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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석준 Seok Joon Kwon Sep 25. 2024

[ABP: 과학적 사고 방식의 중요성]

보스니아 피라미드 이야기

최근 넷플릭스에는 그레이엄 핸콕 (Graham Hancock)이 제작에 참여한 다큐멘터리 '고대의 아포칼립스'가 공개되었다. 그레이엄 핸콕은 한 때 '신의 지문' 같은 책을 출판하면서 화제에 올랐던 인물로, 우리나라에도 그의 책이 몇 권 번역되어 꽤 인기를 끌었던 적이 있다. 나 역시 학창 시절, 그의 책을 구입하여 밤을 새가며 즐겁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핸콕의 책은 대부분 주류 역사학에서는 다루지 않는 혹은 대중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세계 곳곳의 고대의 유적들을 취재하면서 그들 사이에 얽힌 관련성을 보고하는 스타일의 논픽션이라 볼 수 있다. 신의 지문 외에, 그는 우주의 지문 같은 후속작도 썼는데, 책들을 관통하는 주제는 '인류의 역사가 본격적으로 기록되기 전, 아주 오랜 옛날에는 (적어도 1만 2천년 전) 우리가 잊고 있는 초고대 문명이 존재했다.'로 수렴한다. 이러한 주제는 많은 사람들의 호기심을 불러일으켰으며 특히 어린 독자들로 하여금 수많은 상상의 나래를 펴게 하였다. 또한 그럴듯한 과학적 이론을 제시하면서 주류 학계에 도전하고, 새로운 학설을 주창한다는 취지로 인해 일반인들의 관심과 지지를 많이 받기도 했다.


그레이엄 핸콕의 대표 작 '신의 지문' (이미지 출처: Amazon)


그렇지만 핸콕은 전문적으로 훈련 받은 과학자, 역사학자 혹은 고고학자가 아니었으며, 그의 책도 학술적 연구에 기반을 둔 것이 아닌 이코노미스트나 선데이타임즈 같은 매체의 특파원으로 그가 여기저기 다니며 취재한 자료를 근거로 엮은 결과물일 뿐이었다. 문체는 다큐성에 가까울 정도로 건조했지만, 핵심 메세지만 놓고 보면 픽션에 가까울 정도였다. 그가 책에서 중요한 근거 자료라고 언급한 세계 곳곳에서 발견되는 '현재의 이론으로는 설명되기 어려운' 유적들 (이른바 오파츠 (Out-of-place Artifacts, OOPArts))은 대개 조작된 것들, 최근에 만들어진 것 혹은 착각에 불과한 것들이었다. 과학적 이론이랍시고 언급된 학설들 역시 주류 학계에서는 진지하게 고려되지 않는 소설에 가까운 것들이었다. 예를 들어 대표적인 초고대 문명으로 언급된 아틀란티스 문명의 멸망 원인으로 그가 제시한 지각 이동설 (그는 현재의 남극 대륙이 아틀란티스라고 주장한다.)은 현재의 판 구조론이 아닌 지표의 얼음 무게로 인한 미끄러짐 이론에 근거를 둔 것이다. 초고대 문명의 멸망 원인 중 하나로 언급되는 대홍수설 역시 1만 2천년 전에 있었던 유성우의 극지방 대량 충돌에 의한 것으로 제시되고 있으나, 그에 대한 지질학적인 근거는 없다. 즉, 핸콕이 주장하려고 하는 것들 대부분은 과학적 근거 자료가 없고 학설 역시 학설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수준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핸콕의 인기는 책을 펴낸지 3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에도 죽지 않은 것 같다. 무려 넷플릭스에 다큐멘터리 시리즈를 데뷔시킬 정도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번 다큐 시리즈에서는 그간 자신의 책에서 주장했던 놀라울 정도의 학설들은 자세히 언급되지는 않는다. 물론 여전히 초고대 문명의 멸망을 핵심 주제로 다루고 있고, 그 원인을 대홍수로 보고 있는 것에는 변함이 없지만 초고대 문명을 세운 장본인이 화성에서 이주해온 외계인들이랄지, 아틀란티스 대륙 (즉, 지금의 남극 대륙)이 지표에 얼음이 쌓이면서 미끄러져 극지방으로 이동했다든지, 오파츠에 남아 있는 형상들이 외계인이 타고온 우주선의 프로토타입을 묘사한 것이랄지 하는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나름 한 발 양보한 자세로 자신의 학설이 아닌 최신 지질학 학설을 소개하기도 하며 초고대 문명의 존재를 직접적으로 주장하려 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그는 이번 다큐멘터리에서도 여전히 약 1만 2천년 전쯤에 있었던 '모종의 사건'을 계속 암시하고 있으며, 그것이 초고대 문명의 멸망 혹은 그 이후의 문명 성립에 큰 영향을 주었음을 주장하려는 듯 하다.


그레이엄 핸콕 등이 주장하는 초고대 문명설은 사실 과학적인 맥락이 아닌 문화적인 맥락만 놓고 보면 흥미로운 소재임에는 분명하다. 2000년에 개봉한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의 영화 '미션 투 마스', 2012년에 개봉한 리들리 스콧 감독의 영화 '프로메테우스'나 2009년 롤랜드 에머리히 감독의 영화 '2012' 같은 작품에도 영향을 준 흔적이 역력하며, 그의 뒤를 이어 여기저기 지구 곳곳에 숨겨진 초고대 문명의 자취를 찾으려는 후계자들이 생겨났다. 그 후계자들은 핸콕의 주장을 재료 삼아 소설, 영화, 만화 등 다양한 영역으로 상상의 나래를 펼쳐나간다. 물론 핸콕의 주장도 단순히 흥미 위주로 소비되는 차원을 넘어, 근거가 쌓이고 재현이 되고 과학적 논리의 정합성이 갖춰진다면 언젠가는 주류 학계의 학설로 자리잡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지만 현재로서는 핸콕의 주장은 흥미 그 이상의 수준으로 나아가지는 못 하고 있다. 대부분의 고고학자들, 역사학자들은 핸콕의 주장을 진지하게 고려하지 않으며, 그가 제시한 증거들의 과학적 정합성은 인정받지 못하고 있고, 그가 어느 순간부터 화성 외계인 설, 오파츠 설 등으로 방향을 잃어가면서 심지어 그를 사기꾼으로 보는 시각도 생겨나고 있다.


핸콕 류의 주장은 대개 음모론으로 분류된다. 음모론이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는 이유는 그야말로 설명되지 않은 것들을 음모로 다루는 것의 편리함, 그리고 기득권에 대한 저항 심리 때문이다. 예를 들어 핸콕의 주장이 사람들에게 여전히 인기를 끄는 이유는 그의 주장이 흥미롭기도 하려니와, 뭔가 주류의 권위로부터 탄압받는 재야 사학자의 용기, 그리고 뭔가 비밀스러운 것들이 밝혀지는 것을 막기 위한 세계의 그림자 정부 혹은 권력집단의 음모로 보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핸콕 스스로가 직접적으로 그러함을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핸콕의 주장이 기존 학문에서 인정을 받지 못하는 것을 주류 학계의 탄압, 나아가 핸콕이 밝혀내려고 하는 커다란 비밀의 누설을 막기 위한 어둠 속의 누군가의 노력으로 보고 싶어하는 지지자들은 꽤 많이 존재한다. (아마존 독자 리뷰에 이런 시각의 리뷰가 적지 않다.)


문제는 음모론에 빠지는 학설들은 대개 과학적 엄밀함을 외면하고, 데이터를 얻는 과정의 재현/검증을 제대로 거치거나, 주어진 데이터를 제대로 분석하는 과정을 잘 거치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실 주류 학문이라고 인정 받는 이론이나 학설들도 처음 출발할 때는 대부분 당시의 '주류' 학계로부터 지지를 받는 경우는 흔치 않다. 흥미를 끄는 제안들, 가설들, 이론들은 오늘도 수백, 수천 개가 출현하고 있지만 그 중에서 과학적 판단의 엄밀함을 거쳐 살아 남는 것은 극소수다. 여기서 말하는 과학적 판단이라는 것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자체적인 논리의 정합성이 있는지, 기존의 연구 결과들을 분석하고 제대로 비교했는지, 새롭게 제시된 것에 대해 근거를 제시했는지, 그 근거가 제대로 확보되었는지, 다른 사람이 그 근거를 검증하거나 비슷한 방식으로 얻을 수 있는지, 그리고 근거로부터 결론에 이르는 과정에 논리적 결함이 없는지 등의 과정이다. 누가 봐도 합리적인 과정이고 당연히 거쳐야 할 과정으로 보일 것이다. 그런데 사실 이 과정을 모두 거쳐 살아 남는 학설은 극소수다. 만약 제시된 모든 학설들이 다 이 과정을 거쳐 살아남았다면 오늘날 우리가 보는 교과서의 두께는 적어도 지금의 수만 배 이상 두꺼웠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중에서 진실에 가까운 것이 무엇인지 아마 알 수 없게 되었을 것이다.


핸콕의 학설이 음모론으로 화한 주된 이유는 이러한 과정을 피하려했거나, 검증 과정에서 실패했거나, 검증 결과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그가 주장한 오파츠가 나중에 조작된 것으로 판명된 이후에도 그는 그에 대한 반박을 하거나 인정을 하지 않았다. 또한 판 구조론을 무시하고 대안으로 제시한 얼음 누적으로 인한 지각 이동설이 학계로부터 많은 반박을 받고 그 메커니즘이 물리적으로 말이 되지 않음을 지적 받은 이후에도 그것에 대한 대응을 하지 않았다. 그가 주장한 화성 외계인 이주설의 주요 근거 중 하나였던 화성 시도니아 지역에 분포한 인면암이나 피라미드 형태로 보였던 '인위적인' 지형들 (1970년대 미국의 화성탐사선 바이킹 호가 촬영한 저해상도 이미지 기반)이 나중에 고해상도 화성탐사선 사진 (예를 들어 2001년 화성탐사선 Mars Global Surveyor)에서 그렇지 않음이 밝혀진 이후에도 그는 그것에 대한 수정을 하지 않았다. 자신의 학설에 유리한 자료만 체리 피킹하면서도 동시에 불리한 자료나 새로 업데이트된 자료는 애써 회피하는 형태의 학설은 결코 주류 학계로부터 인정 받지 못 한다. 그것은 그의 학설로 인해 숨겨진 비밀을 폭로되는 것을 막기 위한 그림자 정부의 탄압이나 주류 학계의 권위주의 때문이 아닌, 지극히 상식적인 과학적 연구 과정을 제대로 거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핸콕 류의 음모론은 여전히 생명력이 강하며 쉽게 없어지지 않는다. 앞서 이야기했듯 사람들의 흥미를 자아내고 관심을 쉽게 끌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흉내낸 후계자들도 당연히 생겨난다. 대표적인 케이스가 바로 이른바 '보스니아 피라미드 (Bosnia Pyramid)'를 최초로 발견했다고 주장하는 세미르 오스마라지크 (Semir Osmaragic) 박사다. 보스니아계 미국인인 그의 전공은 경제학 (석사)이며 학위 후 보스니아 내전을 피해 미국으로 이민 후 그곳에서 사업가로 변신한 인물이다 (박사 학위는 2009년에 사회학로 받음). 2005년, 보스니아-헤르체코비나의 수도 사라예보 북서쪽 근교에 있는 비소코 (Visoco, 구글맵 위치 X5GG+PGM, Visoko 71300, Bosnia & Herzegovina) 라는 작은 도시에 방문한 오스마라지크 박사는 도시 주변의 지형이 심상찮게 생겼음을 관찰한다. 그 지역은 하필 여러 시대에 걸친 유적들 (예를 들어 중세 시대 요새나 로마 시대 유적 등)이 산재한 곳이기도 하고, 지형적으로 다양한 형상의 특성이 있는 지역인데다가, 화석도 많이 발굴되는 곳이라 이미 흥미로운 포인트가 가득한 지역이었는데, 여기에 더해 뭔가 새로운 흥미거리가 관찰된 것이었다.

보스니아 태양의 피라미드 (이미지 출처: https://tpulse.substack.com/p/the-bosnian-pyramid-complex-larger-older-more-m


세미르 오스마라지크 (Semir Osmaragic) 박사가 2005년 보스니아-헤르체코비나 중부 지방에 위치한 소도시 Visoco에서 발견한 지형은 첨부한 사진에서 보이듯 마치 거대한 피라미드처럼 보였다. 심지어 피라미드의 개수는 한 개가 아니었다. 그가 처음 발견한 가장 큰 피라미드 (높이 약 220m)인 보스니아 태양 피라미드 (Bosnian Pyramid of the Sun) 외에도 Bosnian Pyramid of the Moon, Bosnian Pyramid of Love, Bosnian Pyramid of the Dragon, Temple of Mother Earth, Vratnica Tumulus, Dolovi Tumulus, Ginje Tumulus, KTK Tunnels, Underground Labyrinth “Ravne” and “Ravne 2” tunnels 를 포함한 무려 11개의 인공적인 거대 구조물이 발견된 것이다. 당연히 오스마라지크 박사는 이 발견에 대흥분했을 것이고, 이는 각국 미디어의 주목을 끌었다.



오스마나지크 박사는 피라미드 구조물 일부를 파헤치면서 하단부에 거대한 콘크리트 덩어리처럼 보이는 블록마저도 발견했는데, 이를 통해 오스마나지크 박사는 이 피라미드가 고대의 콘크리트 블록 기술로 만들어진 피라미드임을 확신하게 되었다. 더구나 11개의 인위적 지형들을 연결하는 것처럼 보이는 지하 터널 형태의 지형, 그리고 그 터널벽에 가득한 알아볼 수 없는 고대의 문자처럼 보이는 낙서들의 흔적은 이 지역이 먼 옛날 초고대 문명의 중심지이자 거대한 피라미드군의 요람이었음을 확신하게 하였다. 11개 지형 중, 피라미드로 분류되는 여러 지형들의 위치는 적절한 측량을 동원하면 정삼각형을 이루고 있는 것처럼 보였으며, 피라미드들의 높이는 신비한 비율을 이루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야말로 이집트 기자의 피라미드 군에 버금가는 세기의 대발견으로 믿어질 정도였다. 


당연히 이에 대해, 초기에 주류 학계의 관심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애초에 이 지역은 고대 로마부터 중세 시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시대의 유적이 남아 있는 중요한 지역이었고, 더 거슬러 올라가면 화석이 많이 발견되는 지역이기도 해서 고고학자들, 역사학자들 사이에서는 꽤 알려진 지역이기도 했다. 오스마나지크 박사는 2006년에 아예 보스니아 피라미드 재단을 설립하여 이 지역에 대한 고고학적 탐사를 주도하려 했고, 학회를 개최하여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자 했다. 주류 학계가 참석한 최초의 학회는 2008년이었고, 이후 다시 2012-2015년 사이 4번의 학회가 더 개최되었다. 그렇지만 제대로 된 국제 학회는 처음 2번에 불과했고, 이후의 세 번의 학회는 오스마나지크 박사와 그의 재단이 주도한 작은 학회였을 뿐이었다. 


오스마나지크 박사의 보스니아 피라미드에 대한 의심이 싹트기 시작한 것은 그가 보스니아 피라미드가 초고대 문명의 에너지원이라고 주장하기 시작한 시점부터인 것 같다. 그는 보스니아 태양의 피라미드 꼭대기를 통해 일종의 에너지 빔이 들어온다고 주장했으며 빔의 반경이 4.5m, 그리고 그 주파수는 28 kHZ라고 주장할 정도로 디테일한 정보도 계산했을 정도였다. 


사실 피라미드가 일종의 에너지 안테나 역할을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오스마나지크 뿐만 아니다. 응용물리학에서는 그래도 '정상적인' 저널로 인정 받는 Journal of Applied Physics (AIP 발행)에도 유사한 주장과 계산 결과가 실린 논문이 발표되기도 했다. 

https://aip.scitation.org/doi/10.1063/1.5026556


피라미드 같은 다면체 혹은 다극체 형태의 도체나 절연체 구조가 전자기파에 노출되었을 때, 내부에 얼마나 많은 전자기장이 형성 (응축이라는 표현은 매우 이상합니다..)되는지는 지금도 많이 연구되는 주제다. 실제로 내가 하는 연구 중의 하나인 금속 나노입자 기반 플라즈모닉스 (metal nanoparticle plasmonics) 연구에서는 피라미드를 수백 나노미터 스케일로 반들어 실리콘 태양전지 표면에 부착하면 가시광-근적외선 대역의 태양광 스펙트럼에 해당하는 입사광을 더 잘 흡수 (혹은 덜 반사)하게 만들어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연구를 하기도 한다. 사실 전자기장 분포를 계산하기 위한 지배방정식인 맥스웰 방정식 특성 상, 구조체의 특정 크기 (예를 들어, 피라미드에서는 밑변의 길이와 높이)와 입사하는 전자기파의 파장의 비율, 그리고 해당 파장에서, 구조체를 이루는 재료의 유전 상수만 알고 있으면 수치해석방법 (예를 들면, finite difference time domain (FDTD) method 같은 방법들)에 의해 맥스웰 방정식을 풀어서, 정상 상태에서의 전자기장의 분포를 구할 수 있고, 특히 전기장의 절대값 제곱을 하면, 대략적인 에너지 밀도 (S)도 구할 수 있다. 

만약 밑변 440 nm, 높이 280 nm 짜리 금으로 된 비어 있는 형태의 피라미드를 만들었다고 가정해 보자. 계산해 보면 밑바닥으로부터 대략 1/3 지점에 전자기장의 에너지 밀도를 가장 높일 수 있는 전자기파의 파장은 대략 250 nm 정도의 UV로 나온다. 그러면 우리는 금속으로된 나노 피라미드의 비밀을 푼 것일까? 물론 아니다. 그냥 맥스웰 방정식을 수치 해석 방법으로 풀다가, 우리가 원하는 값인 1/3 지점에 에너지 밀도가 가장 높아지는 특정 주파수의 전자기파를 찾은 것 뿐이다. 그리고 그 파장은 단 한 개도 아니고, 그냥 일정한 값의 범위로 나온다. 피라미드를 건설한 고대인들은 맥스웰 방정식도 알고 이들의 분포를 계산할 줄도 알았으며 심지어 외부에서 어떤 전자기파가 들어오는지도 알았다는 것일까? 당연히 물론 아닐 것이다.
 

JAP에 논문을 보고한 연구팀이 한 일도 이와 다르지 않다. 그냥 기자 대 피라미드의 형태를 밑변 440 m, 높이 280 m 의 사각뿔로 가정하고, 안은 비어있다고 가정하면서, 벽의 재료는 모래나 석회암 (아마도 SiO2 or CaCo3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가정하고, 대략 피라미드 크기와 비슷한 파장을 갖는 전자기파 (여기서는 라디오파)를 200-300 m 정도의 범위에서 계산해 본 것 뿐이다. 연구팀의 계산 결과, 가장 강한 에너지 밀도는 라디오파 파장이 200-230 m 정도일 때 형성되는 것으로 나온다. 오! 그렇다면, 고대 이집트인들은 파라오들이 AM 라디오 채널을 언제든 들을 수 있게끔 애써서 피라미드를 설계하기라도 한 것일까? 당연히 아니다. 그냥 거기서 공명하는 전자기파의 파장이 하필 200-230 m 정도였을 뿐이다.

JAP 논문을 쓴 저자들도 피라미드 신비주의 같은 것을 신봉하여 이런 연구를 한 것 같지는 않다. 그저 지극히 흥미 위주 연구일 뿐으로 보인다. 단언컨대, 이 연구가 주는 새로운 물리학적 발견은 전무하다. 만약 피라미드 크기가 밑변 44 m, 높이 28 m 짜리, 즉, 현재 피라미드의 정확히 1/10 축척으로 축소된 크기였다면, 그리고 피라미드를 이루는 소재의 유전율이 크게 변하지 않는다면 아마 최적의 전자기파 파장 대역은 20-23 m 로 나왔을 것이다. 왜냐면 애초에 맥스웰 방정식 해는 구조체의 크기와 전자기파의 파장의 비율 자체가 중요한 변수이기 때문이다. 만일 이런 소형 피라미드가 존재했다면 지상파 TV 정도의 전자기파나 혹은 FM 라디오 신호도 수신할 수도 있긴 했을 것이다. 물론 거대한 피라미드를 건설한 사람들이 죽은 파라오가 TV나 라디오 신호 잡아내시라고 애써서 엄청나게 무거운 돌 수천, 수만 개를 수십 년씩 날라가며 밑변 440 m, 높이 280 m 짜리 거대한 대 피라미드를 짓지는 않았을 것이다. 만약, 애들 장난감 혹은 기념품 삼아 밑변 4.4 m, 높이 2.8 m 혹은 44 cm, 28 cm짜리 소형 피라미드 모형을 만들 경우, 최적의 전자기파 파장은 기가파, 즉 이제 본격적으로 5G 통신 대역의 주파수로 들어 온다는 것이다.

JAP 논문을 쓴 연구팀은 "피라미드 디자인와 에너지 집중 능력 관계는 나노입자 연구에 엄청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믿는다"고 논문에서 주장하고 있는데, 이 부분이 많은 유사과학자들, 유사역사학자들에게 영감을 준다. 그렇지만 유감스럽게도 이것은 믿고 말고 할 자시고의 문제가 아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지난 20-30년 간 닳고 닳도록 연구한 주제다. 연구팀이 주장하듯 피라미드를 모종의 신비주의 에너지 집중체로 묘사할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냥 맥스웰 방정식 풀면 나오는 해 중의 하나일 뿐이기 때문이다.

흥미롭게도 피라미드 건설 배후에 초고대 문명을 주장하는 그에이엄 핸콕이나 오스마라지크 박사는 이 피라미드가 우리가 알지 못 하는 에너지를 집중시키는 일종의 거대한 기계 혹은 거대한 에너지 저장소라고 주장을 하곤 한다. 거대한 천체 관측소, 거대한 무덤으로만 보기에는 너무 거대하기 때문일까? 뭔가 그럴듯한 과학적 이론이 끼어들어 오면 신뢰도가 높아지기 때문일까? 그렇지만 앞서 언급했듯, 피라미드 어딘가에 피라미드 크기와 비슷한 파장을 갖는 전자기파의 고유 모드가 형성될 수 있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고, 그것은 에너지 저장소이거나 에너지 발생소라는 주장과는 아무런 연결고리가 생기지 않는다.

사실 더 황당했던 오스마라지크의 주장은 그가 이 피라미드의 기단에서 발견한 콘크리트 블록의 방사성 연대를 측정해보니 그것이 3만년 전으로 나왔다는 것이다. 즉, 그는 보스니아 피라미드가 지구상의 그 어떤 피라미드보다도 더 역사가 오래되었다는 주장을 하고 싶은 것. 그렇지만 오스마라지크 박사의 초청을 받고 현장을 방문하여 두 달간 직접 조사했던 보스턴 대학교의 고고학자인 Robert M. Schoch 박사는 전혀 다른 결론을 내렸다. (www.smithsonianmag.com/history-archaeology/The-Mystery-of-Bosnias-Ancient-Pyramids.html) 스코치 박사는 오스마라지크가 주장한 보스니아 피라미드의 콘크리트 구조물은 그저 자연적인 퇴적 지형에서 흔히 발견되는 사암-이암-셰일의 복합체일 뿐이며, 이러한 지형은 Vicoso 지역 곳곳에 산재한 사암층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나는 형태일 뿐임을 확인했다. 블록처럼 가공된 것처럼 보였던 형태 역시 지질활동에 의해 퇴적층이 구조 변형을 겪으면서 생기는 현상의 결과일 뿐이었다. 역암과 사암이 섞인 지층에 외부의 힘에 의한 변형이 가해지면 상대적으로 단단한 역암은 남고 사암이 부서진다. 사암과 역암이 켜켜이 쌓였던 상태에서 이들이 서서히 구부러진 후 외부 스트레스에 의해 부서지거나 오랜 세월에 걸쳐 풍화되면 충분히 블록 같은 형상이 나타날 수 있음을 스초키 박사는 주장한다. 사실 더 말이 되지 않았던 것은 오스마라지크 박사가 주장한 콘크리트 블록 곳곳에는 화석도 꽤 많이 발견되었다는 것인데, 이야말로 콘크리트 블록이 그저 흔한 퇴적암 지형일 뿐이라는 증거이기도 하다. 초고대 문명인들이 콘크리트를 만들었다면 굳이 화석을 그 안에 집어넣을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현대의 건축업자들이 사용하느 콘크리트에 삼엽충 화석이나 암모나이트 화석이 없는 것처럼 말이다.

사실 오스마라지크 박사가 주장하는 것은 서로 앞뒤가 안 맞는 것도 많다. 채취한 샘플의 방사성 연대 측정 결과는 적게는 1만 4천년에서 많게는 3만년까지 편차가 크기 때문에 특정 연대를 추정하기 어려우며, 그가 발견했다는 지하 터널의 비문 역시 최근에 새겨진 것이 분명한 흔적이 발견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오스마라지크 박사는 그 비문의 연대가 훨씬 더 오래된 것이라며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해석이 불가한 문자라고 주장한 낙서들은 18세기 군인들의 암호일 뿐이었고, 터널 자체를 파낸 도구 역시 그 당시에 잘 알려진 도구들일 뿐이었다.

오스마라지크는 사실 2005년 보스니아 피라미드 발견 당시, 아직 박사 학위가 없는 상태였다. 그런 그는 2006년 내셔널 지오그래픽에 보스니아 피라미드 발견소식을 전하면서 이것이 돈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했을 수 있고, 자신의 학문적 권위를 확보하기 위해 근처에 있는 사라예보 대학에서 학위를 받기로 결심한다. 흥미롭게도 그가 전공한 박사학위는 사회학인데, 사실 고고학이나 역사학, 지질학과는 거리가 먼 학문임에도 불구하고 그가 이 전공을 선택한 까닭은 그가 2006년에 설립한 보스니아 피라미드 재단의 관계자로서 사라예보 대학의 사회학 교수 Hidajet Repova를 선임했기 때문이다. 그는 Repova 교수를 자신의 박사학위 논문 지도교수로 선임하고 겨우 3년만에 박사학위를 취득했는데, 박사 학위 내용은 정통적인 사회학 논문의 주제와는 거리가 먼, 마야 문명, 마야의 크리스탈 해골, 마야 문명을 둘러싼 사회심리학, 마야 문명과 고대 중국의 거인족 문명과의 연관성 같은 것들이었다. 즉, 오스마라지크 박사는 보스니아 피라미드 재단의 설립자로서 자신의 학문적 권위를 인스탄트로 재빨리 만들기 위해 어거지 학위를 취득한 셈이며, 이로 인해 주류 학계에서는 더더욱 제대로 학문적 훈련을 받은 사람으로 인정 받지는 못 했다.

오스마라지크 박사가 과학적으로도 허무맹랑한 주장을 하고, 주어진 데이터를 부정하기도 하고, 학위를 어거지로 취득도 하고, 계속 억지로 국제학회를 개최하면서까지 얻으려고 했던 것은 무엇일까? 사실 보스니아 피라미드가 몇 번 미디어를 타고 나서 꽤 많은 관광객이 보스니아 중부의 시골 마을로 이 고대의 피라미드를 보기 위해 몰려들었다. 이들은 마을 근처에서 숙박하며 헬기를 타고 보아야만 제대로 볼 수 있는 피라미드들을 둘러보는 관광 상품을 소비했고 각종 기념품을 구매했으며 오스마라지크 박사의 책은 불티나게 팔렸다. 즉, 오스마라지크 박사의 보스니아 피라미드 재단은 돈이 되는 사업이 된 셈이다. 물론 이러한 지적에 대해 그는 이렇게 비즈니스를 하는 까닭은 보스니아 피라미드를 발굴하기 위한 자본을 충당하기 위함이라고 항변한다. 그렇지만 Schoch 박사가 지적했듯, 이 지역의 피라미드처럼 보이는 언덕형 지형들은 그저 사암층 지형일 뿐이며, 발굴해 봐야 로마시대 유적이나 화석 정도나 발굴하게 되는 정도에 그칠 뿐이다. 물론 그것이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나, 그것을 위해 보스니아 피라미드라는 상품을 파는 것은 별로 정당화되기 어려운 주장이다.

사실 오스마라지크 박사의 보스니아 피라미드 재단의 발굴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데, 오히려 이로 인해 이 지역 고유의 문화 유산이나 자연 유산이 망가지고 있다는 비판도 있다. 제대로 발굴하고 관리하는 노력이 동반되는 것이 아닌, 답정너식의 여기저기 마구 파헤치기 프로젝트가 지속되는 것이다. 2006년 12월, 유럽 고고학회는 단 한 번의 조사만으로도 결론을 얻었고 짧은 성명을 내었다. 성명에서 유럽의 고고학자들은 이 보스니아 프로젝트가 쓰레기에 가까운 유사과학, 유사역사학, 유사고고학이며, 이럴 돈이나 노력으로 차라리 이 지역의 문화/자연 유산을 제대로 보존하는 것이 나을 것이라는 비판을 가했다.
 
DECLARATION We, the undersigned professional archaeologists from all parts of Europe, wish to protest strongly at the continuing support by the Bosnian authorities for the so-called “pyramid” project being conducted on hills at and near Visoko. This scheme is a cruel hoax on an unsuspecting public and has no place in the world of genuine science. It is a waste of scarce resources that would be much better used in protecting the genuine archaeological heritage and is diverting attention from the pressing problems that are affecting professional archaeologists in BosniaHerzegovina on a daily basis.
Professor Hermann Parzinger, President, German Archaeological Institute, Berlin
Professor Willem Willems, Inspector General, Rijksinspectie Archeologie (RIA), The Hague
Dr Jean-Paul Demoule, President, Institut nationale de recherches archéologiques préventives (INRAP), Paris
Professor Romuald Schild, Director, Institute of Archaeology and Ethnology, Polish Academy of Sciences, Warsaw
Professor Vassil Nikolov, Director, Institute of Archaeology, Bulgarian Academy of Sciences, Sofia
Professor Anthony Harding, President, European Association of Archaeologists, c/o Institute of Archaeology, Czech Academy of Sciences, Prague
Dr Mike Heyworth, Director, Council for British Archaeology, York
11 December 2006

2011년 4월에는 네덜란드의 한 다큐멘터리 제작사가 Docu Biggest Hoax In History라는 제하의 다큐멘터리 시리즈의 일환으로서 보스니아 피라미드의 사기성을 고발하는 (https://www.youtube.com/watch?v=GlC4w3JUH0M)를 제작하기도 했는데, 이 다큐멘터리에서는 오스마라지크 박사의 주장 대부분이 얼마나 허무맹랑한지를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여전히 오스마라지크 박사는 피라미드가 우리가 모르는 비밀 에너지를 모으는 고대의 기계임을 주장하고 있지만, 이 핵심 주장은 과학계의 지지를 전혀 얻지 못 하고 있다. 

그레이엄 핸콕이나 오스마라지크 박사 같은 사람들이 처음에 특정한 고대의 유적이나 자연의 지형을 보며 흥미에 빠지는 것은 일반적으로 새로운 현상을 목격한 과학자들의 호기심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과학자들도 새로운 현상을 발견하면 당연히 흥미가 생기고 그것을 더 알아보고자 하는 욕심이 생긴다. 그렇지만 과학적 사고 방식에서 이를 통과하여 살아 남는 것은 매우 적다. 과거에 보고된 현상 혹은 그 응용임을 모르고 착각했거나, 실제로 그렇다고 하더라도 재현이 안 되는 우연이거나 (왜 그런 우연이 생겼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이 재현이 안 되면 의미 없다), 우연이 아니고 재현이 된다 하더라도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재현 할 수 없다거나, 아니면 그저 착각했거나 하는 경우가 대다수이기 때문이다. 특히 모든 조건을 다 만족하여 학계에 보고하는 과정에서도 그것을 해석하는 것에 대한 논리의 정합성이 만족되거나, 수학적 모델에 오류가 없어야 하거나, 모델을 만들기 위한 가정들이 상충되지 않거나 하는 요건들을 통과하기는 결코 쉽지 않다. 그래서 정말 새로운 현상이 발견되면 한 편으로는 흥분하지만 한 편으로는 냉정해질 수 밖에 없는 것이 과학적 사고 방식을 기다리는 학자들의 대부분의 양가 감정일 것이다. 핸콕과 오스마라지크 박사는 불운하게도 이러한 험난한 과정을 전혀 거치려하지 않았고 바로 미디어를 컨택하거나 책을 출판하면서 스스로의 주장에 정당성을 부여하려 했으며, 주장의 헛점이 생길 때는 자신에게 유리한 기존의 가설 등을 체리피킹했으나, 그나마도 과학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 가설들이었을 뿐이었고, 나중에 부정된 이론마저도 여전히 고치지 않고 사용하거나, 스스로의 주장에 논리적 부정합이 생기는 등의 결과가 겹쳐 결국 사기에 가까운 음모론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물론 그들은 여전히 그들의 이론이 사실에 가깝다고 믿고 있을 것이다. 그 동기가 사업과 수익을 위한 것인지, 명성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다른 목적이 있는 것인지 모른다. 그러나 이유 막론하고 이들은 기득권 세력으로부터 탄압 당하고 있다고 코스프레 하기 좋은 입장을 취할 수 있다. 특히 이들을 지지하는 사람들, 그리고 이들을 여전히 가십거리로 소화하고 싶어하는 미디어가 존재하는 한, 이들은 계속 자신만의 '연구' 활동을 계속할 자금을 끌어 모을 수 있고, 세력을 확장할 수 있다. 이들이 언젠가 주류 학계에 편입이 될 가능성은 매우 낮지만, 이미 이들은 주류 학계 편입 여부는 별로 중요하지 않으며 자신들의 사업이 지속 가능한지가 더 중요한 문제일 것이므로, 이렇게 바이럴마케팅이라도 되는 것 자체가 도움이 된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오스마라지크 박사의 바램과는 달리, 구글 지도에 나타난 Visoco 지역의 이름 밑에는 조롱구 같은 설명이 덧붙여 있다. Bosnian Pyramid of the Sun: Natural formations in the shape of a pyramid that some believe are the oldest man-made on ear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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