추락했는데, 탑재하고 있던 핵폭탄으로부터 방사능 물질이 유출되어 인근 지역이 오염되었다.


1968년 5월, 미 해군 소속 핵잠수함 스콜피온호 (SSN-589)가 실종되는 사고가 있었다. 스콜피온 호에는 2기의 핵어뢰와 수 기의 SLBM이 탑재되어 있었는데, 포르투갈 인근 아조레스 제도 남서쪽 320 해리 떨어진 지점 수심 110m 지점에서 침몰했다. 명확한 사고 원인은 규명되지 않았지만, 이후 1990년대 중반, 심해 탐사 과정을 통해 스콜피온 호에서 발사한 음향어뢰가 이상 작동하여 자함을 스스로 공격함으로써 생긴 사고로 원인이 추정되었다. 스콜피온 호의 승조원 99명은 이 사고로 모두 사망하였고, 해저 3,300m에 가라앉은 잔해에서 핵무기는 결국 회수되지 않았다. 


미국만 이런 핵폭발의 위험까지 몰릴 정도의 사고의 문턱까지 간 것은 아니었다. 미국은 일정 기간 후 기밀을 공개하기 때문에 그나마 사건사고 사례가 비교적 잘 정리되어 있지만, 구소련은 그렇게 하지 않았을뿐더러, 그나마 남아 있던 기록마저도 구소련 붕괴의 혼란 속에서 많이 소실되었다. 일단 알려진 사고는 다음과 같다.


1961년 7월 3일, 소련 최초의 SLBM이었던 핵잠수함 K-19는 훈련 도중 원자로 냉각 장치 고장으로 인해 원자로 노심이 녹아내릴 위험에 처한 사고가 있었다. 소련 특유의 사람을 갈아 넣는 방식으로 원자로 사고는 간신히 막았으나, 결국 고장 난 원자로를 카라 해에 무단 투기하기도 했고, 이로 인해 근해의 방사능 노출 위험이 올라가기도 했다. K-19은 이후에도 1969년 11월 15일, 바렌츠 해 인근에서 미국의 원자력 잠수함과 충돌 사고를 일으키는 등의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1968년, 구소련의 핵잠수함 Golf호는 하와이 제도 서북부 해저에서 임무를 수행하던 중, 폭발 사고로 인해 서태평양 해저로 가라앉았다. 문제는 그 잠수함에 적어도 3기의 핵어뢰가 탑재되어 있었다는 것이었다. CIA가 잠수함의 잔해까지 발견하는 것에는 성공했지만, 결국 핵어뢰의 인양은 할 수 없었다. 


1970년 4월 8일, 구소련의 핵잠수함 K-8은 대서양 북동쪽 비스케이만 부근에서 에어컨 시스템 화재 사고로 인해 침몰했다. 당시 잠수함에는 4기의 핵어뢰가 탑재되어 있었는데, 회수 여부는 불확실하다.


1974년, 구소련의 핵잠수함 K-129는 태평양에서 작전 중, 의문의 사고로 침몰했다. 알려진 것으로는 3기의 SLBM이 탑재되어 있었다고 했는데, 이 역시 회수되지 않았다.


구소련 붕괴 직전인 1989년 4월 7일, 노르웨이 북쪽 북해 480 km 지점의 해역에서 초계 임무 중이던 핵잠수함 K-278 콤소몰레츠호가 바렌츠 해로 항해하던 중 기계실의 화재, 그리고 이로 인한 원자로 가동 중단 사고로 침몰했다. 이 잠수함에는 원자로뿐만 아니라, 핵어뢰 2기가 같이 있었는데, 핵어뢰 2기는 폭발하지는 않았지만, 끝내 회수가 되지는 않았다. 문제는 1,700 m 깊이의 해저로 실종된 핵어뢰로부터 방사능 물질이 유출되어 바렌츠 해 인근이 오염되었다는 것이었다. 


구소련 붕괴 후에도, 끔찍한 핵무기 사고는 계속되었다. 2000년 8월 12일, 러시아 북방함대 소속 핵잠수함 쿠르스크호는 노르웨이의 바렌츠 해에서 훈련 도중 폭발 사고로 인해 침몰했다. 당시의 폭발은 잠수함의 원자로가 폭발할 정도의 위력이었는데, 불행 중 다행으로 방사능 누출은 거의 없었다. 원인은 구식 어뢰의 추진 장치 불량으로 인한 폭발이었는데, 당시의 쿠르스크호에 핵무기가 탑재되어 있었는지 러시아는 공식적으로 확인해주지 않았으나, 통상 훈련에서도 보통 핵어뢰와 SLBM을 탑재할 정도의 오스카급 핵잠수함이었기 때문에 다량 탑재되어 있었으리라 추정하는 전문가가 꽤 있다. 이 사고는 노르웨이 인근 해역에서 발생한 사고여서, 만일의 경우 방사능 누출이 있었거나 핵폭발이 있었다면 스칸디나비아 반도 전체를 오염시킬 수도 있었던 대형 사고가 될 수도 있었다.  


주로 냉전 시절에 일어났던 이러한 핵무기 관련 사고는 50-60년대에는 전략 폭격기에서, 그 이후에는 핵잠수함에서 일어났던 것으로 볼 수 있다. 50-60년대 전략 폭격기에서 유독 많은 핵무기 관련 사고가 있었던 까닭은 당시 대륙간 핵투발 수단이 성층권을 순항할 수 있는 장거리 전략 폭격기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당시는 ICBM이 본격 배치되기 전이었고, 원자로를 탑재하여 장거리 잠항이 가능한 SLBM도 나오기 전이었다. 장거리 성층권 비행을 해야 하다 보니 2-3차례의 공중 급유는 필수적인 과정이었고, 이 과정에서 수많은 사고가 발생했다. 파일럿들은 전략 폭격기 사고가 발생하였을 시, 본토나 동맹국 인근 지역이면 최대한 바다에 핵폭탄을 투하하고, 바다가 없을 시, 최대한 신관을 제거하고 안전장치를 여러 겹으로 작동시켜 지상으로 투하하도록 훈련받았다. 아마도 50-60년대에 있었던 수많은 전략 폭격기의 추락 사고 과정에서도 본격적인 규모의 핵폭발이 없었던 까닭도 바로 이러한 안전장치가 제대로 작동했다는 것과 함께 심해로 투하할 수 있었던 행운이 작동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문제는 심해에 투하된 핵무기의 경우, 설사 폭발을 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결국 해수에 폭탄의 외피가 서서히 부식되어 언젠가는 방사능이 새어 나올 것이라는 점이다. 그 해역이 어장이거나 민간인 거주 지역 근처라면 이는 끔찍한 환경 재앙이 될 것이다. 70-90년대의 핵잠수함 사고 역시 핵전쟁의 전략이 ICBM과 SLBM으로 양분되던 과정에서 빈발하게 된 사고였는데, 핵잠수함의 특성상, 결국 원자로를 탑재하여 장거리, 장기간 은밀한 잠항이 가능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이유로 인해 원자로에 대한 부담은 컸고, 그래서 원자로 관리 미흡으로 인한 사고의 위험은 항상 높았다. 특히 잠항하는 과정에서의 사고는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었는데, 대형 핵잠수함의 경우 핵어뢰 외에도 SLBM 수기~수십 기를 탑재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인류는 어찌 보면 지난 70여 년 간 행운에 행운이 연속하여 겹쳐서 두 핵강국의 미친 핵전력 경쟁, 지구를 여러 번 파괴할 수 있을 정도로 거대한 규모의 상호확증파괴 경쟁 속에서도, 그리고 그 과정에서 크고 작은 사고가 수 없이 빈발하는 와중에도 핵폭발, 나아가 핵폭발을 오인한 상호 공격이라는 재앙으로부터 살아남을 수 있었다. 어찌 보면 이는 정말 말도 안 되는 수준의 행운이 겹침으로써 생긴 극히 드문 사건이기도 하다. 위에서 살펴봤지만 알려진 사례로만 10건이 훌쩍 넘고, 비공식적으로는 50건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는 전략 폭격기 혹은 핵잠수함의 핵무기 사고에서 단 한 건의 핵폭발도 없었던 것은 확률만 따진다면 0에 가까울 정도의 드문 일이다.


인류가 이 70년의 기간 동안 재앙급의 핵폭발을 피할 수 있었던 것은 안전장치의 발달이나 행운 덕도 있겠지만, 서로 오해할만한 상황까지는 가지 않았다는 것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과연 인류에게 이런 행운이 앞으로도 계속 따를 것인지는 불확실하다. 러시아가 올해 3월 우크라이나를 침공함으로써 시작된 전쟁은 이제 반년이 넘어 다시 겨울로 접어들고 있다. 러시아는 개전 초기와는 달리 군사적 작전이 지지부진한 상황이고, 적어도 자신들이 점령한 우크라이나 동부의 루한스크나 도네츠크 지역을 완전히 합병하기 위해 급하게 그 지역 괴뢰 정부를 통해 주민투표를 실시하려 한다. 투표 결과는 주민들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아마도 러시아 정부에 의해 철저하게 조작될 것이고, 그 결과는 당연히 합병 찬성이 절대적으로 높은 비율로 나오게 될 것이다. 아마도 러시아는 이를 근거로 삼아 그 점령지에 있는 외국 (즉, 우크라이나) 군대를 침략군으로 규정하고, 이들에게 보복을 가할 수 있다는 근거를 일방적으로 주장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많은 이들은 수세에 몰린 러시아의 리더, 즉, 푸틴이 판단 착오를 거듭하여 결국 핵 버튼을 누르게 되지 않을까 걱정한다.


인류가 지금껏 누려왔던 그 행운이 푸틴이 언제고 누를 수도 있는 핵버튼에도 다시 작동해 주면 좋겠다. 오작동이든, 안전장치든 말이다. 그렇지만, 러시아의 핵 자산이 모두 깡통은 아닐 것이고, SLBM이든, 핵미사일이든, 포탄형 전략핵이든, 러시아의 핵무기가 한 기라도 실제 폭발로 이어진다면 우크라이나는 물론, 동부 유럽, 나아가 유럽 대륙 전체는 핵전쟁의 재앙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미국이나 영국, 프랑스 같은 NATO 가입국 중, 핵무기를 보유한 국가들은 러시아에 보복을 가할 수 있고, 이는 러시아가 이들 국가를 향해 핵으로 다시 보복할 수 있는 전쟁으로 이어질 수 있다. 


아슬아슬하게 핵으로 인한 자멸의 공포에서 겨우겨우 빠져나온 인류가 다시 그 재앙 속으로 한 발자국씩 끌려 들어가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부디 이번에도 아무 일 없이 인류가 핵의 공포로부터 해방되면 좋겠지만, 그에 앞서 러시아가 통제하고 있다고 자신하고 있는 핵무기들이 과연 얼마나 그들이 자신하는 만큼 안전한 상태에 있을 것이며, 얼마나 '인위적' 실수로부터 안전할지가 의문이다. 러시아의 무기 상태는 점점 관리의 소홀함이 여실히 드러나고 있는 상황이고, 핵무기라고 해서 과연 관리가 잘 되기만 했을지도 의문이다. 어디엔가 있을 브로큰 애로우가 어떻게 튀어나올지 모르고, 어느 사일로에서 잠자고 있을 ICBM의 좌표가 과연 정확하게 입력되어 있을지, 그 좌표가 미국이나 영국은 아닐지 걱정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푸틴이 기어이 핵버튼을 누르고, 오작동으로 인해 (스콜피온 호의 음향 어뢰처럼..), 러시아 영토에서 폭발이라도 한다면 그것은 더 불행한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의 러시아만 놓고 본다면, 러시아는 그것을 핑계로 핵공격을 받았다고 주장할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모쪼록 푸틴이 실각하고, 러시아가 일으킨 전쟁이 끝나고, 인류가 핵전쟁의 공포에서 영원히 해방되기를 바란다. 러시아 발 핵전쟁은, 단순히 동부 유럽의 핵전쟁, 핵무장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고, 핵우산에 대한 효용에 회의를 품게 된 수많은 나라들의 핵무장 경쟁으로 이어지게 될 것이다. 더 많은 나라들이 핵무장을 하게 되면, 더 많은 핵무기 사고가 이어질 것이고, 그 사고 중 하나라도 아슬아슬한 행운을 비켜가기라도 하면 21세기 중반 이후의 인류 역사는 자멸의 역사로 접어들게 될지도 모른다. 2차 대전 후 평화의 기간을 겨우 100년도 지키지 못하고 재앙의 기간으로 접어들게 될지도 모른다. 이 상황까지 흐르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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