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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석준 Seok Joon Kwon Sep 25. 2024

[ABP: 기술완성도 vs 시장적응력]

혁신에 있어 무엇이 더 중요한가?

한 10년 전쯤 일본 하코네에 있는 료칸에서 짧은 휴가를 보낼 기회가 있었다. 그 료칸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그곳 주인의 코멘트였다. 그는 이곳이 4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유서 깊은 문화재급 료칸이라는 것과 자신이 선조 대대로 이 료칸을 가업으로 이어 온 후손에 속한다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했다. 400년 역사라니, 한국으로 따진다면 조선 시대부터 영업을 해 온 료칸이라는 뜻이었다. 호기심에 그 주인에게 어떻게 그렇게 오래 영업을 이어오고 있느냐는 질문을 해 봤다. 내가 기대한 답은 온천수가 좋다라든지, 도쿄에서 접근성이 좋아서라든지 하는 대답이었는데, 그가 말한 답은 간결했다. '전통을 그대로 고수하고 있어서'라는 것. 전통을 고수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다시 물었는데, 그는 '예전부터 쓰던 목조 목욕 용품, 접객 예절, 료칸의 요리들, 온천 시설 등을 거의 바꾸지 않고 그대로 쓰는 것'이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료칸에 머물면서 나는 그가 말한 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체험할 수 있었다. 해당 료칸은 3층 건물로서, 전체가 목조였으며, 온천 시설 역시 오로지 천연 암석과 목재로만 지어져 있었다. 료칸 내부의 객실 역시 모든 시설이 거의 박물관 급에 가까워 보였고, 종업원들의 의상이나 예법도 굉장히 예스러웠다. 일본의 전통문화 체험을 원하는 관광객들에게는 온천 체험과 더불어 일거양득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의 수준이었다.


400년을 이어 내려올 정도의 전통에 대한 존중이 정말 이 료칸의 장수의 비결인지는 여전히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전통에 대한 고집스러울 정도의 존중은 이 료칸을 유명하게 그리고 끊임없이 관광객이 찾아오게 만드는 이유임은 확실해 보였다. 하코네 주변에는 이 료칸과 비슷한 역사를 자랑하는 명소가 몇 곳 있었는데, 다 가보지는 않았지만 아마도 내가 갔던 료칸과 크게 다를 바는 없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 료칸이 위치한 마을 전체가 일본 전국 시대에 박제된 것 같은 분위기를 풍겼기 때문이다. 그 료칸에서 머물렀던 짧은 시간 동안 내가 얻은 인상은 일본인들이 가진 장인정신의 뿌리가 굉장히 깊고 여러 영역에 걸쳐 있다는 것이었다. 아마 대체로 긍정적인 뉘앙스로 내 기억 속에 들어왔던 것 같다. 그렇지만 시간이 지나 일본 반도체 산업을 공부하면서 이 인상은 점차 부정적인 방향으로 변해갔다. 장인정신이 늘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최근 SNS에서 본 것 중 인상 깊었던 사진이 있었다 (첨부 사진 참조). 그것은 일명 '코끼리밥솥'으로 유명한 일본의 전기밥솥 업체인 조지루시 (Zojirushi)에서 만든 밥솥 사진이었다. 해당 채널에 올라온 사진 설명에 따르면 무려 25년이나 지난 후에도 이 회사에서 만든 밥솥의 모델은 전혀 바뀌지 않았은 것 같다. 겉면 조작 버튼 배열과 디자인도 그대로고, 심지어 모델 넘버도 같다. 전면 우측 상단에는 Made in Japan이라는 표현도 큼지막하게 배치된 것 역시 바뀌지 않았다. 코끼리밥솥의 모델이 25년 동안이나 바뀌지 않았다는 사실은 한 편으로는 재미있으면서도 한 편으로는 별로 놀랍지 않았다. 나는 그것을 직접 체험했기 때문이었다. 


1980년대 우리 집 옆집 아주머니가 어머니와 수다를 나누시며 그 아주머니의 친척이 일본에 다녀오시면서 사다 주신 코끼리밥솥 자랑하시는 것을 옆에서 들었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옆집 아주머니의 자랑과 함께 그것을 부러워하시는 듯 듣고만 계시던 어머니 모습도 생각난다. 우리 집에도 금성사 밥솥이 네 식구의 주식 제조를 책임지며 잘 작동하고 있었지만, 당시 어린 내가 듣기에도 '일제' 거기에 '코끼리밥솥'은 무엇인가 넘사벽 선진국의 넘사벽 제품 같은 느낌이 들었다. 국산 제품을 쓰던 우리 집은 옆집보다 뭔가 경쟁에 밀린 분함마저도 느껴졌다. 나는 옆집의 그 코끼리밥솥 실물을 볼 기회가 한 번 있었다. 어머니가 잠깐 집을 비우셔서 옆집 아주머니가 저녁을 대신 차려주셨던 어느 날, 나는 옆집의 식탁에 세 살 위의 그 집 형과 둘러앉아 아주머니가 은빛 전기밥솥에서 예쁜 밥그릇에 고슬고슬한 따뜻한 쌀밥을 주걱으로 퍼담으시는 것을 곁눈질로 지켜보았다. 내가 관심을 가졌던 것은 도대체 코끼리밥솥이라는 것이 어떻게 생긴 것이었느냐에 대한 것이었다. 초등 저학년이었던 나는 당연히 그 밥솥이 코끼리 모양으로 생겼을 것이라 짐작했다. 하지만 정작 내가 확인한 밥솥은 코끼리 형상과는 거리가 멀었다. 대신 우리 집의 금성사 노란 밥솥과는 달리, 유선형의 유려한 곡면, 메탈 느낌이 나는 밝은 은색톤의 색감과 전면에 배치된 디스플레이, 그리고 오밀조밀한 일본어 버튼들이 참 인상 깊었다. 금성사의 노랗고 단순한 플라스틱 밥솥과 대비되는 시각적인 강렬함 때문인지, 아주머니가 담아 주신 쌀밥도 (분했지만) 뭔가 우리 집 밥보다 더 맛있게 느껴졌다. 나는 밥을 꾸역꾸역 먹으면서도 그 밥솥을 계속 흘끔 거리며 훔쳐봤다. 여전히 '코끼리'에 대한 의문은 풀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주머니는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하신 듯, 일부러 주걱으로 밥솥 하단에 있는 조지루시 로고, 그리고 코끼리 모양을 가리키시며, '이게 코끼리밥솥이야. 밥 맛있지? 배고프면 더 달라고 해. 많이 있으니까.'라고 말씀하셨다. 물론 나는 한 그릇 더 먹겠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밥그릇을 비울 때쯤 어머니가 나를 찾으러 옆집 초인종을 누르셨기 때문이다. 옆집 아주머니는 나와 어머니를 배웅하시면서 '얘가 새 밥솥으로 지은 밥을 먹어서인지 밥을 잘 먹더라'라는 이야기를 하셨다. 어머니는 연신 감사함을 표하시며 옆집의 밥솥 칭찬을 잊지 않으셨다. 얼마 안 있어 그 옆집은 다른 동네로 이사 갔고, 나는 당분간 은색 유선형의 코끼리밥솥을 다시 볼 기회가 없었다.


그로부터 한 20년 정도가 흘러, 결혼식을 막 치른 나는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미국 도착 후 와이프와 유학 그리고 신혼 생활 정착을 위해 가재도구를 사러 이곳저곳을 둘러보다가 어떤 일본 상점에 방문할 일이 있었다. 당시만 해도 내가 정착한 동네에는 H-mart 같은 한국 마트가 없어서 일본 상점에 자주 갔었는데, 그중 한 곳에 내가 20년 전에 봤던 것 같은 코끼리밥솥이 있었다. 나는 그 밥솥 앞에서 잠깐 시간을 뺏겼다. 그 밥솥은 내가 초등학생 시절 옆집에서 봤던 그 모델과 정확히 같아 보였기 때문이다. 은색의 메탈 느낌, 유려한 유선형, 노란 LCD 디스플레이와 오밀조밀하게 배치된 각종 히라가나가 쓰여진 버튼들의 배열은 20년의 시차를 두고 마치 타임머신 타고 돌아간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과장되게 말하면 당장이라도 그 옛날 옆집 아주머니가 주걱으로 그 밥솥에서 따뜻한 쌀밥을 퍼 공기에 담아주실 것 같은 느낌마저도 들었다. 나는 좀 신기해서 그 밥솥을 계속 이리저리 만져보고 바라봤다. 물론 전면 하단에 있는 조지루시 상표와 예의 그 코끼리 로고도 확인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와이프는 이미 쿠쿠 전기밥솥을 한국에서 사 왔는데 뭐 하러 전기밥솥을 또 하염없이 보고 있냐는 장난 어린 힐난을 했지만, 20년 만에 타임캡슐에서 나온 것 같은 코끼리밥솥을 다시 만난 내게는 참 재미있던 그리고 추억 가득한 순간이었다.


그런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SNS에 올라온 25년 시차를 둔 밥솥이나, 내가 20년 시차를 두고 확인한 밥솥이나, 추억만으로만 바라볼 것은 아니었다. 반대로 생각해 보면 20-25년 동안이나, 코끼리밥솥은 전혀 변한 것이 없는 것이다. 조금 더 나쁘게 말하면 20-25년 동안이나 그 밥솥은 전혀 발전한 것이 없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물론 기능을 다 확인한 것도 아니고 실제로 밥맛을 비교해 본 것도 아니므로 발전한 것이 없다라고 단정하기는 이르다. 그렇지만 적어도 전면부의 기능 배치나 디자인만 놓고 본다면 코끼리밥솥은 적어도 20-25년 동안은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셈이다. 그 와중에 금성, 삼성 등의 대형 가전업체가 점령했던 국산 전기밥솥은 쿠쿠, 쿠첸 같은 전문 전기밥솥 업체들이 점유하는 시장을 형성하게 되었고, 이제 한국에서는 물론, 많은 아시아권 국가들, 그리고 심지어 쌀밥을 찾는 많은 비 아시아권 사람들도 한국의 전기밥솥을 찾게 되었다. 물론 여전히 코끼리밥솥을 찾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적어도 일본에서는 창립 100년이 넘은 조지루시의 시장 점유율은 시장 점유율 1위다. 그렇지만 한 세대의 시간이 바뀌는 동안 전기밥솥 역시 기능의 변화 압력에 직면했고, 가족 규모도 점차 대가족에서 1-2인 가족으로 트렌드가 바뀌며 밥솥의 크기, 용도 역시 많은 변화를 겪었다. 한국을 찾는 중국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사가는 품목 1위가 한 때 한국의 전기밥솥이었을 정도로 세상과 세월은 많이 변했고, 코끼리밥솥을 굳이 사려는 한국인들은 이제 찾아보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에 사는 교포들, 그리고 미국에 이민 간지 좀 역사가 되신 분들 중, 코끼리밥솥을 구매하여 쓰시는 분들은 여전히 코끼리밥솥을 칭찬하신다. 10년, 20년이 지나도 밥맛에 변화가 없고, 고장도 잘 안 나고, 수리하기도 쉽고, 소모품이라고 해 봐야 내솥 정도라서 내솥만 바꿔주면 얼마든지 계속 쓸 수 있다는 것이었다. 반면 한국 전기밥솥은 기능은 다양하고 디자인도 더 세련되어 보이지만, 히팅 방식이 인덕션 방식이라 그런지 생각보다 내구성이 아주 훌륭하지는 않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어떤 사람은 5년 쓰고 교체했다는 사람도 있고, 10년 이상 쓰는 것은 무리라는 이야기도 들린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한번 한국 전기밥솥에 정착한 사람은 일제로 넘어가지는 않는다는 것이었다. 쿠쿠나 쿠첸의 밥솥이 일제보다 더 빨리 교체 주기가 찾아와도 같은 회사의 새로운 모델로 교체한다는 뜻이다. 그 이유에는 여러 개가 있겠으나, 역시 밥을 주식으로 삼는 사람들은 밥맛의 변화에 민감하기 때문이지 않을까 한다. 내가 아는 미국 교포 지인은 쿠쿠 밥솥이 고장 나서 예전에 쓰던 조지루시 제품을 다시 구매하여 사용했는데, 결국 바뀐 밥맛에 적응을 못 하고 쿠쿠의 새 모델을 구매했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조지루시의 밥솥에서는 오래된 밥맛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는 이야기와 더불어, 쿠쿠에서는 당연히 지원하던 자동 보온, 찜이나 죽 만들기 기능 등이 시원찮아서 적응하기 어려웠다는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경제성만 따진다면 좀처럼 고장 나지 않고 밥맛을 일정하게 만들어 주는 코끼리밥솥을 쓰는 것이 더 합리적으로 보이는데, 소비자들은 25년이나 바뀌지 않는 밥솥 그리고 밥맛을 중요 옵션으로 생각하지는 않는 것 같다. 한 세대의 시간 동안 소비 트렌드가 여러 번 바뀌었고, 가구 구성 비율, 주식으로 밥을 먹는 비율, 밥솥이 아닌 쿠커를 원하는 소비자의 니즈도 변화를 거듭했으니, 이에 대응하는 제품이 새로운 소비품의 중심이 된 셈이고, 그에 적응하지 못했던 제품은 과거에 박제된 것으로 볼 수도 있겠다.


사실 기업 입장에서, 한 세대가 바뀌는 시간 동안 소비자들이 제품에 대한 요구가 누적된다면 그를 무시하기는 어렵다. 만약 기업이 주력 제품을 한 세대 동안 거의 바꾸지 않았다면 그것은 기업이 게을러서라기보다는, 그 변화를 원치 않는 소비자들을 고려했기 때문이라고도 볼 수 있다. 문제는 그 소비자들이 전체 수요에서 차지하는 비율이다. 일본에서는 여전히 코끼리밥솥으로 대표되는 조지루시 사의 전기밥솥의 점유율이 2020년 기준, 전체의 1/4 이상으로서 시장 점유율 1위다. 이는 코끼리밥솥의 '일정함', '변화 없음'을 '발전', '많은 변화'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소비자 층이 일본에서는 주류라는 뜻으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단카이 세대로 대표되는 일본의 베이비붐 세대들이 여전히 제일 많은 현금과 자산을 가지고 있는 세대이고, 이들은 변화를 대부분 싫어한다는 특징이 있으므로, 이들이 코끼리밥솥으로 밥을 해 먹을 때 그 밥솥에 변화를 주려는 회사의 계획은 대부분 경영진의 판단 옵션에 들어갈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들 주류 소비층의 니즈에 맞춰 한 세대가 넘도록 디자인과 기능을 바꾸지 않고 모델 넘버마저도 소비자들에게 익숙한 넘버 그대로 출시하는 조지루시사의 마케팅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정일 것이다. 그렇지만 그 과정에서 조지루시 사는 과거 일본을 넘어 아시아, 그리고 세계를 호령하던 코끼리밥솥의 위명을 잃어버리게 되었고, 시장은 점점 일본 안으로만 축소되게 되었다. 시장은 변해가고, 사람들의 입맛은 계속 바뀌며, 아시아권을 넘어 이제 글로벌 시장에서도 쌀을 찾는 소비자들이 늘어나는데, 일본의 과거 주력 세대에게 초점을 맞춘 채 화석이 되어가는 코끼리밥솥은 시장의 변화에 대응하는 것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아마도 회사 내부에서 이러한 문제를 지적하며 혁신을 외쳤을 경영진이나 기술팀은 계속 밀려났을 것으로, 과거의 문법과 경영 정책에 익숙한 올드보이들, 그리고 그들의 후계자들이 계속 회사의 주력으로 남았을 것이다. 코끼리밥솥의 안정감과 익숙함, 그리고 밥맛에 길들여진 소비자들과 함께 그렇게 코끼리밥솥의 혁신 엔진의 따뜻함은 식어간다. 


역사가 깊고 분야가 넓은 일본의 산업 특징을 한 단어로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도 일본의 산업의 내면에 깔린 의식 혹은 철학을 축약적으로 표현하는 몇몇 단어들은 있다. 예를 들어 '잇쇼켄메이 (一所懸命 혹은 一生懸命)'나 ‘모노즈쿠리(ものづくり)’로 같은 표현들이 그렇다. 전자는 말 그대로 한 곳에서 혹은 일생동안 하나의 사명 혹은 직업을 유지하며 일가를 이룬다는 근성 혹은 정신을 일컫는 말이다. 그리고 후자는 조금씩 그러나 꾸준히 개선과 개량을 해나가면 결국 시간이 흘러 더 좋은 기술 혹은 제품을 만들 수 있다는 뜻이다. 둘 다 결국 핵심 철학은 장인정신이다. 그리고 그 장인정신이 향하는 공통점은 현재와 이어지는 미래다. 한 때는 현재를 개선시켜 미래의 언젠가 정점에 도달하는 무엇인가를 만드는 것은 칭송의 대상이고, 그것을 끊임없이 추구하는 것은 아주 바람직한 일로 받아들여지던 때가 있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었다.


과거 한국이 일본보다 한참 못 살 때, 일본은 한국에게 있어 필생의 경쟁자이지만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넘사벽의 이웃국가 같았던 때가 있었다. 불과 한 세대 전만 해도 한국의 경제 규모는 일본의 1/6 수준이었고, 한국에서는 일본을 배우자는 이야기가 공공연하게 나왔다. 그중에는 일본의 장인정신에 대한 이야기도 늘 빠지지 않았다. 1980년대, 전 세계 반도체 시장을 석권하던 일본의 반도체 산업은, 당시 막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 본격적으로 들어가기 시작한 한국에게 있어 모범 사례이기도 했다. 일본 반도체 산업은 잘 알려져 있다시피 1980년대 글로벌 시장 (사실상 미국 시장)을 석권했는데, 그 비결은 미국 반도체 기업과의 기술 및 원가 경쟁에서의 승리였다. 미국 반도체 기업은 1970년대 당시만 해도 B2C라기보다는 B2B에 가까웠다. 주요 시장은 군사용, 우주용, 정부 기관용 등의 고성능 컴퓨터나 장치류에 들어가는 주문형 칩에 가까웠다. 당시에는 PC라는 개념도 없었고, 집적회로를 대량생산해야 한다는 당위성도 없었으며, 따라서 양산에서의 수율 관리라는 개념도 크게 중시되지는 않았다. 일단 어느 정도의 기술적 완성도를 가지고 칩을 제조할 수 있는 회사 자체가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본 업체들이 파고든 틈은 바로 여기였다. 198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개막된 PC 시대는 B2B 그리고 공공 기관용 대형컴퓨터용 칩 제조에만 익숙하던 미국 반도체 업체들에게는 새로운 기회이자 위기였다. 그렇지만 미국 업체들은 이것을 기회로 살리지 못했고, 그 기회를 잡은 것은 일본 업체들이었다. 애초에 군사용 제품 제조에 대해 접근 권한이 제한된 일본 업체들은 오히려 PC를 포함한 소비자용 컴퓨터 시장이라는 새로운 시장을 노릴 수 있었고, 이 과정에서는 기술적 완성도와 더불어 양산, 그리고 양산 수율이 굉장히 중요한 관건이 되었다. 당연히 적응력이 느렸던 미국 업체들에 비해, 일본 업체들은 수율 관리면에서 압도적 경쟁력을 보이며 원가 경쟁에서 승리했고, 1980년대의 반도체 시장은 일본이 주도하게 되었다.


일본 업체들이라고 해서 1980년대의 시장을 장악하는 과정에서 수율 문제를 쉽게 해결한 것은 아니었다. 스케일업 과정 (캐파 증산)과 작업 순서, 장비 배치, 소모품 관리 측면에서 미국 업체들과 똑같은 문제에 봉착했지만, 오히려 일본 업체들은 기계, 전자, 자동차, 중화학 산업에서 잔뼈가 굵은 모기업들의 제조 노하우, 생산 원가 관리 경험을 적극 활용하여 반도체 산업에도 이를 적용했다. 거기에 더해 이 과정에서 특히 위력을 발휘한 것은 일본 제조업 전반에 자리 잡고 있던 기술완성도의 추구, 즉, 장인정신이었다. 정밀기계산업에서 업력을 쌓은 엔지니어를 반도체 팹라인에 배치하여 클린룸을 설계하고 불량률을 낮추고 작업 정밀도를 높이는가 하면, 자동차 생산에서 잔뼈가 굵은 인력을 생산 자동화에 배치하여 장비 배치 최적화, 생산 속도 개선과 캐파 증산을 달성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이미 강력한 경쟁력을 가지고 있던 전자산업에서는 더 얻을 수 있는 기술적 어드밴티지가 많았다. 트랜지스터 생산에서의 노하우를 이용하여 DRAM 생산에서 다이의 축소 및 원가 절감 기술력을 확보했다. 장인정신에 기반한 기술적 완성도의 추구는 미국 경쟁 업체들과의 기술 격차, 원가 경쟁력 격차를 더욱 벌리게 도와주었으며, 소비자용 제품뿐만 아니라, B2B 제품에서는 기능 안정화, 수명 연장, 철저한 품질 관리 등의 장점을 내세워 시장을 석권해 나갈 수 있었다.


대표적인 사례는 NTT가 요구한 통신용 반도체 칩, 그리고 콘솔에 들어가는 메모리반도체의 극단적인 수명 연장 기술이었다. B2B 시장에서는 물론 반도체 칩의 안정적 성능 유지와 긴 수명이 중요한 관건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 특히 통신용 반도체 칩은 신호의 입출력 주기가 훨씬 짧고 그래서 칩의 수명이 다른 반도체 칩보다 짧아질 수 있으므로 통신업체들은 다른 분야보다 더 혹독한 수명 관리를 요구했다. 이 과정에서 클라이언트들의 주문을 만족시키기 위해 일본의 반도체 업체들은 평상시 요구 수준보다 훨씬 더 가혹한 품질 테스트를 거쳐야만 했으며, 그 과정에서 많은 비용과 개발 기간이 투입되었다. 일본 업체들은 특유의 장인정신으로 결국 이 요구조건을 만족하는 수준의 칩을 만들었고, 무사히 납품했다. 이는 일본 반도체 업체들의 명성을 높여주었고, 일본 반도체의 기술력을 상징하는 일화가 되기도 했다. 좀처럼 고장이 나지 않고 수명이 압도적으로 길면서도 변화가 거의 없는 제품이라니, 무엇인가 오버랩이 된다. 코끼리밥솥도 좀처럼 고장이 나지 않고 한 세대가 바뀌도록 변화가 없으면서 수명이 길다. 그래서 코끼리밥솥은 글로벌 밥솥시장에서 1위를 계속 기록하고 있는가? 물론 그렇지 않다. 일본 반도체도 결국 같은 길을 걸었다.


수명이 길고 변화가 없으며 기능이 안정적이라면 일견 좋은 제품처럼 보인다. 물론 그것은 시장에도 변화가 없을 때 그렇게 보인다는 것이다. 문제는 1980년대 후반부터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는 큰 변화가 생겼다는 것이다. 이미 1980년대 들어오면서 PC라는 새로운 시장이 열리고는 있었으나, 1980년대 후반을 지나 1990년대로 들어오면서 이제 PC는 1-2천 달러 수준의 저렴한(?) 가격대로 내려와 있었고, 이는 당시 PC 게임의 폭발적 성장과 맞물려 시장 확장의 기폭제가 되었다. PC를 2천 달러 이하에서 구매하려는 소비자들에게 있어 PC가격보다 비싼 DRAM은 그것이 아무리 수명이 길고 안정적이어도 범접할 수 없는 반도체였다. 소비자들에게는 1천 달러보다 훨씬 저렴한 메모리반도체가 필요했고, 그 수명은 25년은커녕 10년을 넘을 필요는 당연히 없었다. 글로벌 반도체 시장은 1990년대 들어 종합반도체 (IDM)이 주도하는 시장에서 분업화된 시장으로 바뀌고 있었고, 이는 지극히 상식적인 비교우위의 원리에 따라 한 품목에만 집중하는 회사들이 더 잘 살아남을 수 있는 배경을 형성하였다. 이는 메모리반도체나 통신용 반도체에도 마찬가지였다. PC 시장의 폭발적 성장세, 그를 이은 이동통신 시대의 본격 개막, PC 통신 시대의 개막, 그리고 마침내 열린 인터넷의 시대는 소비자 중심의 IT 산업으로의 무게 중심 이동을 확정 지었으며, 반도체 시장 역시 이 무게 중심을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소비자 중심의 제품은 박리다매에 가까운 방향을 추구했으며, 그 제품들은 저렴한 식당의 수익율을 위해 테이블 회전율이 높아야 하는 것처럼 교체 주기가 짧은 것이 미덕이 된다.


이 흐름을 놓친 것은 일본 반도체 업체들이었다. 이들 역시 시장의 흐름이 바뀌는 것을 알고 있었고, 이에 대응하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그렇지만 이들은 공통적으로 과거의 성공 공식을 버리지 못했다. 그것은 바로 장인정신에 입각한 기술완성도의 추구였다. 제조업 기반의 회사가 기술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기술완성도에 집중하는 것은 일견 당연한 일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기술완성도의 추구와 더불어, 반도체 산업에서 중요했던 것은 시장에 대한 적응력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예를 들어 1990년대 메모리반도체 업계에서는 64Mb DRAM에서 최강자의 자리를 지키고 있던 기업이 64Mb DRAM의 기술력을 높이기 위해 입출력 속도를 개선한다든지, 수명을 늘린다든지, 크기를 축소한다든지 하는 방향으로 기술적 완성도를 높이는 방향으로 투자를 집행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아마도 많은 주주들에게도 지지받는 의사 결정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집행한 투자가 실제로 64Mb DRAM의 기술완성도를 높이지 못했다는 것이 아니라, 역설적이게도 기술완성도를 너무 높였다는 것이다. 기술완성도를 너무 높이다 보니 다음 세대 메모리칩을 개발하는 타이밍을 놓쳤고, 그 개발 비용도 충분치 못 하게 되어, 차세대 메모리칩의 기술완성도를 높이는데 더 많은 비용이 들어가게 되었다. 반도체 칩 개발 과정에서는 어느 시점에 차세대 칩을 개발할 것인지를 놓고 치열한 고민이 거듭된다. 너무 일찍 개발하면 이른바 1등의 저주 (초기 시행착오 비용의 부담)이, 너무 늦게 개발하면 후발주자의 부담 (특허 등의 기술 장벽)으로 인해 수율 및 원가 관리가 어렵다. 적절한 시점에 차세대 반도체 칩 개발에 인력과 비용을 투입하면서도 현세대 반도체 칩에서 안정적인 수익을 창출하는 사이클을 완성해야 비로소 사업이 궤도에 오를 수 있다. 그런데 일본 반도체 업체는 과거의 성공 공식인 현세대 반도체 칩의 기술완성도 향상에 너무 집착하여 시장이 64Mb에서 256Mb로, 다시 1Gb 등으로 계속 바뀌어 나가는 것에 적응하는 타이밍을 놓쳤다. 그리고 비용은 그만큼 상승했으며, 현세대 기술완성도에 대한 투자는 높아진 원가로 인해 제때 적절한 규모의 수익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분식집이라면 테이블 회전이 잘 되어야 하는데, 테이블 한 개를 차지한 손님에게 오마카세를 대접한다면 주방장은 다른 테이블 손님에게 대응할 수 없게 된다.


물론 회전률만 높이자고 현세대 반도체 칩에 대한 기술완성도를 대충 추구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너무 기술완성도가 낮아지면 후발 주자들에게 점유율을 내어줄 수 있으며, 첨단 기술을 내세우는 기업의 이미지와 브랜드 가치도 저하될 수 있다. 기술 경쟁력을 일종의 회사 자존심으로 인식하던 당시의 일본 반도체 업체들은 기업의 이미지와 브랜드 가치 저하를 지나치게 우려하였으며, 특히 삼성전자 같은 후발주자들을 견제하기 위해 후발주자들은 생각하지도 못하는 수준까지 기술적 완성도를 극한으로 끌어올리고자 했다. 특히 늘 한수 아래로 생각했던 후발 주자들에게 그들이 꿈꾸기도 어려운 기술완성도를 보여 주는 것은 회사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였기 때문에 이에 대한 집중적인 회사 자원의 투입은 막을 수 없는 의사 결정이기도 했다. 한 때 일본 메모리반도체의 총아이자 공룡이었던 엘피다 (Elpida) 역시 DRAM 시장에서 삼성전자를 견제하기 위해 수율을 극단적으로 높이는 공정에 많은 돈을 투자하였고, 실제로 수율은 거의 99% 수준까지 올라갔다. 그렇지만 그렇게 개발된 공정은 단위 시간이 더 많이 소모되었으며 비용이 같이 상승하여, 생산 캐파에서 뿐만 아니라 원가 경쟁력에서 결국 삼성전자에게 밀리게 되었다. 기술적 완성도는 높였지만 시장에서의 점유율은 내어주게 된 것이다. 이는 그대로 수익 규모와도 직결되었고, 벌어지기 시작한 수익 격차는 결국 엘피다의 파산으로 이어졌다. 시장의 변화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 한 결과이다.


사실 과거에 성공 공식으로 여겨졌던 기술을 갑자기 쉽게 포기하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결정이다. 어떤 타자가 매우 좋은 루틴을 끝없는 훈련 끝에 발견하여 좋은 성적을 거두게 되었다면 당연히 그 루틴을 고집할 것이다. 그렇지만 시간이 지나 그 선수의 루틴의 약점이 발견되어 상대 투수진들이 그 약점을 노리는 투구를 한다면 그 루틴은 오히려 그 타자의 발목을 잡게 된다. 결국 정들었던 그리고 익숙한 루틴을 바꾸고, 폼도 바꾸고, 바뀐 투수들의 공략법에도 적응해야만 그 선수는 계속 타자 커리어를 이어갈 수 있다. 루틴을 계속 고집하면 결국 퇴물 선수로 전락할 뿐이다. B2B 시장이 우세하던 시절에는 대형 클라이언트, 정부 기관, 군 기관 등의 보수적인 품질 기준을 만족하는 반도체 칩이 중요했고, 수명의 연장에 더 많은 가중치가 부여되었지만, PC로 시장의 중심이 바뀌면서 극단적으로 긴 수명의 반도체 칩은 그 수명의 반의 반도 지나기 전에 구닥다리가 되어 버렸고, 밀스펙을 맞추느라 높아진 원가는 소비자들이 원하는 시장가격보다 훨씬 높아져 버려 결국 시장에서 외면당할 수밖에 없게 된다. 시장의 지형과 요구 수준은 끊임없이 바뀌고, 소비자들의 취향과 가중치도 계속 바뀐다. 지금은 2년만 써도 오래 쓰는 것이라 생각되는 스마트폰도 언젠가 다시 제품 수명 주기가 길어질 수 있으며, 그 경우 안정적으로 오랜 수명을 가지고 작동할 수 있는 AP와 메모리칩이 더 각광을 받을 수 있다. 지금은 우주 개발용 반도체 시장이 작으니 밀스펙, 스페이스 스펙의 반도체 칩에 대한 수요도 작고, 따라서 소비자 IT제품 용 반도체 칩을 만드는 회사들 역시 이 수요에 대응할 필요를 못 느끼겠지만, 향후 우주 개발 시대가 확대되고, 그에 따라 시장이 확장된다면 기술완성도를 극한까지 추구해 본 경험이 축적된 회사가 다시 무대의 전면으로 나올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현재의 시장은 빠른 제품 교체와 성능의 향상을 동시에 요구한다. 이 추세에 적응하면서 그 다음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기술완성도를 추구하는 반도체 기업이 결국 살아남을 것이다.


결국 반도체 업체들 포함한, 하이테크 분야에서 기술완성도의 추구와 시장적응력은 어느 한 요소만이 절대적 진리로 상수로 취급될 수는 없다. 시장은 늘 바뀌는 것이며, 기술완성도는 적절한 타이밍과 적절한 수준까지 추구하되, 과감한 전환 시기에는 기술완성도를 오히려 제어해야 한다. 과거의 성공 공식은 중요한 레퍼런스로 활용하되, 긍정적인 면만 부각되는 방향으로의 인용은 피해야 한다. 시장의 변화에 민감하게 대응하기 위해 끊임없이 파괴적 혁신의 맹아가 될 수 있는 기초 기술들의 변화를 따라가야 하고, 새로운 변화에 문호를 개방할 필요가 있다. 새로운 변화를 감지하되, 그것에 대한 대응을 자체적으로 해결하지 못할 것 같다면 연합을 하거나 인수/합병을 적극 추진해야 하고, 인수/합병 후에 그 옵션이 시장의 변화에 제대로 적응할 수단이 되지 못한다면 그 옵션을 과감히 포기할 수도 있어야 한다. 


코끼리밥솥은 아마도 10년 후, 20년 후에도 지금과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변하지 않는 코끼리밥솥을 원하던 소비자층이 점차 줄어들면서 코끼리밥솥도 결국 박물관으로 향하게 될 것이다. 지금의 글로벌 분업 체제로 돌아가는 반도체 산업 역시 언제든 지형이 바뀔 수 있다. 애플은 이제 자사의 아이폰과 맥북용 칩을 애플실리콘이라는 이름으로 자체 설계하고 제작 역시 TSMC와 독점적으로 한다. 자체 파운드리는 없지만 거의 그에 준하는 수준의 공정 엔지니어를 대거 채용하여 공정까지 설계하고 제조 과정에서는 TSMC와 적극 협업하면서 그야말로 자사가 원하는 수준에 거의 근접한 시스템반도체를 제조한다. 인공지능이 점차 대세가 되면서 과거의 코모디티 반도체 생산에 치중하던 인텔 같은 종합반도체업체들이나 범용 시스템반도체를 설계해 주던 퀄컴 같은 팹리스 회사들 역시 빠르게 변하는 시장에 대한 적응력을 혹독하게 테스트받고 있다. 적어도 5년 후, 10년 후라면 지금의 익숙한 업계 구도는 다 바뀌게 될 것이고, 특정한 기능을 할 수 있는 칩을 자체적으로 설계하고 적어도 제조에 적극 관여할 수 있는 기업 혹은 기업들의 연합이 시장 적응 과정에서 살아남게 될 것이다. 각자의 분업 구도에 충실하여 기술완성도를 높여가던 기업들은 옵션의 변화를 강요받게 될 것이고, 과거 일본 반도체 업체들이 겪었던 우를 반복할 것인지, 아니면 다시 혁신을 받아들여 변신할 것인지, 아니면 아예 혁신을 만드는 리더가 될 것인지가 결정될 것이다. 물론 모든 일은 결과론적이므로 기술완성도를 계속 높이는 것이 좋았을 것이다 혹은 시장 적응력에 더 많이 투자를 했어야 했다는 식의 결론은 지금 내릴 수 없다. 다만 확실한 것은 한 세대, 아니 5년 후에도 지금과 같은 방식을 고집한다면 반도체 시장에서, 그리고 나아가 AI 혹은 AIX용 반도체 시장에서 살아남을 가능성은 0으로 수렴할 것이라는 점이다.


몇 년 후 여전히 예전의 방식을 고집하는 반도체 업체 (그것이 파운드리든, 팹리스든, 디자인하우스든, 혹은 그 중간 형태든)가 있다면 아마도 그 업체의 반도체 기술은 코끼리밥솥 같은 신세로 전락하는 과정에 놓여 있을 확률이 높다. 누군가 그 향수를 그리워하는 시장이 남아 있어 그에 대응하기 위함이라면 모를까, 그 향수를 시장이라고 착각하여 변화에 대한 적응 타이밍을 놓친다면 결국 쪼그라드는 시장과 같은 배를 타게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장인정신은 기술 뿐만이 아니라 시장의 변화를 감지하는 데에도 발휘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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